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48)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48화(348/404)
348화. 시즌의 끝(5)
‘확실히 마음이 단단해.’
양키스의 제프 클라크 감독은 지난 20여 년 동안 무려 3개의 팀에서 4개의 반지를 손에 넣은 명감독이었다. 감독으로서 그의 특기는 선수의 컨디션을 파악하고 그를 적절하게 케어하는 일명 ‘보모’의 역할이었다. 아마 20세기였다면 그는 지금과 같은 명감독 소리를 듣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비리그의 명문대에서 수학을 전공한 녀석들이 책상에 앉아 전략을 짜내는 현대 야구에서 감독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은 바로 저 ‘보모’의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최수원은 정말 스무살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대단한 녀석이었다. 단순히 실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녀석의 타격 능력을 보고 있자면 단순히 저 괴물과 같은 능력만이 아니라 그 노련함이 도무지 스무살이라고 믿기지 않는 수준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것은 그의 멘탈이었다. 스무살짜리 애송이가 백여년 만의 기록을 등에 줄줄 업은 채로 시즌을 이어간다? 그런데 파탄이 없다? 그와 비교하면 차라리 한두 경기, 혹은 한두 달 미쳐 날뛰는 건 애교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라고 해서 미숙한 부분이 없지는 않다.
괴물과 같은 타격 능력에 비해 확실히 피칭은 부족했다. 앞선 타격이 시간을 뛰어넘은 괴물적인 능력이라면 그래도 피칭은 언젠가 에이스급 투수가 될 것 같은 유망주의 그것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최수원은 ‘퍼펙트’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행운’의 영역이라고 말하지만 제프 클라크 감독은 알고 있다. 그러한 행운조차도 결국 그 근간에는 행운을 끌어올 수 있는 ‘실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 최수원이 마운드에서 보여주는 단단한 마음이야말로 고작 ‘언젠가 에이스급 투수가 될 씨앗’ 주제에 무려 퍼펙트를 해낸 그 ‘실력’일 것이다.
보통의 투수라면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야수의 실책에도 괜찮다며 다독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인이라니. 단순히 야수의 이어지는 실수들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투수 본인이 정말로 흔들림이 없다.
얼마 전 그에게 조금 더 휴식일을 주겠다 선언했던 때를 생각해보더라도 그렇다.
아무리 신인이라도 지금 최수원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녀석이라면 논리고 뭐고 훨씬 더 격렬하게 반발함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SNS에 언해피 띄우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최수원은 그의 설명을 듣고 거기에 수긍을 했다.
제프 클라크 감독은 어쩌면 그것이 최수원 본인도 현재 자신이 어느정도 지쳤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아드레날린이 도는 젊은 선수라면 쉽게 인지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어쩌면 최수원이라면.’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도 저 녀석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이기 때문일 것이다.
-딱!!!
이번 워싱턴의 대바겐세일 기간에 보스턴이 쇼핑했던 포수 빅터 크루즈가 최수원의 뚝 떨어지는 커브볼을 잡아 당겼다.
하지만 애매하게 빗맞은 타구. 마이크 트라웃이 공을 쫓았다.
살짝 빠른 타이밍.
젊은 시절, 보여주는 것에 비해서 실제 수치로는 영 좋지 못한 중견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마이크 트라웃이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낸 ‘낙구 지점 예측’능력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최우선으로 교정해야 하는 능력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는 괜찮았다.
저게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면 잡을 수 없는 공을 잡게 해주는 능력이니까. 게다가 살짝 틀려도 원래 잡을 공은 잡는 거고, 못 잡을 공은 원래 못 잡을 공들이었으니까. 하지만 37살이 되면서 피지컬이 저하된 마이크 트라웃에게 저건 잡을 수 없는 공은 어차피 못 잡는 거고, 살짝 틀어지면 잡을 공도 못 잡게 만들어 버리는 능력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10번 중 7, 8번은 나쁘지 않았다. 정확한 예측. 마이크 트라웃이 매우 여유롭게 공을 잡아냈다.
아웃.
4회 초. 잔루 1루.
이닝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
스읍······.
오늘 양키스의 수비 상태가 뭔가 전체적으로 좀 마린스의 향기가 좀 진하게 느껴지는 날이라서일까? 중앙에서 든든하게 버텨주는 마이크 트라웃이 너무 멋있었다.
“나이스 수비.”
“나이스 수비는 무슨······. 이 정도는 글러브 끼고 그라운드에 서 있으면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이지.”
