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77)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77화(377/404)
377화. 타자가 그냥 공을 잘 던짐(3)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들 하고 있어?”
“어, 그냥 오늘 피칭 레퍼토리 이야기를 잠깐 하느라고.”
앤서니 녀석이 슬쩍 다가온 폼이 앞서 에러 한 것 때문인 것 같았다.
“구티에레스가 그라운드 좀 더럽게 썼지?”
“어? 어······. 하필 공이 거기서 그렇게 튈 줄 몰랐지 뭐야. 그래도 이제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든든하게 믿고!!”
“어, 걱정하지 마. 든든하게 믿고 아주 그쪽으로 폭풍처럼 공 보내줄 테니까.”
조금 짜증은 났지만, 최대한 짜증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녀석 역시 내가 짜증이 난 것 정도는 알 것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짜증을 감추려 노력했다는 부분이다. 선발 투수라는 것들은 대부분 미친놈이라서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성인군자다. 그리고 앤서니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여기. 이거.”
“어, 땡큐.”
녀석이 나에게 투수 점퍼를 건네줬다.
아, 나 오늘은 9번 타순을 부여받았다. 선발로 뛰는 만큼 타격에 부담을 최대한 덜어주겠다는 감독의 의도였다. 트라웃이 나 대신에 2번 타자로 들어갔고 데니스 마르티네즈가 4번 그리고 애런 저지가 5번으로 정해졌다.
[자 다저스의 마운드에는 데이비드 스틸. 데이비드 스틸 선수가 올라왔습니다.] [사흘밖에 쉬지 못했습니다만 월드시리즈 같이 큰 경기에서 사흘 휴식 후에 등판은 데이비드 스틸 선수와 같은 슈퍼에이스라면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는 합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팀이 시리즈 스코어 2:1로 조금 안 좋은 상황이라면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게다가 데이비드 스틸 선수. 지난 1차전에서는 4.1이닝동안 무려 8점을 내주면서 일찍 마운드를 내려갔었거든요. 투구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었어요.] [맞습니다. 데이비스 스틸 선수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설욕을 하고 싶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이번 4차전에 스틸 선수를 선발로 등판시킨 건 나중에 7차전까지 갈 경우 스틸 선수를 또 한 번 더 사용하겠다. 뭐 그런 의미로도 보이거든요. 반면 양키스 같은 경우는 정말 나흘씩 꼬박꼬박 휴식을 주고 있어요. 특히 이 순서대로면 6차전에 등판할 게릿 콜 선수 같은 경우는 닷새간의 휴식을 취하고 올라오게 되는 겁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쪽에서는 변수 없이 확실하게 이기는게 좋으니까요. 반면 쫓아가는 쪽에서는 최대한 쥐어짜 내 볼 수밖에 없는 거고요.] [자, 그렇다면 그 쥐어 짜낸 기책이 과연 정답이 될 수 있을지. 데이비드 스틸 선수 투구 준비에 들어갑니다.]-부우웅!!!
데이비드 스틸의 스플리터가 데니스 마르티네즈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이어지는 속구. 그리고 또 속구. 마지막 체인지업.
“스트라잌!! 아웃!!”
깔끔한 삼진 아웃.
데니스가 조금 거친 자세로 타석에서 물러났다.
“젠장.”
“좀 까다로운가 보네?”
“엄청. 속구 타이밍이 너무 더러워. 그렇다고 그거에 신경을 너무 많이 뺏기면 체인지업이 또 더럽게 들어오고.”
덕아웃으로 돌아온 데니스와 짧게 대화를 나눴다.
앞서 1회 초에 앤서니와 마이크 그리고 타일러를 상대로 삼진 2개. 내야 땅볼 아웃 하나로 막아낸 만큼 오늘 컨디션이 바짝 선 건 알고 있었지만, 데니스의 반응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모양이다.
-부우우웅!!
“스트라잌!! 아웃!!!”
애런 저지의 헛스윙 삼진.
이거 1차전은 비교적 쉽게 넘어갔는데 어렵게 됐다.
아니, 그런데 원래 다저스의 슈퍼 에이스는 월드시리즈 나와서 울어주는 게 정석 아닌가? 클레이튼 커쇼도 그랬고, 데이비드 스틸도 본래의 역사에서는 월드 시리즈에서는 항상 무너졌던 거로 기억하는데······.
-딱!!!
