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ce Is Everything To You RAW novel - Chapter (302)
대가는 너희의 모든 것 302화(302/302)
외전 15화 – 나야 언제나
치즈로 만든 별과 오로지 향기로만 만들어진 세상, 그리고 밟을 때마다 색이 변하는 모래가 가득한 사막과 장난감이 살아 움직이는 세계.
아르비요네가 읽은 책에 나오는 세상과 책에서 읽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상상해 본 적 있는 세상이 차례로 지나가며 그녀를 즐겁게 했다. 모든 세상은 구석구석 흥미로운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었고 실컷 놀았다 싶으면 곧 다른 놀거리가 나타났다.
얼마나 놀았는지 헤아릴 수도 없었다. 아르비요네는 실컷 뛰고 날고 뒹굴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옆에는 동생 오웬이 있었다.
재밌다! 재밌어, 웨니! 그치?
네, 누니.
아르비요네는 동생과 이렇게 많은 곳에 함께 가본 것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동생이 지금처럼 많이 웃는 모습 역시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발을 구를 때마다 음악이 나오는 푹신푹신한 쿠션을 밟으며 놀던 아르비요네는 문득 지쳐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아까부터 누가 보는 것 같지 않아?
이상했다. 이곳은 그녀의 꿈이었고, 오웬의 말에 따르면 키언 님이 이곳에 들여보내 준 사람은 오웬뿐이었다. 그런데 누가 또 있다는 말인가? 또 꿈속 등장인물인가?
꿈속 등장인물들과 모험하는 건 이제 충분했다. 아르비요네는 혼낼 어른이 없는 틈을 타서 바닥에 누워 빠르게 뒹굴거렸다. 마침 주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침대였다.
웨니, 내가 나중에 꿈에서 깨도 나랑 또 놀 거지?
고심 끝에 나온 질문에 오웬은 수줍게 웃었다.
네, 누니.
빨리 커야 돼, 알았지? 그래야 나랑 체스도 두고 달리기도 하지.
네, 누니. 같이 마이 노아요(네, 누님. 같이 많이 놀아요).
두 사람이 마주보고 다정하게 웃는데 다시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아르비요네는 침대에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그리고 이쪽을 보는 청록색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으아아악!
너무 놀라 아르비요네는 비명을 질렀다. 처음에는 혼자 동동 떠 있던 청록색 눈은 아르비요네가 쳐다보자 그 주위에 장난감 병정의 얼굴이 생겼다. 그 얼굴 아래 순식간에 몸이 자라났고 팔다리도 만들어졌다.
저게 뭐야!
허공에 뜬 장난감 병정은 진짜 장난감 병정의 두 배 정도 크기에 불과했다. 그것은 아르비요네의 비명에 움찔해 이쪽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잠깐, 청록색 눈? 오웬이 인상을 썼다.
메이?
우리 막내 메이브? 아르비요네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꿈은 편리해서 푹신한 침대에서도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시켜 주었다.
메이? 너야? 진짜?
장난감 병정은 허공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남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뻣뻣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다리를 굽혔다 폈다 하며 팔을 들썩거리는 그 어색한 춤은 메이가 가끔 기분 좋으면 보여 주는 그것이었다. 아르비요네는 까르르 웃었다.
어떻게 들어왔어!
장난감 병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메이브처럼 그 병정도 말을 잘 못 하는 모양이었다. 아르비요네는 기분이 좋아져서 장난감 병정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잘 왔어, 같이 놀자!
장난감 병정은 고개를 또 끄덕였다.
아르비요네가 또 놀 마음을 먹었기 때문일까, 주위는 침대에서 좀 더 모험할 만한 장소로 바뀌었다. 새까만 우주에 발광하는 별이 가득하고 은으로 만든 배 같은 것이 마구 떠다니는 곳이었다.
세 아이의 손에 검이 쥐어졌다. 배에 타고 있을 하늘 해적들과 싸우기 위해 세 아이는 용감하게 함성을 지르며 달려 나갔다.
❖ ❖ ❖
“이런, 꼬마에게 생각도 못 한 재능이 있었구나.”
차를 마시던 키언이 갑자기 탄식하듯 말했다.
아르비요네가 낮잠을 자고 나서 약 한 시간이 흘렀다. 역시 잠든 오웬을 키언이 안고 와 아르비요네의 옆에 눕히고 나서 네리스와 클레드윈, 그리고 키언과 에르발은 함께 차를 마시게 되었다.
네리스는 아르비요네와의 약속이 있어 아이의 손을 놓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키언은 약속을 존중했다. 그렇게 키언이 만들어낸 소음 차단의 마법 막 안에서 네 사람은 편안히 대화를 나누었다. 침대 옆에 티테이블을 차려 놓고서.
