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55)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55화(355/404)
355화. G.O.A.T(3)
KBO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응?’이라는 말이 나오는 기록들이 보인다.
예컨대 0.393/0.452/0.581에 84도루를 한 ‘유격수’라거나 39경기 가운데 22경기에 선발로 출장해서 19경기 완투. 262.2이닝을 던졌는데 ERA가 0.99인 투수라거나. 뭐 그런 기록들 말이다.
특히 투수 기록 같은 걸 보면 MLB로 치자면 데드볼 시대 정도는 되야 가능할 것 같은 터무니 없는 기록인데 놀랍게도 저게 고작 42년 전인 1986년의 기록이다. 뭐, 262.2이닝이야 투수분업화 이전의 이야기니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ERA가 0.99라니. 심지어 이게 또 너무 투고타저라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평균 ERA가 4.17에 혼자만 ERA+가 307.1이다. 경쟁자도 누적만 보면 비슷한 수준에 ERA도 1.55로 엄청 잘 던지긴 했는데 그래봐야 ERA+가 200을 넘지 못했으니 정말로 규격 외의 존재였다고 볼 수도 있다.
자,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장황한 이야기를 대체 왜 했느냐.
이게 KBO의 그 양반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지 찬양하기 위해서는 물론 아니다. 당장 당시 리그는 NPB의 2군으로 뛰던 30대의 재일교포가 들어와서 60경기 427.1이닝을 던지고 ERA 2.34에 ERA+ 143.4를 기록하던 그런 리그였으니까.
물론 여기까지 오면 앞서 0.99를 기록했던 그 양반이 뭐 말년에 일본 가서 어떻게 던졌네. 하는 이야기가 따라붙기 마련이지만 사실 지금 내 말의 요지는 그런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리그 초창기. 대부분의 선수들이 진짜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지점을 지나는 어딘가에서 재능의 차이로 만들어지는 갭이라는 것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설명하는 거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넘어서려고 하는 이 베이브 루스의 기록이라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살짝 그런 영역에 걸쳐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야구의 역사는 오래됐다. 1870년에 최초의 프로 리그가 만들어졌고 지금의 양대리그로 형태를 굳힌 것도 1903년의 일이니까 1921년이면 KBO를 기준으로 하면 1998년 즈음? 어느정도 리그가 성숙한 이후의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선발주자와 후발주자의 차이. 그리고 데드볼 시대와 라이브볼 시대를 굳이 구분하는 차이를 고려하면 1921년의 메이저리그는 저기 1986년의 KBO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다.
WAR 14.1.
그러니까 선수 혼자서 팀에 14.1승을 더해주는 이 터무니 없는 기록은 그런 상황에서나 가능한 기록이라는 소리다.
실제로 이미 몇 차례 MVP를 받았던 당대 최고의 선수가 약을 빨고, 이미 몇 차례 사이 영을 받았던 당대 최고의 투수가 약을 빨았다. 게다가 약빨도 기가막혀서 인간의 한계를 아득히 넘어섰던 로저 클레멘스와 배리 본즈도 12 내외의 WAR이 한계였다. 또한, 역사상 최고의 퍼포먼스였다고 칭송받는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1999년과 2000년조차도 12까지도 도달하지 못했다.
자, 이제 내가 지금 기록하고 있는 13.7 혹은 13.4의 WAR이 얼마나 탈인간급 성적인지 감이 올 것이다. 그리고 고작 한 경기 만에 그걸 넘어서 14라는 WAR로 향한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말 그대로 ‘이론 상의 가능성’인지도 감이 올 것이다.
그래, 그러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여론전에 가까웠다. 시즌 마지막 경기. 최대한의 붐업을 위한 일종의 보여주기식 쇼.
아마 언론에서 쉽게 떠들어대는 그 누구도 내가 정말로 루스의 기록을 넘어설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우우웅!!!
“스트라잌!! 아웃!!”
[맙소사!! 최수원!! 경기 여섯 번째 삼진!! 4회 초. 최수원이 여 번째 삼진을 잡아내며 4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냅니다!!]이미 이번 시즌의 규정 이닝을 넘긴 지는 이미 오래였다.
총 12개의 아웃 카운트 가운데 삼진만 여섯 개.
“나이스 피칭.”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동료들이 모두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덕아웃 복판에 앉아있던 게릿 콜 역시 어울리지 않게 활짝 웃는 표정으로 나에게 칭찬을 건넸다.
