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95)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95화(95/404)
95화. 20억(9)
“홈런볼이요?”
경기를 끝내고 약속했던 것처럼 동호대로 돌아가려는 찰나. 구단 직원 하나가 나를 붙잡았다.
“네, 그래도 기념할만한 프로 무대 1호 홈런볼 아닙니까.”
“에이, 됐습니다. 프로 경기도 아니고, 그냥 교육 리그 경기인데요.”
보통 프로 경기에서 기념할만한 홈런볼 같은 건 구단 직원이 좀 챙겨주는 편이기는 하다. 물론 관중에게서 강제로 홈런볼을 뺏는 건 당연히 아니고, 나름의 딜을 한다. 선수의 사인이 된 유니폼이나 글러브. 혹은 배트. 뭐, 진짜 가치 있는 경우라면 시즌권 같은 걸로 딜을 거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가끔 비인기 선수가 친 첫 홈런볼 같은 것들은 다른 인기 선수의 사인 볼과 같이 찍는 사진 같은 걸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나도 덕분에 후배들, 가끔은 선배 홈런볼까지도 대신 받아다 주곤 했었다.
“아, 잠깐만요. 오늘 홈런볼 받은 사람들. 다 가족들이었죠?”
“네.”
“그러면 홈런볼 회수는 하지 마시고, 그냥 좀 불러주실 수 있나요?”
***
올해 44살의 강준호씨는 또래들 가운데서는 매우 젊은 나이인 서른한 살에 결혼을 했다. 2년 정도의 신혼 생활을 즐기고 곧바로 아이를 가졌으니, 아이를 낳은 나이 역시 또래들보다는 상당히 빨랐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의 나이는 벌써 열 살. 슬슬 야구의 재미를 알아갈 시기였다.
강준호씨가 아직 어렸던 시절.
그의 아버지는 항상 이야기했었다. 마린스를 우승시켰던 불꽃 같았던 사나이가 있었음을. 아쉽게도 강준호씨가 야구를 처음 접할 무렵, 그 사나이는 부산 마린스가 아닌 대구 그리핀즈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그나마도 아버지가 말했던 활활 타오르는 불꽃 같은 모습이 아닌, 모든 것을 연소하고 꺼져가는 잔불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준호씨는 마린스의 팬이 될 수 있었다. 아니, 될 수밖에 없었다. 1992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해는 마린스에 또 한 명의 위대한 투수가 탄생한 해였다.
그 해, 강준호씨는 사직구장에 무려 마흔두 번을 갔다. 아버지가 말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강준호씨 역시 그에게서 불꽃을 보았다. 아무리 그래봐야 동원이 햄한테는 안된다고 이야기하며 꿋꿋하게 11번 유니폼을 고집하던 그의 아버지도 어느새인가 68번이 마킹된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나가기 시작했다.
강준호 씨는 그 불꽃 같았던 투수가 싸늘하게 식어 재만 남는 그 순간까지 그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가 은퇴한 이후에도 강준호 씨는 마린스를 도저히 끊을 수 없었다. 마치 그의 아버지가 죽는 순간까지 마린스 욕을 하면서 사직 구장에 나갔던 것처럼 말이다.
그의 아버지에서 시작된 마린스의 사랑은 강준호 씨를 거쳐 그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3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빠!! 아빠!! 우리 진짜 사인받는 거야?”
강준호씨의 눈에 아들 녀석이 방방 뛰어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3년 전 처음으로 야구장을 데리고 간 이후로 가장 즐거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긴, 비록 2군, 그것도 교육 리그라고는 하지만 홈런볼을 주웠으니 당연히 신이 날 수밖에 없다.
준호씨가 생각했다. 젊었을 적에는 ‘아주라’를 참 극혐했었는데, 이렇게 아이를 낳고 보니 또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한 동물이구나.
저쪽에 머리를 예쁘게 땋은 여자아이 하나도 방방 뛰며 좋아하고 있었다.
아까 보니까 저쪽 남자도 홈런볼 잡으려고 정말 최선을 다하던데, 이 엄혹한 시대. 어딜 가건 아빠들은 고생인 법이다. 그 남자가 먼저 강준호 씨에게 슬쩍 목례를 했다. 강준호 씨 역시 마찬가지로 그 남자에게 슬쩍 고개를 숙였다.
문이 열리고 왼쪽 어깨에 가방을 멘 커다란 사람이 들어왔다.
아니, 정말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멀리서 경기장을 볼 때는 그냥 키가 좀 크고 키에 비해서 마른 사람이구나. 하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최수원의 느낌은 또 달랐다.
