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layer who hides his past RAW novel - Chapter 556
◈ 556화. 계약
전쟁의 신.
다르게 말하자면 무신(武神).
그의 무위에는 어떠한 인간도, 신조차도 범접할 수 없다.
그건 일종의 상식이었다. 무를 지배하는 신을 뛰어넘는다는 건 모든 무기를 통달했다는 아르카나 대륙의 웨펀마스터도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러나.
“……!”
상식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상식 밖의 존재들이 날뛰고 있었다.
“크헉.”
무신은 지지 않았다. 아홉 명의 합공에도 단 한 번의 공격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며 한 합을 겨루는 찰나에도 몇 번이나 저들의 급소를 난도질했다.
그런데.
“빌어먹게 무식한 힘이잖아, 진짜로?”
스멀스멀.
몇 번을 자르고 토막을 내도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미 빠져나간 피 대신 짙은 그림자를 흘려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전쟁의 신은 이를 악물었다.
‘반푼이 새끼.’
그림자 회랑에서 허송세월을 보냈던 게 아니었군.
전략과 전술을 떠올려본다.
반푼이에게 내가 파훼하지 못할 계략을 세울 능력은 없을 테니까.
‘부활의 기적은 네놈 따위가 부릴 수 있는 게 아니야.’
쾅.
“너 때문에 모가지 부러졌다, 새끼야.”
두득.
“이 씨발? 또 부러졌네?”
달려드는 사내의 목을 다시금 부러트리고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해야만.
이 아홉 개의 쓰레기를 완전히 짓밟을 수 있을까.
‘역시, 그림자 계약인가.’
괜히 반푼이가 아니다.
녀석의 부족한 신격으로는 누군가의 숭배를 받을 수 없다는 뜻. 그렇기에 분명 저들과는 분명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그리고 계약 내용에 따라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손에 넣은 거겠지.
툭.
“이런, 언제 여기까지 왔대.”
콰득.
가볍게 힘을 주자 석궁을 쥔 울프의 팔이 그대로 뽑혀나간다.
보다 정확하게 적을 파악하기 위하여.
뽑은 팔뚝을 그대로 쥐고 살핀다.
스스스.
그러자 팔뚝이 그림자가 되어 손아귀 사이로 빠져나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간다.
전쟁의 신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떠올렸다.
‘계약자인 반푼이는 이미 죽었다.’
계약 당사자가 죽은 시점에서 계약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이들의 계약은 유지되고 있는가?
빠르게 회전하던 두뇌가 답을 내놓는다.
“하하, 미친 새끼로구나.”
전쟁의 신이 광소를 터트렸다.
“한낱 인간에게 신격을 넘겨준 것이냐.”
진정 너의 신격을 오롯이 넘겨준 것이었느냐.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아까부터 전투에 나서고 있지 않은 인간, 그녀가 바로 계약의 주인이 분명하리라. 그녀를 찢어발겨 본다면 모든 의문이 풀리겠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성유물의 침묵.
카르마.
그림자 신의 유언.
“나름대로 전환이 되었다.”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복잡하던 머릿속.
약간이나마 상쾌해진 기분이 들었다.
전쟁의 신은 복잡하게 사고하지 않았다.
‘설령 카르마가 엇비슷하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잘된 일이다. 그 사내를 쳐죽인다면 더욱 많은 카르마를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거머쥘 수 있다. 무(武)를 겨루는 전투에서 나는 결코 패하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마계의 왕.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권능을 가진 첫 번째 왕좌의 마왕 바알에게도 대응할 힘을 가질 수 있을 터. 전쟁의 신, 그의 눈이 광기 어린 빛으로 빛났다.
‘진정한 진리, 그 끝에 서는 것은 나다.’
꾹.
“큭, 대단하신 전쟁의 신께서 어째서 얌전히 있는 나를 붙잡으셨을까?”
여인, 키치가 목을 붙잡힌 채 물었다. 전쟁의 신은 말을 섞지 않았다. 중요한 건 확인이었으니까. 이윽고, 두득 소리와 함께 키치의 목이 부러졌다.
판단대로라면.
아홉의 그림자는 그 즉시.
파기된 계약으로 흩어져야만 했다.
