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55
◈ 555화. 거짓도……. 없다
이럴 땐 언제나와 같은 폼생폼사가 도움되는군.
“지금 무슨 짓을……!”
봐봐, 대단하신 여신님께서도 흠칫하고 계시잖냐?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점멸하는 메시지 쪽으로.
[스킬, ‘구마의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누누이 말하지만, 내 클래스는 어디까지나 [악마 사냥꾼]이다.
그랑펠 기준에서 여신이 악마와 다를 바 없는 대상이라고 한들.
오직 악마에게만 유효한 [구마의식]이 발동할 순 없다는 뜻.
‘다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역시나 악마 사냥꾼밖에 없지……!
그렇기에 나는 연기하고 있었다.
프레이자의 몸에서.
정말로 여신을 뿌리 뽑겠다는 것처럼 읊조렸다.
“기분이 어떠한가, 여신이여.”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감사하자.
“나의 의식에 진입한 걸 환영하마.”
여신조차 모독하려고 드는 이 뻔뻔함에!!
‘난 이렇게 사기나 치려고 밤새 서적을 들췄던 건가…….’
문득 허탈감이 솟구쳤거늘.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에서 매일같이 탐독했던.
갖가지 마법 서적의 내용을 되새긴다.
『의식』의 공간을 모방하는 것.
구마의식이나 시공간의 사교장이나 모든 의식의 공간은 자신들만의 특수한 규칙을 지니고 있다.
강함과 약함을 떠나 누구도 규칙에서 예외일 순 없다.
예를 들어 시공간의 사교장에서 일체의 무력 행위가 금지되는 것처럼.
‘당연한 말이지만.’
현재 내 수준으로 진짜 의식의 공간을 발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니, 레이먼 션도 그런 건 못할걸?
그러니까 그럴싸하게 분위기를 잡고, 거기에 철면피 메소드 연기까지 더해서 여신을 속여넘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감히 나를 능멸하려 드는 건가.”
당연한 말이지만, 얌전히 계실 리가 있으랴.
지이잉.
성기사들을 쓰러트린 게 바로 저 능력이겠지.
프레이자.
그녀의 뒤에서 후광이 비추더니 빛 막대기가 떠오른다.
곧 섬광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와씨.’
평상시 상황이었다면?
당연하게도 저런 걸 맞고 있을 이유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아르카나 대륙의 신.
그런 신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다는 여신이었다.
피하거나, 건축 마법으로 저 파괴력을 완화했겠지.
그러나.
푹.
[※주의 : 생명력이 급격하게 하락합니다.]나는 그 빛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몸으로 받아냈다.
이유야 간단했다.
말했잖아?
이곳이 의식의 공간이라고 착각하게 할 만큼.
여신을 완벽하게 속여야 한다고.
‘겁나 아프잖아.’
나, 이호열.
감히 장담할 수 있었다.
그랑펠의 철면피가 아니었더라면.
‘이건 연기고 나발이고……!’
그 즉시 주저앉아서는 데굴데굴 구를 정도의 통증이라고.
하지만 우리 그랑펠 님께서 누구시냐? 고통을 넘어서 아르카나 대륙에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꼿꼿함을 잃지 않았던 그야말로 인간 전봇대.
나는 변함없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 어떠한 공격도 무의미하다.”
상처를 반전시키면서 말이야.
상대를 속이는 데 필요한 것?
바로 상대가 알지 못하는 트릭이다.
‘여신조차 알지 못하는 트릭이 필요하지.’
그렇다.
그게 바로 반전 마법이었다.
왜냐면 그건 나, 이호열이 발버둥 치는 과정에서 창시한 마법이었으니까.
여신이라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
그런데.
“그럴 리가 없다.”
우리 여신님께서 의심도 많으시네, 정말.
태연하게 멀쩡함을 연기하는 나를 보고도.
여신은 적잖이 상황이 믿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이이잉.
그 섬광이 지나치게 많다.
한방에 빠져나간 생명력으로 계산했을 때…….
이번엔 못해도 생명력의 7할은 날아가겠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육망성 브로치].여전히 찝찝하지만.
그 세트 효과가 보험처럼 든든하게 느껴진다는 걸까.
그러니까 이놈의 입방정은 한결같이 떠들 수 있었다.
“우둔한 것도 모자라 배움조차 느리군.”
“뭐라고?”
“그대를 믿고 따르던 프레이자가 가여워질 정도로.”
