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53)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53화(353/404)
353화. G.O.A.T(1)
“수원아 괜찮아?”
“어? 아, 뭐. 그럭저럭? 원래 경기 뛰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그런 거지 뭐.”
은진이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음······. 솔직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아, 물론 경기 결과도 경기 결과지만 누군가가.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이렇게 계속 나를 걱정한다는 게 뭔가 남자로서 자존심에 살짝 스크래치가 나는 기분이랄까?
내가 기억하기로 이맘때의 나는 이런 걸 들으면 조금 불같이 화를 냈던 것 같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이야기를 안 들어도 성적이 좀 나쁜 날에는 이래저래 화를 많이 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쭉 34살까지 살아봤기에 알고 있다.
이렇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이 얼마나 귀한지. 그리고 사람이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해도 되는 곳은 오직 마운드밖에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렇게 많이 걱정되면 미국으로 날아오던지. 얼굴 보고 위로받으면 완전히 괜찮아질 것도 같은데?”
“뭐지? 저랑 통화하는 분 대체 누구시죠?”
“누구기는. 네가 사랑하는 남자친구지.”
“아닌데. 우리 수원이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렇게 혀뿌리가 썩어버릴 것 같은 오글거리는 달콤한 말 절대 못 하는 사람인데.”
“왜? 그래서 싫어? 하지 말까?”
“아니, 싫다는 말은 절대 아니고······. 아무튼!! 스케줄은 내가 최대한 맞춰볼께. 아마 잘하면 시즌 끝나기 전에 갈 수 있을지도?”
“그래?”
“응, 시즌 마지막 경기 정도는? 어차피 사무실에서도 어지간한 스케줄보다 네 경기 보러 가서 사진 찍히는 게 더 효과적인 거 잘 알고 있으니까.”
“어? 박은진. 뭐야?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나 본다는 핑계로 비즈니스가 하고 싶은 거야?”
“아니, 비즈니스 한다는 핑계로 너 보는 사심 채우고 싶은 건데?”
민망하고 간질간질한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입가에 살짝 미소가 올라왔다. 금방 다시 오늘 경기 결과가 떠오르긴 했지만, 이상하게 전화를 하기 전보다는 조금 괜찮아진 기분이었다. 확실히 직접적으로 위로 받는 것보다는 그냥 이렇게 하릴없는 대화를 나누는 편이 더 좋은 느낌이다.
“아무튼 오늘 푹 자고. 내일은 하루 쉬는 날이지?”
“어? 아냐. 내일은 아마 그냥 스타팅으로 뛸 것 같아.”
“아······.”
“야, 아니거든? 오늘 공 던진 거 적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시즌 막판이라서 우리 어? 최다승 기록도 걸려있고. 그래서 하는 거거든?”
“어휴, 그럼. 당연하지. 우리 수원이가 누군데. 당연히 어? 팀을 위해서 그러는 거지. 암!!”
“야, 박은진. 너 당장 미국 날아와라.”
“어이구, 우리 수원이. 이 여자친구가 그렇게 보고시퍼쪄요?”
“그래, 어떤 의미로건 엄청 보고 싶으니까. 당장 날아와라.”
연애.
아무튼, 지금까지만 보자면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오늘의 충격이 잊혀질만큼 말이다.
[최수원 충격의 2.1이닝 7실점 패배!!] [무리한 일정으로 축적된 피로 탓일까? 최수원 규정 이닝 소화에 적신호?] [애런 조던(메츠 감독) “스무 살짜리 선수에게 규정 이닝과 규정 타석 동시 소화? 이게 미친 혹사가 아니면 대체 뭐가 혹사일까?”] [최수원 2.1이닝 7실점 부진에도 이어간 출루!! 이제 전 경기 출루까지 남은 건 단 다섯 경기뿐!!] [제프 클라크 감독. 최악의 교체 타이밍!!] [최악의 선발등판 바로 다음 날 다시 지명 타자로 선발 출장? 최수원.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최수원 “아쉬운 결과였지만 그래도 아직 팀의 분위기는 좋습니다. 저희는 위대한 시즌을 보내고 있고 제가 그들 중 하나라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그래, 어제 경기. 나는 2.1이닝 동안 무려 7실점을 했다.
