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7)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7화(7/404)
7화. 인생은 길다(2)
“아무래도 자세한 건 MRI를 찍어봐야 알겠지만, 증상만으로 봤을 땐 어깨 관절 쪽에 약간의 염증이 생긴 것 같구먼. 어깨 잘 돌아가는 거 보니 심한 건 아닌데. 그래도 부위가 부위니까 조심하도록 해.”
감독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한눈에 봐도 딱 나 명의요. 라고 써 붙인 것 같은 얼굴의 할아버지가 앉아있는 동네 작은 정형외과였다.
“이 녀석 괜찮아지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아직 한참 팔팔한 시기니까 약 먹고 며칠 푹 쉬면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괜찮아질거야. 학생. 내가 약 지어 줄 테니까 가서 먹고 며칠 푹 쉬도록 해.”
늙은 의사 선생님이 종이에 알아볼 수 없는 글자들을 휘갈기는 사이 감독이 나의 등을 두들기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 아니라니 그래도 다행이다. 당분간은 훈련할 때도 어깨 쓰지 말고. 이번 경기까지는 푹 쉬어라. 알겠지?”
“네, 감독님.”
한참 종이에 글자를 휘갈기던 의사 할아버지가 말했다.
“박감독이 그러는데 유망한 선수라며. 괜히 아픈데 무리하지 말어. 야구 선수는 몸이 재산이야. 마운드에 서면 욕심 나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즉시즉시 알리고. 적당히 참고 던질 수 있을 것 같을 때도 이미 늦은 거야. 알겠어? 아 가는 길에 물리 치료도 잊지 말고 꼭 받고 가고.”
“네.”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어깨 아프다고 했더니 잘 아는 동네 병원 가서 약 주고 잠깐 물리 치료하고 끝.
사실 뭐 솔직히 예상했던 대로다.
물론 병원에서 이상하다는 소견이 나오던지, 아니면 통증이 꾸준했든지, 혹은 심하든지 하면 또 모른다. 기본적으로 난 제법 잘 나가는 유망주고 집에 돈이 없는 편도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뭐 프로도 아니고, 여기서 어깨 한번 아프다고 그랬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대형병원을 가서 MRI를 찍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애당초 MRI는 한 번 찍으려면 비용만 백단위에 대기는 몇 주가 걸린다.
그리고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MRI를 찍어봤자 뭐 대단한 것도 안 나올 거다. 사실 어깨 아프다는 것도 애초에 뻥이었으니까.
기억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본격적으로 혹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올해 여름부터다.
사실 주말 리그만 출전해서는 어깨를 혹사하기도 힘들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경기. 그것도 최대 105개까지만 던지는데 평소 연습을 이상하게 하지 않는 이상 혹사가 가능할 리 없다.
물론 놀랍게도 가끔은 그것조차 해내는 학교도 나오기는 한다지만, 다행히 우리 학교는 그 정도까지 막장은 아니다.
문제는 여름에 있었던 왕중왕전을 비롯한 토너먼트들이었다.
왕중왕전은 1차전부터 결승까지 딱 2주 만에 치러진다. 그리고 그 기간 사이 만약 결승까지 올라간다면 경기 숫자는 적으면 다섯 경기, 많으면 여섯 경기다.
물론 프로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숫자다. 포스트 시즌은커녕 그냥 리그 경기보다 더 적다. 하지만 고등학교 야구부는 프로와 다르다. 5선발은커녕 에이스와 2선발의 격차도 매우 크다. 그렇기에 결국 대부분 학교가 에이스 돌려막기를 하는 상황에서 이건 좀 빡빡하다.
그래도 작년의 경우는 다행인 것이 전반기 주말리그 우리 권역에서 2위를 한 덕분에 하반기 왕중왕전만을 나갔고 그나마도 3라운드에서 떨어져서 어깨를 그리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여름.
내가 기억하기로 나에게 주어지게 될 스케줄은 이랬다.
전반기 왕중왕전인 황금사자기 대회.
5월 20일에 75개.
5월 24일에 60개
5월 26일에 60개
5월 28일에 105개. 그리고 아쉽게 준결승에서 탈락.
여기까지만 들어도 미친 스케줄이라는 것이 확 와닿지 않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는 이번 전반기 주말리그 권역 1위를 한다. 그 덕분에 전, 후반기 왕중왕전을 모두 참가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반기 주말 리그.
사실 하반기 주말 리그는 왕중왕전 출전권을 놓고 겨루는 대회가 아닌 만큼 보통 1, 2학년에 예비 선수들 위주로 기회를 준다. 근데 문제는 내가 아직 2학년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일주일 간격으로 꾸준히 105개씩 던졌다.
그리고 다시 하반기 왕중왕전인 청룡기 대회가 열렸다.
7월 6일에 75개
7월 10일에 60개
7월 12일에 47개
7월 14일에 또 105개. 그리고 또 아쉽게 준결승에서 탈락.
지금 이렇게 이야기 해놓고 보니 진짜 놀라울 만큼 미친 일정이다. 물론 여기서 더 놀라운 건 우승 못 한 게 내 탓이라고 자책하며 이후로 미친 듯이 공을 더 던졌던 나 자신의 멍청함이긴 하지만······.
