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tcher just hits home runs well RAW novel - Chapter (97)
투수가 그냥 홈런을 잘 침-97화(97/404)
97화. 봄(2)
명단을 보는 순간 조유진은 직감했다.
‘아, 이거 분위기 완전 곱창 나겠는데?’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이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야, 쪼유, 넌 좋겠다?”
“선배님, 솔직히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어?”
갑작스러운 비분강개.
조유진에게 말을 걸었던 그가 당황했다.
“아니, 아무리 1라운드들은 데리고 가는 전통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개인행동 하는 놈을 애리조나에 데리고 가는 건 좀 아니죠. 최소한 1차 스캠 기간 정도는 와서 단체 행동도 좀 배우고 어? 기량이 진짜 어떤지 코치님들이랑 감독님이 점검도 하시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 그렇지?”
“얜 진짜 아니, 학교 다닐 때도 다 기숙사 사는데 혼자 통학하더니. 프로에 와서까지 따로 국밥으로 놀고 있으니······. 아 짜증 확 나네. 선배님. 돼지국밥이나 한 그릇 시원하게 하러 가시죠. 제가 진짜 이래서 돼지국밥을 끊을 수가 없다니까요.”
“그럴까?”
***
“그래서 내 욕을 하는 걸로 상황을 잘 넘겼다. 뭐 그런거야?”
“야, 원래 상대방이 뭐라고 하려고 할 때는, 내가 먼저 나서는 게 진짜 직빵이야. 솔직히 거기서 내가 화 안냈잖아? 분위기 더 안 좋아졌을걸? 그나마 내가 선수 쳤는데도 진짜 지금 분위기 장난 아니라니까. 그래서 내가 뭐라 그랬냐. 잠깐이라도 좀 기숙사 와서 인사도 좀 하고 해야 한다고 그랬잖아.”
스마트폰 너머, 쪼유가 최근 2군의 분위기를 쫑알쫑알 읊어댔다.
“야, 됐어. 어차피 내가 가고 뭐하고 해봤자 별로 달라질 것도 없었어. 그보다 너야말로 괜찮냐?”
“나? 왜? 너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뭐 한 소리 들을까봐?”
“아니, 그냥 너도 애리조나에는 못 따라왔으니까. 그래도 전체 2번에 포수 정도면 데리고 갈 법도 한데 말이야.”
“야야, 지금 내 위로 포수 선배만 넷이다. 솔직히 나까지 따라가길 바라는 건 에바지.”
“글쎄다······.”
그래, 물론 쪼유보다 나이 많은 포수가 넷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 벌써 훈련 나갈 시간이네. 야, 그러면 이만 끊는다. 조심히 잘 가고. 나중에 연락하자.”
본래 스프링 캠프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오키나와였다. 일단 1차는 가오슝이나 호주, 미국에서 치르더라도 2차는 오키나와에서 치르는 것이 대세였다. 하지만 지난 한일간의 무역분쟁 이후 오키나와가 기피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터진 세계적인 역병으로 인하여 4년 정도 국내 스프링 캠프를 진행 하는 사이에 그 모든 프로세스가 완전 리셋이 됐다.
그 결과 마린스는 1, 2차 캠프를 모두 미국에서 차리게 됐는데 내가 볼 때 이건 매우 좋은 일이었다.
어느 전문가가 말하기를 80년대 후반이나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과 미국의 수준 차이는 지금처럼 심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당시는 인구 3억의 미국과 인구 1억 2천만 남짓의 일본이 국가 총생산이 2배도 채 차이가 나지 않던 시절이기도 했었고 스포츠에 지금처럼 과학적인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던 시절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로는 또 확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NPB가 AAA를 넘어 AAAA급 리그라고 평가받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싶을 정도다. 내가 느끼기에 NPB는 이제 AAAA급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조금 무색하다.
메이저가 10이고 AAA가 1이라면 기껏해야 2.5에서 3정도? MLB보다는 AAA에 매우 가깝다. AAA팀이 NPB에서 뛴다면 3할 승률은 충분히 나올 만하다. 참고로 AA수준의 팀은 AAA팀과 붙으면 어지간하면 3할 나오기 힘들다. 마치 마린스나 피닉스가 KBO에서 뛰면 3할도 나오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NPB와 AAA정도면 솔직히 거의 같은 수준의 리그라고 봐야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NPB는 아직 KBO입장에서는 따라잡기 버거운, 나름대로 미국의 선진적인 시스템을 먼저 받아들여 구속 혁명도 먼저 일어난 리그였지만, 그래도 이왕 배울 거면 한 다리 걸쳐 배우는 것보다는 본토에서 직접 보는 게 더 낫다.
