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41)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41화(341/404)
341화. 투타겸업(5)
그러니까 8월 1일 오후 10시 17분, 한국 시간으로는 8월 12일 오전 11시 17분이었다.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하지만 9번 타자인 호세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고 경기는 그렇게 끝났다.
오타니 쇼헤이의 노히트 노런.
그리고 나의 연속 경기 안타 기록 종료.
76경기.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그래, 애초에 조 디마지오의 56경기 연속 안타가 갱신되는 것이 불가능한 기록이라고 불렸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걸 무려 20경기나 연장한 기록이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터무니없이 긴 기록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최수원 선수.”
“케이 씨?”
“오, 저를 알고 계시는군요.”
“당연하죠. 매일 같이 방송에서 제 이름을 불러주는 캐스터님을 어떻게 모를까요.”
“하하, 그렇다면 부디 그냥 마이클이라고 불러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마이클.”
“어제는 정말 아쉬운 경기였습니다. 경기의 패배도 패배였지만 특히나 아쉬웠던 점은 역시 최수원 선수의 마지막 타석이었어요. 76경기. 그 위대했던 여정의 마무리가 고작 볼넷이라니 말이죠.”
2차전이 시작되기 전의 인터뷰.
사실 사전에 미리 약속된 대화였다.
“글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마지막은 볼넷이었죠. 하지만 무안타 경기라는 건 언제 어디서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냥 하루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나올 수 있는 게 무안타 경기입니다. 4할의 타율이라고 해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확률적으로 특정 경기에 안타가 하나도 안 나올 가능성은 타석에 4번을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매번 10%가 넘어갑니다.”
“그 말씀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아 물론 모든 경기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만······. 아무튼 기록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면 더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이야기의 끝이 ‘어느 날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저하된 최수원은 4타석 연속 삼진으로 물러났습니다.’ 하는 것보다는 ‘퍼펙트를 기록 중이던 투수와 사투 끝에 그의 퍼펙트는 끝냈지만, 투수는 끝끝내 노히트를 기록하며 최수원의 안타를 막아냈다.’라는 이야기가 더 멋지지 않을까요?”
“확실히 최수원 선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또 그런 면이 없잖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침 상대 투수도 오타니 쇼헤이. 리그 최고의 선수였으니까요.”
“네, 그렇죠.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는 이제 고작 스무 살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꾸준히 이곳 양키 스타디움에서 여러분의 응원을 받고 싶습니다.”
“아, 그 말씀은 혹시 양키스와 장기계······.”
“네, 마이클. 그건 거기까지. 한 글자만 더 뱉으면 저기 서 있는 제 무서운 에이전시가 앞으로 YES 네트워크와의 인터뷰를 상당히 까다롭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짧은 인터뷰가 끝났다.
바로 어제 대기록이 끊겨 기분 나쁠 선수에게 대체 이게 무슨 미친 짓인가 싶겠지만 어제 경기가 끝나고 경찰서로 끌려간 양키스 팬의 숫자가 무려 세 자릿수였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술에 취해 벌인 경범죄였지만 몇몇 사건은 제법 심각한 중범죄로 벌금형 정도가 아닌 정말 감옥에 끌려가서 몇 년을 살아야 할 만큼 심각한 범죄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꾸준히 응원을 받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경기장 자주 찾아오라는 판촉이 아니라 어디 깜빵 갈 짓 좀 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에 더 가까웠다.
“그 칼에 찔린 사람들은 좀 어떻대요?”
“한 사람이 조금 위험하긴 했는데, 다행히 고비는 넘겼다고 합니다. 나머지도 영구적인 장애로 남을만한 상처는 아니라고 하고요.”
“아, 그러면 그 위험했던 사람은 설마?”
“네. 안타깝지만 장애는 어쩔 수 없다고······.”