귓가에 들려오는 비웃음.
“그런데, 어때……?”
“…….”
“틀렸지?”
쾅.
전쟁의 신이 땅을 박찼다.
만신전이 부서지고 그 파편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기합만으로 파편들을 사방으로 비산시킨다.
“이런 미친 새끼……!!”
하나씩 쳐죽여서 답이 나오지 않았다면, 전부를 한날한시에 쳐죽이면 되는 일이다. 누군가는 불가능한 일이라 말하겠지만, 전쟁의 신에게는 능히 가능한 일이었다.
스와아악.
파편 사이로 내던져지는 투창.
푸푸푸푸푹.
아홉 번의 파열음.
동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벼락처럼 내던져진 창이 손아귀에 잡혀 온다. 전쟁의 신은 숨을 골랐다. 전투가 벅차서가 아니다.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호흡이었다.
“후우.”
그러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답답한 가슴도.
지긋지긋한 풍경도.
들려오는 시건방진 목소리도.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똑같아. 귀찮기만 할걸.”
“너는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 알겠냐, 새끼야?”
“우리의 계약이란 그런 거니까.”
알고 있다.
계약은 막중하다.
신이 관련된 계약은 더더욱.
‘그렇기에.’
자신의 종, 가이버가 성유물을 다룰 수 있었던 것이다. 원래라면 성유물에 닿는 것만으로도 그 몸이 산화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나약하디 나약한 녀석이 말이다.
‘허나, 계약에 얽힌 자가 죽으면 계약은 파기된다.’
누구도 규칙을 부정할 순 없을 터.
계약에 어떤 속임수가 숨어있는지.
더 이상의 추측은 무의미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저들이 먼저 입을 열게 하는 것.
전쟁의 신이 비뚤게 입꼬리를 올렸다.
“고문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전쟁의 일부니까.”
.
서걱.
“이런 씨바알!”
락키드가 고함을 내질렀다.
고통보다도 빌어먹게 열이 뻗쳐서 견딜 수 없었다. 모가지가 수십 번은 달아난 것 같은데, 그동안 단 한 번도 녀석에게 닿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 새끼는 상도덕도 모르나? 덩치가 그 정도로 거대하면 느리기라도 하라고 새끼야. 힘은 무식하게 세면서 빠르기까지 하면 무슨 수로……?!”
툭.
물론, 말을 끝마칠 순 없었다.
전쟁의 신이 창을 휘둘렀고.
락키드의 목이 달아날 차례가 다가왔으니까.
철컥.
원거리에서 사격을 준비하는 울프.
그의 볼트 역시 단 한 번도 닿지 않았거늘.
울프의 표정은 썩 나쁘지 않았다.
“다행이지, 단장?”
“씁. 아파 죽겠는데, 뭐가?”
“저런 괴물을 우리가 묶어둘 수 있어서.”
키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신의 전능함?
그림자 신을 통해 그의 신격 일부분을 넘겨받으면서 깨닫게 되었던 키치였다. 그러나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림자 신, 그가 정말로 불완전한 신이었다는 걸.
“괴물이야, 정말.”
키치가 입술을 씰룩였다.
“그런 의미에서 정을 줄래야 줄 수가 없다니까? 웬일로 혹하는 제안을 하나 했더니만. 저런 미친 괴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츠릉.
키치는 비수를 치켜들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미안하단 뜻이야, 다들.”
누군가는 권능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
죽어도 죽어도 되살아난다는 건.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능력이었으니까.
그림자 용병단이 뒷세계의 거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말도 안 되는 임무에 성공할 수 있던 것도.
전부 권능 덕분이었으니까.
그러나 키치의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끔찍한 저주에 끌어들여서.”
죽을 수 없다는 건 저주다.
키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체감해 왔다.
이번엔 잠자코 듣고 있던 울프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락키드는 즐거워 보이는데?”
“……저 멍청이는 제외할게, 그럼.”
“그리고 사실 나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거든.”
“너도 미친 거야?”
“아니, 단장처럼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
울프, 그 역시 전략을 세우고 있던 것이었다.
“저런 걸 총대장님에게 닿지 못하게 할 수 있어서.”