오스틴 배틀이 공을 건드렸다. 그래, 이건 두들긴 게 아니라 건드린 거다. 높게 뜬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1회 초에 이은 삼자범퇴.
정말 잠깐 숨만 돌렸을 뿐인데 다시 내 차례가 돌아왔다. 마음이 조금 갑갑했다. 저걸 대체 왜 못 치는 걸까? 좀 까다롭긴 하지만 그래도 아예 공략 못할 공들은 아닌 것 같은데. 역시 어제 패배 때문에 기세에서 조금 눌린 것 같다.
뭐, 그래 좋다.
일단 이번 이닝 잘 막고, 다음 이닝에 내가 맥만 딱 뚫어주면 기세를 타고 다시 살아날 수 있을 테니까.
2회 말.
내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갔다.
***
-후아······.
경기를 지켜보던 덩치 큰 동양인 셋이 동시에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와······. 이거 진짜 미쳤는데요?”
“그러게······. 규만 선배. 선배 쟤랑도 혹시 친해요?”
“아니, 난 스프링트레이닝 때만 잠깐 봤고. 지금은 마이너에서 코치로 있는 거니까 딱히 안면이 있지는 않지. 근데 왜?”
“아니, 친하면 나중에 사진이나 한 장 찍고 싶어서 그랬지. 와······. 진짜 NL 사이 영 받은 투수는 다르긴 다르네. 야, 쪼유. 넌 좀 어때 보이냐?”
“글쎄요. 10번 하면 한, 두 번?”
“헛소리하지 말고. KBO에서도 2할 치는 놈이 두 번은 무슨. 아니, 근데 선배 양키스 선수들은 1차전에서 대체 어떻게 4.1이닝 만에 8점이나 낸 거래요? 아무리 수원이가 2번으로 나와서 좀 흔들었다고 해도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글쎄다. 1차전은 나도 직관한 건 아니라서. 근데 데이비드라고 항상 저렇게 던지는 건 또 아니니까. 오늘은 진짜 제대로 긁히는 날인 것 같은데?”
“이거 아무래도 오늘 수원이 쉽지 않겠는데요?”
2연속 사이 영을 노리는 슈퍼 에이스가 제대로 긁히는 날.
오늘 데이비드 스틸이 보여주는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단기전에 어째서 선발 투수가 중요한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자, 타석에 디에고 베가스. 디에고 베가스 선수가 올라옵니다.]“와, 쟤는 되게 크네요? 거의 규만 선배보다 더 큰 것 같은데?”
“맞아, 거의 2미터에 몸무게도 130 정도 나갈걸?”
“몸무게가 그것밖에 안 나가요? 규만 선배보다 더 커 보이는데?”
“프로필 상 몸무게니까. 아마 그것보단 더 나가겠지. 아무튼 난 개인적으로는 지금 다저스 타자 중에서 쟤가 제일 무섭다고 본다.”
“무키 베츠나 오타니보다요?”
“어, 덩치는 저만한 게 몸은 부드러워서. 애초에 홈런 치려고 치는 게 아닌데 그냥 툭 치면 넘어가는 느낌이야. 지금 다저스에서 괜히 1루 수비도 안되는 애를 꾸역꾸역 1루수로 데리고 가는 게 아니라니까. 진지하게 내부적으로는 오타니를 외야 수비 좀 시키고 얘한테 지명 타자 슬롯 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하더라.”
“어? 잠깐만. 어째 덩치도 그러고 뭔가 설명하시는 게 규만 선배 이야기 같은데요?”
“야, 나랑은 다르지. 난 그래도 원래 3루수 출신이었잖냐. 1루 수비 나만큼 잘하는 선수도 드물었다고.”
“아뇨, 수비 말고 타격 매커니즘이요.”
“아, 뭐 그거라면 좀 비슷한 느낌은 있지. 근데 손목 힘이 나보다 훨씬 좋아. 스윙은 더 간결하게 가져가는데. 아무튼, 잘 봐봐. 너희들이랑 스타일은 완전 다르지만, 이래저래 공부가 될 테니까.”
이규만은 KBO의 전설적인 타자였다. 그래, 적어도 타격만큼은 KBO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을만한 타자다. 그런 선수가 극찬하는 타격이다.
조유진과 이정훈 모두 경기에 집중했다. 단 한 대뿐인 방송국 카메라 역시 그런 조유진과 이정훈의 모습을 열심히 담아냈다.
