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401)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401화(401/404)
401화. 외전6) 파티원 모집(9)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보통의 삶’이라는 게 있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더라면 난 정말 끝내주는 프롬킹이 됐을거야.”
“맞아, 당신은 아마 학교 역사상 가장 핫한 프롬킹이 됐을거야.”
“맞아, 아마 학교의 모든 치어 리더들이 나에게 에스코트 받기를 꿈꿨을걸?”
“대신 이렇게 지금 당신 옆에 학교의 모든 풋볼선수들이 에스코트 하고 싶어하던 프롬퀸이 함께 있잖아.”
그리고 알렉산더 맥도웰은 그 보통의 삶을 포기했다. 물론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일찍 파악했고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알렉산더 맥도웰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후회라고 볼 수는 없었다. 그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갖지 못한 경험에 대한 욕심일 것이다.
후회되는 점은 오히려 그 이후의 일들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그걸 학습했더라면.
조금만 더 일찍 이런 요령을 깨우쳤더라면.
만약 그때 브레이킹볼을 노릴게 아니라 속구를 노렸더라면.
지난 16년.
한 끗 차이로 패배했던, 혹은 그보다 큰 차이로 패배했던 수많은 패배의 기억들.
경기 단위로 따져보자면 패배보다 승리가 훨씬 많았다. 심지어 그 시즌에 가장 강력한 선수인 MVP로 뽑혔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승리자일 수 없었다. 그래, 한 해의 마지막 경기를 끝내는 순간 그는 한 번도 활짝 웃은 적이 없었다.
오늘도 마운드에는 최수원이 서 있었다.
그래, 항상 그랬던 것처럼.
알렉산더 맥도웰이 방망이를 꾹 움켜쥐고 홈플레이트에 바짝 다가섰다.
초구.
몸쪽 높은 코스.
-뻐어엉!!
심판의 손이 올라오지 않았다.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한 성정. 타석에 가까이 서면 친구고 뭐고 대가리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위협이 담겨있던 그 속구에 알렉산더 맥도웰이 그렇게 공을 계속 던지면 나 이대로 볼넷으로 걸어 나간다? 라는 눈빛으로 화답했다.
홈플레이트 뒤편에 포수 마스크를 뒤집어 쓴 오스왈드 웰스가 뭐라뭐라 쫑알거렸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오스왈드 웰스의 목소리만 신경이 쓰이지 않은 게 아니었다. 관중들로 가득 찬 양키 스타디움의 시끄러운 소음 역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직 최수원.
알렉산더 맥도웰의 온 신경이 그에게 집중됐다.
와인드업.
충분히 많이 목격했지만, 여전히 짜증 나는 폼이었다. 리그에 횡행하는 기괴한 폼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정직하지만 그 와중에 심어둔 약간의 변주가 까다롭기 그지없다.
이미 수집된 동영상을 토대로 정교한 VR을 만들어 지겨울 정도로 상대해봤다. 과장 조금 보태서 그 폼을 똑같게 따라하라고 해도 따라할 자신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작의 끝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았다.
-부우웅!!
“스트으라잌!!”
[기가 막힌 서클체인지업이 알렉산더 맥도웰의 방망이를 끌어냅니다!!] [최수원 선수, 이번 시즌 내내 저 체인지업으로 재미를 참 많이 봤거든요. 개인적으로 이런 부분이야말로 최수원 선수의 대단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정상에 서면 좀 게을러 질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구 선수은 원래 2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휴일 없이 빡세게 달리는 대신 11월부터 2월까지는 좀 쉬는 기간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최수원 선수를 보면 그 기간에도 정말 매년 그 기간에도 충실하게 준비를 잘 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노력하는 천재. 성장하는 정점. 저는 감히 최수원 선수를 이렇게 평가하고 싶네요. 사실 알렉산더 맥도웰 선수도 그렇고 우리 백하민 선수도 그렇고. 정말 대단한 선수들이거든요. 특히 백하민 선수 같은 경우는 KBO 시절을 떠올려 보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질 만큼 발전을 했어요. 하지만 정작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 점점 더 멀어지고 있으니. 이게 참 저 선수들 입장에서는 참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렇죠. 보통 저 정도 되는 에이스급 선수가 1군 무대에 올라왔을 때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거든요. 꾸준히 성장하다보면 탑급 선수는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마련이거든요. 근데 최수원 선수와 동시기를 뛴 선수들에게는 그게 해당이 안되요. 심지어 알렉산더 맥도웰 선수를 보십쇼. 저 커리어를 갖고 월드 시리즈만 이번까지 해서 총 열 번을 진출했는데 아직 월드 챔피언 반지가 하나도 없어요. 이건 뭐, 역대 최강의 2인자라는 말밖에는 안 나오는 성적입니다.] [자, 말씀드리는 순간, 세 번째 와인드업!!]알렉산더 맥도웰이 한층 더 집중했다.
