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496
◈ 497화. 존귀한 이들 (2)
AAU 대한민국 지부.
“어라.”
지부장 박민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니, 이 사람이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닌데.
뜬금없이 뭐야.
가온 빌딩이 자기네들 길드 하우스가 됐다니?
“……월급쟁이 놀리는 건가.”
뭐, 얼마 전에 소식을 듣긴 했었다.
가온이 50층짜리 빌딩을 통째로 매수했다고 했었나.
거대 연합으로 몸집이 3배 가까이 불어났으니.
이해할 수 있는 세력 확장이었다.
“거, 부럽긴 하네. 여기서 봐도 아주 으리으리하더만.”
박민재가 퉁명스럽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순간.
이번엔 전화벨이 울렸다.
몇 마디가 오가기 무섭게 돌변하는 박민재의 안색.
“그, 그게 사실입니까? 시스템 메시지까지요?!”
문자의 길드 하우스가 평범한 길드 하우스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지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 가온 빌딩에 아르카나의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단 뜻이었다!
심지어.
“공성전이 시작됐다니. 잠시만요, 전부 받아적겠습니다!”
박민재가 볼펜으로 메모를 남기던 순간이었다.
우당탕!
이번엔 지부장실 문이 열렸다.
“다들 뭐야, 갑자기?”
“지, 지부장님! 긴급 업데이트 떴습니다!”
“긴급 업데이트? 철민 씨, 잠시만요!”
그 업데이트 내역엔 박민재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
기이의 땅, 서울이 여러분 곁으로 찾아갑니다.
이제부터 서울에 아르카나의 색이 덧씌워집니다.
이제부터 모든 길드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
과연 그렇게 된 거군, 레이먼 션.
고작 세 줄을 읽어나갔을 뿐이었거늘.
박민재의 목소리는 가라앉고, 평정심을 되찾았다.
“철민 씨,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전, 긴급 업데이트가 갱신되었습니다. 서울에 아르카나의 색이 덧씌워지고 그 영향으로 모든 길드 시스템이 활성화되었다고 하는군요.”
-모든 길드 시스템이라……. 납득이 되네요.
“그렇죠. 서울엔 많은 길드 지부가 존재하니까요.”
분석관의 자질로만 따지자면.
전 세계를 통틀어 한 손가락으로 꼽히는 남철민.
그는 척 하면 척, 이야기를 알아들었다.
-광활한 아르카나 대륙의 규칙이 적용되기에 서울은 굉장히 비좁으니까요. 한 지역에 이렇게 많은 길드 하우스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겠죠.
박민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난감한 일입니다.”
성전 연합군 아래, 나름대로 평화를 유지하던 길드들. 그러나 이번 긴급 업데이트 내역은 그런 길드들의 와해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듯했다.
심지어.
“이번 건에는 플레이어만 연관된 게 아닌 듯합니다.”
지부장 핫라인.
평상시였다면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울려댔을 가상 미팅룸이 조용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격변한 서울을 두고 세계 각 지부의 AAU도, 국가들도 복잡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뜻이다.
“……레이먼 션.”
녀석의 짓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정기 업데이트도 아니요, 그저 순리에 따라 아르카나 대륙의 영향력이 현실에 조금 더 깊게 스며든 것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업데이트 내역에서도 즐거운 기색이 역력하구나, 너는.’
박민재가 아니꼬운 시선으로 업데이트 내역을 훑던 순간이었다.
잠깐만…….
문득, 시선을 끄는 한 줄의 패치 내역이 있었다.
──────
이제부터 모든 영지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
……모든 영지 시스템의 활성화라고?
“이런.”
그 파장은 익히 예상할 수 있었다. 현실에도 아르카나의 영지 시스템이 유효한 땅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로스트, 유스라 왕국, 성지 뮤온 등등…….
박민재가 흠칫한다.
“잠깐, 그러면 우리 AAU도……?”
박민재의 추측은 정확했다.
외부에 있던 플레이어들을 통해 전해지는 정보들.
박민재는 부하직원이 내민 스마트폰을 살폈다.
-실화냐?? 나 헛것 보는 거 아니지?
-그냥 편의점만 들어가도 진입 메시지가 뜨는디?
-뭐냐ㅋㅋㅋ 그럼 이제부터 편의점에서 아이템도 파는 거임?
-에이 그건 아니겠지;;;
-ㅁㅊ 그러면 서울에 영주도 생기는 거임?
“……!”
영주.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았다.
아니, 되지 않는 게 이상한 수준이었다.
갑작스럽게 전신 모공에서 샘솟는 땀방울.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르카나에선 영주의 말 한마디로 모든 게 바뀐다.’
아르카나가 게임에 불과했던 시절.
