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77)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77화(77/404)
77화. 끝의 시작(3)
미국은 스포츠의 나라다.
흔히들 미국의 대단함을 이야기할 때 그 예시로 전세계 군대 vs 미국 군대 같은 걸 이야기하는데 사실 그건 미국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다.
스포츠 산업의 규모만 따져봤을 때, 미국은 단연 세계 최고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국가를 합쳐도 미국에 상대가 안 될 정도였으며 중국이 양적으로 크게 팽창한 최근에도 세계시장의 4할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수준이다.
4월부터 10월까지 MLB.
9월부터 1월까지 NFL.
10월부터 4월까지 NBA.
그야말로 한시도 쉬는 기간이 없다.
당연히 이건 우연이 아니다. NBA와 NFL이 겨울에 열리는 것은 모두 MLB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대까지 MLB는 국기(國技)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은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했다. 덕분에 비교적 신생 스포츠였던 NFL이나 NBA는 최대한 MLB를 피해 시즌을 개최하고, 연고지 역시 MLB가 장악하지 않은 중소도시 위주로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에 와선 그것도 다 의미가 없어졌지만 말이야.”
엉덩이 모양으로 갈라진 주걱턱에 구렛나루, 제법 빽빽하게 자라난 수염까지. 이게 대체 어딜 봐서 나랑 동갑인가 싶은 얼굴의 주인공이 투덜댔다.
“지금도 봐봐. 아무도 우리한테 와서 사인해달라고 하지를 않잖아. 심지어 여긴 뉴욕인데 말이야.”
“그러게.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에 표지로까지 찍혔다더니 생각보다 인기가 별로인가 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 자체가 문제지. 요즘 누가 그런 구닥다리를 본다고. 차라리 애슬레틱이라면 몰라도. 아무튼 그런 구닥다리조차도 야구 선수를 올해의 스포츠 스타로 선정한 게 벌써 10년도 넘었어.”
“응? 그렇게까지는 안 된 것 같은데?”
“잊어. 중간에 스포츠선수 아닌 놈이 하나 있는데 그런 논리로 그놈은 야구 선수도 아니니까.”
아, 기억났다.
휴스턴에서 MVP 받았던 싸인 훔친 쓰레기통.
“아무튼 2021년에 오타니 쇼헤이가 그 대단한 활약을 했는데도 상을 받은 건 톰 브래디였단 말이지. 물론 톰 브래디가 대단한 활약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야. 하지만 공동수상 그렇게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가 공동수상도 해주지 않은 건 역시 NFL과 MLB의 현실적인 차이 때문 아니겠어?”
“어, 뭐 그건 그렇겠지? 근데 말이야. 대체 이런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하는 거야? 그것도 모처럼 쉬는 날에 집 앞까지 찾아와서?”
나의 질문에 알렉산더 맥도웰. 그러니까 절대 열여덟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소년이 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
카페 주인이 녀석을 한번 힐끔 바라본다. 물론 녀석이 누군지를 알아본 눈치는 아니다. 그나저나 대체 이 녀석은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찾아온 거지?
“나는 MLB를 다시 94년 이전으로 돌려놓을 생각이야. 누가 뭐라고 해도 미국의 국기(America’s National Pastime)은 야구잖아. 안 그래?”
“어······. 음······. 그래. 그렇지. 뭐 법리적으로 따지면 그렇기는 하지. 근데 내가 궁금한 건 그걸 왜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한테 와서 이야기하냐는 거야.”
“그야 너도 ‘야구의 신’에게 나와 같은 사명을 부여받았으니까. 안 그래?”
!?
잠깐만. 야구의 신?
마치 뒤통수를 몽둥이로 한 대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 나는 야구의 신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도저히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 녀석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경험한 것일까? 현대의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그런 것을? 그런데 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내가 그런 것을 경험한 것을 알아본 거지? 뭔가 특징이라도 있는 건가?
“놀란 표정이네. 그래, 그럴만하지. 무려 나 알렉산더 맥도웰이 너를 라이벌로 인정했는데 놀라지 않고 배기겠어? 94년의 그 치명적인 실수에도 불구하고 야구가 부흥할 수 있었던 기회는 분명 있었어. 새미 소사와 마크 맥과이어가 진짜 야구 선수였다면. 배리 본즈와 로저 클레멘스가 유혹에 패배하지 않았더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그런 뻔뻔한 거짓말쟁이가 아니었더라면.”
