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388)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388화(388/404)
388화. 외전4) 부상 첫 번째.
야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부상이란 어쩌면 숙명과도 같다.
옆을 보고 재채기하다가 삐끗한 허리가 고질병이 되어 기량이 급락하고 은퇴한 스탠 오웬스 같은 반쯤은 농담 같은 부상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1년 162경기의 일정을 치르면서 크고 작은 부상이 따라오는 건 정말 당연한 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2034년 9월.
LA 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 3회 말에 공을 던지는데 팔꿈치에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지체없이 손을 들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솔직히 이번 시즌은 이래저래 잔부상들이 많았는데 이건 그거랑 비교가 안 되게 중대한 문제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뭐 중요한 FA같은 걸 앞두거나 하고 있었다면 좀 참았다가 비밀리에 검사를 받아보거나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운 좋게도 나는 1년 전 겨울에 이미 7+5년짜리 장기 계약을 맺은 이후였다.
사실 그 이전부터 서비스 타임 이내에 장기계약으로 나를 묶으려는 시도는 여러 번 있었는데 솔직히 그 제안들이 대부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랄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국 몸이 달아오르는 건 구단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달까?
결국, 나는 5년 차까지 끝낸 이후에서야 25세부터 36세 시즌. 그러니까 2033년부터 2044년까지를 커버하는 7+5년 총액 7억짜리 계약에 사인 했다. FA까지 기다렸으면 약간 더 받아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 은진이랑 진지하게 결혼 이야기가 오고 가던 상황이었던지라 이왕이면 정착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1년 일찍 계약했다.
“팔꿈치 인대 파열입니다.”
의사의 판정이었다.
그 판정을 듣자마자 든 생각은 1년 일찍 계약했던 게 행운이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맙소사.
팔꿈치 인대 파열이라니.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의 나는 총 세 번의 큰 부상을 경험해봤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때 어깨가 박살 났던 경험인데 사실 내가 진짜 재능이 미친 수준이라 타자로 전업에 성공한 거지 보통이면 야구선수를 당장 그만둬야 할 만큼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두 번째는 KBO에서 프로 생활을 하면서 왼손에 147km/h짜리 사구를 맞았던 일인데 그때 손가락이 부러진 거 시즌 막판이라서 좀 참고 뛰었더니 살짝 잘못 붙는 바람에 날씨 궂을 때마다 고생 좀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빅리그에서 벌크업하고 뛰다가 햄스트링 크게 나가는 바람에 시즌 두 달 남기고 시즌 아웃 됐던 경험이다. 당시에도 가장 강력한 MVP 컨텐더였던지라 어떻게든 복귀해보려고 진짜 안간힘을 썼었는데 안되는 건 안 되더라.
아무튼, 그러한 여러 경험으로 나는 확실하게 한 가지를 몸에 새겨 넣었다. 그건 바로 아프면 병원에 가서 최대한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선수가 다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성적을 끌어올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 더 좋은 기회와 조금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냥 푹 쉬고 만전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이 결과적으로 봤을 때 더 현명한 선택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
특히나 7+5년. 총액 7억 달러짜리 계약이라는 든든한 보험이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최수원 팔꿈치 불편 호소?
─최수원 이대로 시즌 아웃?
─LA 조브 클리닉으로 향한 최수원? 토미 존 서저리인가?
─익명의 관계자 A ‘아직 확정은 아니다. 일단은 여러 의사들에게 진찰을 받아볼 예정.’
─이번 시즌의 여러 가지 부진은 팔꿈치 통증 때문?
─김충범(김충범 정형외과 원장) ‘최근 기술도 많이 좋아졌고 케이스 자체도 매우 늘어났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내로 돌아와서 진단을 받고 수술이나 혹은 다른 기타 요법을 고려해보는 것도 생각해봄 직한 옵션이라고 본다.’
당장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동부와 서부의 병원 두 군데를 모두 예약했다.