그래서 오늘 내 피칭이 정말 기가 막히게 들어가는 날이었느냐를 묻는다면 사실 글쎄였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을 상대로 5할 확률로 삼진을 잡아낸다? 그것도 서부지구 2위를 다투는 팀의 타자들을 상대로? 절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건 전적으로······.
-딱!!!!
[아!!! 쳤습니다!! 마이크 트라웃!! 좌중간!! 깊숙하게 떨어지는 타구!! 마이크 트라웃!! 1루 지나 2루까지!! 2루에서!!]“세잎!!”
[세이프!! 세이프입니다!! 마이크 트라웃의 선제 2루타!! 와, 오늘 양키스 타선 정말 화끈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회 초에 이미 13점을 만들어냈던 뉴욕 양키스. 5회 말까지 총 6점을 추가하며 현재 점수는 무려 19:0. 이거 어쩌면 오늘 아메리칸리그 역대 최다득점 기록인 30득점을 경신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내셔널리그 기록도 데드볼 시대의 기록들이니까 사실상 양대리그 성립 이후 최다득점 기록을 노리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여기서 조금 아이러니한 점은 기존의 최다득점기록이 현재 양키스의 상대 팀인 텍사스 레인저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상대로 기록했던 2007년 8월 23일의 30득점 경기였다는 점이죠.] [만약 오늘 양키스가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면 텍사스 팬들에게는 정말 잔혹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포스트시즌 탈락만 하더라도 화가 날 일인데. 역대 최다 실점 패배에 심지어 팀이 가지고 있던 기록까지 하나 뺏기게 되는 셈이니까요. 아무리 매도 몰아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지만 이건 좀 심하게 몰아 맞는 거거든요.]그래, 타선의 힘이다.
물론 프로라면 항상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프로 선수도 사람이다. 이게 답이 없구나 싶은 순간에는 그 프로의식이라는 것을 투철하게 의지하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얘들 그래도 마지막 경기 잡으면 승률 3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 진출할 수 있다는 의욕을 불태우면서 시작했는데 1회 말부터 13점을 내줬으니 그렇게 타오르던 의욕이 한순간에 팍 식어버리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11점 남은 건가?”
“그렇지.”
“오늘은 진짜 하겠는데?”
“설레발 미리 치지 말라며.”
“그땐 7회까지 17점밖에 못 냈었고. 오늘은 이제 5회 말인데 벌써 19점이잖아. 아직 아웃카운트도 0개고.”
“그때 앤서니 네가 나한테 설레발 치지 말라고 했을 때도 5회에 16점이었으니까 고작 3점 차이었거든?”
“그래, 바로 3점 차이로 우리가 30득점을 못했었지.”
시즌 중반.
무려 4홈런을 몰아쳤던 콜로라도 로키스의 경기가 살짝 생각이 났다. 당시에도 앤서니 녀석과 지금이랑 비슷한 대화를 나눴었다.
우리의 잡담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경기는 계속됐다.
“어? 네 차례까지 오겠는데?”
“그러면 자동으로 네 차례도 오는 거지.”
“글쎄다. 그건 장담하기 힘들지. 아웃카운트 2개씩 남아 있어도 나까지 안 올 수도 있잖아.”
“뭐 인마?”
2월에 처음 만난 이후로 약 8개월.
함께 미국 전역을 떠돌며 월평균 27번씩 붙어 있던 사이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몇 년. 아니, 어쩌면 십수 년을 그렇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관계다.
“앤서니.”
“어?”
“아무리 그래도 캡틴은 너야. 세상에 어느 미친 팀이 선발 투수한테 주장 완장을 맡기냐. 안그래?”
“······. 너 투수 조장 이야기 나올 때 되면 세상 어느 미친 팀이 지명 타자한테 투수 조장을 맡기냐는 이야기 할 것 같은데. 이거 혹시 내 착각인가?”
“축하한다. 앤서니. 너 이제 미래를 보는 초능력에 각성을 했네. 이제 나가서 그 미래시로 1루에 좀 얌전히 걸어 나가주련?”
“······.”
-딱!!!!
[쳤습니다!! 오스왈드 웰스!! 2, 3루간!! 유격수!! 유격수 공을 잡아 2루에!!]“아웃!!”
[2루에서 다시 1루로!!]“아웃!!!!”
