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71)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71화(371/404)
371화. 월드 시리즈(7)
[쳤습니다!! 앤서니 볼피!! 2루수!! 2루수의 키를 넘어가는 타구!! 안타!! 안타입니다!!] [양키스. 시작부터 기분이 아주 좋은데요? 선두 타자의 초구 안타!! 노아웃에 주자는 1루. 이제 타석에 최수원. 최수원 선수가 올라옵니다.] [자, 박동식 위원님. 오늘 경기 어떻게 보십니까?] [일단 양키스에 스탠 오웬스 선수의 부상이라는 악재가 하나 있지 않겠습니까? 오타니 쇼헤이와 딜런 리. 선발의 무게감은 확연히 한쪽으로 기울거든요. 그러니까 관건은 역시 오타니 쇼헤이 선수가 양키스의 미친 타선을 얼마나 막아주느냐에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만······. 하······. 다저스 이거 쉽지 않겠는데요?]오타니 쇼헤이가 자신의 볼을 긁적였다.
내보내면 골치 아픈 타자를 내보냈다. 곤란하다. 무엇보다 오늘 경기 방심하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무의식적으로 앤서니 볼피라는 남자를 그저 최수원의 앞 타자. 최수원 앞에 내보내면 곤란한 타자 정도로만 생각해버렸다. 그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올스타까지 여러 차례 출장한 대단한 선수인데도 말이다.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몸 상태는 놀라울 만큼 좋았다. 사람들이 반쯤 농담으로 어쩌면 이 세계는 오타니 네 녀석이 주인공인 소설이나 영화 만화 같은 게 아닐까? 라는 말을 던지곤 했는데 오늘 몸 상태를 보니 그들의 그런 자조적인 농담이 이해가 간다. 하필 오늘같이 가장 중요한 날에 근래 보기 드물게 좋은 컨디션이라니 말이다.
타석에 녀석이 올라왔다.
굉장한 아우라다. 한순간 스트라이크 존이 작아 보이는 착각이 들 지경이다. 물론 오타니 쇼헤이는 알고 있다. 이건 다 마음이 만들어낸 거짓 현상이라는 것을.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상대를 똑바로 바라봤다.
‘곤란하네.’
여전히 크고 위협적이다.
34살.
그래, 만약 이 책의 제목이 오타니 평전이라면 어쩌면 지금 눈앞의 녀석은 그 글의 마지막에 어울리는 최종 보스로 적절하겠다. 중간 보스는 종종 패배할 수 있다. 그 패배가 주인공의 더 큰 성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 흔한 클리셰니까. 하지만 이야기의 끝에서 언제나 주인공은 최종 보스를 극복하는 법이다.
‘적어도 그 이야기가 해피 엔딩이라면 말이지.’
오타니 쇼헤이의 의지가 몸을 당겼다.
마치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가벼운 몸이었다. 그렇게 끝까지 잡아당긴 근육이 한순간 폭발하듯 풀려났다.
-딱!!!!!!!!
그리고 99.1마일의 제대로 제구된 속구를 최수원이 잡아당겼다. 0.01초? 어쩌면 녀석과 잠시 눈이 마주쳤는지도 모르겠다. 녀석의 시선이 타구를 따라갔다. 공을 치고 타구를 지켜보는 건방진 자세였지만 그 건방진 모습이 참으로 잘 어울렸다.
[쳤습니다!! 최수원!!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 아, 하지만 좌측 폴대를 벗어나는 타구. 파울, 파울입니다.] [아, 살짝 아쉽습니다. 오타니 쇼헤이 선수는 크게 한숨을 돌린 것 같군요.] [앞서 앤서니 볼피 선수도 그렇고 오타니 쇼헤이 선수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가요? 지금 공 두 개를 던졌을 뿐인데 너무 쉽게 공략이 되는 모습입니다.] [아뇨, 공만 보면 지금 1회 초인데 구속이 무려 99.1마일이 나왔거든요. 올해 오타니 쇼헤이가 1회에 던진 공 가운데 가장 빠른 공입니다. 이건 그냥 양키스 선수들의 타격감이 정말 미친 수준이다. 뭐 그렇게 봐야 할 것 같아요.]녀석이 담담하게 다시 타석에 섰다.