“!”
하여튼 있는 대로 화를 돋우는구나, 그랑펠.
“기어코 나를 능멸하는구나.”
과연, 이런 말을 듣고 참을 순 없겠지.
더더욱 많은 섬광이 프레이자의 배후에 떠오른다. 나, 이호열. 저 빛들에 전신을 꿰뚫릴 고통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뒷목이 뻣뻣해지고 눈앞이 흐릿해지던 순간이었다.
……휘청.
여신이, 아니, 정확하게는 프레이자의 육신이 여신의 힘을 견디지 못한 모양. 프레이자의 육체가 균형을 잃어 비틀거리다가는 가까스로 바로 섰다.
“이런 미련한.”
여신이 프레이자의 육신을 향해 성화한다.
“넌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구나, 프레이자.”
……근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저 여신님 말이야.
우리 그랑펠보단 못하지만, 상당히 뻔뻔하시네.
과연, 뭐 묻은 개 님께서 참지 못하고 입을 여신다.
“누가 할 말인지 모르겠군.”
……진짜 누가 할 말이냐, 그랑펠?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말을 잇는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정작,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은 그대이거늘.”
“뭐?”
좋아, 여기서 승부를 보자.
제아무리 여신이라고 해도 나를 즉사시킬 정도의 힘을, 프레이자에게 빙의한 상태에선 사용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상황이었다.
나는 굳이 입방정을 자제하지 않았다.
“보아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벌리는 양팔.
그에 화답하듯.
펄럭이는 여명의 재킷.
“한없이 깊은 어둠이 그대의 성지에 내려앉은 모습을.”
“…….”
“그런 어둠에게 자비를 구하는 그대의 처지를.”
“……!!”
착각은 금물이다, 여신.
먼저 자비를 베풀겠다느니 뭐니 말했지만, 아쉬운 건 내 쪽이 아니라 엄연하게 당신 쪽이잖아? 프레이자의 육체를 탓하면서도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만신전에 머무를 상황이 영 아닌 모양이니까.’
과연, 마법을 갈고닦은 만큼.
독설도 꾸준하게 갈고닦은 보람이 있는 모양.
파르르.
프레이자의 몸으로 여신이 부들거린다.
그러더니 변명의 여지도 없다는 건가.
“이 치욕은 반드시 설욕하겠다.”
채채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암전이 찾아왔다.
떠올랐던 섬광들이 깨짐과 동시에 프레이자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저런 건 도의상 부축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랑펠?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그랑펠이 신경이 쓰였거늘.
다행이다.
“……이호열 총대장?”
바닥에 쓰러졌던 프레이자가 곧장 정신을 차렸으니까.
다행히도.
프레이자가 쓸데없는 착각에 빠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송구합니다.”
그 내면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던 눈치였거든.
덕분에 여신의 행방도 알고 있는 듯했고.
프레이자가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올린다.
“여신께선 제 내면에서 눈을 감으셨습니다.”
프레이자 내면에서 기회를 노리겠다는 건가.
아주 그냥 여신 꼴이 말이 아니시구만.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다.
‘기를 완전히 죽여놔야 딴생각을 못하겠지.’
나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지나친 오판이군.”
내 협박이 전해진 건가.
프레이자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내, 다시금 눈을 뜨고는 말을 전해온다.
“여신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겠다. 어차피 만신전이 그런 꼴이 되고, 여신의 권위조차 바닥으로 떨어진 이상. 당신에겐 허튼짓을 계획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으시다고…….”
글쎄, 저 말을 믿어도 되는 걸까.
판단하기 위해선.
일단, 만신전이 대체 어떻게 됐는지 알아야 한다.
진짜로 쑥대밭이 됐는지 말이지.
여신과 다르게 눈치가 빠른 프레이자였다.
묻지 않아도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여신님을 대신하여 만신전의 전말을 전하겠습니다.”
이윽고 전해지는 소식.
그 말에 나는 흠칫하고 말았다.
“전쟁의 신께선 여신님을 비롯한 만신전을 등졌습니다. 무차별적인 학살로 만신전을 피로 물들여…….”
만신전의 내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독 멀쩡하던 가이버를 지켜보면서.
이미 짐작하고 있던 일이었으니까.
그래, 내가 경악한 건 다른 소식 때문이었다.
“이후, 그림자 신과 아홉 종이 만신전에 난입.”
