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81)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81화(381/404)
381화. 타자가 그냥 공을 잘 던짐(7)
선수의 직감이라는 게 있다.
나의 경우 그 직감이라는 걸 주로 타석에서 ‘아, 이거 무슨 공이 어디로 올 것 같은데?’ ‘오늘 아무래도 내가 Player of the Day에 선정될 것 같은데?’ 같은 식으로 느낀다.
예전에 오타니랑 이야기를 해본 바에 의하면 그 역시 종종 그런 걸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단순한 망상이 아닌 오랫동안 쌓아 올린 경험이 전해주는 일종의 종합적인 인지능력이며 그 발현이 단순히 감각이라는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했었다.
나는 투수로서의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던진 직후에 ‘아, 이거 들어가겠다.’ 혹은 손에서 놓는 수간. ‘아, 이 공은 좀 죽여주겠는데?’하는 막연한 느낌을 느낀 적은 있지만, 타석에 섰을 때처럼 그런 강렬한 직감을 느낀적은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처음으로 투수로서 강한 직감을 느꼈다.
‘아, 이거 좀 조진 것 같은데?’
앞선 타석과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뭐랄까? 이거 대체 공을 어디로 던져야 하지? 싶은 갑갑함? 아,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초구.
바깥쪽 꽉 찬 코스. 진짜 기가 막히게 공을 집어 넣었다.
-딱!!!
우측 폴대를 아주 살짝 넘어가는 큼지막한 파울 홈런.
가슴이 순간 철렁했다. 여기서 더 압박이 온 건 그 거대한 파울 홈런에도 불구하고 한 점의 아쉬움이 보이지 않는 오타니의 표정이었다.
몸쪽 깊숙하게 공을 던졌다. 살짝 삐끗해서 사구가 될 뻔 했는데 오타니가 정말 기가 막히게 공을 피했다.
─!#%^@$%!@
어마어마한 욕설과 야유들이 터졌 나왔다. 대충 뭐 제구가 안 되면 안쪽으로 공을 던지지 말라 이야기였는데 그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보다 욕설이 세 곱절 정도는 많은 느낌? 심지어 다저스의 덕아웃에서도 누군가가 달려나오려고 하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Noo!!!
아, 물론 오타니 쇼헤이가 저렇게 외쳤다는 건 아니다. 다저스의 덕아웃을 향한 그의 단호한 몸짓이 함의하고 있는 뜻이 저러했다는 뜻이다. 내가 느끼기에 저건 괜찮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엄청나게 집중하고 있으니 괜히 방해하지 말라는 의미에 더 가까웠다.
그가 다시 타석에 섰다.
오타니 쇼헤이는 193cm의 큰 키를 가졌다. 당연히 그 큰 키만큼인 스트라이크존 역시 좁지 않다.
그런데 너무 좁았다.
던질 곳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
바깥쪽과 안쪽 낮은 코스 모두 답이 없어 보였고 높은 곳은 던지는 그대로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안전한 곳이 있긴 했다.
-뻐어엉!!!
높은 코스에서 멋지게 떨어지는 커브볼.
오타니 쇼헤이의 방망이가 나오지 않았다.
볼카운트 2-1.
고개를 슬쩍 돌려 덕아웃의 감독을 바라봤다.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한번 끄덕하는 것이 ‘그래, 믿는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 철석같이 나를 믿을 필요가 있나 싶겠지만 사실 이것도 다 내 원죄이긴 했다.
아까 우리 공격 이닝에 덕아웃에서 감독이 나에게 물었었다.
“괜찮겠나?”
“네, 오늘 컨디션 아주 최곱니다.”
그래, 분명 그때만 하더라도 진짜 컨디션 최고였다.
사실 월드 시리즈에서 노히트 중인데 컨디션이 나빠질 수가 없다. 안 좋던 컨디션도 올라갔을거다.
어쨌거나 감독 입장에서는 그렇게 월드 시리즈에서 노히트 기록 중인 투수가 직전에 컨디션도 최고라고 했으니 안 믿을 수도 없겠지.
아무튼, 이래저래 대위기다.
이렇게 된 이상 수비를 믿고 그냥 던질까? 마린스도 아니고 가끔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그냥 볼넷 줄 생각하고 그냥 바깥으로 좀 던져볼까?