아쉬워하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는 게 참으로 녀석답다.
두 번째.
스플리터.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봉인하고 있던 구종이었다. 이걸 던지면 팔꿈치를 갉아먹는다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하지만 어차피 이제 34세. 팔꿈치를 아끼기보다는 이제 남은 커리어를 불태운다는 느낌으로 가는 게 옳다.
사실상 결정구였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두 번째로 던지는 게 더 효과가 있으리라.
-뻐어엉!!!
힘있게 나오던 스윙이 마치 물리법칙을 무시라도 하는 것처럼 멈춰섰다. 마치 뒤에서 누가 줄로 당기기라도 한 것 같은 터무니 없는 모습이었다.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헛웃음을 보이기도 전. 포수인 곤잘레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체크 스윙 여부를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구심이 1루심을 바라봤다.
“스트라잌!!!”
아슬아슬한 판정이었다. 아마 오타니 본인과 최수원의 커리어가 반대였다면, 혹은 여기가 다저 스타디움이 아닌 양키 스타디움이었다면 반대의 판정이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볼카운트는 이제 0-2.
투수에게 매우 유리한 카운트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석에 선 녀석은 여전히 단단했다. 벼랑 끝에 몰아붙였음에도 여전히 약자는 오타니 쇼헤이 자신으로 느껴졌다.
어떤 공을 던져야할까?
속구? 스플리터? 슬라이더? 아니면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체인지업을?
그 어떤 것도 정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랑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 기억이 났다. 이건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실패를 안겨줬던 그해 여름. 그 마운드 위에서의 느낌과 비슷하다.
야구 선수 생활을 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실패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남들이 마치 세상의 주인공 같다고 이야기했던 오타니 쇼헤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자잘한 실패들 가운데서도 가장 절망적이며 거대했던 실패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고교 시절 고시엔 무대였다.
기껏해야 고교 무대에 너무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18살 소년에게 고시엔은 세상의 모든 것이었고 3학년의 여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출했던 고시엔 결승전 마운드에서 본인의 실패로 인하여 팀의 우승이 좌절된 것은 오타니 쇼헤이의 인생에 있어서 최초로 맞닥뜨렸던 돌이킬 수 없는 가장 거대한 실패였었다.
물론 어디까진 상대적인 느낌일 뿐이다. 객관적인 실력으로 당시 여드름 빡빡 난 까까머리 녀석들과 최수원을 비교하는 건 최수원에게는 모욕과도 같은 이야기일 테니까. 경험이나 나이만 보더라도······.
‘아니지, 아니야. 저 녀석 이제 고작 스무 살이었지?’
공기와 함께 용기 역시 그의 폐부에 가득 집어넣겠다는 기세로 크게 숨을 들이킨다.
그래, 고작 스무 살이다.
오타니 쇼헤이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거인을 지워냈다.
아, 물론 그렇게 지워낸 자리에도 여전히 녀석은 거대하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머리가 냉정해진 느낌이다.
시야가 넓어지고 경기장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덕분에 보이지 않던 시그널들이 슬금슬금 보이기 시작한다.
다음 공을 준비했다.
동작부터 날아가는 속도까지 가장 빠르게.
-뻐엉!!!!
공 하나로 아웃 카운트를 잡아냈다.
“아웃!!!!”
[아!! 앤서니 볼피!! 견제사!! 견제사입니다!!] [이거 좋지 않습니다. 양키스 상당히 좋은 분위기였는데 찬물을 끼얹어 버리네요.] [리드 폭이 과도하게 넓어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귀루가 살짝 아쉽습니다.]원아웃. 주자 없는 상황. 볼카운트는 0-2.
볼카운트는 여전했지만, 상황은 더 좋아졌다.
저 괴물을 상대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앞으로 있을 수 있을까?
오타니 쇼헤이가 고개를 저었다.
없다.
평소에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은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질문의 대답이 나와 버린 탓이다.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좋을까?’
No.
오늘의 내가 앞으로 있을 모든 나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다.
그래, 어제의 나는 고점이 아니었다. 내일의 나도 고점이 아니다. 투수 오타니 쇼헤이에게 고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일 것이다.
세 번째.