과장을 조금 보태 최수원 유니폼의 주름 하나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날아왔다.
커브는 아니다. 탑스핀 특유의 느낌이 없었다.
찰나의 판단.
빠른 공이다.
알렉산더 맥도웰의 방망이가 공이 그릴 궤적을 향하여 움직였다. 그리고 다시 0.02초. 그가 자신의 판단을 수정했다.
슬라이더.
그의 몸이 그 판단에 맞게 방망이의 궤적을 수정시켰다. 보통의 타자라면 불가능할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만한 위대한 타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악!!!
방망이가 날아오는 공을 두들겼다.
손바닥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찝찝한 감각. 정타는 아니다. 하지만 단일 시즌 63홈런. 18년 커리어 통산 711홈런에 빛나는 대타자 알렉산더 맥도웰은 종종 이런 찝찝한 감각으로도 가뿐히 담장을 넘긴 경험이 있었다.
오늘은 타구를 관찰하지 않았다.
지금 이 무대, 그리고 저 상대는 그런 사치를 부릴 만한 상대가 아니었으니까.
타구가 기세 좋게 쭉쭉 뻗어 나갔다. 하지만 이번에도 타구는 담장을 넘어가기에 1푼 부족했다.
그 결과에 알렉산더 맥도웰이 생각했다.
저 타구는 어쩌면 자신의 야구 커리어를 닮아 있는 것 같다고. 그래, 초반에는 기세 좋게 뻗어 나갔지만, 결국 마지막 목표에 1푼 부족하여 추락하고 마는 반지 하나 없는 패배자의 삶 그 자체 말이다.
월드시리즈 7차전 3타수 무안타.
알렉산더 맥도웰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덕아웃에 돌아갔다.
이 순간 알렉산더 맥도웰에게 최수원은 사람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마치 운명과도 같은 더 거대한 무언가였다.
***
경기가 시작되기 전.
도밍고 로드리게스는 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었다.
“아, 이건 진짜 보고 싶지 않던 광경인데. 3승 3패. 심지어 연패 직후의 최수원이라니. 내가 말했었지? 저 녀석. 그냥도 사기인데. 결정적인 순간에는 개사기가 된다고. 타고난 슈퍼스타랄까? 설마 하는 순간에는 항상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줘. 같은 편, 혹은 녀석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만. 반대쪽에서 보자면 악몽 그 자체야.”
물론 굳이 도밍고 로드리게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백하민도, 알렉산더 맥도웰도 모두 최수원이 그런 녀석이라는 것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실이라고 해서 항상 듣기 좋은 소리인 건 아니다. 하물며 그것은 때때로 사실이기에 더더욱 듣기 싫을 수도 있다. 도밍고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그 영감, 아마 지금 여기 있었다면 내가 뭐라 그랬어? 라면서 잘난 척 했겠지?”
“당연하지. 원래 그런 양반이잖아.”
“젠장, 난 대체 그런 영감은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꾸역꾸역 데리고 온 걸까?”
“얻어먹을 건 많았지. 솔직히 이번 시즌 그 영감님 없었으면 우리 여기까지 오지도 못 했어. 알렉스 너도 잘 알잖아.”
묘한 분위기였다.
애써 힘내자며 분위기를 뛰어봤지만, 여전히 그 묘한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사람들의 ‘학습’은 끝나 있었다.
─야구란 18명의 선수가 9이닝을 싸우고 결국 최수원이 이끄는 양키스가 우승하는 게임이다.
8회 초 0:0의 팽팽한 상황.
최수원을 보고 자란 젊은 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최수원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베테랑들. 심지어 코치와 감독들까지도 모두. 축구계의 그 오랜 격언을 표절한 문구가 그들의 머릿속을 스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최수원이 이끄는 양키스가 그간 쌓아 올린 세월이 만들어낸 거대한 무형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37세의 선발 투수가 어깨를 데워주던 투수용 점퍼를 벗어 던졌다.
누군가처럼 위기의 순간에 한층 더 강해지는 주인공 버프 따위는 없을지라도 아주 오랜 시간 단단하게 쌓아 올린 육체는 아직 힘을 다 잃지 않았다.
그가 마치 1회처럼 쌩쌩하게 공을 던졌다.
하지만 상대는 뉴욕 양키스. 세 번을 넘어 네 번째 타순에 접어든 양키스의 타자들은 고작 그 정도로 억제하기에는 너무 강력했다.
코너를 구석구석 찌르는 공 가운데 실투도 나왔고 그런 공은 여지없이 안타로 연결됐다. 심지어 실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꾸역꾸역 쳐내는 타자도 있었다.
