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73)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73화(373/404)
373화. 솔리드 피쳐(2)
오타니 쇼헤이는 다저스 덕아웃의 무거운 분위기를 읽었다.
단순히 지난 원정 경기에서 2연패를 당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상승세가 있으면 하락세도 있는 법이다. 다저스의 현재 분위기는 하락세가 분명했고 선수들 역시 그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난 1차전에서 상대의 에이스를 상대로 그래도 비교적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것과 달리, 명백히 그보다 반수쯤 아래로 평가받는 게릿 콜을 상대로 무기력하게 패배를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탠 오웬스의 뜬금없는 부상은 그들이 분위기를 크게 전환 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소재 거리였다. 게다가 그 대체제로 내민 카드가 딜런 리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했다. 그는 나쁘지 않은 투수였지만 단지 나쁘지 않을 뿐. 분명 ‘좋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투수였다.
그리고 2회 말.
-따악!!
[쳤습니다!! 하지만 2루수 앞 땅볼!! 데니스 마르티네즈가 잡아서 1루에!!]“아웃!!”
[2회 말, 잔루 2루!! 딜런 리가 결국 실점 없이 2회 말 다저스의 공격을 완벽하게 막아냈습니다.] [지금까지 삼진은 하나도 없습니다만 땅볼 유도가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보시면 오늘 높은 코스로 들어간 공이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요즘 타자들의 스윙 궤적을 생각하면 이거 좀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죠. 물론 위험합니다. 하지만 안타나 홈런이 가장 잘 나오는 공은 어쨌거나 바깥쪽 낮은 코스가 아니라 한복판에 들어간 공이거든요. 이렇게 집요하게 바깥쪽 낮은 코스로만 공을 던진다면 뜬금포를 조금 허용하더라도 크게 점수를 내주는 일은 잘 없거든요. 딜런 리가 큰 무대에서도 자신의 장점을 잃지 않고 굉장히 침착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 그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게다가 오늘 경기. 최근 양키스의 페이스를 보면 굳이 딜런 리 선수가 굳이 무실점으로 상대를 틀어막을 필요도 없거든요. 양키스는 지난 1, 2차전을 합쳐서 무려 25점을 기록할 만큼 타선의 감각이 바짝 올라온 상태입니다. 그냥 하던 대로만 해주면 타선이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 투수인 오타니 쇼헤이 선수 역시 만만찮은 선수 아닌가요? 다저 스타디움 역시 투수구장으로 이름 높고요.] [네, 그건 그렇죠. 하지만 오타니 쇼헤이 선수도 이제 슬슬 지칠 때가 됐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마 오늘 경기도 아주 길게 던지지는 못할 거로 생각합니다.]점수는 아직 1:0.
2회 초 양키스의 공격을 어찌어찌 꾸역꾸역 틀어막았지만, 쉬어갈 틈 따위는 그리 길지 않았다. 9번 오스왈드 웰스부터 시작되는 양키스의 타선. 기껏 하위 타자 하나 상대하고 나면 다시 1번 타자로 돌아간다. 게다가 야구에서 한 이닝의 아웃 카운트는 세 개다. 즉 오타니 쇼헤이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번 이닝에 최수원의 타석까지는 돌아온다는 뜻이었다.
주먹을 몇 차례 쥐락펴락했다.
이제 고작 3회다. 아직 힘은 충분했다.
지금 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있다는 것은 오타니 쇼헤이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일으키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최수원을 잡아낸다.
물론 양키스의 다른 타자들도 까다로운 건 마찬가지다. 성적으로 봤을 때 MVP 5위 이내 표를 몇 장 정도는 받을 법한 타자만 최수원을 제외하고도 무려 넷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압도적인 포스는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결국 최수원이다. 규격을 넘어선 타자. 마치 AA리그에 MLB 정상급 타자가 뛰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만약 MLB 위에 또 하나의 상위리그가 있다면 거기서도 충분히 MVP를 다툴만한 기량이다.