크, 그저 빛이다. 빛.
그래도 작년에 이주혁 쪽으로 공만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던 걸 생각하면 진짜 오늘 경기 정도는 양반이다.
마운드에서 내려오자마자 타자용 장비를 챙겨서 방망이를 들고 1루, 아니. 타석으로 향했다.
[4회 초. 노아웃에 주자 없는 상황. 선두 타자는 최수원. 최수원입니다.] [앞선 1회 초. 자동고의사구를 선택했던 보스턴 레드삭스. 아, 하지만 이번 이닝은 승부를 준비하는군요.] [아무래도 오늘 크리스 세일 선수가 앞선 이닝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하면 뭐 득점권에 주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자 없는 상황에서까지 최수원 선수를 거르는 건 좀 좋지 않죠.]올해로 39세.
뭐, 이 정도만 말하더라도 지금 마운드에 선 투수가 얼마나 위대한 투수인지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39살까지 빅리그에서 선발로 뛴다는 건 그런 의미니까.
젊었을 적에는 명예의 전당을 논할만한 투수였고, 나이를 먹은 이후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꾸준히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할만한 투수로 활약해왔다.
게다가 올해 또 뭘 잘못 드셨는지 지난 2024년에 FA 재계약 앞두고 보여줬던 것에 필적하는 기량을 또 한 번 보여주고 있는지라 보스턴 빠돌이들 가운데 몇몇은 세일이 올해와 같은 시즌을 두세 번 만 더 보여준다면 은퇴 이후 명예의 전당도 가능하겠다. 라는 희망 회로를 불태우게 만들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절대 불가능한 망상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올해 크리스 세일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들에게 그런 ‘망상’을 하게 할 만큼 대단했다는 점이다.
크리스 세일이 초구를 뿌렸다
93.3마일의 속구.
2미터에 가까운 키와 그 키에 어울리는 긴 팔에서 뽑혀 나오는 좌완의 속구는 확실히 매서운 면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아버지 시대에 가장 로망이 있는 투수 중 하나였던 랜디 존슨의 그것을 닮았다고 했는데 확실히 그런 면이 없잖아 있다.
-부우웅!!!
“스트라잌!!!”
타이밍이 늦었다.
공이 생각보다 빠르네? 라는 느낌으로 고개를 한 번 갸웃했다. 그리고 다시 타석에서 두 번째 공을 기다렸다.
[아, 오늘 경기 가장 빠른 공!! 최수원 선수의 배트가 살짝 늦었습니다.] [최수원 선수. 100마일 이상의 공도 굉장히 잘 치는 선수거든요. 이건 역시 크리스 세일 선수의 공이 단순히 표기되는 구속보다 훨씬 빠르다는 증거겠죠?] [네, 아무리도 2미터에 달하는 큰 키에. 긴 팔. 그리고 좌완. 18.44미터의 거리에서 투수가 직접 손에 쥐고 움직이는 거리가 길어질수록 당연히 표기되는 구속보다 공이 도착하는 속도는 더 짧아지거든요. 게다가 타자가 보통 공을 판단하는 시간은 투수의 손에서 공이 떠난 직후부터니까 손에 쥐고 나오는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시간도 짧아지고요.]두 번째.
살짝 밖으로 빠져나가는 속구.
-뻐엉!!!
빅터 크루즈가 자신의 미트를 슬쩍 움직였다. 물론 통하지 않았다.
“이걸 참아? 설마 우타자인 너한테 슬라이더라도 던져 줄까봐? 아니면 뭐? 체인지업이라도 기다리는 거야?”
“어? 뭐지?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인데?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었나?”
“빅터. 빅터 크루즈다. 예전에 워싱턴에서 본 적이 있었지.”
“아!! 그때 그 포수. 스탠한테 복판 속구 던지게 해서 나한테 2루타 선물했던 그 친구 구나? 이야, 반갑다. 너도 팀을 옮겼네? 그러면 이렇게 된 거 이번에도 선물 하나 어때? 이번에는 2루타 말고 조금 더 큰 걸로.”
“······.”
녀석이 입을 다물었다.
세 번째.
이번에도 속구다.
‘걸렸구나.’
변화구 타이밍에 맞춰서 살짝 헛스윙 한 번 보여주고 애매한 속구 하나 걸렀을 뿐인데 진짜로 내가 변화구를 노린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뭐, 그게 아니면 오늘 정말로 속구가 잘 들어가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아무튼간에 그게 뭐가 됐건 상관 없는 일이다.