인천공항의 체크인은 제법 어려웠다.
국가대표로 출국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람들과 기자들이 우리를 반겼다. 프런트 직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였고, 몇몇 선수들은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해야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인터뷰를 끝내고 출국장을 지나 마침내 게이트 근처 좌석에 앉았다. 주변에 우리를 알아보는 이들과 사진이며 싸인을 해주는 시간을 잠시 보낸 직후, 거대한 덩치의 선수가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오, 네가 그 소문의 신입이구나.”
이규만.
1986년생으로 올해 42세. 마린스의 최고참으로 4년 전인 2023년 겨울에 세 번째 FA로 총액 80억짜리 계약을 맺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 중 하나였다.
마린스에서만 무려 22년을 뛴 그야말로 살아있는 마린스의 역사 그 자체.
“이야, 프런트에서 하민이랑 같이 비주얼 멤버로 밀어줄 만하네. 가끔 스트레스 해소 하고 싶으면 형한테 연락 해. 형이 술 한 잔 사줄 테니까.”
그리고 그 옆에 살짝 경박해 보이는 인상의 선수가 이정훈.
98년생으로 올해 30세. 재작년 FA로 4년 42억짜리 계약을 맺은 이루수로 마찬가지로 마린스에서만 10년을 뛰었다.
“야, 넌 왜 순진한 애를 악한 길로 끌어들이려고 그러냐. 얘 말은 그냥 듣지 마. 그보다 너 몸이 좀 애볐네. 맛집은 형이 잘 아니까 형이랑 맛집이나 다니자. 넌 야식 좀 챙겨 먹어야겠다.”
그리고 마지막.
서경준.
94년생으로 34세. 우익수로 이번 겨울 두 번째 FA로 3년 27억에 도장을 찍었다. 마찬가지로 마린스에서만 14년을 뛴 선수다.
“경준이 형, 보기 딱 좋구만 야위긴 뭘 야위었다는 거예요.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야구 선수라고 형처럼 무턱대고 살찌우면 안 된다니까요? 어? 자기 관리의 시대 아닙니까. 호타준족.”
“호타준족은 3할 20도루쯤 하는 선수가 호타준족이지. 넌 인마, 2할 4푼짜리가 호타는 무슨 호타냐.”
“아이참, 언제적 타율입니까. 전 OPS 히터 아닙니까. OPS 히터. 출루율.”
“OPS 히터 같은 소리 하네. 너 인마 작년에 출루율 3할 2푼 해 놓고 그런 말이 나오냐?”
“아니 그거야 강라온 저 새끼 때문에 제가 하반기에 좀 퍼져서 그런거고. 그냥 딱 저 할 거만 하면 3할 7푼은 거뜬하죠.”
“그래, 잘 났다. 아무튼 수원이? 맞지? 너 미국 가면 밥은 형이랑 같이 먹자. 야구도 결국 밥심이야. 든든하게 먹어야지.”
“네, 감사합니다.”
저 세 선수를 중심으로 해서 열 명가량. 하지만 뭉쳐있는 선수 가운데 이들이 가장 큰 무리인 것은 아니었다.
저쪽 열댓 명쯤 되는 무리 가운데서 익숙한 얼굴 하나가 나에게 다가왔다. 작년 제법 고생했음에도 여전히 혼자 순정만화처럼 생겨 먹은 하민이 형이었다.
“규만 선배님, 경준 선배님, 정훈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저기 재영 선배님이 수원이 찾아서 그런데 좀 데려가도 괜찮겠습니까?”
“어, 재영이 형이?”
하민 형의 이야기에 서경준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얘 투수도 했었지? 데려가, 데려가. 투수끼리도 안면 익히고 해야지.”
“넵, 감사합니다.”
이번에 출국하는 스프링 캠프의 규모는 작지 않았다.
총원 47명. 그 가운데 코칭 스태프가 13명이었고 투수만 16명에 타자 18명이다. 심지어 이것도 스프링 캠프 인원 전부는 아니었다. 아직 FA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선수 둘이 남아있었고 외국인 선수 세 명도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예정이 되어 있었다.
곽재영.