……잠깐, 그림자 신과 ‘아홉의 종’이라고?
떠오르는 건 당연하게도 아홉 명의 전(前) 그림자 용병단이었다. 하지만 그림자 용병단의 계약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파기를 시켰었다.
‘설마.’
다시 계약을 맺은 건가.
그림자 신이 내 뒤통수를 친 건가 싶었거늘.
채 발끈할 시간조차 없었다.
프레이자가 그 말꼬리를 흐린다.
“여신님의 기억 속에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아홉 모두 처참한 모습으로 차가운 시신이 되어서 만신전에 널브러진…….”
“감사를 표하지, 프레이자.”
“……네?”
나는 진심을 다해서 말했다.
“내게 만신전을 멸할 명분을 준 것에 대하여.”
*
콰득.
확인 사살.
계속해서 짓밟는다.
그 형태가 으스러져 간다.
피와 살점 대신 짙은 그림자가 바닥을 적시며 퍼져 나간다.
“끝까지 추한 티를 내는구나, 반푼이.”
그분의 카르마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특히 마지막 발악은 웃기지도 않았다.”
신(神).
아르카나 대륙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신계에 머물던 자신이었다.
제아무리 아르카나 대륙에서 날고 기었던 존재라고 한들.
결국 한낱 인간에 불과했다.
“네겐 카르마가 우습게 보이느냐.”
일천(一千).
그건 하나의 세계가 일순을 끝내더라도 모을 수 없는 카르마다. 자신이 그러한 영역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여신을 제외한 만신을 모조리 쳐죽였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으니.
“아무리 발악한다고 해도 똥물 속이다.”
악마를 잡고, 악인을 죽이고, 칭송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그가 쌓을 수 있는 카르마는 고작 일백(一百)에 불과하리라.
그것도 그 삶을 온전히 끝마쳤을 때의 가정이었다.
두득.
전쟁의 신이 목을 돌렸다.
“뭐, 되었다. 이젠 들리지도 않을 테니.”
만신전을 물들인 피와 같은 형상으로 만신전을 물들여가기 시작하는 그림자. 전쟁의 신은 몸을 돌린 채 다시금 자신의 창을 집어 들었다.
“어디로 숨은 거냐, 그 가식 덩어리는.”
가식덩어리, 여신을 뜻하는 말.
전쟁의 신은 머릿속으로 헤아렸다.
여신은 죽인다면.
적어도 수백의 카르마를 추가로 거머쥘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하나의 이상의 성유물을 추가로 손에 넣을 수 있다.
왜, 조금 전 그림자 신을 살해함으로써 획득한 카르마가…….
“응?”
카르마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반푼이 신이라서가 아니었다.
그림자 신.
녀석이 지니고 있던 카르마가.
고작 평범한 인간 수준도 되지 못했으니까.
“……!”
그때였다.
전쟁의 신.
그의 직감이 경고를 보낸 건.
훽.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자 그제야 보였다.
“빌어먹을 반푼이 새끼가.”
이런 잔재주를 부렸을 줄이야.
스멀스멀.
만신전을 적시며 퍼져가던 그림자가 아홉의 시체에 스며들었다.
마치 인형을 조종하는 실처럼.
길게 늘어져서는 시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서 끝났다면 잔재주라 불러주지도 않았다.
“엿 같구만. 여태까지 이런 기분이었어, 키치?”
목이 잘린 채로 말을 내뱉는 모양새.
전쟁의 신은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어째서 그 반푼이가 마지막까지 꺾이지 않았는지.
그랬다, 마지막 순간까지.
헛소리를 하며 나의 정신을 흩트려 놓은 것이었다.
이 노림수를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숨겨두기 위하여.
“훌륭한 전략이었다. 이 전쟁의 신이 칭찬하마.”
그러나 유감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니까.
되살아난 아홉의 인간.
“나의 전력으로 네게 경의를 표하마.”
전쟁의 신이 그 선언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신의 무기를 불렀다.
[날개 달린 빗살 무늬 뿔피리].그리고 [천검(天劍), 엑스칼리버]를.
“오너라, 성유물들이여.”
그러나.
“…….”
흐르는 것은 오직 정적뿐.
그 적막함 속에서.
만신전이 점차 물들기 시작했다.
“어이, 전쟁의 신. 그게 전부냐?”
그림자로.
‘……카르마. 설마, 헛소리가 아니었다고?’
한없이 깊은 어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