중요한 점은 내가 노리던 것이 속구였다는 거니까.
-따아악!!!
방망이를 아주 제대로 잡아당겼다.
크리스 세일의 93마일 속구는 분명 다른 투수의 98마일 속구. 혹은 그 이상에 필적할 만큼 빠르게 느껴졌다. 바꿔 말하자면 내가 치기 딱 좋은 공이라는 뜻이다.
쭉쭉 뻗어 나간 공이 시원하게 담장을 넘어갔다.
[홈런!! 홈런입니다!! 최수원의 시즌 마흔네 번째 홈런포!! 최수원 선수가 0:0의 팽팽한 경기를 뒤흔드는 솔로 홈런포를 기록합니다!!] [크리스 세일 선수. 허탈하게 웃네요. 하긴. 방금 93.6마일. 이번 시즌 두 번째로 빠른 공이었거든요. 게다가 코스도 진짜 절묘했어요. 저도 현역 시절에 할 수 있는 거 다 했는데 두들겨 맞으면 그건 뭐 화나기보다는 허탈해서 웃음이 나더라고요.] [이걸로 이제 홈런 개수가 리그 홈런왕인 완더 프랑코 선수와는 단 3개 차이. 양대리그 홈런 1위인 알렉산더 맥도웰 선수와는 5개 차이입니다.] [정말 대단한 선수예요. 경기 숫자가 아마 30경기. 타석도 거의 100타석은 차이가 날 텐데 비율 스탯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걸 이렇게까지 따라잡네요.]크리스 세일이 조금 흔들렸다.
아니, 어쩌면 그냥 두 번째 타순이라서 우리 타자들이 슬슬 크리스 세일에게 적응한 걸지도 모르겠다.
안타, 안타, 볼넷, 외야 플라이.
뭔가 빅이닝을 만들 것 같다는 느낌이 무럭무럭 풍기는 공격이 좀 이어졌다.
점수는 2:0.
원아웃에 주자는 1, 2루
7번 타자인 오스틴 배틀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고, 8번 타자인 호세가 깔끔하게 외야 플라이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호세 저 녀석이 타석에서 찬물 끼얹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는 한데, 유난히 오늘은 눈에 좀 밟혔다. 지금까지 그래도 마스크 쓰고는 흠잡을 곳이 거의 없었는데 오늘 그 파울 플라이에 거의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 신경이 쓰여서 그런 걸까? 그래, 뭐 이제 슬슬 9월이 다 돼가니 좀 지칠 때도 되긴 됐다.
-뻐어엉!!
“스트으라잌!!”
그래도 여전히 공 하나는 잘 받는다.
내 커브가 제법 받기 힘든 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걸 뒤로 아예 흘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니, 잠깐만. 내가 오늘 너무 마린스 같은 환경에서 피칭을 해서 좀 헷갈렸다. 여긴 빅리그다. 2할이 안 되는 포수라면 당연히 수비라도 엄청 잘 해야지. 더군다나 우리처럼 역대급 페이스로 달려가는 팀이라면 더더욱.
피칭이 이어졌다.
적당한 삼진 욕심과 적절한 타협.
삼진 하나와 내야 땅볼 하나.
1루까지 커버를 다녀왔더니 살짝 땀이 흐른다.
그리고 타석에 다시 2번 타자인 트레버 스토리가 올라왔다.
신중하게 공을 뿌렸다.
스트라이크, 볼, 볼, 파울.
그리고 다섯 번째.
다음 타자는 라파엘 데버스.
오늘 경기 가장 까다로운 타자다. 이왕이면 주자 없는 깔끔한 상황에서, 그리고 좀 푹 쉬고 다음 이닝에 상대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득 담아 오늘 가장 좋은 공을 뿌렸다.
헛스윙 삼진을 잡겠다는 각오로 던진 뚝 떨어지는 커브.
그야말로 폭포수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부우웅!!!
당연히 타자의 방망이는 그 공을 건드리지 못했다.
좋았다.
여기까지는······.
사고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아!! 빠졌습니다!!]이번 시즌 호세가 처음으로 내 공을 빠트렸다.
그리하여 5회 초 투아웃에 주자 1루.
타석에 11년 3억3,100만 달러. MVP 2위만 두 번에 빛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3번 타자 라파엘 데버스가 올라왔다.
이번 경기 세 번째 타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