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69)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69화(369/404)
369화. 월드 시리즈(5)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시나리오였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보스턴과 양키스가 맞붙더니 월드 시리즈에서는 양키스와 다저스가 맞붙는다.
“4,231만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긴장된 표정의 직원이 숫자를 말하는 순간 쏟아지는 박수함성과 괴성이 쏟아졌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흥분하여 종이뭉치를 하늘로 집어 던지는 사람들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양손으로 얼굴을 파묻고 울먹이는 이들도 있었다.
롭 맨프레드는 그 가운데 마지막에 가장 가까웠다.
밀려드는 어마어마한 감정의 격류가 이 70세의 노인의 눈에서 결국 눈물방울을 만들어냈다.
그래,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수치였다. 지난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경기에 시청자 수가 무려 2,370만이었다.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다시 1,870만으로 줄어들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시 양키스의 상대였던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비인기 팀에 확실하게 부족한 전력이기 때문이었다. LA다저스라면 손에 꼽히는 인기팀이며 그 전력 역시 탄탄하기 이를 데 없다. 양키스의 패배를 바라는 모든 이들. 예컨대 보스턴이라거나 보스턴의 팬 같은 이들도 경기를 관람하기 충분한 매칭이다.
롭 맨프레드가 자신의 붉어진 눈가를 꾹꾹 눌렀다.
그리고 애써 냉정하게 4,231만이라는 숫자를 평가했다.
“조금 아쉽게 됐군. 얼마가 부족했던 거지?”
“197만이 부족했습니다.”
지금까지 월드 시리즈 1차전 역대 최고 시청자 수는 1978년의 4,428만이다. 마찬가지로 LA다저스와 뉴욕 양키스의 맞대결이었던 그 경기는 아직 야구가 미국의 No.1 스포츠로 국기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의 경기였다.
작년 월드시리즈가 평균 1,600만 남짓한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믿기 힘든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사실 4,231만이라는 숫자는 단순히 야구로 국한할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세계 스포츠 전체로 넓혀 보더라도 단일경기 기준으로 이보다 많은 시청자를 보이는 건 월드컵을 비롯한 축구의 몇몇 결승경기. NFL의 챔피언십 시리즈와 슈퍼볼. 그리고 크리켓 파이널이나 윔블던 파이널정도 뿐이다.
“요인은? 더 끌어올릴 여지는 있는 건가?”
“네, 아무래도 승부가 조금 빠르게 결정 나는 바람에 시청자 이탈이 너무 이른 시간에 이뤄진 게 평균 시청자 수에서 상당한 손해를 본 것 같습니다.”
“피크 타임이 언제였지?”
“네, 5회 말 양키스의 마이크 트라웃이 홈런을 치는 순간이 피크였습니다.”
그래, 역시 양키스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패는 그림이 되면 이탈자가 생긴다. 적어도 대등하게 게임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의 양키스를 상대로 그게 가능할까?
2차전.
양키 스타디움 마운드에 게릿 콜이 올라왔다.
***
돌이켜보건대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08년에 처음 양키스에 1라운드 전체 28번에 드래프트 당시 계약을 거절하고 대학으로 갔던 일부터 하필 트레이드로 자리를 옮겼던 팀이 사인 훔치기 스캔들의 중심에 위치한 팀이었다는 점. 그리고 리그의 거의 모든 투수가 공공연하게 사용하던 파인 타르도 하필 스캔들이 되는 시점에 포커스가 그에게 맞춰졌었다는 점은 여러모로 재수가 없었다고밖에는 말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몇몇 악질 양키스 팬들은 그게 다 08년에 드래프트 걷어 차고 대학으로 진학한 업보라고 이야기한다. 01년 피켓을 들고 영원히 양키스의 팬일 것이라 외치던 순수한 소년이 계약금 2백만 달러 차이에 양키스를 걷어찬 업보라고 말이다.