선두 타자 호세 트레비뇨.
직전 이닝 마지막 타자였던 8번 앙헬 카브레라와 함께 양키스 타선에 몇 안 되는 쉬어가는 타자다. 선발 투수가 모든 타자들을 상대로 전력을 다할 수는 없다. 완급 조절을 통해 체력을 보존하고 그렇게 긴 이닝을 소화해주는 것은 선발의 미덕이다.
그러니까 일단 가볍게 몸쪽 깊숙한 코스로 하나 빠른 공을 찔러 넣는······.
-딱!!!
호세 트레비뇨가 야무지게 공을 잡아당겼다.
내야수의 키를 살짝 넘어가는 안타.
웰스가 1루를 밟았다.
아직 점수를 내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하위 타순에서 행운의 안타가 하나 나온 것뿐이다. 하지만 만약 승리의 저울이 존재한다면 지금의 안타는 양키스 쪽으로 적어도 2도 정도는 기울게 만드는 안타가 아니었을까?
대단한 선수에게 두들겨 맞는 건 참고 넘어갈 수 있다. 그건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진짜 사기를 떨어트리는 것은 그러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때 생겨난다.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는 것이 결국 승리의 요건이다.
다저스가 이번 시즌 내내 보여줬던 끈끈함의 원천, 다저스다움이 만들어지는 지점 역시 바로 그 지점에 있었다. 벌어짐 직한 실수를 막아내고, 이게 가능한가 싶은 파인플레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지금 그 다저스다웠던 컬러를 보여주는 건 오히려 양키스 쪽이다.
타석에 앤서니 볼피가 올라왔다.
노아웃에 주자는 1루.
오타니 쇼헤이는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피칭으로 최선을 다했다.
진루타.
1타점짜리 2루타.
안타.
외야 플라이.
그리고 내야 뜬공 아웃.
오타니 쇼헤이가 덕아웃에 돌아왔다.
애써 힘을 내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점수는 3:0.
“아직 3회 초밖에 안 됐어. 우리 공격도 일곱 번이나 남았고. 3점이야 한 번 터지면 금방이지.”
“그래, 맞아!!”
딜런 리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의 그는 마치 기계처럼 공을 뿌려댔다.
압도적인 위력의 구위나 구속도 아니었고 어마어마한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와 같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빅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 역시 바로 그 언제나와 같음에 있었다. 일정한 로케이션을 유지하며 때론 빠지고, 때론 조금 더 들어오지만 그럼에도 꾸준하게 바깥쪽 낮은 코스를 공략했다. 속구와 체인지업.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설인 톰 글래빈처럼 마술과 같은 로케이션과 완급 조절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는 톰 글래빈의 조악한 마이너 버전에 더 가까웠다.
-뻐엉!!
볼넷으로 출루를 허용했으며
-딱!!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피칭을 지켜나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3회를 지나 4회까지 다저스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다저스의 덕아웃은 여전히 힘을 내자는 목소리를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타니 쇼헤이는 그 목소리에 실린 힘이 공허하다고 느꼈다.
5회 초.
앤서니 볼피부터 시작하는 양키스의 타선.
-딱!!!!
높게 떠오른 타구를 빅터 고메즈가 잡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최수원.
오타니 쇼헤이는 최선을 다해 공을 던졌다.
넣고 빼고 떨어트렸다.
-뻐어엉!!
[최수원!! 떨어지는 공에 속지 않습니다. 볼넷. 최수원이 세 번째 타석에서도 역시 출루에 성공합니다.] [최수원 선수. 오늘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상대로 지난 시리즈에서 상대들이 대체 왜 아무도 자신과 승부를 겨루려고 들지 않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원아웃에 주자 1루.
이어지는 타일러 비트를 상대로 던진 스플리터가 빗맞았다.
4-6-3 더블아웃.
오타니가 오늘 경기 처음으로 상위 타순을 상대로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점수는 여전히 3:0.