플레이어들이 영지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
영주가 되면 막강한 권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금부터, 처벌, 심지어는 병력 소집까지. 영주가 내뱉는 말이 해당 영지에서는 곧 법이 되었으니까.
‘만약, 플레이어가 서울의 영주가 된다면.’
해당 플레이어의 말 한마디에 천만 서울 시민들이 휘둘리게 된다는 뜻. 거기엔 우리, AAU 대한민국 지부도 포함이겠지. 박민재의 음성을 잠자코 듣고 있던 남철민이 대답했다.
-상상이 되셨겠죠, 박 지부장님?
“……설마, 철민 씨도 짐작하고 계셨던 겁니까?”
-갑작스럽지만, 각오는 하고 있었습니다.
박민재는 흠칫했다.
‘이거, 안도해야 하는 건가? 아니, 아직 모른다.’
남철민.
그가 기회주의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다. 박민재는 지부장으로서 경계심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말에 다시금 경악을 토해내고 말았지만.
-서울이 기이의 땅이 된 순간부터 고민했습니다. 함께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꼴깍.
“제가 감히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박민재가 마른침을 삼킨 순간, 대답이 이어진다.
“네, 네?! 서울의 주인을 자처하셨……!!”
당황도 잠깐.
박민재의 말을 엿듣고는.
자신들끼리 속삭이는 AAU의 직원들.
“서, 서울의 주인이라고?”
“누가? 남철민이니까 동생인 남태민인가?”
“아니, 우리 목숨을 맡기긴 좀 불안한데……!”
박민재는 일단, 진정하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렇군.’
등골까지 흥건하던 땀이 시원하게 식는 기분.
남철민에게도 굽지 않았던 팔이 제대로 굽은 것이었다.
이 순간 박민재의 안도는.
현시점에서 떠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 마주한 덕분이었으니까.
마저 숨을 고른 박민재가 입을 열었다.
“서울의 주인, 그 계획에 저희도 동참하겠습니다.”
*
엄격한 절차에 따라서.
나는 유그위드를 향한 애도를 마친 뒤에서야 사태의 원인을 천천히 되짚어볼 수 있었다. 뭐, 사정에 따라서 시간약속 정도야 어길 수도 있겠지.
‘근데, 다 같이 불참하는 건 좀 이상한데.’
분명, 무슨 사건이 터져도 터졌군.
그렇게 생각하고는 기이의 탐구…….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확인해 본다. 그러자 보였다. 수십 건에 달하는 메시지,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긴급 업데이트 내역이.
나는 담담하게 소감을 뱉었다.
“아르카나 대륙의 색이라.”
과연, 거대 연합의 브레인.
남철민의 예상대로 상황이 흘러가는군. 다만 이렇게 본격적일 줄은 또 몰랐는데 말이야. 나는 추모 공간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향해 읊조렸다.
“유그위드, 그대의 심정을 이제야 오롯이 알았다.”
나날이 난해해지는 그랑펠식 화법.
오죽했으면 말이야.
마르셀로까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을까.
물론, 부연설명 따윈 없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랑펠식 화법으로 덧붙였다.
“마탑이 더는 고독하게 홀로 서 있지 않아도 되겠군.”
“……!”
그러자 마르셀로의 안광이 번뜩였다.
“서울. 이 모험가들의 도시에 변화가 생긴 거로군요, 경.”
……어떻게 이딴 말을 알아들었어, 마르셀로?
나는, 그랑펠은 멋대로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현실에 홀로 솟아있는 아르카나 대륙의 마탑이 쓸쓸해 보였기에. 그런 마탑을 위해 유그위드가 아르카나 대륙의 색을 현실에 덧씌운 것이라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대충 해석해서 끼워 맞춘 거였거늘…….
나는 뻔뻔하게 답했다.
“그렇다.”
어쨌든, 고맙다 마르셀로.
덕분에 곧장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겠어. 나는 마르셀로와 선임 마법사, 그리고 아르카나 대륙에서 건너온 성전 연합군을 향해 선언했다.
“이 땅, 서울엔 아르카나의 규율이 적용 중이다.”
“……!!!”
“즉.”
나는 한 줄로 핵심을 정리했다.
“서울의 주인 되는 자가 서울의 모든 걸 거머쥔다는 뜻이다.”
자, 슬슬 눈치를 살펴보자 호열아.
‘슬슬 내뱉어야 하니까.’
내가 서울의 주인이 되겠다는, 아주 그냥 듣기만 해도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선언을……! 나, 이호열. 이런 상황일수록 최대한 합리화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나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데.’
그랑펠 말고는 서울을 맡길 만한 인물이 없거든. 마르셀로나 하르콘처럼 믿음직스러운 아군이 있기는 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르카나 대륙에서의 이야기.