뭐 이래저래 할 말이 많긴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맞는 말 같기도 했다. 양키스에서 뛰었더라면 휴스턴으로 트레이드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비호감 스택이 덜 쌓였다면, 그리고 양키스 팬들의 강한 지지가 따라왔다면 파인 타르 사건에서도 돌출돼서 두들겨 맞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뭐, 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래, 아쉬움은 남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이상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저 미래에 지금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양키 스타디움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저기 어딘가에는 몇 년 전 똘망똘망한 자신의 팬이라며 저지를 들이밀고 싸인을 해달라고 소리치던 아이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망할 녀석이다. 작년에 게릿 콜 자신의 저지 대신 도밍고 녀석의 싸인 저지를 입고 경기장에 찾아온 걸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만약 오늘도 도밍고 녀석의 저지를 입고 왔다면 그 선택 아주 단단히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실로 쪼잔하기 짝이 없는 작은 마음가짐이었지만 그 작은 마음이 월드시리즈 2차전이라는 커다란 무대의 긴장감을 확실하게 제거해주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 그리고 중지로 모자챙을 잡아 가볍게 모자를 고쳐 썼다.
발달한 과학.
투명하여 보이지 않는 찐득함이 그의 손을 맴돌았다. 모자에 완전히 흡수됐지만 침을 묻힌 손으로 만지면 손가락에 슬쩍 묻어나온다.
한참 파인 타르 단속이 심하던 시기에는 정말로 파인 타르를 끊었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나이를 먹고 젊은 애들이랑 경쟁하려고 그러면 이 정도 약간의 요령은 필요한 법이다.
끈적한 손으로 공을 잡아챘다.
-뻐엉!!!
“스트라잌!!”
뭐 구속이나 구위가 극적으로 상승하는 역할은 아니었다. 그냥 손에서 공이 미끄러지지 않으니 제구가 좀 쉬워지고 악력이 덜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그만큼 제구에 신경을 덜 쓰니 더 쎄게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점? 그래, 솔직히 말해서 제구에 신경을 덜 쓰는 것만으로도 구속이라 구위 다 상승한다.
‘이건 안 쓰는 놈이 병신이지 뭐.’
두 번째.
-부우웅!!
“스트라잌!!”
깔끔하게 긁힌 슬라이더가 로키 차베스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이렇게 완벽하게 속을 줄 알았으면 결정구로 써먹을 걸 그랬나 싶었다.
[볼카운트는 0-2. 3구째!!]-뻐엉!!!!
0.1초? 혹은 그보다 짧은 시간.
가끔 심판이 보여주는 이 짧은 시간의 망설임은 볼이나 스트라이크 무엇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증거다. 그리고 게릿 콜이 생각할 때 보통 이런 순간에 심판의 판단은 단순히 공이 어디로 들어갔는지 만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는 순간에는 경기의 흐름. 그리고 투수와 타자의 커리어까지도 모두 계량되고 그에 맞는 결과가 도출되기 마련이었다.
“스트라잌!!!”
그래, 바로 지금처럼.
[게릿 콜!! 선두 타자 로키 차베스를 상대로 깔끔한 삼구삼진!!] [정말 절묘하게 들어간 체인지업이었습니다. 로키 차베스 선수. 정말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타석에서 물러나네요.]깔끔한 시작이었다.
그를 향해 환호하는 양키스의 팬들이 보였다. 저 가운데는 아마 27년 전의 게릿 콜 자신과 비슷한 어린이도 있을 것이다.
2000년 뉴욕 양키스는 우승을 했다. 그리고 2001년. 게릿 콜은 아버지를 조르고 졸라 마침내 월드 시리즈 직관을 올 수 있었다. 참고로 그 날 경기는 양키스가 1점 차이로 승리했다. 당대 최고의 투수였던 로저 클레멘스의 활약 덕분이었다.
물론 로저 클레멘스는 약쟁이다. 하지만 당시 어렸던 게릿 콜에게 그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순간을 선물했다. 그러니 게릿 콜 자신도 지금 어딘가에 있을 자신과 같은 어린이를 위하여 오늘 최고의 기억을 선물해줄 의무가 있었다.
다저스의 타선은 1차전과 마찬가지로 끈질기려 애썼다. 하지만 오늘 마운드 위의 게릿 콜은 그가 가장 강력하던 시절을 연상케 했다.
-뻐어엉!!
“스트라잌!!! 아웃!!!”