올해 서른다섯으로 한 때는 안경 에이스의 계보를 잇는 게 아닌가 기대받았던 투수다. 물론 여느 투수들이 그렇듯 신인 시절 마구잡이로 구르다가 팔꿈치와 어깨가 모두 망가졌고, 한때 150까지 나오던 구속은 현재 140도 간당간당한 수준까지 떨어졌다. 서경준과 마찬가지로 이번 겨울에 3+1년(팀 옵션)으로 8억+2억에 두 번째 FA 도장을 찍었는데 업계에서는 마린스가 곽재영의 공로를 생각해서 시장가 이상의 후한 계약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네가 수원이구나. 반갑다.”
180이 조금 못 되는 키.
단단한 몸. 선한 인상. 실제로도 상당히 유순한 성격이라고 들었다. 바꿔 말하자면 투수로는 썩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는 뜻이다. 마치 진우 선배처럼.
“귀한 몸을 이제 보네? 뭐 동호대에서 훈련했다고?”
저 심술보가 덕지덕지 붙은 투수는 작년 6승 11패에 4.11로 마린스 토종 선발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던 23세의 선발인 한명훈.
사실 별로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 어차피 선발 자리는 다섯 개. 두 자리는 외국인이 뛴다고 치고, 한 자리는 나. 그리고 한 자리는 하민이형. 마지막 한 자리는 이번에 돌아올 10억 5천짜리 투수 최민혁의 자리일 테니까.
“뉴스로 가끔 봐서 그런가 뭔가 내적 친밀감이 생기네. 최민혁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좀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언론에서 매일 10억 5천만이니 어쩌니 떠들었는데, 올해부터는 네 덕분에 그런 이야기가 쑥 들어갈 것 같네.”
197cm에 110kg.
최민혁은 오늘 본 선수들 가운데 가장 큰 키의 철탑 같은 사내였다.
“솔직히 그거 엄청나게 부담되는 말이거든. 미리 충고하나 해주겠는데, 좀 부진한 날은 그냥 인터넷을 끊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날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고개는 끄덕여줬다.
“게이트 열리는 시간 다 됐네. 자세한 이야기는 미국 가서 하고, 일단은 비행기 탈 준비하자.”
“네.”
목적지는 애리조나의 투손.
당연히 직항기는 없었고, LA를 한차례 경유하는 비행기였다. 비행시간만 약 15시간 30분. 중간에 경유시간까지 생각하면 이동시간만 약 18시간이 넘어간다. 재작년에 뉴욕에 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매우 긴 비행이다.
“어? 최수원. 너 어디 가냐?”
“아, 줄 서려고요.”
“이 녀석 이거 완전 촌놈이네. 비행기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거랑은 달라. 좌석 등급에 따라서 줄도 따로 서는 거야. 거긴 비즈니스고 우리 줄은 이쪽이야.”
“네. 저 비즈니스석이에요.”
“어?”
“어?? 비즈니스라고?”
그때 실감했었다.
와, 14시간이 넘는 비행은 이코노미석으로 가는 건 정말 무리다. 애초에 이코노미석은 190cm이 넘어가는 장신이 장시간 타고 가라고 만들어진 좌석이 아니다. 그렇게 비행하고 나면 무릎이 다 시큰거린다. 몸이 재산인 선수가 훈련 좀 하러 가겠다고 그 가장 귀한 재산을 축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야, 너 설마 구단에서 너 비즈니스를 내준 거야?”
“아뇨, 그냥 물어보니까 사비를 쓰거나, 제 마일리지 써서 업그레이드하는 건 상관없다고 해서요.”
선수들의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됐다. 물론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는 표정들이 썩 좋지 않았다.
문득 쪼유의 조언이 떠올랐다. 상황이 안 좋아 보이면 선수를 쳐라. 내가 생각할 때 바로 지금이 그 타이밍이었다.
“아, 혹시 뭐 신인은 자동차 몇 cc 이상 끌면 안 되고, 비즈니스 타면 안 되고 뭐 그런 암묵적인 규칙 같은 거라도 있는 건가요?”
“어, 어? 아니, 그게······, 물론 그런 건 아니지······.”
지금 이 게이트에 모인 사람은 우리 선수단만이 아니었다.
미국행 항공기의 좌석 수는 300석이 넘어간다. 우리 선수단의 숫자라고 해봐야 50명 남짓. 250쌍의 눈이 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다.
어색한 분위기.
가장 먼저 이정훈이 나에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하며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야, 20억짜리 유망주라고 그러더니. 확실히 계약금 그만큼 받았으면 비즈니스 타야지. 그거 계약금 5년으로 나눠서 비용처리 넣는다고 해도 어차피 소득세 왕창 때려 맞을 거 아니야. 이런 거라도 비용처리 해야지. 안 그래?”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