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70)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70화(370/404)
370화. 월드 시리즈(6)
“이런 미친?”
앤서니에게 스탠 오웬스의 소식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육두문자가 터져 나왔다.
아니, 그래. 첫 등판에서 손톱이 나가서 IL에 오른 건 그렇다고 치자. 투수의 손톱 부상은 종종 있는 일이고 등판 중에 생긴 부상이었으니까.
그런데 뭐? 재채기하는데 몸을 틀고 하는 바람에 허리가 나갔다고? 이거 지금 몰래카메라인가?
“뭐 얼마나, 어떻게 다친 거래?”
“크게 다친 건 아니고 그냥 허리 주변이 조금 놀란 거라던데?”
“불행 중 다행이네.”
“그러니까. 근데 그렇게 놀란 정도면 진통제 먹고 뛸 수 있는 거 아니야?”
앤서니의 질문은 사실 크게 이상한 질문은 아니었다. 원래 시즌 막판쯤 되면 클럽하우스에 100% 온전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포스트시즌 일정이 나름 여유로웠던 우리 팀 역시도 지금 진통제 먹어가면서 뛰는 애들이 서넛은 된다.
“투수잖냐. 약 먹이고 올려봤자 딱히 좋은 꼴 보기 힘들걸? 심지어 월드 시리즈기도 하고 말이야. 차라리 하루 이틀 쉬게 내버려 두고 더 쌩쌩하게 올리는 게 나으니까.”
“하긴.”
당장 내일 등판할 3선발 투수가 부상을 입은 상황이었다. 경기 자체도 중요하기 짝이 없는 월드시리즈 3차전이고. 하지만 그럼에도 팀의 분위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LA행 비행기에 탄 선수들의 표정은 여전히 가벼웠고 코치진의 표정 역시도 선수들보다는 조금 진지했지만, 마찬가지로 전혀 어둡지 않았다.
압도적인 2연승.
솔직히 이건 도저히 패배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제 세 경기 남았네.”
“어? 무슨 소리야. 수원. 자신감이 떨어진 거야? 그냥 스트레이트로 이겨서 4:0으로 이길 생각을 해야지. 세 경기는 무슨 세 경기야.”
“에이, 수원이가 설마 질 생각을 했겠어? 그냥 경기 숫자를 헷갈린거겠지. 수원. 월드 시리즈라고 9전 5선승 같은 게 아니야. 챔피언십 시리즈랑 똑같은 7전 4선승제라고.”
“뭐라는 거야 멍청이들이. 나도 다 알거든? 내가 말한 세 경기는 포스트시즌 최다 연승 경신까지 이제 세 경기 남았다는 소리거든? 내년까지 쭉 연승 이어가야지. 설마 다들 잊은 건 아니지?”
그렇게 왁자지껄한 수다 속에서 마침내 비행기가 LA공항에 도착했다.
***
미국 하면 엄청나게 인종의 용광로인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사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백인의 나라다. 인종차별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숫자가 그걸 증명한다.
백인 비율이 77.4%. 흑인은 13.2% 아시아계는 고작 5.4%에 원주민을 비롯한 기타 인종 비율은 7.6%에 불과하다. 물론 미국 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들은 ‘응? 내가 본 미국인들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흑인이 30%, 아시안이 15%는 되는 느낌이었는데?’라고 할 수 있다.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보통의 여행객들이 찾는 대도시 권역에는 실제 인구의 비율이 그 정도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LA는 뉴욕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우아아아아아아!!!
-최. 수. 원!! 최. 수. 원!!!
“최수원 선수!! 여기 좀 봐주세요!!”
“여기!! 여깁니다!!”
당연히 공항의 광경은 아니었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버스를 타고 그대로 호텔로 향했으니까. 우리가 묵기로 되어있던 호텔 근처.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우리를. 아니 나를 향해 환호하고 있었다.
그래, 분명 우리는 원정팀이었다. 그리고 보통의 경우 원정팀은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특별했다.