아직 해가 지나지 않은 11월이다.
그 말인즉 저 선수는 아직 고3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저걸 어떻게 고등학생의 체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잠깐 사이 인터넷에 검색해봤던 프로필상으로는 190cm에 89kg이였던가? 분명 돼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긴 팔 셔츠의 팔뚝이 꽉 찬 것이 과연 프로 야구 선수는 프로 야구 선수구나 하는 느낌이다.
“안녕하세요. 마린스의 신인. 최수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조금 전까지 방방 뛰던 아이가 갑작스러운 거인의 등장에 놀랐는지 그의 등 뒤로 숨었다. 그리고 그것은 저쪽의 여자아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빈아, 부끄러워?”
“아니······.”
“이름이 다빈이니? 몇 살?”
“열 살이요······.”
최수원이 성큼성큼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맞췄다.
“야구 좋아해?”
“······네.”
“누구를 제일 좋아해?”
“백하민 선수요······.”
“하민이 형?”
사람들은 종종 잘생기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을 속물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이를 키워보면 알 수 있다. 그건 그냥 사람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년 마린스에서 데뷔했던 백하민. 야구 실력보다 그 외모로 더 크게 주목을 받았던 그의 등번호는 84번. 지금 강다빈이 입고 있는 저지의 등번호 역시 84번이었다.
“아쉽네. 하민이형은 어제 등판해서 오늘은 벌써 퇴근을 해버렸는데. 미리 알았으면 여기 들렀다 가라고 했을텐데 말이야.”
“괜찮아요······.”
“괜찮아?”
다빈이가 강준호 씨의 등뒤에 쏙 숨었다.
“원래 이렇게 부끄럼 많은 애가 아닌데. 아까 최수원 선수 경기하는 거 보고 완전히 팬이 된 모양입니다. 어찌나 쫑알쫑알거리던지. 다빈아, 아까 최수원 선수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 있었다며.”
“그게 그러니까······, 멋있었어요.”
마흔네 살의 강준호 씨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아직 어렸던 92년.
금테 안경을 썼던 그 투수를 처음 본 날, 강준호 씨 역시 오늘의 다빈이처럼 흥분하여 아버지를 귀찮게 했었다는 것을. 그런 주제에 정작 아버지가 큰마음 먹고 비싼 돈 들여 좋은 좌석, 덕아웃 가까운 곳에 좌석을 끊어줬을 때는 그 투수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고맙다. 아, 아버님. 아까 제 홈런볼은?”
“여기요······.”
“아, 다빈이가 가지고 있었구나. 괜찮으면 형이 여기 싸인해줄까?”
“네!!!”
“그래.”
“다빈아, 최수원 선수한테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맙습니다.”
야구공에 싸인을 끝낸 최수원이 옆에 있던 여자 아이와도 잠깐 눈을 마주쳤다.
“아버님. 아이 이름이 뭔가요?”
“배.수.민. 입니다!! 여덟 살이에요!!”
“어이구, 수민이 씩씩하네. 수민이도 잠깐 공 줘볼래? 오빠가 싸인해줄게.”
“네!! 감사합니다!!”
홈런볼 두 개에 각각 싸인을 끝낸 최수원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흐음, 그래도 이것도 기념인데. 뭔가 좀 더 주고 싶은데. 아직 유니폼도 제대로 안 나왔고······. 이를 어쩐다······. 아, 그래!!”
뭔가를 결정한 것일까? 최수원이 다시 무릎을 꿇고 두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우리 다빈이. 다빈이는 형이 공 던지는 게 더 좋았어? 아니면 홈런 치는 게 더 좋았어?”
“······공 던지는 거요······.”
“수민이는?”
“홈런이요!! 진짜 진짜 막 쾅!!!”
“잘됐네. 마침 딱 좋은 선물이 있거든.”
최수원이 잠시 내려뒀던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낡은 글러브. 그리고 야구 배트였다.
설마?
아이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최수원 선수. 이렇게까지······.”
“어휴, 부담 갖지 마세요. 어차피 글러브는 1년에 두세 개씩 바꾸는 건데. 안 그래도 슬슬 시합용 글러브 바꿀 때 됐어요. 그리고 배트도 이거 학교 다닐 때부터 쓰던 거라 어차피 바꿀 때 된 겁니다.”
옆에서 핸드폰으로 그 장면을 찍던 구단 직원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실 홈런볼에 사인이나 해주고 사진이나 같이 찍어주면 그걸로 충분했다. 하지만 이건 그 이상이다.