에인절스 원정이었던 터라 우선은 가까이에 있는 조브 클리닉으로 향했다. 토미 존 서저리의 창시자인 프랭크 조브 박사가 열었던 클리닉으로 물론 조브 박사야 당연히 이미 타계했지만, 여전히 가장 유명한 병원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곧바로 마이애미로 향했는데 여기에는 동부 쪽에서 가장 유명한 앤드류스 박사의 클리닉이 있었다. 이 양반의 경우 현역시절부터 수술 자체의 완성도가 높기로 유명한 양반이었다. 물론 이 양반도 이미 현장에서는 은퇴하긴 했는데 아무래도 내 유명세 때문인지 상담에는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여러 가지 비수술적인 방법들이 있긴 합니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시술이나 유착을 박리하는 주사요법 등도 고려해볼 수는 있겠죠. 수술 역시 손상 인대를 인터널 브레이스로 고정시켜 재건하는 방식도 가능은 하겠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가장 확실한 건 토미 존 수술이라는 말씀이시겠군요.”
“맞습니다. 물론 부담은 되실 겁니다. 하지만 일반인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팔꿈치에 강한 부하를 걸어야 하는 야구선수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저런 비수술적인 요법은 크게 효과를 발휘하기 힘듭니다. 아직 나이도 젊고, 최소 10년 이상은 꾸준히 선수 생활을 해야 하는 걸 고려하면 역시 수술 쪽을 추천 드립니다. 그리고······.”
앤드류스 박사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수술 이후 타자로 출장하는 문제에 관한 부분인데 제 생각에는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선례가 있지만 전 그걸 좋은 선례라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조브 클리닉에서는 조금 더 빠른 복귀를 장담했을 겁니다. 하지만 전 걱정이 많은 늙은이라 그런지 최대한 신중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군요.”
“네, 뭐 그러죠. 수술합시다.”
나의 흔쾌한 대답에 옆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의사의 설명을 듣던 은진이와 매니저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앤드류스 박사의 말처럼 조브 클리닉에서는 재건 말고 보강을 선택할 경우 내년 하반기에는 무조건 복귀가 가능할뿐더러 타자로는 상반기부터도 뛸 수 있다고 유혹하기는 했다. 실제로 그렇게 뛰었던 사례들 역시 존재했고.
하지만 앤드류스 박사의 말처럼 나의 커리어는 최소 10년 이상이 남아있었고 그걸 생각하면 이런 부상은 확실하게 회복하고 넘어가는 것이 더 올바른 선택이라고 판단이 됐다.
내가 겉으로 보이는 나이야 아직 스물여섯이었지만 그 속은 이래저래 마흔이 넘어가는 늙은이라 그런지 몸에 관해서는 야심만만하게 최소기간을 이야기하는 조브 클리닉보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이야기하는 앤드류스박사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수원아. 이렇게 쉽게? 그러지 말고 여기저기 조금 더 알아보는 것도······.”
“조브 클리닉에서도 같은 말이었잖아. 여기랑 거기랑 같은 말이면 알아볼 곳은 다 알아본 셈이지. 그리고 이왕이면 수술받기에도 LA보다는 플로리다 쪽이 더 낫지. 안 그래?”
“좋은 선택입니다.”
“수술 일정은 어떻게 잡으면 되나요? 아, 선생님이 직접 집도하시는 건 아니죠?”
“하하, 제가 20년만 젊었어도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은 이렇게 얼굴마담으로 상담 정도나 하는 신세입니다. 수술은 저희 클리닉 최고의 서전인 닥터 골드버그가 직접 집도할겁니다. 이게 제 손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실력 하나는 전성기의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일선에서 뛴 지 15년 차이니 신체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딱 절정을 달릴 나이죠. 제가 50년 전에 로저 클레멘스와 마이클 조던의 수술을 집도했을 때가 딱 그 나이였죠. 야구 선수로 치자면 딱 최수원 선수 정도의 나이라고 봐주시면 될 것 같군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권위자 중 하나인 그도 손자 자랑은 참을 수 없었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몇 가지 사족을 덧붙였다.