“어떤 꼬마? 또 예상외의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
아르비요네에게 생각보다 큰 이상이 생겼었다는 사실에 아직 화가 난 클레드윈이 방어적으로 물었다. 키언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예상외기는 하나 네가 화낼 일은 아니란다, 팔로스의 아이야. 다만 너희 막내 말이다.”
“우리 메이가 왜?”
“아무래도 대마법사의 재능이 있나 보구나. 누이의 꿈에 멋대로 끼어들었어.”
하기야 보석안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본인이 보석안의 개화는 하지 않더라도 남보다 마력이 많겠지. 키언은 본인이 다 흐뭇하다는 듯 기분 좋게 말하고 허공에서 찻주전자를 꺼냈다.
춤추는 찻주전자가 역시 춤추는 찻잔에 은빛 액체를 따랐다. 그 액체에 익숙한 네리스와 클레드윈은 얌전히 차를 받아 마셨다. 에르발의 초록색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드래곤의 마법에 인간이 낄 수 있단 말입니까?”
“무어, 꿈 자체는 작은 엘란드리아의 것이 아니냐. 작은 팔로스가 들어간 것이 내 마법이지. 엘프의 힘이니 네게 도움도 좀 받았고. 막내 꼬마가 보기에 언니와 오빠가 저들끼리 노는 것이 부러웠던 모양이지?”
“이번에도 뭔가 흔적이 남거나, 혹 메이에게 이상이 생기는 건.”
“속고만 살았느냐, 팔로스의 아이야. 문제없다. 작은 엘란드리아가 실컷 놀았을 즈음 작은 팔로스가 가진 여분의 힘도 다 썼을 테고, 그러면 꿈에서 깨며 다들 원래대로 돌아올 게다.”
한동안 셋 다 좀 들떠 있겠다만. 키언이 잠깐 생각한 후에 덧붙였다. 이번에는 네리스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키언은 아르비요네도 괜찮을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씀하신 한동안이 혹 위대하신 드래곤의 기준으로 한동안인 것은.”
“아니야. 내 너희를 도와주고 너희 아이가 잘 자라도록 이리 돌보아 주기까지 했거늘, 의심하다니 발칙하도다.”
키언은 약간 신경질을 냈지만 정말로 약간이었다. 클레드윈은 그제야 안심하고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봉인에서 풀어 줬잖나.”
“넌 죽을 때까지 그리 말하겠구나, 팔로스의 아이야.”
그러나 클레드윈의 말이 틀리지도 않았다. 키언은 결국 웃으며 아이들 쪽을 흘긋거렸다.
“드래곤의 삶에서 저 아이들이 자라고 늙기까지는 눈 깜짝할 새. ……몇 번이나 더 볼지 모르겠다만 지금은 귀엽구나.”
그러면서 그녀가 또 올 것임을 그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 ❖ ❖
실컷 꿈에서의 모험을 즐기고 난 아르비요네는 천천히 눈을 떴다.
“하아암.”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 몸을 일으켜 보니 창밖은 여전히 밝았다. 엄마도 잡았던 손을 놓지 않은 상태였다.
음, 역시 손을 놓지 말라고 한 건 너무 아기 같았지? 난 완전 큰언닌데 말이야.
아르비요네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엄마의 손을 놓았다. 이제는 그래도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르비요네의 이마에 키스하고 다정하게 웃었다.
“잘 잤니, 내 사랑?”
“응! 엄마, 나 좋은 꿈 꿨어.”
“그래? 어떤 꿈이었는데?”
“음, 음…… 몰라. 그냥 좋은 꿈이었어.”
깬 직후에는 어떤 내용이었는지 대강 기억나는 것 같았는데, 구체화해 입에 담으려 하자 안개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무튼 정말 즐거운 꿈이었던 것만큼은 확실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하자 이번에는 지난 이틀간 본인이 보인 태도가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아르비요네는 자신이 왜 엄마에게 그렇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엄마가 좋으니까 엄마랑 붙어 있는 것도 좋지만…… 동생들 앞에서 그렇게 아기 같은 모습을 보이다니!
이래서야 어느 동생이 그녀를 대장이라고 인정하겠는가?
눈을 동글동글 굴리며 생각에 잠긴 그녀를 네리스는 잠시 관찰하듯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딸이 완전히 평소와 똑같은 모습을 회복했다는 생각이 들자 쿡쿡 웃음을 흘렸다.
“좋은 꿈이었으면 됐네.”
“으음…….”
그때 아르비요네의 옆에서 누군가 잠꼬대를 했다. 깜짝 놀라 옆을 본 아르비요네는 어느새 동생 오웬이 거기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자기 전보다 어쩐지 동생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르비요네는 오웬을 위에서 끌어안았다.
“귀여워.”
“동생이 귀여워?”
“응. 웨니는 착해.”
역시 깰 때가 되었었는지 오웬은 엄마와 누나가 그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눈을 부스스 떴다. 오웬의 작은 입이 아아암 하며 하품했다.