[대단합니다. 게릿 콜!! 100.8마일!! 100마일이 넘는 구속이 나왔습니다. 이 선수 올해 정규 시즌 최고 구속이 99.8마일이었거든요. 그런데 10월 30일. 낮최고 기온이 13도에 불과한 오늘 본인의 시즌 최고 구속을 경신해버립니다.] [이거 진짜 놀랍네요. 물론 게릿 콜 선수.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100마일 넘는 공을 밥 먹듯이 던지기는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 올해 38살이에요. 저 나이에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거든요. 와, 이거 다저스 오늘도 쉽지 않겠는데요?]특히 3회 초에 나온 100.8마일의 강속구에는 공을 던진 게릿 콜 본인도 깜짝 놀랐다. 완봉을 하겠다는 마음따윈 완전히 버리고 딱 6이닝만 완벽하게 틀어막겠다는 자세로 전력을 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100마일이 넘는 구속이라니. 이렇게 된 거 오늘 101마일까지 한 번 던져볼까?
아, 물론 6회가 끝날 때까지 게릿 콜이 다시 100마일이 넘는 공을 던지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다저스의 타선은 특유의 끈끈함 따위 발휘해볼 여지도 없이 게릿 콜에게 말 그대로 완전히 틀어막혔다.
게릿 콜이 야구란 결국 투수와 타자의 1:1에서 시작하는 종목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6회 잔루 1루!! 또 다시 무득점!! 게릿 콜이 마운드를 내려갑니다.] [게릿 콜 선수. 오늘 정말 대단합니다. 6이닝 1실점. 오늘 다저스의 타선이 정말 속수무책. 아무 힘도 쓰지 못했어요.] [하지만 아직 다저스. 희망을 버리기에는 이릅니다. 지금 게릿 콜 선수 투구수가 109개였으니 7회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올 가능성은 매우 낮거든요. 바뀐 투수를 공략하면 8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점수는 9:1.
해설자는 아직 다저스에게도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물론 그 말에 동의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그것은 경기 시작 때만 하더라도 3,900만에 달하던 시청자 수가 3,100만까지 빠지는 것으로 증명이 됐다.
“그래도 3차전은 다시 LA 다저스의 홈구장이고. 선발 역시 오타니 쇼헤이가 내정되어 있으니까 조금 더 괜찮을 겁니다. 홍보자료도 충분하게 뿌려놨고요.”
“3차전 선발이 스탠 오웬스였나? 조금 아쉽군. 정말로 여기에 최수원이 선발로 나왔더라면 역대 최고 기록도 충분히 가능했을텐데 말이야.”
“아무래도 양키스 입장에서는 최수원 선수를 선발로 활용하는 것보다 타자로 7경기 내내 내보내는 게 훨씬 이득일테니 어쩔 수 없겠죠.”
“그래, 그렇지······.”
시리즈 2차전.
해설자의 희망찬 이야기와 달리 다저스는 바뀐 투수들을 상대로 단 1점도 뽑아내지 못한 채 14:1로 무기력하게 2차전을 내줬다. 1차전의 도밍고 로드리게스를 상대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살아있던 특유의 끈끈함 역시 오늘 슈퍼 에이스 모드로 공을 던져댄 게릿 콜에게 완전히 휘발된 느낌이었다.
살짝 침체한 분위기.
과연 양키스를 상대로 역전승을 이뤄낼 수 있을까?
다저스 선수들의 마음에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
야구의 오랜 역사에는 참으로 많은 사건 사고들이 존재한다.
예컨대 깨진 화분을 정리하다 손바닥이 찢어진다거나 차 문에 손가락이 끼어 찢어진다거나 계단에 발을 헛디뎌 발목이 꺾인 다거나 기르는 개한테 손이 물린다거나.
그렇기에 사실 이 부상은 그리 드문 부상도 아니었다.
“에······. 에취!!!”
스탠 오웬스.
밥 먹다가 음식에 침이 튈까 봐 몸을 틀고 재채기하다가 허리 부상.
월드 시리즈 3차전까지 단 하루.
양키스가 본래 4차전 선발로 내정하고 있던 딜런 리를 급하게 마운드에 올리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