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ce Is Everything To You RAW novel - Chapter (250)
대가는 너희의 모든 것 250화(250/302)
메가라의 파멸
아벨루스는 멍해졌다.
태어나서 그에게 멍청하다는 표현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언어적인 방법으로는 몇천, 몇만 번이나 그를 짓누르고 깔아뭉개 온 케이밀 누이조차.
그래서 그는 잠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메가라는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까르르 웃었다.
“제가 교활해요? 전 그냥 살려고 했을 뿐이에요. 어쩌겠어요? 저에게 남은 건 머리 하나뿐인데. 전하처럼 멍청해도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 가진 사람도 있는데, 저는 머리 좀 쓰면 안 돼요?”
“이게……!”
신랄한 말에 아벨루스는 당황했다. 동시에 화가 치솟았다.
메가라의 말이 옳았다. 처음 이슬라니 백작 부녀가 그에게 케이밀 황녀가 메가라에게 모함당해 유폐당한 거라는 사실을 밝히고 메가라가 넬뤼시온을 공범으로 만든 증거라며 그녀의 편지를 내밀었을 때 아벨루스는 분개했었다. 황실이 모욕당하는 것은 태자인 그의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곧 그것도 괜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무튼 케이밀은 황제 시해 미수로 감금되어 있었고, 부황에게까지 손을 대도록 그녀를 몰아붙인 사람은 메가라였다. 덕분에 아벨루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이로부터 자유로웠다.
다만 메가라를 이 자리에 더 둘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소름이 돋았다. 사람이 왜 그렇게 음험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밀실에서 조사 좀 하고, 가둬 뒀다가 귀족들 몰래 멀리 보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리케안드로스 소후작을 그 핑계로 좀 휘두를 수도 있을 테고.
태자인 그가 천한 정부에게 놀아나 같은 황족을 실각시켰다. 공작 하나도 말려들었다. 이런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가면 망신이니 단출하게 메가라를 잡으러 온 것이었다. 지금 밖에는 그녀를 데리고 갈 황실 기사 몇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들켰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엎드려 빌어야 할 메가라가 이렇게 당당하게 말을 쏟아낼 줄 누가 알았을까.
“전하를 보면 늘 우스웠어요. 어쩌면 저렇게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순진하게 믿을까. 어쩌면 저렇게 자기 생각이 틀릴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을까. 귀족들이 전하의 위엄을 보고 진심으로 감복하는 일? 안 일어나요. 왠지 아세요?”
예쁜 입술이.
“전하가 멍청해서예요. 아아, 정말. 늘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말해서 속이 시원하네요. 사람 눈이 보석 같아서 어디다 써요? 가져다 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보석은 기껏해야 돌덩이예요. 그런데 거기에 왜 그렇게 자부심을 가져요? 케이밀 황녀 저하는 물론이고, 이제트 황녀 저하도 전하보다는 나아요.”
몇 번이고 달콤한 말만 하던 입술이.
“제가 엎드려 빌 줄 알았어요? 저는 전하에게는 잘못한 것 없어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못한 게 좀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전하에겐 아니에요. 전하는 저 만나서 제가 매일 기분 맞춰 드리고, 장신구처럼 옆에 따라다녀 드리고, 재밌게 게임도 하시고, 마음에 안 드는 신하들 쫓아내기도 하시고…… 손해 보신 게 뭐 있는데요?”
터져 버린 둑처럼.
“메인들란트 대공이 부러우셨죠? 잘생겼지, 똑똑하지, 실력 좋지……. 그럼 부러워하시면 되지, 항상 그 남자보다 대단해 보이려고 거드름을 있는 대로 피우셨죠. 같이 다니시는 엘란드리아 공작은 또 어때요? 미친놈이지만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는 아는 인간이에요. 매력적인 남자들이죠.”
바늘 같은 말을 쏟아냈다.
다른 모든 말보다 메가라의 마지막 말이 아벨루스의 원래 얕은 인내심을 바닥냈다. 그는 메가라의 손목을 잡았던 손 외에 다른 쪽 손을 들어 그녀의 입을 막으려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몸이 가까워졌을 때.
은빛의 무언가가 반짝였다.
댕그랑. 아벨루스가 무심코 쳐내고 바닥에 떨어져 부르르 떤 그것은 단검이었다. 아벨루스는 너무 놀라 입을 벌렸다.
“나를 찌르려고 했어……?”
치마폭에 숨겨 두었던 단검을 꺼내 실로 아벨루스를 찌르려다 실패한 메가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었다. 깔깔깔. 새된 웃음이 점점 높아졌다.