5회 말. 마운드에 딜런 리가 또 다시 올라왔다.
***
꿈과 같은 순간이었다.
그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쉽게 표정에 변화를 보이지 않는 딜러 리였지만 지금 순간만큼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를 씰룩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는 지금 월드시리즈 3차전에 선발로 나와서 4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입가 근육이 씰룩인 것을 눈치챈 사람은 집에서 5살짜리 딸. 그리고 2살짜리 아들과 TV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그의 아내밖에 없었다.
“존, 에일리. 아빠 지금 기분 엄청 좋나보다. 그지?”
[5회 말, 다저스의 공격. 점수는 현재 양키스가 3:0으로 리드하고 있는 상황. 타석에 선두 타자로 9번 타자. 세르히오 곤잘레스 선수가 올라옵니다. 딜런 리. 12개의 아웃 카운트를 잡아내는 동안 아직까지 다저스의 타선을 고작 두 바퀴로 묶어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양키스 입장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만난 기분일 겁니다. 딜런 리가 대량 실점을 잘 안 하는 투수이긴 합니다만 이렇게 또 상대방을 꽁꽁 묶어두는 투수도 아니거든요.] [맞습니다. 다만 경기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제 슬슬 불펜을 가동시킬 준비에 들어가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해요. 투구 수는 아직 71개밖에 안 되긴 했습니다만 역시 타순이 세 바퀴 돌기 시작하면 좀 어려워질 수밖에 없거든요. 양키스는 지난 2차전에서 불펜을 엄청나게 세이브한 만큼 그걸 아낌없이 풀어서 이 우위를 완벽하게 굳힐 필요가 있습니다.]세르히오 곤잘레스는 다저스의 다른 타자들에 비해서는 쉬운 타자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다저스의 다른 타자들에 비해 쉬운 타자라는 뜻이다.
딜런 리는 그냥 하던 그대로 최선을 다해서 공을 던졌다.
-부우우웅!!!
“스트라잌!!!”
4구째.
살짝 빠져나가는 체인지업에 헛스윙.
볼카운트는 2-2.
호세 트레비뇨가 그에게 사인을 보냈다.
‘여기서는 몸쪽 높은 속구 하나 빠르게 집어넣자.’
무려 4이닝.
상대 타자들이 온통 바깥쪽 낮은 코스 공에만 집중되어 있으니 여기서 깜짝쇼로 하나 보여주는 것도 효과적이긴 할 터.
94.7마일 속구가 높은 코스로 빨려 들어갔다.
-부우우웅!!!
“스트으라잌!!!”
짜릿한 손맛이 느껴지는 헛스윙 삼진.
딜런 리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딜런 리!! 딜런 리가 하이 패스트볼로 삼진을 낚아챕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이런 거 하나 들어가는 게 또 상대 타자들 머리 아프게 만드는 거거든요. 집요하게 바깥쪽만 파고드는 것 같다가도 또 이렇게 하나 높은 공 툭 던져주면 선택지에 이걸 더해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피칭 레퍼토리에 살짝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소화할 수 있는 이닝의 숫자가 달라지는 거거든요.] [그렇군요. 이렇게 되면 딜런 리 선수가 조금 더 이닝을 소화해줄 수 있겠다고 기대해봐도 되는 걸까요?] [글쎄요. 이게 시즌 중의 평범한 경기였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만 이게 또 경기의 중요성도 있고······. 아무튼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네요.]다시 1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다저스의 타순.
로키 차베스가 타석에 올라왔다.
여전히 무서운 타자였다. 심지어 세 번째 타순이었다. 하지만 딜런 리의 위장은 이전만큼 불편하지 않았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그가 공을 던졌다.
-딱!!!
아, 물론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그의 공이 더 좋아지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그래, 마음이 불편했다고 공이 나빠지지 않았던 것처럼.
잘 맞은 타구가 2, 3루 간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