“네, 그러면 잘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빠른 일정으로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수술해야 한다면 굳이 뒤로 미룰 이유가 없었다. 최소 12개월. 길면 18개월 정도의 재활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걸 몇 달 뒤로 미루게 되면 한 시즌이 아니라 한 시즌 반을 날려먹게 되고, 그럴 경우 그 반 시즌 더 날려 먹는 게 싫어서 조급한 마음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수원 팔꿈치 인대 재건술 결정!!
─최수원의 수술을 담당하는 마이클 클레멘스 박사는 누구?
─마이클 골드버그 박사 ‘수술은 성공적으로 완벽하게 잘 끝났다. 하지만 토미 존 서저리의 핵심은 수술 자체보다는 이후로 이어지는 재활에 있다. 우리 클리닉의 경우 가장 효과적인 재활 루틴을 제공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최수원은 세계 최고, 아니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며 우리는 그의 성공적인 재활을 위하여 모든 옵션을 제공할 것이다.’
부상은 아프고 수술은 더 아프고 재활은 어렵다. 지난 삶의 경험을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팔꿈치 인대 재건술. 그러니까 이 토미 존 서저리의 재활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지독했다.
“안됩니다. 최대한 안전하게. 뛰기 전에는 먼저 살펴봐야 하는 법이라는 말도 있잖습니까.”
당연히 의사의 말을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이게 몸이 정말 괜찮아진 것 같다는 느낌에 조금씩 좀이 쑤셔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8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제대로 공을 던지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마음이 갑갑할 수밖에 없다.
뭐, 이야기로 듣는 사람이야 고작 8개월 못 참아서 평생을 날려 먹으려고 그러냐. 같은 말이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이게 그렇지가 않다. 차라리 몸이 조금 불편하거나 아팠으면 그냥 참겠는데 통증도 없고 몸 자체는 푹 쉬어서 굉장히 가뿐한 느낌인데 공은 못 던지게 하니까 더더욱 그러했다. 그나마 타격 훈련은 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이 갈증을 해갈하는데 약간의 도움이 됐다.
“자, 이제 ITP 시작하겠습니다.”
ITP.
그러니까 Interval Throwing Program(단계적 투구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나서야 이제 좀 진짜 훈련을 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쉐도우 피칭으로 시작해서 롱토스. 그리고 마침내 마운드까지.
“확실히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회복 속도 자체가 남다른 면이 있군요. 아주 좋습니다.”
“그러면 전력 투구는 언제쯤?”
“다음 주 정도에 마운드에서 던져보는 걸로 하시죠. 그리고 이상이 없으면······. SWB RailRiders의 마지막 경기가 9월 23일이었나요? 그렇다면 그 이전에 리햅을 위해 합류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 같군요.”
정확하게 11개월 하고 27일.
생각보다 훨씬 빠른 타이밍에 리햅 경기가 잡혔다.
9월 14일.
AAA리그의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PNC 필드의 1만1천 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하하, 수원. 몸은 좀 어때?”
“오래간만에 경기장이라 얼른 뛰고 싶어서 근질근질하지 뭐. 그나저나 높은 자리로 승진했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네 등판이잖아. 그것도 1년 만에. 특집 방송인데 카메라 인력이 부족해서.”
YES 네트워크에서도 특별히 대규모의 팀을 구성해서 경기장을 찾아왔다. 저쪽 구석에는 마이너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왔다는 중계진의 모습도 보였다.
1년 만의 마운드.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응원하는 이들의 시선이 있었으며 걱정하는 이들의 시선도 있었고 또 내가 이대로 몰락하기를 바라는 음습한 시선 역시 존재했다.
항상 하던 그대로.
크게 와인드업하고 강하게 공을 던졌다.
-뻐어어엉!!!
103.7마일의 바깥으로 크게 벗어나는 속구.
내 몸 상태는 100퍼센트.
아니, 그 이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