“그래! 당신 따위의 비위를 맞추려다 우리 가족이 무너졌으니까! 당신처럼 가치 없는 인간 따위를 가지려다 나타샤 그뤼네할스와 내가 공멸했고! 당신처럼 못난 인간 따위의 비위를 맞추려고 내 친모는 그 많던 돈을 다 썼고! 당신처럼 머리 나쁜 인간 따위에게 나 좀 잘 봐 달라고 고개 숙이다 내 아버지가 죽었어! 내 동생, 아, 가여운 그 애는 평생 날 보지도 않겠다더군! 이제 눈치 볼 우리 아버지도 없으니 귀족원 전체가 후작가를 물어뜯을 테고! 그 애가 내년쯤엔 잉크 한 병 살 것이나 남길 수 있을까?”
계속되는 모욕에도 아벨루스가 메가라의 입을 기어코 막지 못한 것은 너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천사처럼 그를 쓰다듬던 그 흰 손이 칼을 들 줄이야.
우두커니 서서 한쪽 손을 든 그를 보며 메가라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당신 따위 단 한 번도 사랑한 적 없어. 누이의 백 분의 일도 안 되는 게!”
그 말이 끝이었다.
‘누이’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아벨루스는 이번에야말로 메가라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거칠게 소리쳤다.
“들어와! 불 꺼!”
밖에서 연기를 보며 이제나저제나 하고 대기하던 기사들이 얼른 방으로 들어왔다. 이미 물을 준비해 온 두엇이 벽난로와 실크의 불을 재빨리 껐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아벨루스의 핏발 선 눈에도 약간 눈물이 고였다.
메가라는 연기 때문에 이미 실신 직전이었다. 군청색 보석안의 능력으로 강건한 육체를 가진 아벨루스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그는 메가라의 몸을 짐짝처럼 기사들에게 던졌다.
“지하 감옥 최하층에 던져 넣어라! 평생 나올 일 없으니 귀하게 모실 필요 없다!”
메가라의 말을 밖에서 대강 들은 기사들은 그 지시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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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메가라가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밝은 오렌지색의 점이었다.
저게 뭐지, 하고 희미한 의식 속에서 메가라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은 단지 점이 아니라 일렁이는 횃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꿈에서 깨어나며 현실을 떠올릴 때처럼, 기절하기 전의 일이 그녀의 머릿속에 시끄럽게 몰려들었다. 알렉토가 모든 증거를 가지고 아벨루스에게 왔다고 알려 주러 온 태자궁 시종의 말, 절망, 세상 모든 것이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분노, 무력함…….
‘다 실패했네.’
어째선지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아벨루스.’
아벨루스를 사랑한 적이 없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아주 가끔은 그에게 끌리기도 했다. 평범하게 귀엽다고 느낀 적도 있었고 자기 나름대로 마음 써 주는 모습에 감동할 때도 있었다.
‘다 망쳤지만.’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망가졌다. 그녀의 인생은 물론 유서 깊은 리케안드로스 후작가도.
메가라는 동생인 소후작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았다. 어차피 소후작은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음을 아벨루스도 알 테고, 지금은 대귀족가의 수를 줄여나갈 때가 아니었다. 안 그래도 여러 대귀족가가 몇 개월 안에 줄지어 무너지면서 그간 황실이 유지해 온 귀족 간의 균형이 박살 난 상태니까.
그러나 뿌리만 지켰다 뿐이지 후작가는 이미 빈사 상태였다. 처가와는 척을 졌고, 가문을 지켜 줄 돈은 모조리 써 버렸고, 소후작에게 계승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후작이 죽었다. 당연히 그때 가문의 병사들도 대다수 잃었고.
아마 소후작은 맨몸으로 떨며 어른이 되어야 하리라. 대귀족의 이름은 말 그대로 명목만 남은 채.
‘미안해.’
메가라가 미안함을 느끼는 유일한 사람이 동생이었다. 예쁘고 똑똑한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소심한 아이. 후작부인이 그 아이를 낳느라 죽었다는 생각에 가끔은 미워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사랑하게 된 아이.
비참한 기분으로 메가라는 몸을 일으켰다. 대강 널브러져 있던 몸은 구석구석이 엉망이었지만 적어도 구속되어 있지는 않았다. 악취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뭐, 가 이렇게…… 콜록!.”