[더블아웃 체인지!! 아, 양키스. 5회 말. 1점을 추가하는 데 그치며 점수는 이제 17:0!! 경기는 6회, 텍사스의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저쪽 전광판으로도 다른 경기장의 경기 상황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3점을 추가하며 시애틀 매리너스을 상대로 7회 초, 7:3으로 경기를 크게 앞서가고 있거든요. 이거 텍사스 선수들 입장에서는 한층 더 힘이 빠지는 이야기일 겁니다.] [맞습니다. 양 팀 모두 승리할 경우 승률은 동률이지만 상대 전적에서 앞서는 휴스턴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확정이거든요. 결국 텍사스는 오늘 휴스턴이 패배하고 자신들이 승리하는 그림일 때만 포스트시즌 진출이 가능했는데, 사실상 이렇게 되면 포스트시즌 진출은 거의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죠.]이래도 괜찮은가 싶을 만큼 등 뒤에서 순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마운드에 올라가서 잠시 모자를 고쳐 썼다. 그리고 모자와 함께 내 마음 역시 한번 더 다잡았다.
의욕이 떨어진 상대라지만 어쨌거나 메이저리거다. 저 가운데 누가 내 공을 두들겨 담장을 넘길지 모른다.
방심하지 않았다.
-딱!!!!
그리고 그건 우리 야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의 안타를 완벽하게 틀어막는 퍼펙트한 피칭이였는가를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분명 출루는 있었다.
-뻐어엉!!
[아, 이걸 안 잡아주네요. 볼넷. 볼넷입니다.] [살짝 높은 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앞선 다섯 번째 공을 보면 이것보다 오히려 더 높게 들어갔거든요. 참 아쉽습니다.]까다로운 타자를 상대로 까다롭게 승부하다가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그렇게 6회를 지나 7회까지도.
“······.”
“감독님.”
7회에 27개나 던진 탓에 투구 수는 벌써 109개.
제프 클라크 감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선수의 컨디션을 귀신같이 파악하는 명감독으로 이름 높은 양반인 만큼 내가 조금 지친 건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걸 귀신같이 파악하지 못하는 양반이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빅리그에서 무려 11시즌을 뛰었던 선수였다.
빅리그에서 11시즌이나 뛴 선수가 은퇴 이후에도 야구를 떠나지 못한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다.
그래, 그는 야구를 사랑한다.
충분한 돈이 있음에도 은퇴 이후 가족과의 오순도순한 삶보다 1년 중에 8개월 이상을 떠돌아야 하는 이 빌어먹을 삶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그런 사람이기에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가 창창한 유망주의 오른쪽 분필을 아껴줄 것이냐.
아니면 역사에 다시 나올지 모르는 위대한 도전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냐.
덕아웃의 다른 선수들이 제프 클라크 감독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제프 클라크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언제든지 내릴 수 있다는 전제하에.
10월.
경기가 길어진 탓에 밤이 깊었다. 해가 진 뉴욕의 10월은 쌀쌀했다.
첫 번째 타자에게 외야 플라이 아웃을 뽑아냈다.
그리고 두 번째 타자에게는 볼넷을 허용했다.
제프 클라크 감독이 잠시 움찔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타자에게 공을 던졌다.
몸쪽 낮고 깊숙하게 파고 들어가는 속구.
야구라는 것이 항상 그렇듯 꼭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는 원하는 코스에 원하는 공이 들어가지 않는다.
복판으로 몰린 야구공.
타자가 힘 있게 공을 두들겼다.
-딱!!!!!
힘이 빠진 탓일까?
내가 던진 공은 생각보다 더 가라앉았다. 타자의 방망이가 두들 긴 곳은 야구공의 윗둥이었고 자연스럽게 타구는 땅볼로 이어졌다.
5년 1억 2천만 달러짜리 2루수 데니스 마르티네즈는 이 쉬운 수비를 놓치지 않았다.
유격수인 앤서니 볼피 역시 수만 번 연습해온 동작을 실수하지 않았다.
그리고 애런 저지의 미트는 거대했다.
더블 아웃.
내가 멋지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야수들이 나에게 달려왔다.
“야, 야. 잠깐만!! 아직 우리 1이닝 남았!!!”
흥분한 녀석들의 돌진에 나의 목소리가 묻혔다.
망할 자식들 같으니······.
그렇게 우리는 역사적 승리를 거뒀다.
117승과 한 경기 34득점.
그리고 1921년 베이브 루스의 f와 b 사이 어딘가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