어제 경기 끝나고 술집에서 난투극이 있었는데 이게 칼부림까지 가는 바람에 여럿이 좀 다쳤다. 한국의 지인들은 이 기사를 접하고는 ‘아니, 경기 때문에 속상하면 집에 가서 얌전히 술 마시고 잠이나 자지. 대체 왜 술집을 기어가서 난동을 부린 거래? 게다가 칼은 또 왜 가지고 다닌 거야?’라고 반응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아, 내가 좀 미국인이 다 됐구나.’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사실 난 그 소식을 듣자마자 ‘아니, 원정팀 주제에 경기장에서 그 꼴을 봤으면 알아서 몸조심하고 바로바로 숙소 들어가서 오늘 경기표 캔슬하고 LA행 비행기를 끊던지, 만약 뉴욕 사람이라면 집에 있는 다저스 저지를 불태워서 증거 인멸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그냥 진짜 한번 싸워보자고 시비를 건 수준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술집에서 떠들던 LA 다저스 팬 여럿이 집단 린치를 당해 크게 다쳤고 옆에서 술 마시던 보스턴 팬들이 칼에 찔렸다. 듣기로는 딱히 경기장에서 경기를 본 것도 아닌데 내 기록이 깨진 것에 단체로 기어 나와서 술을 마셨다고 하던데. 하여간 이 보스턴 놈들은 진짜······.
“구단 측에 잘 이야기해서 뭔가 좀 지원을 하던지. 아무튼, 잘 좀 부탁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
우리의 연습이 끝나고 다저스의 연습이 시작되기까지 약간 뜨는 시간이었다. 본래는 뭔가를 먹고 적당히 휴식을 취하는데 오타니가 대화를 좀 하자고 연락을 했다.
“인터뷰는 잘 끝냈어?”
“네, 그런데 어쩐 일로 보자고 하신 거예요? 이제 조금 있으면 경기인데.”
“아니, 그냥 어제 일로 조금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내일 경기 끝나면 우리 홈으로 복귀라서 내일은 이야기 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서.”
오타니의 표정은 아주 조금 어두웠다.
“부상자들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연락받았는데 목숨에 지장은 없고 다들 잘 회복 중이랍니다. 게다가 구단 측에서도 적절하게 케어가 들어갈거에요.”
“다행이네. 수원 넌 좀 괜찮아?”
“네, 저야 뭐. 쇼헤이 씨야말로 좀 괜찮으세요?”
오타니 쇼헤이가 고개를 저었다.
“많이 불편했어. 솔직히 어제 경기 전부터 너의 연속 안타를 끊어주겠다는 생각은 엄청 하고 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그게 이런 식으로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어, 좀 섭섭한데요? 제 기록을 끊어버릴 생각을 하셨었다니.”
너무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약간의 농담.
오타니 쇼헤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냈다.
“경기에 이기고 싶다는 마음 절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그게 너한테도 좋을 거로 생각했었어. 물론 지금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난 건 좀 아쉽지만 말이야.”
“에? 기록이 깨지는데 저한테 좋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너 올스타전 이후로 홈런 확 줄었잖아. 타격 성적도 좀 떨어졌고.”
“그건 올스타전 이전에도 그랬었는데요.”
“그땐 폼이 조금 망가진 상태였다며. 그거 수정했는데도 장타율이 거의 그대로였잖아. 아니야?”
“······.”
확실히 7월 한 달. 내 성적은 0.390/0.433/0.593으로 물론 어지간한 MVP급 성적이긴 했지만 그 이전에 보여주던 압도적인 성적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 감이 있었다. 안타 비율은 크게 빠지지 않았지만, 장타와 볼넷이 확 줄어든 탓이다.
“표정 보아하니까 너도 대충 이유 알고 있던 모양이네.”
그래, 사실 나도 이유 알고 있다.
“제가 공을 조금 뒤에 놓고 치긴 했죠······.”
“그래. 알고 있었네. 뭐 근데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당장 눈앞에 연속 경기 안타가 아른거리는데 욕심을 비우고 타점을 앞에 두고 휘둘러봤자 제대로 된 타구가 나오기 힘들지. 수원이 너 올스타전에서는 제대로 휘둘렀었잖아. 안 그래?”
“네, 뭐 그랬었죠. 연속 안타에 대한 부담이 없던 경기였으니까요.”