“잠깐, 잠깐만. 그러니까 넌 지금 야구의 신한테 사명이니 뭐니 하는 게······.”
“그래!! 한 번 강한 자극을 맛본 사람은 그보다 덜한 자극에는 반응하기 힘들지. 94년의 파업 이후, 약물의 힘에 의지한 더러운 놈들로 인해 야구는 너무 크게 오염됐어. 특히 야구의 꽃인 홈런. 로저 매리스의 61호 홈런은 분명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기록이었어. 하지만 이제는 부족하지. 빌어먹을 놈들.”
확실히 직접 뛰어봤으니 61호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기록인지는 알고 있다. 무려 테드 윌리엄스 이후로 가장 위대한 타자 소리 들었던 나도 한 시즌 최다 기록이 60홈런까지였으니까.
지금이라면? 글쎄······. 잘 모르겠다. 타자에만 집중한다면 그때만큼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록이라는 건 실력을 떠나서 운도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니, 확신할 수는 없다.
아무튼 알렉산더 맥도웰 녀석의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내가 생각했던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 언젠가 배리 본즈의 73호 홈런을 뛰어넘을 생각이야. 그거라면 야구의 인기를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메이저리그가 진정으로 NFL을 다시 추격했던 건 배리 본즈가 독주할 때가 아니었어.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경쟁을 벌일 때였지. 나는 네가 나의 새미 소사가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네가 우리 팀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응? 갑자기?”
“말했잖아. 홈런왕 레이스를 펼쳐야 한다고. 한 팀에 그런 선수가 하나라면 고의 사구로 내보내면 그만이야. 하지만 둘이라면? 게다가 이건 너에게도 좋은 제안이야. 내가 너보다 1년 먼저 데뷔하니까 신인왕은 차지할 수 있고, 내가 없는 리그에서 MVP를 가져가는 게 아니라 진짜 최고와 경쟁해서 MVP 2위를 차지할 수 있는 영광이 함께하는 거라고.”
어······. 음······.
난 앞으로 살면서 볼 수 있는 미친놈의 최대치를 안병영 정도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 생각을 정정할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 맥도웰. 이놈 보통 미친 게 아닌데?
“그래, 좋은 이야기 잘 들었고. 난 오늘치 훈련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다. 잘 살펴 들어가고. 나중에 기회 되면 또 보자.”
“역시, 나와는 같은 팀보다는 상대 팀에서 경쟁하고 싶다 이거군. 그래, 이해한다.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겠지. 그날 그 경기가 네 인생 최초의 패배였을 테니까.”
“그날 그 경기? 아, U-18 결승전?”
알렉산더 맥도웰이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묘하게 짜증이 났다. 그나저나 분명, 이 녀석 회귀하기 전에는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일단 오늘은 훈련을 가야 한다니 가봐라. 내일 다시 찾아오도록 하지.”
“야야, 잠깐만. 다시 찾아오긴 뭘 다시 찾아와. 잘 들어. 일단 난 너희 팀 갈 생각이 없고, 그건 널 피하는 게 아니야. 무엇보다 그날 경기, 내 인생 첫 패배도 아니고. 여기 대회 나오기 직전 대회에도 비슷하게 결승전에서 발리고 왔었으니까.”
“뭐······, 뭐라고!?”
“그리고 솔직히 너희 팀 오라는 거 좀 양심 없는 말 아니냐?”
“아니!! 우리 팀이 뭐가 어때서!! 미국에서 가장 야구가 인기 있는 도시인 뉴욕을 연고로 하는 팀인데!!”
“그래, 뉴욕 연고 팀은 연고 팀이지. 근데 양키스가 아니라 메츠잖냐.”
“······.”
“솔직히 네가 원하는 거 하고 싶으면 양키스여야지. 안 그래?”
알렉산더 맥도웰.
마초 그 자체처럼 생긴 놈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그······, 그건. 양키스가 작년에 꼴찌를 못 해서······.”
“그리고 메츠는 보고서 받아보니까 국제 유망주 슬롯 머니 패널티던데? 그러면 걔들 나한테 10만 달러밖에 제시 못 하잖아. 너는 천만 달러 받고 간 주제에 나한텐 십만 달러에 메츠로 오라고? 지금 그게 대체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냐?”