머릿속에선 이미 견적이 나왔다.
설령 무한정 되살아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전쟁의 신을 쓰러트릴 수 없다. 그러나 무한히 되살아나는 동안 전쟁의 신, 그의 발을 묶어둘 수 있다는 계산이.
“녀석은 전력으로 싸우지 않고 있어. 그러면서도 우릴 유린하고, 냉철하게 분석하고 있지. 총대장님에게 보내기에는 위험요소가 너무 커.”
울프가 덧붙였다.
“여러 의미로 말이야.”
키치는 곧장 이해했다.
“맞아, 울프.”
이호열 총대장.
그가 전쟁의 신과 싸워 패배하리란 의미가 아니었다.
전투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 파이몬이 출현했던 제주도에서 자신들은 목격했었으니까.
호열의 ‘한없이 깊은 어둠’을.
극심한 부상 탓.
그 후에 있던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분위기에서 읽었다.
당신을 향해 쏟아지는 우려의 시선들을.
‘그런 상황에 있는 당신에게.’
저런 괴물을 던져줄 생각 따윈 없었다.
그런 의미에선 다행이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만.
문득, 떠올리는 그림자 신의 목소리.
-“이 계약은 종속되어 있다.”
“참 여러 의미로 대단하신 분이니까.”
-“내가 그를 섬기니, 그가 바로 이 계약의 주인이란 뜻이다.”
그림자 신.
녀석이 자신의 입으로 직접 호열을 섬긴다고 말할 줄이야.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으니까.
그림자의 회랑에서 대체 어떤 일이 있던 걸까.
진심으로 궁금해졌지만, 키치는 정신을 차렸다.
‘쓰러트릴 수 없다고 한들,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해.’
점점.
락키드의 목이 달아나는 시간이 더 단축되고 있었다.
이 전투에 적응하고 있는 건 자신들이 아니라 전쟁의 신이었다.
“그럼, 다시 가볼까.”
누군가는 이 광경을 보고 말하리라.
무의미한 싸움이 아니느냐고.
하지만 키치가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설령 무의미하더라도 전쟁의 신을 만신전에 붙잡아두는 것. 녀석을 아르카나 대륙과 모험가들의 세계에 풀어뒀다간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테니까.
불확실한 미래를 막는 데 필요한 값은 지나치게 저렴했다.
바로 자신들의 죽음.
엄밀하게 따지자면 죽음까지 이르는 고통을.
수백, 수천, 수만, 무한하게 겪는 것.
‘이 정도면 남는 거래지?’
그럼에도 전 그림자 용병단 단장은 결론을 냈다.
손해 볼 게 없는 거래가 확실하다고.
하지만 그런 키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째서?”
그건 어느 ‘누군가’가 용납할 거래가 아니었으니까.
또각.
귓가에 들려온 건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웅장한 구두 소리였다.
전쟁의 신, 그가 먼저 고개를 돌린다.
단원들 역시 계약의 주인이자 자신들의 주인과 시선을 마주한다.
키치의 동공이 거칠게 흔들렸다.
‘……위험해.’
단 한 순간도 살육을 멈추지 않았던 전쟁의 신.
그의 실전감각은 물이 오를 때로 오른 상태였다. 그 상태로 총대장님에게 달려든다면, 제아무리 총대장님이라고 하셔도 무사하지 못하실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라.”
키치는 이번에도 틀리고 말았다.
호열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전쟁의 신은 달려들지 않았다.
도리어 어째서인가, 그 발걸음을.
……슥.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뒤로 무르며 뒷걸음질까지 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그 이유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으니까.
키치를 비롯한 단원들의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후광처럼 피어오르는 호열의 카르마가.
전쟁의 신.
그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며 생각했다.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머리를 회전시켰다.
‘……짐작할 수조차 없는 카르마.’
하나가 아닌 모든 세계가 일순(一循)해도 획득할 수 없는 측정불가의 카르마가 고작, 인간에 불과한 사내에게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 광경에 전쟁의 신은 태어나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는 이 순간.
[전쟁의 신에게 상태이상, ‘공포’가 발생합니다.]공포와 마주했노라고.
.
[카르마 : 6,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