이번 시즌 내가 등판한 경기들 가운데 최악이었다.
뭐, 이유라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컨디션이 그리 썩 좋은 편이 아니었고, 그래서인지 구속은 그럭저럭 나왔지만, 공이 좀 제대로 안 뻗었다. 게다가 커브의 컨트롤도 영 들어먹지를 않았다.
아, 물론 나도 안다.
이거 다 핑계인 거. 두들겨 맞은 다음에야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지 당시에는 별 생각 없었다. 홈런 맞았을 때도 이대로 조금 더 던지면 틀어막을 수 있는데. 대체 왜 강판시키지? 하는 생각이 더 컸었으니까.
“수원.”
“네.”
“상황이 어떻게 되건 간에 우리 시즌 마지막 경기. 네가 선발이다.”
규정 이닝까지 2.2이닝.
그러니까 내가 어제 경기에서 딱 5이닝만 던졌으면 충족했을 그 부족한 2.2이닝.
제프 감독이 나와 맺었던 ‘규정 이닝은 어떻게든 채워주겠다.’라던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시 한번 나에게 선언했다.
***
-딱!!!
3회 초 원아웃에 주자 만루.
최수원이 던진 커브가 밋밋하게 들어가고, 그 공이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순간 롭 맨프레드는 자신도 모르게 F로 시작하는 단어를 내뱉었다.
악몽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의 인기란 것은 예전처럼 단순히 시청률로만 집계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트래픽은 그 시절의 시청률 만큼이나 명확했다. SNS에서 피드 되는 숫자, 검색량, 하다못해 MLB.com의 접속자 숫자와 올스타전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최근 메이저리그의 성장세는 눈에 보일 만큼 명확했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최수원이라는 시대를 압도하는 천재. 그리고 그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어찌 됐건 적어도 한두 가지 정도는 최수원보다 나아 보이는 영건들의 활약. 무엇보다 뉴욕 양키스라는 최고 인기팀이 과거 악의 제국 시절을 연상케 하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리그를 압도하는 그림이 깔려있었다.
이제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고작 여섯 경기가 남은 상황.
최수원은 무려 데뷔 시즌에 규정 이닝, 규정 타석 충족. 각종 타격 지표 경신. 투수로도 준수함 이상을 충족했다. 이대로라면 라이브 볼 시대 이후 누구도 도달해본 적이 없는 1920년, 21년, 23년. 루스의 그 기록들 사이 어딘가에 도달할지도 몰랐다.
전설.
그래, 이건 말 그대로 전설의 영역이다.
물론 모든 전설적이 영웅들의 서사에는 위기가 있고 영웅은 그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하지만 현실은 영웅 서사가 아니고, 현대인들은 그 위기가 주는 스트레스를 굳이 원하지 않는다. 현대의 영웅은 그저 위기 없이 평탄하게 승리만 해주면 그걸로 족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보통의 영웅 서사였다면 최후의 흑막 포지션 정도를 해줬어야 하는 MLB의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 그는 마지막 순간에 위기에 봉착한 이 스토리에서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배리 본즈가 약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그 길을 걸었다면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최수원 역시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했을 때 그것이 오롯한 영광으로 남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 롭 맨프레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메이저리그의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가 아닌 그저 양키스의 팬 롭 맨프레드로서 MLB.com에서 최수원의 저지를 한 장 더 사는 것 정도뿐이었다.