LA시의 인구는 약 300만. 그 가운데 무려 12만이 한인이다. 범위를 조금 넓혀 LA카운티와 오렌지카운티로 확장할 경우 1,100만 가운데 60만가량이 한인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이 200만이 조금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미교포의 3할이 이곳 LA시 근처에 모여 사는 셈이다.
“야, 수원아. 너 은퇴하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나가면 되겠는데?”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외국인도 출마할 수 있나?”
“글쎄, 대통령은 안되는 걸로 아는데 주지사는 되는건가?”
“될걸? 예전에 터미네이터도 주지사는 했었잖아.”
내 앞자리에 앉은 녀석들이 나에게 쓸데없는 농담을 건넸다.
“바보들아. 아놀드는 미국으로 귀화를 했었잖아.”
“그래? 그러면 수원도 미국 국적 따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우리 시민권 쉽게 나오잖아. 수원도 신청만 해두면 거의 곧바로 나올걸?”
“수원이가 굳이?”
“그야 모르는 일이지. 한국도 징병제라서 국제대회 금메달 못 따면 아마 군대 가야 할걸?”
“국제대회면 WBC? 수원이면 딸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치고 혼자 던지고 혼자 달리면 되잖아. 아니면 나도 한국 대표팀으로 참가 못 하나? 나도 잘 찾아보면 고조할머니 정도에는 한국인이 있을 수도 있어.”
“네가 잘도 그러겠다. 그리고 애초에 WBC는 소용없어. 아시안게임? 그러니까 팬아메리칸게임 같은 게임만일걸? 맞지? 수원.”
“어, 맞아. 근데 데니스 너는 이걸 어떻게 이렇게 잘 알아?”
“하하, 예전에 Ji랑 마이너에서부터 같이 뛰었었거든.”
Ji라면 군 면제 때문에 영주권 따고 결국 귀화까지 해버렸는데 나중에 WBC에는 또 한국 대표로 나와서 화제가 됐던 지상혁이다. 몰랐는데 데니스랑 같은 마이너에서 한솥밥을 먹었었다니 참 이 바닥도 좁긴 좁다.
아무튼, LA 거주 한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호텔에 도착하니까 또 이 지역 하원 의원들이 줄줄이 나를 만나겠다고 찾아왔다.
“내년에나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보게 되네요.”
“LA에 오면 다저스가 아니라 저를 응원해주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시죠?”
“당연하죠. 내일은 저희 후원회 사람들이랑 단체로 응원을 가기로 한 걸요. 아, 내 정신 좀 봐. 미안해요.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요. 내일 경기 때문에 얼른 쉬어야 할 텐데.”
“아니에요. 경기랑 경기 사이에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이동일로 하루 쉴 때 잠깐 사진 찍는 게 낫죠. 의원님도 이렇게 와서 사진이라도 한 방 안 찍으시면 곤란하시잖아요.”
워싱턴에서 한번 만나 안면이 있던 3선 하원 의원인 레베카 김 의원과도 다시 인사를 나누고 예의 바른 웃음을 띤 채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나중에 정말 필요한 일이 있으면 주저 말고 여기로 연락 줘요.”
“그때 이미 번호는 주셨는데요?”
“그건 업무용. 이건 제 개인용이에요.”
묘하게 달라진 정치인의 환대 속에서 그렇게 다시 한번 현재 나의 미국 내 위상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LA에서의 짧은 첫날이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다.
***
11월 1일.
지난 2차전 이후로 날짜는 이틀이 더 지났지만, 확실히 LA의 날씨는 뉴욕보다 훨씬 따뜻했다. 평균 16도를 오가던 뉴욕과는 달리 낮 최고 기온은 무려 23도. 반 팔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일 정도다.
