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499
◈ 500화. 모순 (1)
샤이닝을 이끌었던 [보우 마스터]의 시야.
자신의 눈으로 숱한 위기를 극복해 왔기에.
카밀라는 록스와 달리 혼동하지 않았다.
‘꿈이 아니야.’
이 순간, 록스는 타락했다.
어깻죽지에 돋아난 날개는 악마의 것이 분명했다.
절규.
“록스……!!”
상태이상, [타락].
위험성에 대해선 미서부 지부장, 조슈아가 일찍이 경고했었다.
카밀라의 머릿속에 신신당부하던 조슈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건 빙의와 차원이 달라요, 카밀라! 빙의가 단순하게 악마에게 몸을 빼앗기는 거라면……. 타락은 몸 자체가 악마화되는 거라고요!”
세상에 그런 상태이상이 어디 있대요?
-“그러니까 상위 마왕, 열 개밖에 없는 십좌의 마왕이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여태까지 플레이어가 [타락]으로 악마화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정말 걱정도 팔자셔라.
“그런데, 이럴 줄 알았으면…….”
타락에 관해서 무언가를, 뭐라도, 조금만 더 알고 있었다면.
록스, 너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조슈아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겼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그 전에.
‘너를 어떤 이유로든 혼자 둬선 안 됐어.’
부정적인 감정은 악마의 힘이 되니까.
카밀라의 얼굴에 슬픔이 차올랐다.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깊은 슬픔에 빠졌길래, 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다 못해서 악마가 된 걸까?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쥔다.
그럼에도 카밀라는 무너지지 않았다.
록스에게서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카밀라, 난 괜찮아.”
“?!”
혼란스러운 걸까.
머리를 부여잡고 있으면서도.
록스는 부름에 대답했다.
“그래, 나야!”
카밀라는 애써 록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록스의 인간적인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저, 저기 하늘에 날개 달린 거 뭐냐?”
“잠깐만, 금발 머리에 저 갑옷은 록스잖아?!”
“뭐, 새로운 아이템인가?”
웅성거리는 시민들.
그래.
이곳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도심 한복판.
‘……당신이라면 반드시.’
이호열, 존재 자체가 삭제된 악크샨을 아르카나 대륙에 다시 불러들인 장본인이자 동시에 누군가에겐 악마 사냥꾼이라고도 여겨지는 그의 존재를.
그때였다.
“!”
카밀라의 시야가 점멸했다.
[※주의 : 당신의 길드 하우스가 공격받고 있습니다.]……팟!
‘침입자다.’
카밀라는 신속하게 활을 꺼내 들어 활시위를 당겼다.
이곳은 최상층.
상식적으로 길드 하우스 침입자들이 도착할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찾았다.”
상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상식이 통하지 않는 플레이어였다.
스오오.
목소리가 먼저 울리고 허공에서 마력이 일렁인다.
단거리 텔레포트.
카밀라는 마력 반응을 향해 활을 겨눴다.
“정말 그대로 당기려고?”
“……너흰 누구지?”
영락없이 보헤미안, 가이버일 거라고 생각했다.
록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으니까 철저하게 대응했으리라고. 그 본대는 록스를 막고, 나머지 병력으로는 샤이닝의 길드 하우스를 노렸으리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서운한데. 우리 이래 봬도 100위권 중견 길드인데.”
“쩝, 말하고도 쪽팔린다. 그냥 닥치자고.”
“하긴, 바라지도 않았어.”
대화에서 직감할 수 있었다.
‘순수하게 샤이닝을 노린 거야.’
정확하게는.
샤이닝의 길드 하우스를.
껄렁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이야, 으리으리하네~”
“우리는 평생 균열에서 굴러도 구경도 못 할 수준이야.”
“그러니까 이 건물이 우리 소유가 된다는 거지? 보자, 록스랑 카밀라만 처치하면 귀찮은 절차 같은 것도 필요 없이 아르카나 시스템에 의해서!”
보헤미안이었다면 교섭의 여지라도 있었다.
‘먼저 시작한 건 우리니까.’
하지만 저런 녀석들이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쌕.
카밀라가 쏜 화살이 돌개바람처럼 몰아친다.
쌔애애액.
여러 방향으로 갈라져나간다.
푸푸푹.
샤이닝의 간부.
고작 100위권 길드의 플레이어들은 상대되지 못한다.
카밀라의 선공에 고슴도치가 된 사내가 무릎을 꿇었다.
“크흑. 쓰라려 뒈지는 줄 알았네.”
“……!”