하지만 최수원이 양키스라는 팀을 이끌고 16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적’이라는 업적을 쌓아 올린 것처럼 백하민 역시 그 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는 않았다.
더 위대한 재능이 그와 마찬가지로 노력을 잃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포기하지 않고 더 노력하려 애쓰는 것뿐이다.
오직 백하민 뿐이었다.
누군가는 그 재능에 벽을 느끼고 좌절했으며, 누군가는 희망을 품고 그의 곁에 서기 위해 노력했으며 누군가는 끊임없이 도전하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백하민은 여전히 이곳에 서 있었다.
다섯 번째 타순.
투아웃.
주자는 1, 2루.
최수원의 차례였다.
만약 이 순간이 하늘이 백하민과 최수원의 결판을 위해 마련해준 운명적인 무대였다면 그들이 만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승부해야만 하는 투아웃 만루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하민은 지금 이 순간 역시 나름의 마무리를 위해 하늘이 선물해준 순간이라고 느꼈다.
자동고의사구.
베이스가 가득 찼다.
8회 말. 0:0 상황. 주자 1, 2루에서도 자동고의사구를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 타자 최수원의 힘이었다.
백하민이 두 손을 모았다.
자연스럽게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1루를 잠시 바라봤다. 그곳에는 언제나와 같이 낮은 자세로 장타가 나오는 순간 홈까지 달려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최수원이 서 있었다.
백하민 역시 아주 오랜 시간 몸에 익혀온 자세 그대로 공을 뿌렸다.
그 공은 백하민이 원하는 곳으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갔다.
-따아악!!!
그리고 타구가 높게 솟구쳤다.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는 18년 전의 그 무언가를 연상케 했다.
그래, 아마 그때 백하민 자신은 두 팔을 번쩍 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던 것 같다. 고작 외야뜬공 아웃 하나에 마치 헛스윙 삼진이라도 잡아낸 것처럼 말이다.
“아웃!!!”
8이닝 무실점.
백하민이 자신의 역할을 끝냈다.
그리고 9회 초.
2년 전, 도밍고 로드리게스 때와 마찬가지로 최수원이 또다시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아홉 번째 이닝 역시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이것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18명의 선수가 9이닝을 싸워 최수원이 이끄는 양키스가 승리하는 경기를 위한 완벽한 밑그림이었을까?
[9회 말, 도밍고 로드리게스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옵니다.]도밍고 로드리게스가 고개를 저었다.
2년 전.
그는 8이닝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자신의 역할을 끝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러니 오늘 이 무대는 그때의 부족했던 것을 보충하는 일종의 A/S개념이 될 것이다.
흥분하지 않았다.
떨지도 않았다.
누구보다 많은 월드 시리즈 경험을 갖춘 메이저 최고령의 투수가 가장 익숙한 마운드 위에서 9회 말 고향 팀의 공격을 삭제시켰다.
양키스 덕아웃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다.
제프 클라크 감독은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최수원을 충분 이상으로 말렸다. 하지만 양키스라는 팀에서 최수원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입지를 갖고 있었으며 이런 순간 그는 절대 그를 응원하는 이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 16년의 기록으로 증명했다.
10회.
최수원이 또 한 번 마운드에 올라왔다. 누군가는 이것을 로망이라고 생각했고, 그보다 많은 이들은 이것을 혹사라고 생각했다.
숫자를 집계하는 이들은 이 순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100M이 넘어가는 숫자를 목격했다.
땅볼 아웃.
뜬공 아웃.
그리고 운명과도 같은 만남.
그가 전설적인 커리어의 타자라고는 했지만 4타수 무안타. 심지어 직전 타석에서 삼구삼진으로 물러난 타자였다.
양키스의 덕아웃은 자동고의사구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초구.
그저 오랜 노력의 결정일 수도 있었다.
혹은 위대한 정점을 넘어서고 싶었던 평범한 천재들의 오랜 집념들이 그에게 불가사의한 힘을 불어넣었다는 오컬트적인 이야기일지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최수원이라는 위대한 투수에게도 10이닝은 너무 길었다는 합리적인 이야기가 가장 타당할지도 몰랐다.
무엇이든 상관은 없었다.
한 순간.
알렉산더 맥도웰은 최수원의 손끝을 보았다.
마치 온 세상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이곳에 존재하는 것은 저 마운드 위에 공을 던지는 최수원과 방망이를 휘두르는 알렉산더 맥도웰 자신뿐.
-딱!!!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고요한 정적을 끝낸 것은 짧지만 그 무엇보다 선명한 타구음이었다.
2044년 11월 4일.
온전한 최수원이 처음으로 시즌의 끝에 활짝 웃지 못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