나의 상태를 너무 정확하게 까발려진 느낌이라서 그런가? 괜히 삐딱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설마 지금 제 연속 경기 안타 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듣고 싶은 건 아니실거고······.”
“맞아. 그냥 원래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볼넷을 의도했던 게 아니라는 변명이야.”
“네?”
“마지막 타석. 정말 갑갑하더라. 심판의 오심도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내 공도 정말 좋았는데 던질 곳이 안 보였어. 특히 마지막에 그 파울 홈런. 존에서 완전히 빠지는 공이었는데······. 그때 너 어떻게든 연속안타 기록 이어가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정말 제대로 치겠다는 마음이었지?”
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때는 정말 기록이고 뭐고 아무런 생각 없이 무념무상으로 오타니의 공에 대응했을 뿐이었다. 그건 회귀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프로 생활만 17년째 하면서 처음 경험해보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볼넷을 할 생각은 아니었어. 보더 라인에 걸치게 공을 던지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래, 아무래도 내가 겁을 먹었던 것 같아.”
겁을 먹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오타니의 얼굴이 참으로 맑았다.
얼마 전에 생일을 지났다니까 서른다섯. 그러니까 딱 내가 회귀하기 직전의 나이다. 그 나이의 나는 어땠더라? 벌써 4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 그런가? 뭔가 좀 희미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남 앞에서 이렇게 나의 약점을 해맑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약속할게. 다음번에는 다를 거야.”
“다음번이면······.”
“당연히 월드시리즈지. 물론 너희만 올라올 수 있다면 말이야.”
“에이,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우리야말로 당연히 올라가죠. 지금 양대리그 승률 1위가 우리 양키스인 거 아시죠? 다저스야말로 더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터넷 세상에서는 거의 둘도 없는 원수인 것처럼 묘사되는 사람 간에 별 의미 없는 티격거림.
비록 나의 연속 경기 안타를 볼넷이라는 허망한 형태로 끝맺음하게 했지만 난 여전히 오타니 쇼헤이라는 사람이 싫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까 그건 절대 무리라니까요. 애초에 남은 경기 전승을 어떻게 합니까? 당장 오늘 상대가 우리 양키스인데.”
“수원. 원래 꿈은 거대하게 꿀수록······.”
“아, 그 말은 저도 알아요. ‘그래야 깨져도 그 조각이 크다.’ 뭐 그런 말 아닙니까.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꿈이란 가까워질수록 계획이 된다.’도 있고요. 근데 다저스 남은 경기 전승은 커도 너무 커서 그거 완전 개꿈이라니까요? 그리고 어? 다저스가 전승하면 우리는 뭐 가만히 있습니까? 우리도 전승해서 계속 양대리그 승률 1위 해버리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양키스 남은 경기 전승은 무리지. 오늘 상대가 우리인데.”
“와, 이 양반 뻔뻔한거 보소?”
그래, 아무튼 그리 싫지 않았다.
***
다저스와 양키스의 2차전.
양키스에서 오늘 선발로 나선 투수는 스탠 오웬스.
작년 겨울 6년 1억 7천만 달러에 워싱턴과 계약했던 이 에이스급 투수는 이번 여름 워싱턴이 정말 기둥뿌리까지 죄다 팔아먹는 극단의 파이어 세일 때 팔려 나온 매물 중 하나였다.
양키스의 프런트와 제프 클라크 감독에게 6선발 체제를 꿈꾸게 만든 양키스 우승을 위한 마지막 조각.
속구와 슬라이더 체인지업과 커브.
네 가지 구종 모두 20-80스케일을 기준으로 55(above-average pitch)에서 60(plus pitch)사이.
스탠 오웬스는 자신이 어째서 리그 최강의 3선발 투수인지를 다저스의 타선을 상대로 여실하게 증명했다.
2이닝 동안 7명의 타자를 상대로 1루를 밟은 타자는 단 하나.
마운드를 내려온 스탠 오웬스가 제프 클라크 감독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어?”
“저 아무래도 좀 다친 것 같은데요?”
트레이드 이후 첫 등판.
양키스 우승을 위한 마지막 조각이 드러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