“뭘 그렇게 놀라. 우리가 준비도 안 했을까 봐?”
정보가 없는 신규 업데이트 몬스터를 상대하는 것과 다르다.
카밀라와 같은 네임드 플레이어의 특징은 널리 알려진 바.
꿀렁.
화살받이가 된 사내의 몸이 액체처럼 흐물거리더니.
곧 적중했던 화살이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내가 이죽거렸다.
“놀랬어? 슬라임으로 떡칠 좀 하고 왔다.”
“무식한 파괴력이네. 따끔해서 뒈지는 줄 알았다니까?”
“너희, 제대로 미쳤구나?”
궁수 계열 클래스의 카운터, 액체형 몬스터.
하지만 저런 방법을 실제로 시도하는 멍청이가 있을 줄이야.
경악하는 카밀라에게 사내들이 한 발자국씩 거기를 좁혔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해?”
“……뭐?”
“뭐, 이런 몸이라 방어력은 형편없어졌지만…….”
이어지는 말에 카밀라는 불현듯 깨달았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카밀라? 우리가 어떻게 최상층까지 무혈입성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지? 샤이닝, 이름이 무색하게 군기가 빠져도 제대로 빠졌던데?”
약화된 록스의 길드 장악력.
그리고 부족한 명분.
카밀라는 냉정하게 판단을 내렸다.
‘지원을 바랄 수 없어.’
그래, 충분히 이해했거늘.
카밀라의 신경을 긁는.
더욱더 가차 없는 말이 이어진다.
“거기에 그 우락부락한 드미트리도 없지!”
“야, 그 새낀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몸으로 그 억센 손아귀에 잡혔으면 그대로 몸이 터져 나갔을걸? 그 자식, 남태민이랑 근력이 비슷한 괴물이었잖아?”
고요한 분노가 담긴 화살촉.
[스킬, ‘난사의 멜로디’가 발동됩니다.]녀석들의 말이 옳았다.
지금의 카밀라는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장의 한 수를 아껴둘 상황이 아니라는 뜻.
[난사의 멜로디 : 마력을 대량 소비해 화살을 난사합니다. 마력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스킬의 발동이 유지됩니다. 화살 개수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푸슈슈슈슉.
‘약간이지만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어.’
지금, 마력을 전부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빠르게 선발대를 처치해야 했다. 인원수가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내게 승산은 적어지니까.
게다가.
카밀라가 힐끗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록스를 가로막았어.’
얼굴로 정체를 특정할 수 없는 동양계 플레이어.
저런 상태의 록스에게 접근한 것만으로도.
그 사내에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속전속결.
카밀라가 활시위를 더욱더 거세게 당기던 순간이었다. 상대측도 반격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카밀라는 드미트리의 빈자리를 여지없이 실감했다.
“빈틈!”
탱커가 없는 원거리 딜러는 오롯이 공격에 집중할 수 없다. 생명력과 방어력이 부족하니까. 유리 대포, 스치면 사망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란 뜻이었다.
다급한 긴급 회피.
“조세핀!”
[스킬, ‘창공의 부름’이 발동됩니다.]카밀라는 애조(愛鳥), 조세핀을 소환했다.
전투에 특화된 소환수는 아니지만.
그런 조세핀의 도움이라도 절실했다.
“깜짝이야.”
“난 또 거창한 지원군이라도 오는 줄 알았네.”
“카밀라, 판단력이 흐려졌나 봐? 마력이라도 바닥난 거냐?”
아니, 마력은 충분하고.
시스템 메시지도 출력됐다.
그런데, 조세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밀라의 당황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윽고, 천리안에 포착됐으니까.
“……조세핀, 너.”
누군가의 어깨 위에 올라타 친근하게 머리를 비비고 있는 조세핀. 귀족의 이름처럼 까칠한 성격을 가진 조세핀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카밀라의 음성이 솔직하지 못하게 흔들렸다.
“이제 제시한테는 아는 척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뭐?”
제시?
설마, 제시 하인네스?!
사내들의 얼굴이 경악이 서리던 순간.
“뭐야, 이 모자란 새끼들은?”
고오오오.
보랏빛 마력 사이에서 껄렁한 말이 들려온다.
제시와의 텔레포트 연계로 순식간에 배후를 잡은 광전사.
레오니였다.
“야, 카밀라. 얘기는 방해꾼부터 치우고 하자고.”
……끄덕.
카밀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황이 종료됐다. 아득한 랭킹의 격차보다도 더욱 압도적인 차이. 기이의 영역에 진입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격차.
서걱.
“……컥!”
