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83)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83화(383/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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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화. 외전1) The Impossible Dream
아이돌은 수명이 짧다.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아. 7년이면 보통 직장인들도 이직 한 번 정도는 결심할 기간 아닌가? 그게 아니더라도 부서 이동이라거나 승진이라거나. 아무튼 무슨 일이 생길만한 시간이잖아. 안 그래?”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주체의 표정부터가 틀려먹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얼굴. 누가 봐도 그만두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다.
“무슨 소리야 언니, 7년이면 짧은 거 맞거든? 게다가 언니가 10대 초중반에 데뷔한 것도 아니고 데뷔하려고 준비한 기간만 10년은 족히 될 건데. 너무 아깝잖아!!”
“맞아. 은진아. 우리가 그룹 유지하겠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아깝잖아. 너 이제 겨우 스물다섯인데. 7년 더 해도 32살이고 내가 인터넷에서 보니까 요즘 결혼하는 나이가 평균이 32살인가? 암튼 그렇더라.”
“그래그래, 25살 꽃다운 나이에 결혼은 너무 아깝지. 물론 수원이가 좀 잘생기고 능력 있고 암튼 그렇긴 하지만······. 너 영어도 잘 못 하지 않아?”
“맞아. 언니. 언니 아직 영어 어렵다며. 게다가 거기 가면 뭐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들어보니까 형부는 1년 중에 거의 절반은 다른 지역에 가 있다며. 그러면 언니 혼자서 그 먼 곳에서 보내야 하는데 언어도 잘 안 통해서 있을 수 있겠어? 막 우울증 걸리고 그러는 거 아니야?”
동료들은 은진을 매우 강하게 말렸다.
물론 모두가 그녀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멤버인 그녀가 빠짐으로써 팀의 인기 자체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질투심이 섞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단편적일 수 있을까. 그 모든 마음에는 진심으로 은진을 걱정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다 섞여 있을 것이다.
“나도 많이 고민해봤어. 아니, 솔직히 지금도 고민이 되지. 그런데 수원이 동료들 보니까 25살이 막 이른 나이도 아니더라. 쟤들은 진짜 고등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혹은 대학 졸업하고 곧바로 결혼하는 경우가 안 그런 경우보다 더 많은 느낌이었어.”
“그거야 그 나라 분위기고. 우리나라는 다르잖아. 어디 가서 25살에 결혼한다고 하면 너 미쳤냐는 소리 들어. 그리고 그런 걸 다 떠나서 은진이 너. 진짜로 괜찮겠어?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고. 그게 네가 원하던 삶이잖아. 그런 걸 다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는 거 정말로 괜찮겠냐고.”
그래.
바로 그 부분이 문제였다. 물론 은진은 수원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가끔 TV로 보면 저게 정말 내가 아는 최수원이 맞나? 싶은 멋진 모습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고 이제는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는 뻔뻔한 모습마저도 귀엽게 느껴진다.
하지만 은진 역시 자신의 삶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죽어라 노력하여 아득바득 기어 올라온 삶이다. 그를 위해 부모님은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하셨으며 은진 스스로는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던가.
“다들 너무 그러지 마. 은진아. 언니는 너 응원하고 있어. 솔직히 상대가 뭐 허접한 월급쟁이 같은 것도 아니고. 최수원이잖아. 최수원. 한국을 넘어선 이 시대 최고의 셀럽. 뉴욕의 남자. 나라면 그런 남자 미국에 혼자 두는 것 자체가 불안할 거야. 그리고 미국 가는 게 뭐 어때서? 가수야 더 못하겠지만 가끔 예능 같은 거 시즌제로 얼굴 비춰주고 그러면 셀럽으로는 오히려 더 잘 나갈걸?”
“언니!!”
“맞잖아. 나도 그런 남자 있으면 당장 은퇴하고 한국 뜬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 중에서 가수가 진짜 꿈인 애? 해나 말고 또 누가 있어? 세정이 너도 연기 하고 싶었는데 이번에 드라마 망해서 지금 그룹 계속 꾸역꾸역하려고 하는 거잖아. 안 그래?”
“뭐라고? 어이없네? 언니 예능 지금 고정 꽂힌 거 그거 언니 능력인 줄 알아? 은진 언니 이름값 없었으면 언니 거기 게스트로도 못 나가. 알아?”
결국 그렇게 팀 회의는 여느 때처럼 개싸움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에는 항상 그렇듯 세상 다시 없는 친한 사이인 것처럼 방긋방긋 웃으며 방송에 나가는 일을 몇 차례 반복했다.
─충격!! 최수원, 박은진 결별?
─늦은 밤 에벌린 쇼와 단 둘이 식사하는 최수원!!
그리고 그사이 당사자들은 모르는 28번째 결별설과
─오랜 장거리 연애의 끝은 결국 좋은 친구 사이인 걸까? 박은진의 손에서 사라진 커플링은 어디로?
29번째 결별설도 무난하게 지나갔다.
처음에는 서로 전화해서 해명하고, 그럼에도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그걸 풀어내는 과정들이 있었지만, 이것도 한 5년 하다 보니 이제는 인이 박였다. 이제는 전화로 연락해서 굳이 해명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한국이건 미국이건 사이버 렉카들이 사이버 렉카 했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박은진이 이런 결심을 내린 것은 최수원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니었다.
“신부 친구 대표로 축사를 하게 된 은진 언니의 가장 친한 동생 이세희라고 합니다. 언니랑 알고 지낸 것도 벌써 8년째네요. 데뷔는 할 수 있을까 매일 걱정만 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예쁜 드레스를 입고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마음이 좋습니다. 처음 언니를 만났을 때······.”
