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ce Is Everything To You RAW novel - Chapter (301)
대가는 너희의 모든 것 301화(301/302)
외전 14화 – 엄마 지켜 줄 거야
아르비요네는 침대에 누운 채 엄마를 애달프게 올려다보았다.
“엄마, 어디 안 갈 거지?”
“그럼.”
네리스의 부드러운 목소리에도 아이는 안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르비요네는 몇 번이고 다시 물었다.
“진짜 어디 가면 안 돼.”
“알아.”
“어디 가면 위험해, 알았지?”
“그럼.”
“요니가 엄마 지켜 줄 거야. 알지?”
“그럼, 알지.”
그 절박한 확인에 네리스는 가슴이 아파졌다. 처음 딸이 들러붙을 때는 그냥 꿈에서 있었던 무서운 감정이 남아서 자길 지켜 달라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계속 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 반대였다.
아르비요네에게 남은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를 지키고 싶다’는, 이 어리고 작은 몸으로 가지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강한 마음이었다.
당시에는 배 속에 있던 딸에게 이제 와서 이렇게 강렬한 죄책감을 느낄 줄 알았으랴. 네리스는 아르비요네가 누운 침대맡에 앉아 아이의 이마에 키스해 주었다.
“요니가 낮잠 자는 동안 엄마는 아무 데도 안 가. 내 사랑, 내 삶……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엄마가 옆에 있을게. 걱정하지 마.”
그러잖아도 네리스는 요즘 걱정이었다. 아무리 아르비요네가 무던한 성품이라고 해도 동생들과 부모의 관심을 나누며 서운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과 어딘가 다른 오웬이나 돌쟁이 메이브에게 관심을 쏟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금 보이는 정서불안이 기본적으로는 과거에 다녀온 부작용이라고 해도, 그런 평소의 속상함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을까? 네리스는 장담할 수 없었다. 아무튼 동생 있는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가?
다른 두 아이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지만 네리스는 이 기회에 아르비요네에게 몇 시간이라도 집중해 주고 싶었다. 그러잖아도 아르비요네는 워낙 씩씩해서, 동생들이 태어난 뒤로는 많이 내버려 둔 경향이 있었으니까.
아르비요네는 안심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지만 일단 엄마의 말을 믿어 준 것 같았다. 천천히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딸이 쌕쌕 얕은 숨을 내쉬는 모습이 애틋했다. 네리스는 아르비요네가 잡지 않은 쪽 손으로 아이의 배 위를 가만가만 두드려 주었다. 조용히 문이 열렸다.
“요니는 자?”
큰딸에게 붙잡힌 엄마 대신 막내 메이브를 달래고 온 클레드윈이 지친 얼굴로 물었다. 네리스는 후후 웃었다.
“지금 막 잠들었어요.”
“종일 요니를 안고 다니느라 힘들었을 텐데 잠깐 가서 쉬어. 요니 옆에는 내가 있을게. 그럼 잠깐 깨도 괜찮을걸?”
과거의 기억 속에서 아르비요네와 오랜 시간을 보내고 온 클레드윈은 아르비요네가 자신이 아닌 엄마만 찾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난 괜찮으니 당신이나 쉬어요. 우리가 이러고 있으니 다른 애들이 불편하지 않은가 모르겠네요.”
“알아서 잘 놀던데.”
아르비요네가 잠깐 큰 소리로 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딱딱하게 굳은 부부는 그 뒤로 딸이 다시 조용해지자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 ❖ ❖
엄마? 엄마!
주위가 안개로 가득했다. 아르비요네는 혼비백산해 엄마를 찾았다. 분명히 아까까지 옆에 있었고 손도 꼭 잡았는데 어디 갔지?
정말로, 왜 이렇게 엄마가 계속 보고 싶고 불안한지 아르비요네는 몰랐다. 일곱 살씩이나 먹어서 엄마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이 동생들 보기에 부끄러운 줄도 알았다.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엄마를 지키는 게 우선인데.
이렇게 엄마가 옆에 없으면 그녀가 지켜 줄 수 없었다. 나쁜 애들이 엄마를 괴롭히거나 엄마가 다치면 짠! 하고 나타나서 다 혼내 주고 엄마를 안아 줘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엄마를 찾을 수 있는 걸까?
엄마! 엄마! 어딨어?
안개 속에서 아르비요네는 뛰어다니며 힘차게 엄마를 불렀다. 그러나 몇 번을 불러도 엄마는커녕 아빠조차 보이지 않았다.
아르비요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때 안개 속에서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니(누님).
쓸데없이 어른스러운 말투에 혀짤배기 발음. 동생 오웬의 목소리였다. 아르비요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웨니? 너야? 어딨어?
누니. 여기에요(누님. 여기예요).