왜, 도망가는 부끄럽지만, 때론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뭐, 쟤들도 나 한 번도 상대 안 해주는데 나라고 꼬박꼬박 상대할 이유는 없겠지. 그래, 나의 위기감지 레이더가 갑자기 지금 개화한 것도 어쩌면 피해갈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투수가 된 증거일 수도 있다.
오타니 쇼헤이가 나를 바라봤다.
나는 저 눈빛을 안다.
내가 종종 투수들에게 보내는 눈빛이기 때문이다.
─쫄?
아, 그 녀석들 이런 심정이었겠구나.
젠장.
그래,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긴 했지만, 솔직히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선발 투수 놈들은 성격도 더러운 놈들이 자존심만 더럽게 쎄서 지친 게 뻔한데 마운드 내려올 생각도 안하고, 잘못은 자기가 해놓고 맨날 남한테 소리나 질러대는 인성 파탄자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변한 게 있다면 어쩌면 나도 그런 인성 파탄자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합리적으로 보자면 여기서 그냥 피해 가는 게 맞다. 어차피 노히트는 깨지지도 않을 테니까.
잠시 타석에 선 오타니에게 나의 모습을 겹쳐봤다.
아, 물론 이건 오타니에 대한 나의 호감이 듬뿍 담긴 매우 후한 평가다. 솔직히 전성기 오타니한테 +@를 더해줘도 지금의 나와 같은 수준은 될 수 없으니까.
즉 나는 지금 내가 이미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타자를 이미지한 셈이었다.
답이 나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마운드에 선 나에게서 나온 답이 아니라, 내가 타석에 있었으면 하는 가정에서 나온 답이었는데 그건 어떤 공이 오건 다 쳐낼 수 있다는 답이었다.
새삼 타석에 선 나는 진짜 견적 안 나오는 미친 타자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그래도 ‘난 나 자신은 상대 안 해도 되니 참 다행이다.’라는 작은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고개를 몇 번 저었다.
그리고 다시 객관적인 오타니 쇼헤이를 바라본다.
한결 낫다. 그래, 나를 반으로 나눠서 나머지 반쪽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오타니를 상대하는 편이 낫다니. 이것 참 큰 위로가 된다.
답은 여전히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봤더니 길이 하나 보이기는 했다.
바깥으로 좀 크게 빠지는 공.
-뻐어엉!!!
오타니 쇼헤이의 방망이가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히 심판의 손도 올라오지 않았다.
볼카운트 3-1
자, 오타니 쇼헤이.
여기서 너의 그릇을 한 번 보여봐라.
뚝 떨어지는 원 바운드 커브볼.
공을 던진 직후 오타니의 기세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 녀석 지금 이 공이 뭔지를 눈치챘다.
-부우우웅!!!
하지만 방망이가 돌아갔다.
“스트으라잌!!!”
볼카운트 3-2.
예상한 그대로였다. 나라면 여기서 당연히 방망이를 휘두른다. 설사 어처구니없는 공이 나와도 방망이를 휘두른다. ‘풀카운트를 만들어줄 건데 그래도 도망갈 거냐 치킨?’이라는 마음이다.
오타니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 녀석은 나보다는 조금 더 아시아인 스탠다드. 혹은 소년 만화 주인공에 가까운 녀석이었으니 ‘도망갈 생각 하지 마. 오늘 경기의 향방. 너와 나의 승부로 결정 내는거다.’ 같은 중2병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뭐가 됐건 이제 풀카운트다.
남은 공은 단 하나.
호흡을 가다듬고 집중에 집중을 거듭했다.
가끔 타석에서 느끼는 그 미친 고양감. 주변이 모두 고요해지고 세상에 오직 투수와 나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터무니없는 감각 따윈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경기장은 여전히 소란스러웠고 나는 그라운드에서 가장 높은 마운드 위에 홀로 서 있었다.
여섯 번째.
선택지는 하나였다.
내가 프로가 된 이래 가장 많이 던진 브레이킹 볼. 그리고 오늘 정말 죽여준다는 소리를 세 번은 들었던 커브였다.
지금 던진 이 커브가 완벽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직전에 던졌던 공보다는 훨씬.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훨씬 완성도가 높았다는 점이다. 이건 단순한 느낌이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면, 사실 앞서 던진 공이 내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함정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결정구로 커브를 던질 생각을 했으면서 그에 앞서 커브를 하나 더 보여줬다는 부분에서 너무 뻔한 함정이긴 했다.