“잘 잤니, 웨니?”
아르비요네는 엄마가 오웬의 이마에도 키스해 주는 것을 큰언니의 관대한 마음으로 흐뭇하게 보아주었다. 사실은 동생이 없었으면 엄마의 키스는 다 그녀의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키스를 혼자 독점하는 것보다 동생들과 나누는 게 더 좋았다.
큰언니의 마음이 어찌나 넓은지, 아르비요네는 오웬의 이마에 자신도 키스해 줄 마음이 들었다. 오웬은 누나가 자신을 끌어안고 쪽 뽀뽀해 주자 배시시 웃었다.
“누님.”
“어!”
아르비요네는 눈을 크게 떴다.
“웨니가 제대로 발음했어!”
어차피 ‘눈니임’에 가깝긴 했지만 ‘누니’보다는 훨씬 옳은 발음에 가까웠다. 오웬은 또 배시시 웃었다.
이상했다. 오웬이 이렇게 웃는 모습을 아르비요네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이미 몇 번은 본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
네리스는 두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지금 애들은 정원에서 노는데, 슬슬 씻고 차 마실 거래. 낮잠 잤으니까 옷 갈아입고 세수하고 차 마시러 갈까?”
“네!”
“네에!”
두 아이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합창했다. 곧 두 아이의 유모들이 들어와 몸단장을 도와주었다.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빗은 다음 아이들은 신나게 방을 나섰다. 네리스는 요사이 아르비요네가 자신에게 딱 붙어 다니느라 처리하지 못한 공무가 있었기 때문에 따라갈 수 없었다. 아이들을 배웅하고 혼자 남은 그녀는 안도하며 잠시 그저 앉아 있었다.
곧 그런 그녀의 귀에 ‘똑똑’하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미테리아의 황후에게 굳이 저런 식으로 본인의 존재를 알리는 사람은 대륙을 통틀어 하나뿐이었다. 네리스는 웃으며 문 쪽을 보았다. 예상대로 그녀의 남편이 서 있었다.
“평안하시옵니까, 폐하?”
가끔 기분이 내킬 때면 쓰는 말투로 물으며 클레드윈은 과장되게 허리를 숙였다. 네리스는 양팔을 뻗어 그에게 잔말 말고 이리 오기나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는 말을 잘 들었다. 곧 남편의 품에 폭 안겨서 들어 올려진 네리스는 쿡쿡 웃음을 흘렸다.
“갑자기요? 나 이따 회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폐하. 한 시간 뒤가 아닙니까?”
한 시간이면…… 하고 그는 장난치듯 침대를 턱짓했다. 네리스는 의혹을 품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기운이 있어요?”
“나야 언제나.”
“난 지쳤어요.”
“그러면 가만히 있으면 되겠군.”
네리스가 어이가 없어 웃는 사이 등이 침대에 닿았다. 그녀의 입술이 곧 뜨거운 숨에 삼켜졌다.
대강 회의를 위해 머리를 빗고 옷매무시를 다듬을 때 필요할 정도의 시간을 남기고 두 사람은 짧은 둘만의 시간을 즐겼다. 네리스는 일어서기 전 클레드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나른하게 말했다.
“이번엔 정말 가슴이 철렁했어요.”
“그랬지.”
“이번 일은, 그래요, 어쩌면 우리가 예상했어야 하는 고난이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앞으로도 아이를 키우면서 놀랄 만한 문제는 계속 생기겠죠?”
“어쩌면 이번 일이 가장 해결하기 쉬운 문제였을지도 모르지.”
“현실성이 있군요. 이번에야 드래곤의 마법과 웨니의 힘으로 해결 가능했지만 분명히 그런 방법으로는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테니까요.”
“그렇지. 그나마 웨니가 의젓했는데, 이제 엘프의 힘을 다 써서 보통 아이와 비슷해질 거라고 하고.”
“내가 읽은 기록들에 따르면요, 역대 대마법사들은 자라면서 사고를 그렇게 쳤대요. 넘치는 마력을 본인이 주체를 못 한다나, 뭐라나.”
“음, 정말 끔찍한 전망이군.”
정말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지 뭔지 클레드윈은 아내의 허리나 쓰다듬었다. 네리스는 이대로 잠들고 싶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클레드윈은 조용히 물었다.
“그래도 행복해?”
“행복하냐고요?”
네리스는 눈을 떴다.
조용한 침실. 따사로운 햇살. 밖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이 집의 연회장은 지금쯤 눈이 동그란 꼬마들의 손에 마음껏 망가지고 있을 터.
그러나 그녀가 평생 원해 왔던 것이야말로 바로 이런 순간 아니었던가?
그러므로 그녀는 확신에 차 말할 수 있었다.
“행복해요.”
부부는 눈을 마주치고 함께 웃었다.
대가는 너희의 모든 것 외전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