별안간 안개가 걷히더니 주위가 청록색의 바닷물이 되었다. 머리 위로는 그물 모양으로 황금빛 햇살이 들어오고, 저 아래로는 온갖 보석처럼 선명한 색의 산호가 무수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아, 이건 꿈이구나. 아르비요네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꿈이라 그런지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주위를 지나가던 은빛 비늘의 작은 물고기 떼는 방울처럼 맑게 웃었다.
오웬이 어디 있는지는 곧 명확해졌다. 물고기 떼가 지나간 그 자리로 오웬이 헤엄쳐 왔다. 어린애의 팔다리로 버둥거리는 모습이 귀엽고 웃겼다.
하하! 아르비요네는 배를 잡고 웃었다. 오웬은 금방 아르비요네의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여기는, 누니 꾸이에요. 누니 도아하디는 책에 있더요(여기는 누님의 꿈입니다. 누님이 좋아하시는 책 속에 등장하는 곳이요).
그러네. <붉은 모자 선장의 항해기>에서 본 거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내용을 어떻게 알았어?
누니 애기해 도떠요(누님이 저에게 얘기해 주셨잖아요).
확실히, 아르비요네는 자신이 읽은 책에서 좋았던 부분을 동생들에게 마구 떠들곤 했다. 하지만 메이브는 너무 아기라 알아듣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오웬은 반응이 없어서 안 듣는 줄만 알았다.
다 듣고 있었구나. 기뻐져서 아르비요네는 또 웃었다. 엄마가 없어서 생겼던 불안은 이곳이 꿈이라는 사실을 알자 점점 옅어졌다. 현실의 엄마는 계속 곁에 있을 테니까.
여기 그럼 진주로 만든 성도 있고 인어 왕도 있겠네? 같이 가 볼까? 우리 다이아몬드 비늘의 물고기도 잡아서 키우자!
네.
웬일이야? 나랑 잘 안 놀아 줬잖아.
같이 노고 디퍼는데, 어여더 못 했더요. 여기는 꾸니까 몸 움직여요. 같이 노아요(같이 놀고 싶었는데 몸이 안 따라 줬어요. 여기는 꿈이니까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요. 같이 놀아요).
그런 거구나! 평소 오웬에게 느꼈던 서운함이 좀 가셨다. 아르비요네는 힘차게 손을 머리 위로 들었다.
알았어! 가자!
두 아이는 그 즉시 바닷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위로는 에메랄드빛, 아래로는 사파이어빛인 물은 광대하고 맑고 온갖 신비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진주로 지은 성에는 고뇌에 빠진 인어 왕이 있었고 그의 아내가 잠든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진주조개도 있었다. 다이아몬드 비늘의 물고기가 눈부신 빛을 뿌리며 헤엄쳤고 그중 가장 작은 한 마리는 아르비요네의 품에 쏙 안겼다.
산호 군락에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소인들의 왕국이 있었고 왕국 간의 전쟁에 슬퍼하는 소인 왕자와 공주가 있었다. 두 아이가 전쟁을 멈춰 주자 왕자와 공주는 결혼식을 올렸고 감사의 표시로 무지갯빛 음료를 주었다. 음료를 마신 아이들은 잠시 소인과 같은 크기가 되어 무도회를 함께 즐겼다. 무도회가 끝나자 아이들은 다이아몬드 비늘의 물고기를 타고 소인의 왕국을 떠났다.
해구의 바닥에는 스스로 빛을 내는 문어와 그 문어를 잡으려고 삼십 년째 기회를 보는 어부가 있었다. 어부는 사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문어를 잡는 것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두 아이가 문어와 어부를 친구로 만들자 문어는 자신의 빛이 굳어서 만들어진 별모래 가루를 선물했다.
수면의 근처에는 새벽 햇살만 엮어 만든 그물로 별을 잡으려는 네레이드가 살았다. 바다의 요정 네레이드는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 수 없어 하늘을 상상할 수 없었지만 별을 사랑했다. 두 아이는 별모래 가루를 네레이드에게 선물하고 바다를 지배하는 블루 드래곤에게 치하받았다.
한껏 바다를 즐기고 나자 슬슬 아르비요네는 다른 것도 하고 싶어졌다. 마치 그 마음을 읽은 것처럼 그녀의 주위가 다시 안개로 감싸이더니 이번에는 발밑은 치즈로 만든 별이, 머리 위는 별이 가득한 우주가 되었다.
이번엔 여기서 놀자, 웨니!
다행히 오웬은 계속 옆에 있었다. 그리고 실컷 놀았는데도 아무도 아르비요네에게 식사할 시간이라거나 잘 시간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르비요네는 들떠서 소리쳤다.
놀 수 있는 만큼 계속 놀자!
엄마와 떨어져서 생긴 불안은 점점 더 옅어졌다. 누나의 밝은 표정을 보고 오웬은 웃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네, 누니(네, 누님)!
❖ ❖ ❖
“요니는 어디 이떠?”