“내 다리, 다리가!!”
“다리가 뭐 새끼야. 그냥 근육만 끊은 거니까, 닥쳐.”
숭덩.
쌍검을 꺼내 들 필요도 없었다. 레오니가 검 하나를 가볍게 두어 번 휘두른 것만으로 샤이닝 지부를 공격한 플레이어들이 처참하게 쓰러져나갔다.
사뿐.
그리고 제시가 카밀라 앞에 착지했다.
고깔모자 아래로 드러나는 제시의 얼굴.
카밀라는 결국, 진심을 숨기지 못했다.
“제시……. 록스를 도와줘.”
제시는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어.”
“말을 했어야지. 카밀라, 등신아.”
“레오니…….”
세 사람은 허공에서 날개를 퍼덕거리는 록스.
그리고 록스와 마주한 의문의 사내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혼란스러워하는 록스에게 사내는 연신 말을 걸었다.
제시가 사내의 말을 따라 읊었다.
“타락, 혼혈의 악마……. 저게 록스를 말로 현혹하고 있어.”
“뭐하는 새끼야, 저거? 날아서 때려눕힐까?”
“아니, 아직 록스는 괜찮아.”
펄럭거리는 날개는 영락없이 악마의 날개처럼 보였지만, 록스는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헛소리를 내뱉는 사내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다행이…….”
조금이나마 안도하던 순간.
또각.
“!!!”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소리가 울렸다.
카밀라, 제시, 레오니.
세 사람은 직감할 수 있었다.
‘……위험해.’
구두 소리의 장본인.
호열이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록스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그래, 그동안의 행보에서 악마에게는.
일말의 자비조차 보이지 않았던 호열이었으니까.
만약, 록스를 악마라 판단한다면…….
카밀라가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악마가 아니에요, 록스는 나를 알아봤어요……!”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도.
절규에 가까운.
록스의 목소리가 서울 도심에 울려 퍼졌다.
“저리 꺼져라, 이호여어어어얼!!!”
불길한 예감이 실현되는 듯했다.
*
명백한 적의였다.
“이 녀석은 나의 것이다!”
이 녀석이라면, 용성락을 말하는 거겠지?
‘그래도 우리 사이가 나쁘진 않았잖아, 록스.’
나는 서운함을 삼키고는 용성락을 바라봤다.
아니, 정확하게는 용성락으로 위장한 파이몬을 바라봤다.
어떻게 바로 알아봤냐고?
‘저런 건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한 수준이지.’
나의 등장을 반가워하다 못해서 감격해 하는 듯한 저 눈빛.
살아생전, 용성락이 나를 존경했을지 몰라도.
저렇게 끈적한 시선으로 쳐다본 적이 없었거든.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그 언행에 관한 책임은 다음에 묻도록 하지, 록스.”
“……뭐라고?”
“지금 그대는 온전한 상태가 아니니까.”
점멸하고 있는 메시지.
[스킬, ‘천적관계’가 발동됩니다.]파이몬 때문만은 아니었다.
록스의 어깨 뒤로 돋아난 검은 박쥐 날개.
악마 사냥꾼이기에.
나는 보자마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태이상.
타락이다.
록스가 혼혈의 악마로 타락했다.
‘역시, 몬스터에게만 유효한 게 아니었어.’
빙의와 마찬가지.
그 효과가 플레이어에게도 유효했던 것.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내면의 목소리에 더더욱.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랑펠.’
너는 타락해서 악마가 된 록스에게 어떤 처분을 내릴 생각인 거냐……?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 이호열은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야…….’
나는 어째서 록스에게 타락이 발생했는지,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 순간, 록스에게서 시선을 옮겼다. 그 대신 만만한 파이몬을 바라봤다.
‘파이몬, 너라면.’
록스와 다르게 고뇌 없이 사냥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 이호열의 얄팍한 선택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파이몬이 용성락의 몸으로 정중하게 입을 열었기 때문이었다.
“그대여. 나, 존귀한 파이몬이 용서를 구하겠다.”
허리까지 숙였기 때문이었다.
“부디, 한순간이나마.”
……진짜로.
“그대를 의심했던 나를 용서하게.”
파이몬, 너 악마 맞냐?
그렇지 않아도 록스 때문에 심란한데.
왜, 너까지 그렇게 격식이 넘치는 건데?!
*
지옥.
“그의 부름이 들리나, 형제들이여.”
녹색 불꽃 아래.
집결한 검은 복장의 사내들.
비장한 목소리가 울린다.
“그래, 악크샨이 우리를 부르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