하지만 뻔한 것이 항상 나오는 이유는 그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 기책을 보여줬으니 이번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정석이었다.
손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더 교묘하게.
그리고 더 강력하게.
오타니 쇼헤이는 내가 두 종류의 커브를 던지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앞선 커브가 원바운드되는 낙폭이 큰 커브였으니 이번에 던진 조금 다른 커브는 회전축을 조절하여 횡무브먼트를 만들어내는 커브라고 생각할 수도. 혹은 그런 생각을 유도하게 한 것 자체가 함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아무튼 뭐가 됐건 녀석에게 억지로 하나라도 많은 선택지를 강요했다.
아, 물론 내가 지금 던진 공은 내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좋은 공.
회전축이니 뭐니 하는 것따위 딱히 신경쓰지 않은 가장 빠르고 가장 강렬하게 떨어지는 커브볼이었다.
-따악!!!!
그리고 오타니 쇼헤이의 방망이가 그런 내 공을 두들겼다.
그 순간 나는 ‘최선을 다한 공이 두들겨 맞았으니 어쩔 수 없다.’
하면서 후련한 마음 따위는 눈꼽 만큼도 들지 않았다.
나의 손가락이 타구를 가리켰다.
어쩐지 넘어갈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내 손가락은 타구를 가리켰다. ‘아무튼 못 잡으면 외야수 잘못.’ ‘넘어가면 야구장이 탁구장 크기라서.’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 이 순간 나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완벽한 선발 투수였다.
타구는 쭉쭉 뻗어 나갔다.
그리고 마이크 트라웃은 그 타구보다 한 걸음 빠르게 담장으로 달려갔다.
그 늙은 야수가 그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고 무엇을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는 마치 전성기를 연상케 하듯이 뛰어올랐으며 그의 글러브가 낙하하는 타구를 완벽하게 낚아챘다는 점이었다.
─Yeeeeeeee!!!!!!!!!!!!
아, 이번에는 경기장의 관중들이 내지른 함성이 아니었다.
한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싶은 수준의 괴성이 항상 점잖았던 37세의 중견수 입에서 터져 나왔다.
21세기에 데뷔한 모든 선수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커리어.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압도적인 활약.
그리고 월드시리즈 진출 0회.
그래, 어쩌면 그 포효는 자신의 모든 걸 내던진 이후에야 마침내 밟을 수 있었던 이 월드 시리즈라는 무대를 향한 복잡한 마음의 표현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올해 팀을 옮기기 전까지 무려 17년 동안 단 한 번도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던 늙은 사자의 그 거대한 포효에 관중들이 반 박자 늦게 응답했다.
마치 방금 그 수비 하나로 경기가 끝내기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조금 불편했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아직 7회 말이고. 심지어 이제 투 아웃으로 그 7회 말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오늘의 주인공은 노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나인데 호수비 하나 했다고 마치 주인공처럼 저러는 건 좀 예의가 아니지 않나? 뭐, 점수라도 팍팍 냈으면 모르겠다. 하여간 야수 놈들이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정말 성실하게 상대 타자를 상대했다. 오타니 쇼헤이라는 마음의 짐을 덜어내서일까? 디에고 베가스를 정말 가볍게 삼진으로 잡아낼 수 있었다.
-부우웅!!
“스트으라잌!! 아웃!!”
[9구째 커브!! 헛스윙 삼진!! 최수원이 정말 어렵게 디에고 베가스를 잡아내며 7회 말 다저스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최수원 선수. 이번 이닝에만 공을 19개를 던졌거든요. 이걸로 투구 수는 총 97개. 좋지 않습니다. 투구 수 관리가 너무 안 되고 있어요.] [자, 8회 초. 다시 양키스의 공격. 점수는 여전히 0:0. 데이비드 스틸이 다시 마운드에 올라옵니다.] [타석에는 5번 타자. 애런 저지. 애런 저지 선수가 올라옵니다.] [자, 애런 저지 선수. 이제 정말로 뭔가 하나 보여줄 때가 됐습니다.]그리고 8회 초.
타석에 선 애런 저지가 마침내 뭔가를 하나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