짓궂은 농담들이 포함된 축사는 눈물이 찔끔 날만큼 감동적이었다. 인터넷 반응은 굳이 보지 않았다. 안 봐도 뻔했다. 취집이라느니 최수원이 아깝다느니 하는 글들이 한가득이겠지.
“고마워.”
“뭐가?”
“네가 가진 거 다 내려놓고 여기 와준 거잖아.”
그래, 남자 하나 잘 만나서 팔자가 폈다고 이야기하는 이들 투성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그녀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그녀가 내린 결정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그녀가 포기한 것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사랑.
그래, 박은진이 25년 평생을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얻어낸 그 자리를 박차고 미국으로 온 이유는 사랑이었다. 다른 세기의 사랑들처럼 몇 달 만에 불타오르고 여기저기 어마어마한 스캔들을 뿌려대는 사랑은 아니었지만 처음 최수원에게 까였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무려 8년.
박은진에게 이 결혼은 그 사랑의 결실이었다.
***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다.
그래서 고민이 컸다.
물론 다른 여자가 있고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결혼은 사랑의 골인지점이 아닌 통과지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온 이후 벌써 8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이라는 화두는 끊어내기 어려운 족쇄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 나는 분명 전처인 세정이를 사랑했었다. 세정이 역시 마찬가지로 나를 사랑했었다. 하지만 그 사랑의 결말은 결국 파경이었다.
여러 가지 조건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먼 이국땅에서 믿을 이는 나 하나밖에 없는데 나는 일 년 중에서 40%정도는 원정으로 집을 비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더 할 것이다. 세정이는 커리어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종종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는 데 반하여 은진이는 현재 한국에서 확실히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은진이에게 내가 했던 이런 말들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었다.
“천천히 하자. 천천히. 요즘은 마흔 넘어서도 많이들 결혼하잖아. 전직 뉴욕의 왕인 데릭도 그랬었고. 너도나도 커리어 충분히 쌓고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어차피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뭔가 더 해내야 하는 직업들이잖아. 안 그래?”
하지만 은진이는 나보다 조금 더 용감했다.
“아냐, 하자. 결혼.”
“어?”
“여기서 연예인 하는 것도 행복하긴 한데, 아무래도 미국에서 너랑 사는 게 조금 더 행복할 것 같아. 수원이 너도 그렇잖아.”
“어?”
“아이 갖고 싶잖아. 아니야?”
“······.”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약점을 푹 하고 찔린 기분이었다.
그래, 그랬다.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의 나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웠고 조금 더 오래 이런 나날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바뀌기도 전에 파경이 찾아왔었다.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생각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하지만 완전히 같지 않은 녀석이 꼬물거리고 자러나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소리치는 모습이 보고 싶다고.
“어떻게 알았어?”
“어떻게 그걸 모르냐. 오스왈드랑 타일러랑 같이 만나면 애들 보는 눈에서 꿀이 그렇게 뚝뚝 떨어지는데.”
“내가 그랬어?”
“어. 그랬어.”
걱정거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은진이는 이역만리 타향에서 외로울 것이며 결혼은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통과점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그 통과점 이후가 두려워 그 앞을 빙빙 맴돌기만 할 수는 없었다.
2034년의 봄.
나는 결혼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박은진을 과소평가하고 있었구나.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여자였구나. 하는 것을 말이다.
“어?”
“못 들었어? 뉴욕대 부설 어학원에 갈 거라고. 나 한국에서 영어 공부 나름대로 열심히 하긴 했는데 아직 좀 부족하잖아. 그러니까 가야지.”
“혼자 괜찮겠어?”
“괜찮지. 내가 애도 아니고. 게다가 남들은 다들 뉴욕에서 어학연수 받고 싶어도 임대료 비싸고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못 받는데. 우리는 집이 마침 맨하튼이네? 어학원까지 걸어서 15분이면 도착이네? 안 갈 이유가 없잖아.”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개척해온 여자였다. 비록 공부 머리는 없었지만 그걸 대신할만한 끈기가 있었다.
“아, 그리고 나, 가진 거 다 내려 놓고 여기 온 거 아니야. 아이돌 생활 7년 정도 해보니까 알겠더라. 난 사람들 시선도 좋지만, 그냥 노래하고 춤추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 그래서 그거 계속 하려고.”
“방송 쪽 일 하려고? 그러면 뉴욕보다는 LA가 좋을 텐데. 내가 팀을 옮겨야 하나?”
“얼마 전에 10년 계약했으면서 팀을 옮기기는 무슨!! LA말고 뉴욕에서 해볼 거야.”
“뉴욕에서? 그러면 내가 아는 사람들 좀 소개해줄까? 스포츠 방송쪽이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방송 일이니까······.”
“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 그리고 방송쪽 생각한 것도 아니야.”
“방송이 아니면?”
“잊었어? 여기 뉴욕이잖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무대가 있는 도시. 브로드웨이가 집에서 걸어서 25분이야. 영어만 입에 익으면 오디션을 볼 거야.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래, 그녀는 단순히 최수원의 안사람이 아니었다.
“혹시 알아? 나중에 너 은퇴하고 나는 브로드웨이서 점점 승승장구해서 둘이 손잡고 센트럴파크를 걷는데 사람들이 너 말고 나한테 사인 요청할지?”
“어······. 그건 꿈이 좀 과한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뉴욕인데.”
“그런가? 좀 과한가?”
물론 많은 장벽이 있을 것이다.
그녀의 노래와 춤은 훌륭했지만, 연기는 매우 처참했으며 무엇보다 그녀의 언어 습득 능력은 내가 본 모든 사람 중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아이돌이라는 꿈에 결국 도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은진이를 응원해보기로 결심했다.
“뭐, 아무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