아무튼 간 이래서 아직 어린 애들한테 일본 야구 만화를 너무 많이 보여주면 안 된다.
어쨌거나 지금 내가 어깨가 아프다고 이야기 한 것은 당장 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푹 쉬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은 그냥 이 정도면 충분하다.
게다가 덤으로 의사 선생님께서 감독에게 잔소리까지 해주셨다.
“그리고 박 감독. 자네도 애들 좀 신경 써줘. 원래 애들은 자기 몸 아픈 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그런 건 어른들이 신경 써줘야 하는 거야.”
“어휴, 그야 당연하죠. 보십쇼. 애가 아프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득달같이 달려온 거. 저희 때였어 봐요. 어디 조금 쑤신 거 가지고 그러냐고. 게다가 요즘은 규정도 있어서 그때처럼 그렇게 굴리지도 못합니다.”
“아무튼지 간에 신경 좀 쓰라고. 알겠어?”
“알겠습니다.”
애당초 우리 감독이 나에게 저렇게 무식하게 공을 던지게 한 것은 뭐 특별히 나에게 앙심이 있다든지, 공명심이 투철한 나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냥 자기 때는 저것보다 더했고, 지금 많은 고등학교가 저렇게 규정에 딱 맞춰서 빡빡하게 에이스를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감독과 우리 아빠의 관계는 오고 가는 봉투로 매우 돈독했다.
그래서 졸업하고 5년 후인가?
감독이랑 술 한잔하는데 엉엉 울면서 자기는 진심으로 그게 나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하더라. 105개씩 던질 때마다 뭔가 조금씩 성장하는 게 보여서 그랬다나?
뭐, 한참 기량이 늘어날 시기니까 경험치 먹고 느는 건 당연했겠지. 문제는 그사이에 내구도가 퍽퍽 깎여 나가는데 수리는 한 번도 제대로 안 한 탓에 수리 불가가 떠버렸다는 점이었지만.
아무튼 그렇다면 지금 의사의 말을 들은 감독이 보여줄 반응은 어떨까?
“수원아.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들었지? 이 감독도 너만 했을 때 경험해봐서 다 알아. 참고 던질 만하다 싶으면 이 악물고 던져서 우승하고 싶겠지. 그래서 ‘뭐 별거 아니겠지?’ 이러면서 넘겨 버리고. 어? 근데 그러다가 훅 간다. 그러니까 좀 안 좋다 싶으면 바로바로 말해. 알겠어?”
그래, 이게 바로 딱 내가 원했던 반응이다.
***
일본과 달리 한국의 고교야구는 그다지 인기가 없다. 뭐 딱히 일본이 부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사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거나 덕분에 주말 리그는 거의 관중이 없다. 기껏해야 선수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전부다. 하지만 가끔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바로 오늘처럼.
“오늘 완전 미쳤네.”
“열 개 구단 전부 다 왔다던데?”
“드디어 프로 구단에서도 나의 천재성을 알아본 건가?”
“저 새끼 저거 또 쌉소리 한다. 저 사람들이 너 보러 왔겠냐? 하민이랑 최수원 맞대결 보러 왔겠지.”
저쪽에서 투덕거리는 천남고 녀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하민.
올해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가 확실한 투수다. 최고 구속은 151km/h. 제구가 좀 날리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나를 봐서 알다시피 고등학생이 150을 넘기면 그건 거의 무조건 1라운더다.
만약 3년 전에 1차 지명이 있던 시절이었으면 무조건 서울 팀으로 갔을 투수였기에 이렇게 많은 스카우트가 모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된 이상 열 개 구단 모두 치열한 눈치 게임을 피해갈 수 없다.
작년에 꼴찌를 했던 팀은 전국에서 가장 훌륭한 선수, 혹은 조금 덜 훌륭하더라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조각이 누구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고, 우승을 했던 팀은 우승을 했던 팀 대로 남들이 골라갈 선수는 누구이며 그렇게 하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스카우트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나머지 선수들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차근차근 몸을 풀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학생이라면 고3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수능을 공부한 이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재수도 삼수도 존재하지 않는다. 드래프트에 대졸 선수를 의무적으로 뽑는 조항이 사라진 지금은 더더욱 그러하다.
기회는 오직 한 번뿐이다.
그리고 드래프트까지 남은 날짜는 이제 넉 달.
열여덟 짧은 인생의 전부를 불살라온 야구를 계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앞으로 남은 경기들로 결정이 난다. 그리고 그런 경기들 가운데 이렇게 열 개 구단 모든 스카우트가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실력을 뽐내볼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멍게 녀석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아마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신께 기도라도 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오늘 내 컨디션이 별로이기를. 내가 던진 공이 좀 날려서 마운드에서 빨리 내려오기를. 그래서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오기를.
그래. 내가 신은 아니지만 오늘 특별히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물론 그 소원의 결과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전적으로 네 몫이겠지만.
주말 리그 3차전.
중앙고와 천남고의 경기.
1회 초.
내가 마운드 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