***
가끔 영화나 만화를 보면 ‘에이, 개연성 너무 없네.’라는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게 참 우스운 이야기인 게, 보통 내가 그렇게 ‘개연성 너무 없는 이야기’라고 봤던 것들이 사람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인 경우보다는 실화 바탕의 이야기인 경우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이번 시즌 나의 이야기도 훗날 영화. 혹은 드라마. 아니면 애니메이션? 아무튼, 뭐가 됐건 창작물로 만들어진다면 앞에 별표를 넣고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라는 말을 꼭 넣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
이미 우리의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는 결정이 난 지 오래다. 당연히 우승 축하 파티는 진즉에 했다. 하지만 양키 스타디움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냥 가득 찬 것도 아니다.
고개를 들어 포수 뒤편 좌석을 바라보면 내가 익히 아는 얼굴들이 가득하다. 아, 당연히 그들도 나를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게 서로서로 인사를 해서 알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뉴스나 인터넷 기사,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서 정말 얼굴‘만’ 서로 아는 사이다.
각종 스포츠 스타와 유명 배우나 가수. 유명한 사업가, 정치인. 혹은 그냥 돈이 많은 거로 유명한 사람들.
17만 달러.
그러니까 한화로 약 2억3천만 원. 오늘 저기 앉은 사람 중 누군가가 저 자리에 앉기 위해 지불 한 금액이다. 듣기로는 역대 모든 야구 경기 티켓값 가운데 가장 비싼 가격이었다고 들었다.
단순히 한 자리의 가격만 그런 게 아니다.
스텁허브에서 정말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올라와 있던 티켓들이 모조리 매진되고 심지어 외야석에 수천 달러를 냈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번 경기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번 경기에 걸린 것이 그만큼 많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우리 팀의 성적은 116승 45패.
그래, 역대 최다승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둔 상황이다.
그리고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130경기 연속 출루. 그러니까 한 시즌 내가 출장한 모든 경기에 출루하는 대기록이 바로 오늘 경기에 달렸다. 사실 129경기냐 130경기냐 뭐 크게 다르겠느냐마는 원래 또 기록이라는 것의 의미는 그런 사소한 점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건 조금 애매한 부분이기는 한데······.
[안녕하십니까. 오늘 뉴욕 양키스와 텍사스 레인저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 저는 해설을 맡은 마이클 케이.] [저는 존 스털링입니다.] [오늘 경기 참 많은 것이 달린 경기입니다. 물론 오늘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으로 우리의 우승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역사에 길이 남을 시즌을 보냈습니다. 감히 말해보건대 어쩌면 역사상 있었던 그 모든 양키스를 통틀어 올해가 가장 강력한 해가 아닐까. 전 그런 말을 해보고 싶습니다.] [하하, 물론 저희가 1920년대의 올드 그레이트 양키스를 본 사람은 없습니다만, 제가 1990년대의 양키스 시절에 직접 뛰어본 사람으로서 글쎄요. 저는 데릭이 이 자리에 와도 자기 시절보다 지금이 더 강력했다고 말할 것 같군요.] [그리고 역시 그 중심에는 이 선수. 오늘 선발로 등판하는 우리 최수원 선수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겁니다.] [맞습니다. 참, 지난 등판에서 너무너무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던 최수원 선수. 하지만 만약 그 경기에서 평소처럼 5이닝 2실점이나 3실점 정도를 했다면 오늘 경기. 이 뜻깊은 경기에 최수원 선수가 선발로 서는 일은 없었을 테니. 어떻게 보면 뭔가 운명적인 실패였다는 생각도 조금 드는군요.]bWAR과 fWAR.
뭐 딱히 이게 사무국에서 인정하는 공신력 있는 스탯은 아니지만 일단 가장 대중적이면서 야구의 라이트한 팬들 모두가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스탯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스탯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나는 ‘아직’ 1921년의 루스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 19세기의 350이닝씩 던진 기괴한 성적들을 제외하고 지금의 야구 형태가 갖춰졌다고 볼 수 있는 1920년 라이브볼 시대 이후 가장 압도적인 시즌.
단일시즌을 기준으로 GOAT가 될 가능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