-부우웅!!
“스트라잌!!!”
초구 몸쪽 높은 속구.
101.5마일의 공에 디에고 베가스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수원이 로케이션이 참 좋았네.”
그리고 두 번째.
바깥으로 많이 빠져나가는 체인지업.
-뻐엉!!
디에고 베가스의 방망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서 좀 빠진 건가?”
“아뇨, 내가 던지는 공 중에서 체인지업이 있다고 타자 머릿속에 새겨 넣은 걸 거에요.”
“근데 굳이 저렇게 멀리 뺀다고?”
“네, 아무래도 공 자체는 위력이 부족해서 존에 갖다 붙이면 좀 위험하니까요.”
세 번째.
다시 몸쪽으로 파고드는 높은 코스.
-부우웅!!
“스트라잌!!!”
커브였다.
볼카운트 1-2.
“와, 저건 진짜 좋은데? 데이비드 스틸 공이랑 비교해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좀 아니죠.”
“그런가? 내가 너무 팔이 안으로 굽었나?”
네 번째.
몸쪽 낮은 코스.
무릎 아래로 들어오는 빠른 공.
-딱!!!
타구가 내야 관중석 그물망을 넘어갔다.
“와, 진짜 선배 말처럼 힘이 엄청난데요?”
“몸도 엄청 부드럽지?”
“네, 근데 방금 저건 그냥 내버려 뒀으면 볼이었을 것 같은데. 선구안은 좀 부족한가 보네요?”
“아니, 오늘 구심이 낮은 쪽 공에 좀 후하잖아. 걷어낼 자신이 있었던 거지.”
그리고 다섯 번째.
그냥 빠른 공.
-따악!!
아니, 몹시 빠른 공.
타구가 매우 높게 떠올랐다.
공을 던진 최수원이 뒤로 세 걸음을 물러났다.
그리고 깔끔한 캐치.
내야 뜬공 아웃.
전광판에 103.7이라는 숫자가 새겨졌다.
“······.”
“······.”
“······.”
잠깐의 침묵.
카메라 감독이 그 침묵을 아주 생생하게 담아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게 오늘 경기 가장 재밌는 장면일지도 모르겠다고.
“선배, 쟤 엄청 잘 치는 타자라면서요.”
“103.7이잖냐. 근데 잠깐만. 103.7이면 몇 킬로지? 나 갑자기 계산이 안되네?”
“103.7이면 1.61곱하면. 그러니까······. 167······.”
시속 167km/h
“미친······. 야, 수원이 최고 구속 원래 몇이었지?”
“시즈 중반에 두 번인가? 166까지 던진 적 있을 거예요.”
“아, 그래? 그러면 1km/h정도 경신이네? 와, 갑자기 167들으니까 머리가 띵 했는데. 원래 166이었으면 뭐······.”
“아니, 근데 지금 11월에 이제 겨우 2회 초잖아요.”
이미 디에고 베가스가 얼마나 좋은 타자였는지 따위는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167km/h
물론 투수는 구속이 전부가 아니다.
하지만 압도적인 구속은 때론 모든 것을 제압하기도 한다. 그리고 103.7마일의 구속은 충분히 그 ‘압도적인’이라는 범주에 포함될만한 구속이었다.
“야, 근데 103.7마일이면 아시아 신기록 아니야?”
“그렇······죠? 사사키 로키가 아마 103.4마일인가 그랬으니까······.”
“하, 미쳤네. 미쳤어.”
최수원이 잠시 자신이 만들어낸 103.7이라는 숫자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것처럼 다음 타자를 준비했다.
포수부터 시작된 공이 내야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수원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그리고 어째서일까?
조유진의 가슴에 무언가 부글부글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래, 그것은 마치 두 달 전. 마린스의 가을야구 탈락이 결정 났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선배, 메이저 오려면 야구 엄청 잘해야겠죠?”
“당연하지. 왜? 쪼유 너도 메이저 오고 싶어서?”
“아니, 그냥. 뭐······.”
“그래, 쪼유 너라고 못 올 건 없지. 근데 그러려면 일단 내년에는 2할 1푼의 벽을 깨고. 그렇게 매년에 1푼씩 깨면 FA때는 2할 8푼이니까. 그 정도면 한 번 노려볼 수는 있겠네.”
“······.”
조유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최수원이 삼자범퇴로 2회 말 다저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경기가 계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