슬라이더.
오른손 투수가 오른손 타자에게 던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변화구였다.
-뻐어엉!!
최수원이 속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존을 스쳐 가는 공에 곤잘레스가 슬쩍 고개를 돌려 구심을 한 번 바라봤지만 어림없었다.
볼카운트 1-2.
비슷한 코스로 공을 던지면 저 녀석은 자신 있게 방망이를 휘두른다.
그게 설사 존을 살짝 벗어나는 공일지라도.
오타니 쇼헤이가 네 번째 공을 던졌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 크게 벗어나는 코스였다.
-따아악!!!
1루 쪽 내야 관중석에 떨어지는 큼지막한 파울 타구.
조금 전의 슬라이더보다 빠른 타이밍의 바깥쪽 높은 코스 무려 99.9마일짜리 속구였다. 하지만 녀석의 방망이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몸쪽으로 바짝 붙이는 체인지업.
-딱!!!
이번에는 3루 쪽 내야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파울 타구가 나왔다.
볼카운트는 여전히 1-2.
이것저것 다 통하지 않는 느낌이다.
그 무더웠던 여름의 그 날처럼.
여섯 번째.
일곱 번째.
그리고 여덟 번째.
볼카운트는 2-2.
오타니 쇼헤이의 집중력은 무서울 정도로 높아졌다. 스타디움에 가득한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최수원의 눈은 오타니 쇼헤이를 놓치지 않았다.
마치 1초를 100, 아니 1000으로 쪼갠 시간 속에서 낱낱이 오타니 쇼헤이 자신을 분석하는 것 같은 눈이었다.
아홉 번째.
가장 좋은 공이었다.
스플리터.
오타니 쇼헤이가 미국에 진출하던 당시 스카우트들이 그의 성공을 확신했던 바로 그 공이다. 전성기 기준 피안타율 3푼 2리.
최수원의 방망이가 그 공을 따라 나왔다.
-따악!!!!!
됐다!!!
타구가 살짝 먹혔다. 다저 스타디움은 투수 친화 구장이다. 공기는 습기를 머금어 무겁고 식은 공기는 하강기류를 형성한다. 높게 뜬 타구가 홈런이 되기 힘든 이유다.
좌익수가 빅터가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이번 시즌 가장 유력한 외야수 골드 글러브 후보 중 하나인 빅터에게 좁은 다저스의 외야는 놀이터나 다름 없었다.
일찌감치 낙구지점에 도착한 그가 타구를 바라봤다.
거뭇해지는 하늘 누런 공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묵직한 공기를 뚫고 쭉쭉 날아가는 타구는 이제 곧······. 이제 곧······.
이제······ 곧?
떨어지지 않았다.
공을 두들기고 잠시 타구를 지켜보던 최수원은 방망이를 내던진 채 묵직하게 1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움직임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느린 뜀박질은 경기장에 모인 모두에게 마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굳이?
타구는 떨어지지 않았다.
양키 스타디움 때처럼 뒤로 물러나던 빅터 크루즈의 등이 스타디움의 펜스에 닿았다. 하지만 여전히 멀었다. 탄력 넘치는 그의 점프로도 도저히 닿지 않을 만큼 멀었다.
[넘어!! 넘어 갔습니다!!!] [최수원!! 최수원 선수의 솔로 홈런!! 앞선 앤서니 볼피의 견제사에도 불구하고 최수원 선수가 끝끝내 흔들림 없이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공략해냅니다!!] [와, 그나저나 이게 넘어가네요. 전 사실 이거 담장 근처에서 잡힐 거라고 봤거든요.] [제가 생각해도 KBO에 뛰던 시절의 최수원 선수였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 최수원 선수. 지난 1년간 그만큼 발전했다. 뭐 그렇게 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살짝 낮았던 스윙.
하지만 워낙에 압도적인 배트 스피드가 만들어낸 타구의 어마어마한 역회전이 결국 다저 스타디움의 무거운 공기를 뚫어냈다.
최수원이 별다른 세레머니 없이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우아아아아!!!
원정 구장에서 터져 나오는 거대한 환호성.
어째서일까? 오타니 쇼헤이는 오늘따라 11월 LA의 날씨가 너무 덥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