“웨니는 어디 이떠?”
부친 되는 조이스 맥키넌 소공작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제의 질문에 유모는 식은땀을 흘렸다.
형제는 이제 세 살을 꽉 채우고도 몇 개월이었다. 빵빵한 볼에 입술은 톡 튀어나온 어린애인데도 아빠를 닮아서인지 묘하게 눈에 박력이 있었다.
심지어 한 가지에 푹 빠지면 정도 없이 빠지는 점도 아빠를 닮았다. 바로 지금처럼 아이들끼리 모여 햇빛 드는 정원에 나와 노는 시간에도, 다른 아이들처럼 강아지풀이나 개미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아르비요네 황녀를 유독 좋아하는 첫째 가렛은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하며 유모에게 또 물었다.
“요니 아딕 아파(요니는 아직 아파)?”
오웬 황자를 유독 좋아하는 둘째 자렛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하며 유모에게 또 물었다.
“웨니양, 댜레디양, 케익크 머그 껀데(웨니랑 자렛이랑 케이크 먹을 건데)?”
원래 쌍둥이는 각자 담당 유모가 있었지만 마침 자렛의 유모가 급한 용무로 자리를 비워 둘을 가렛의 유모 혼자 상대해야 했다. 유모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대답했다.
“아르비요네 황녀 저하는 어머님과 쉬신대요. 오웬 황자 저하는 낮잠을 주무신대요. 두 분, 지금은 이파 아가씨랑 리안 도련님이랑, 조이벨 도련님이랑 라라벨 아가씨랑 함께 나와 있으니 네 분과 함께 재밌게 놀아요.”
“요니양 노고 디픈데(요니랑 놀고 싶은데).”
“웨니양 노고 디픈데(웨니랑 놀고 싶은데).”
“나중에요.”
만족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형제는 일단 납득한 듯 다른 아이들과 섞였다. 유모는 식은땀을 닦았다.
아르비요네 황녀가 있으면 그녀가 아이들을 다 끌고 다녀서, 유모들은 적어도 아이들이 투정 부릴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시시한 걸로 금방 와앙 울어 버리는 아주 어린 애들도 황녀가 씩씩하게 달래면 뚝 그쳤다.
그 황녀가 없이 두 살에서 네 살짜리 아이들만 여섯을 모아 놓으니 눈으로 보기에는 병아리 떼처럼 사랑스러웠지만 하나가 떼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었다. 지금은 길가의 풀도 재미있어하고 자기들끼리 ‘이거 바’ 하며 꽃을 보여 주고 있었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과연 사촌인 이파와 리안 옆에 가서 잠깐 놀던 쌍둥이는 다시 유모에게 달려와 말했다.
“그염 메이 보여 가다(그럼 메이 보러 가자)!”
“그염 메이 보여 가다(그럼 메이 보러 가자)!”
둘은 서로를 따라 하는 것도 좋아했다. 둘이 함께 떼를 쓰기 시작하면 경쟁하듯 동작이 커져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유모는 바짝 긴장했다. 아이들이야 아직 귀족과 황족의 신분 차를 잘 몰랐으니 이렇게 말하는 거지만, 어디 아기 황녀님을 자기가 보고 싶다고 보러 간다는 말인가? 더구나 유모 따위가 인솔해서.
다행히 쌍둥이가 드러눕기 전 메이브 황녀가 정원에 등장했다.
“저도 나왔습니다.”
메이브 황녀의 유모 도라는 머리칼이 짧고 키가 큰 사람으로, 이 자리에 있는 어느 유모보다 신분이 높았다. 황궁의 시녀장인 레이디 엘렌의 측근이자 황후궁의 장이기도 했으니 어지간한 하급 귀족 부인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겨우 돌 된 아이를 돌보는 역할을 맡은 이유를 유모들은 가끔 사석에서 추측했다. 듣기로는 군인 출신 같다던데…… 역시 막내가 제일 귀엽게 보인 황제 부부가 호위 겸 붙인 것이 아닐까?
실은 청록색 눈의 막내 황녀를 제일 귀엽게 본 사람이 시녀장 엘렌이었으며 도라는 그런 엘렌의 강권에 이기지 못했음을 아는 사람은 적었다.
도라의 품에 안긴 아기 메이브가 우에, 우에, 하며 의미 모를 소리를 쳤다. 각자 모시는 주인의 저맘때를 떠올린 유모들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어쩌다 나오셨어요?”
가렛의 유모는 반가워하며 물었다. 도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황녀 저하께서 나가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어머나, 그래요.”
그렇게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한다고? 똑똑하기도 해라. 아직 말도 몇 마디 못 하는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메이브는 호아암 하품했다. 햇빛이 기분 좋은 모양이었다. 유모들은 잠시 흐뭇해한 뒤 곧 흙을 파헤치기 시작한 각자의 주인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