서울을 맡기는 건 말 그대로 다른 세상 이야기니까.
‘어제도 말하는데 눈치 보였는데.’
기껏해야 부모님, 작은 누나, 남씨 형제 앞에서 내뱉었던 어제와는 상황이 다르다. 아르카나 대륙에서 날고 긴다는 거물들이 모두 나의 입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구나.
그래서일까.
그렇지 않아도 단정한 옷매무새를.
다시 가다듬게 된다.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
“경, 용서하십시오.”
……엥?
‘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문득, 마르셀로가 고개를 숙인다.
그랑펠식 화법까지 해석할 정도니까.
이젠 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예상이 된다는 걸까.
그래서 일찌감치 거절한 건가.
아무리 그래도 서울의 주인까지는 선을 넘은 거 아니느냐고……?
이호열의 도끼병이 도진 순간이었다.
“당신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저희의 나약함을.”
……뭐야, 그런 거였나?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
그렇다.
운만 띄웠는데, 다들 짐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마르셀로를 필두로 내게 고개를 숙여오는 이들. 나는 그들을 향해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현재의 나약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중요한 것은 나아갈 수 있는 올곧은 긍지.”
어째 말에 뼈가 있구나, 그랑펠? 각자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유그위드의 장례식에 불참한 이들을 향해 던지는 말이겠지.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뒤끝은 제발 적당히 부리자, 그랑펠.’
남씨 형제가 말했듯.
플레이어들의 협조는 중요하다니까?!
내가 단단히 삐친 게 분명한 그랑펠을.
은근하게 회유하던 순간이었다.
“죄송합니다!!”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입장하는 큼지막한 실루엣.
“사정이 있어서 늦고 말았습니다.”
남태민.
그리고 히사기, 레오니.
거대 연합이었다.
거대 연합의 세 길드 마스터가 검은 의상까지 맞춰 입고는 유그위드를 위해서 헌화(獻花)까지 끝마쳤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뒤늦게 스쳐가는 문자 메시지의 내용.
‘……경쟁 퀘스트가 시작됐다고 하지 않았었나?’
공성전이 시작되는 바람에 길드 하우스에 갇히게 됐다고, 남철민에게서 도착한 문자를 본 것 같았는데……? 그나저나, 우리 그랑펠 님께서도 조금은 철이 드신 모양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었겠군.”
따뜻하게 인사를 건넬 줄도 알고 말이야.
하긴 약속 시각이 뭐가 중요하겠냐?
유그위드를 애도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남태민이 멋쩍게 답했다.
“솔직하게 쉽지 않았습니다, 총대장님.”
이거, 남태민이 이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분명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군. 나는 그의 말을 잠자코 경청했다. 그리고 이내, 속으로 경악을 내질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드 하우스.
그러니까 그 으리으리한 가온 빌딩.
그걸 포기할 각오로 여길 찾아왔다고……?!
‘진짜 길드원까지 다 왔잖아.’
길드 하우스를 말 그대로 텅텅 비워두고 왔다는 소리.
그러다가 상대 길드가 빌딩에 쳐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왜, 가온 빌딩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보헤미안 길드만 하더라도.
간과할 수 없는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 땅값이 얼만데.’
유그위드 원로 마법사님.
이거, 아무래도.
세상에서 가장 비싼 조의금을 받게 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하여튼, 시간 약속에 조금만 덜 엄격했어도.’
내가 괜한 죄책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이걸로 끝이 아닌 모양이었다.
정확하게는 시작에 불과한 모양이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나타난다는 건가.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건.
보헤미안의 길드 마스터, 가이버.
그의 뒤를 이어서.
서울에 지부를 창설한 랭킹권 길드 마스터들이 차례대로 마탑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시 하인네스를 비롯한 네임드 플레이어들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간단했다.
서울에 지부를 둔 길드 마스터들.
모두가 길드 하우스를 포기할 생각으로 마탑을 찾은 덕분.
경쟁 퀘스트.
공성전은 시작조차 되지 않은 것이었다.
“다시 봤습니다, 가이버 씨.”
“누가 할 말을, 히사기.”
“둘 다 똥폼 잡지 말고 제대로 인사부터 해.”
덤으로 서로의 긍지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보고 있는가, 유그위드 원로 마법사.”
나의 입술을 통해서 그랑펠의 평가가 떨어진다.
“실로 존귀한 풍경이로군.”
*
카밀라는 굳게 닫힌 문 너머를 향해 말했다.
“그럼, 나라도 마탑에 다녀올게. 록스.”
“미안, 부탁할게.”
“응.”
이로써.
벌써 나흘째.
카밀라는 오늘도 록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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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 정신력이 너무 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