목이 쉬어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기침하며 괴로워하던 메가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있는 곳은 창문 하나 없는 감옥이었다. 사람이 너덧 명 정도 들어올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의 더럽고 어두운 곳. 삼면은 다듬지 않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고 나머지 한 면은 녹슨 철창살로 막혀 있었다. 근처에 하수구가 지나는 듯 물비린내와 오물 냄새가 갑자기 강해지다가 별안간 약해졌다. 아마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강해지는 것이리라.
바닥은 쥐똥과 썩은 지푸라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가장 끔찍한 것은 죽은 지 오래되어 썩은 냄새를 풍기는 쥐였다. 그 근방에 날파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목도하자마자 메가라는 질색해 소리쳤다.
“꺄아악!”
이렇게 더러운 장소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창살 밖으로 보이는 더러운 복도에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꺄아악…… 꺄아악…… 꺄아악…… 아악.
감옥이니 간수도 있을 테고 주위의 방에 다른 죄수도 수감되었을 텐데, 그녀의 비명에도 들여다보는 사람 하나 없었다. 메가라는 자신의 메아리에 둘러싸여 잠시 공포에 떨었다.
감옥에 갇힐 줄은 알았다. 평민의 딸이 감히 태자를 시해하려 들었다. 메가라도 아벨루스가 그따위 단검에 죽기에는 너무 튼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저 어차피 모든 게 끝이라면 속이라도 시원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더 살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러나 아벨루스의 그 이기적인 머리통은 자기 멋대로 모든 일을 재단하는 것을 좋아하니.
아마 지금쯤 사랑했던 여자에게 속을 대로 속고 심지어는 죽을 뻔했다며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 취급하고 있을 터.
그러니 메가라는 이미 짐작했고 자신이 어느 정도 자초한 일에 새삼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야.’
그녀는 잠시 후 스스로의 마음을 달랬다.
‘이런 데서 오래 견딜 필요는 없어. 어차피 곧 죽을 테니까.’
원래라면 아벨루스는 자신을 죽이지는 않았을 것임을 메가라는 알았다. 그래서 더 보란 듯 행동한 것도 있었다. 아무것도 그녀의 손에 없는 세상 따위를 보느니 죽는 것이 나았으니까. 차라리 빨리 사라지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몇 시간 전의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고 분명히 어느 정도 충동적으로 일을 저질렀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에 던져져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진지하게 상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충분히 자존심을 건드려 놨으니 오래지 않아 그녀는 처형당할 것이다. 어쩌면 태자가 그간 저지른 실책에 대한 모든 비난을 뒤집어쓰고. 이 감옥처럼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이 되기 전 그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메가라는 소망했다.
그때였다. 메아리가 가라앉아 고요하던 이 장소에 우아하고 힘 있는 발소리가 들려온 것은.
얼마 후 자신의 철창 안쪽으로 내비친 차가운 얼굴을 보고 메가라는 실소를 흘렸다. 그래, 그렇겠지.
“네게 어울리는 곳에 드디어 들어갔구나.”
케이밀은 고소함조차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말투로 말했다. 메가라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비참하게 자빠진 적을 비웃으러 오셨나요?”
“아니. 내게 그럴 시간은 없단다.”
“아직은 감금당해 계신 것 아닌가요? 저하의 결정적인 감금 원인은 황제 시해 미수니까. 태자 암살 사건은 제가 꾸몄어도, 황제 시해 미수는 정말이잖아요?”
“아벨은 애가 늘 허술하거든. 그 애의 사람들은 내가 자유로이 나다녀도 몰라.”
케이밀의 딱딱한 얼굴에 설핏 미소가 스쳤다.
“나는 확인하러 온 거란다. 네게 가치가 있는지.”
“가치요? 보시다시피.”
메가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쓰레기 같은 처지지요. 곧 죽으면 쓰레기만도 못해질 테고.”
“아니, 그렇진 않을걸.”
케이밀의 눈에 이제는 명백한 기쁨이 떠올랐다. 그녀는 메가라의 금발과 보라색 눈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본 뒤 몸을 돌렸다.
“교수대에는 너 대신 다른 천한 것을 올리마. 넌 조금 더 살아 있어라.”
왜? 메가라는 그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잠시 후 감옥의 문이 열리고 들어온 남자가 주문을 외우자 더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잠시 후 메가라는 주위의 무엇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인형 같은 꼴이 되어 제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빙긋빙긋 웃기 시작했다.
“겉모습을 위장하는 마법은 복잡한데.”
그녀 대신 교수대에 올라갈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당사자, 울리히는 투덜거렸지만 기분 나빠 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는 곧 감옥 문을 원래대로 닫고 케이밀을 따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