양키스의 덕아웃 분위기가 좋은 것과 정반대로 다저스의 덕아웃 분위기는 살짝 가라앉은 상태였다. 1차전의 패배야 그렇다 치더라도 2차전의 무기력한 패배는 팀의 사기를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오타니 쇼헤이가 너무 조용했다. 물론 평소에도 오타니 쇼헤이가 방방 뛰어다니는 캐릭터는 아니긴 했지만 그래도 클럽하우스 리더로써 이렇게 팀의 분위기가 뒤숭숭할 때 그것을 다잡는 것은 오타니 쇼헤이의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자자, 다들 힘내자. 비록 저 추운 뉴욕에서는 우리가 몸이 좀 굳어서 실수 했지만, 여긴 우리 홈이잖아. 우리가 대접 받은 만큼 녀석들한테도 손님 대접 아주 톡톡히 제대로 해주자고.”
무키 베츠가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의 오타니 쇼헤이를 대신하여 팀원들을 독려했다. 오타니 쇼헤이라는 압도적인 선수에 조금 가린 면이 있긴 했지만 무키 베츠 역시 지금 당장 은퇴하더라도 명예의 전당이 예약된 선수다. 그 역시 선수들의 목소리를 끌어내기에는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좋습니다!!”
“한 번 해보죠.”
살짝 반 억지로 분위기를 끌어올렸지만 그래도 이렇게 억지 텐션이라도 끌어올리는 것이 텐션이 죽어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러다가 뭐라도 하나 터지면 그 억지 텐션이 또 진짜 텐션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까.
클럽하우스의 구석 자리에 혼자 앉아있던 오타니 쇼헤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 시작까지는 이제 15분.
아주 어린 시절부터 34살이 된 지금까지.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왔던 야구의 인생을 쭉 돌이켜보았다.
─우리는 오타니 쇼헤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가끔 오타니 쇼헤이를 보면 어쩌면 우리는 저 녀석이 주인공인 만화 속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과분한 칭찬들이었다.
최근 들어 몸 상태가 이전과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오타니는 자신에게 되물었다.
‘어제가 나의 고점이었을까?’
자신에게 던지는 그 질문에 오타니는 항상 고개를 젓곤 했다.
나는 어제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
지난 두 번의 경기.
오타니 쇼헤이는 최수원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 녀석은 고점까지 얼마나 많이 남았을까?’
그래, 안다.
20살에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여주고 그것이 그대로 자신의 커리어 하이가 돼버리는 선수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올스타전, 그리고 뉴욕에서의 3연전. 그리고 이번 월드 시리즈까지.
만날 때마다 이미 완성된 선수라고 생각했던 녀석은 어째서인지 그 완성도가 만날 때마다 더 높아진다는 느낌을 전해줬다.
어제가 고점이었는지를 물어야 하는 자신.
그리고 고점까지 대체 얼마나 많이 남았을지를 묻게 되는 상대.
그 아득한 격차 사이에서 오타니 쇼헤이는 또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오늘의 나는 오늘의 녀석을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거 데이터는 괜히 넘겨줘서······. 한 내년이나 후년 즈음에 넘겨줬어도 늦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혼자 중얼거리며 복도의 문을 열고 덕아웃으로 나왔다. 이미 관중들로 가득한 다저 스타디움. 넓은 경기장이 그를 반겼다.
그리고 경기장에 우뚝 선 마운드.
그 마운드를 보는 순간 어째서인지 오타니는 쉽게 나오지 않던 그 질문의 답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 내일의 내가 내일의 녀석을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이라면!!’
월드시리즈 3차전.
시리즈 스코어 2:0.
다저 스타디움의 마운드 위에 오타니 쇼헤이가 올라왔다.
3,890만.
롭 맨프레드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1차전에서 무려 300만이 넘게 빠져버린 시청자가 바라보는 가운데 오타니 쇼헤이가 크게 와인드업했다.
상대는 양키스의 선봉장 앤서니 볼피.
뭐가 됐건 일단 내보내면 그 뒤에 가장 골치아픈 녀석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절대 1루로 내보내면 안 되는 타자였다.
-딱!!!
앤서니 볼피가 오타니 쇼헤이의 초구를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