“십만 달러? 메츠가 돈이 왜 그것밖에 없어? 아무리 그래도 뉴욕 팀인데.”
“메츠가 돈이 그것밖에 없는 게 아니라 룰이 그런 거다. 에휴, 됐다. 내가 애 데리고 무슨 말을 하겠냐. 아무튼 나 뉴욕에서 훈련하느라 바쁘니까 그만 찾아오고 너도 네 훈련이나 좀 해라. 73홈런 갱신하려면 빡세게 훈련해야지. 안 그래?”
말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의 표정을 보아하니 메츠가 나에게 제시할 수 있는 금액이 십만 달러라는 사실 자체도 몰랐던 얼굴이 분명했다. 하긴, 자기 드래프트 슬롯 머니라도 제대로 이해하면 다행인 판국에 국제 유망주 보너스 풀 같은 걸 알 리가 만무하지.
아마 저 녀석 저거, 자기가 천만 달러 넘게 부르는 바람에 하위 순번들이 택도 없는 돈에 계약한 것도 모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기에 있는 건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건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네.”
***
2025시즌.
마린스도 피닉스도 모두 잘 싸웠다.
그들의 차이는 단지 마지막에 만난 팀이 누구였는가뿐이었다.
마린스가 만난 상대는 그들의 영혼의 단짝인 서울 엘리츠였다. 금고 안에 보관된 95년 당시 8천 만원짜리 롤렉스 데이토나 시계와 일본산 아오모리 소주가 이제 30년을 넘어가는 시점에서 엘리츠는 다시 강팀이 되었다.
오죽하면 특집 기사로 ‘DTD는 이제 없다. 돌아온 신바람 야구. 엘리츠의 역습!!’같은 기사가 뜰 지경이었으니까.
본래라면 그런 기사가 뜨면 귀신처럼 DTD를 시전하며 스윕패를 내줘야 하는 것이 엘리츠였지만, 놀랍게도 엘리츠는 그런 징크스조차 부숴버리며 마린스를 상대로 스윕승을 거뒀다. 그것은 엘꼴라시코를 기대하며 경기장을 찾았던 피닉스의 팬들을 당황하게 만들 만큼 깔끔한 3연승이었다.
반면 피닉스는 마린스와 달리 라이벌이 없었다. 그것은 10개 구단 팬 조사에서 아무도 그들을 라이벌로 뽑아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피닉스의 라이벌은 언제나 자기 자신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다.
어쨌거나 피닉스는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과 라이벌이라 생각하는, 하지만 상대방은 그들을 라이벌로 보지 않는 대구 그리핀즈와 시즌 마지막 시리즈를 치렀다.
무난한 1차전 패배.
그리고 이어지는 2차전. 이변이 일어났다.
“아, 왜······.”
“지금까지 야구 안하다가 왜 갑자기 야구 하는 건데!!”
“아니, 쟨 왜 공을 잘 던져?”
그것은 피닉스 팬들에게는 너무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하지만 진짜 이상한 것은 투수가 아니었다.
지난 1차전에서 주전 유격수가 발목을 접질린 관계로 잠시 땜빵을 위해 들어온 스물두 살 군필 유격수 오민엽이 바로 그 이상함의 주인공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리고 쟨 왜 내야 땅볼을 잡는 건데?”
“뭐야!! 유격수 송구가 일루수 미트에 그냥 그대로 틀어박혔어.”
“미친!!! 피닉스에 저게 되는 유격수가 있었다고?”
유격수가 땅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그 모습은, 그것도 몇 번이나 연달아 그렇게 처리하는 모습은 피닉스 팬들에게는 쉽게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그 덕분일까? 누가 봐도 패배를 위해 올린 것 같았던, 서산의 2군에서 막 올라온 신인 투수 최으뜸이 7이닝 무실점 8삼진으로 경기를 승리시켰다.
대전 피닉스 144경기 42승 99패 3무 0.298
부산 마린스 144경기 42승 100패 2무 0.296
[경 마린스 축]프로야구 역사상 최초 세 자릿수 패배 시즌 최하위!!
1년간의 장대했던 병림픽의 끝에서 마침내 마린스가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안경에이스: 그래, 됐다!! 이걸로 다 됐어!! 이제 우리 수원이 안경만 하나 사주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