“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오늘 마린스가 경기 져서 미안하고. 그래도 시즌 시작하면 경기 보러 와주렴. 그땐 꼭 이길테니까.”“네!! 매일매일 올게요!!”
“······저도요.”
“매일매일은 오지 말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그냥 가끔 보러 와. 이왕이면 형이 선발로 등판하는 날 위주로.”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인이었다. 하지만 선발로 등판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았다. 마린스의 마운드가 개판이기 때문일까? 강준호 씨는 그게 전부는 아니라 생각했다.
“네!! 오빠 등판하는 날에는 매일매일 올게요!!”
“저, 저두요!!”
사인 글러브와 배트를 품에 꼭 쥐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두 아이의 머리를 최수원이 한차례씩 쓰다듬었다.
34년.
그러니까 이런 서비스 따위 없이, 그냥 우승 한 번 본 걸로 34년이었다.
강준호 씨는 생각했다. 적어도 이 선수가 1군에서 뛰는 이상에는 매주 주말에는 사직으로 나가게 생겼구나. 다만 그런 와중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도저히 이 선수가 2군에서 뛰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아무리 상동이 자차로는 올 만하다고 해도 그래도 이왕 가는 거면 사직 쪽이 훨씬 나았으니까.
활짝 웃는 두 아이 사이.
두 아버지가 살짝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
[끝없는 마린스의 굴욕!! 2년 연속 전체 1픽. 하지만 교육 리그는 2승 10패.] [1층 아래는 지하가? 부산 마린스는 과연 언제쯤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꼴린스해체: 지하 아래는 심연이 있지. 꼴린스는 그냥 해체가 답임.
─NO마린스: 마린스 보이콧 27일 차. 믿지 않습니다. 보지 않습니다.
─8888577: 근데 27일 차면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다 본 거 아니야?
─마린스해체왜안함?: Q. 선발이 5.1이닝 무실점 2홈런을 쳤는데 승리를 못 하는 팀이 있다고 가정을 하자. 이때 잘못한 사람은? 단, 팀이 마린스라고 가정한다. A. 9이닝 퍼펙트 못한 투수.
전국 시청률 0.24%
이번 시즌 KBO의 평균 시청률이 1.1%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1/5도 채 되지 않는 미미한 수치였다. 하지만 오늘 경기가 교육 리그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리고 KBO 최고의 인기 구단인 광주 호크스의 교육리그 경기 시청률이 고작 0.21%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0.24%는 분명 크게 선방한 수치였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확실히 최수원 효과가 있는데요?”
“그래? 차이가 많이 나?”
“네, 여기 보시면 최수원 두 번째 홈런 칠 때 최고 시청률 0.39까지 올라갔는데 강판 이후로 계단식으로 떨어지고, 이후로도 쭉쭉 떨어져서 7회에 역전 허용한 이후로는 0.2를 한 번도 못 넘겼어요. 역전패당한 경기라 그런가? 아니면 확실히 최수원이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인지도가 있는 선수라서 그럴지도요.”
“글쎄······.”
최수원은 아직 프로에 데뷔도 안 한 선수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의 인지도가 있었다. 물론 최근 1년 사이 좀 잠잠해지기는 했지만, 작년의 세계대회, 그리고 교육 방송에서 진행했던 다큐멘터리의 영향 덕분이었다.
게다가 MLB에서도 주목하는 선수라는 점, 그리고 20억이라는 화제성. 사람들이 일단 한 번 어떤 선수인가 찾아보기에는 충분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은 결국 잠깐 어떤 놈인가를 보게 만드는 것에 그칠 뿐이다. 최수원에게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존재했다.
그가 공을 던지고, 받고, 치는 모든 모습에는 사람의 눈을 잡아끄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것은 큰 키와 긴 팔다리에서 나오는 시원함일 수도 있었고, 강속구와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에서 나오는 통쾌함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그 모든 것들을 버무린 그러니까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박 PD는 그 ‘무언가’를 지칭하는 단어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 박 PD님 지금 마린스 구단쪽에서 관련 자료 보냈는데. 이것 좀 보실래요?”
어린아이 둘.
그리고 무릎을 꿇고 그들과 눈을 맞추는 선수.
“최수원······. 확실히 스타성이 있어. 야, 우리 베이스볼 투나잇. 한 꼭지만 따자. 가능하지?”
“어휴, 누구 말씀인데요. 불가능해도 가능하게 해야죠.”
야구가 끝난 계절.
업계는 이미 내년 시즌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