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0)
10 화 두 번째 권능.
두 번째 권능.
얼굴을 비추는 제 용도로 쓰기에는 지극히 불투명한 거울.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보았지만,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지금 저 멀리서 날뛰는 악마의 머리통에 꽂혀있는 검이 악마를 잠재우는 데 사용하는 검이라고 들었으니, 아마 이 거울이 악마의 정체를 드러내는 성물일 터.
사실, 이 거울의 용도 따윈 내게 전혀 안 중요했다.
‘살해!’
“안 그래도 얼른 흡수하려고 했습니다. 어머니.”
거울을 바라보며 부패의 어머니를 향한 기도를 조용히 올리자, 거울에서부터 어두운 녹색 빛이 천천히 흘러나와 내 몸과 어머니의 손으로 스며들었다. 거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멎자, 나는 두 눈을 감고 내면으로 침전했다.
[신성 : 11723]역시 봉인된 성물 하나는 딱 권능 한 개 어치인 1만의 신성을 품고 있는건가. 가라앉았던 정신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나는 품속에서 어머니의 손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어머니. 또 하나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혹시 어떤 변화가 있으신 건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살해!’
지금 파악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에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어머니의 말을 기다렸다. 어차피 지금의 난 아까의 낙하하던 와중 두 다리가 뭉개진 탓에 다리의 재생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잠시의 기다림 뒤에 어머니가 천천히 제 의지를 건네오셨다.
‘살해!’
“네? 그게 정말입니까?”
‘살해!’
내 손아귀에서 떨어진 어머니의 손이 손가락을 꾸물대며 기어서 나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곤 힘들다는 듯이 바닥에 털썩 쓰러지고는 내게 의지를 보내오셨다.
‘살해!’
나는 바닥을 기어서 어머니의 손을 집어 다시 품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의지를 보내실 수 있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긴 합니다만···. 성물 하나의 봉인을 푼 것치고는 그 성과가 너무 빈약한 것 아닙니까? 아니, 분명 빈약합니다. 이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
‘살(殺)!’
어머니의 호통 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
“말할 수 있는 종류가 조금 늘긴 하셨군요. 장족의 발전이십니다. 한 글자씩 끊어 말하실 수도 있게 되셨다니요. 이 아들은 어머니의 성장에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살해!!!’
놀리지 말라며, 어머니의 손이 격렬하게 버둥댔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슬슬 어머니를 놀리는 건 여기서 그만두는 게 좋겠군요.”
나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기도했다.
“부패의 어머니시여. 일만의 신성을 바치겠습니다. 새로운 권능을 내려주십시오.”
내면의 신성 수치가 급속하게 떨어지며, 새로운 권능이 내 몸에 깃들었다.
권능이 흘러들어옴과 동시에, 이 권능이 어떠한 효능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뇌에 새겨졌다.
‘살해…?’
“흐음. 나쁘지 않은 권능입니다. 어머니. 지금 상황에서도 꽤 쓸만하고요.”
내가 이번에 일만의 신성을 바치고 새롭게 얻은 권능은 ‘부패의 문(文)’.
이 권능의 효능은 아주 간단하고 강력했다. ‘부패의 문(文)’은 권능을 발동시키는 순간, 내 전신 피부 위로 빼곡히 암녹빛 형이상학적인 문신이 나타나 안 그래도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내 신체능력을 더욱 증폭시켜주는 권능이었다.
다만, 이번 권능은 ‘부패의 거인’과는 달리 단순히 내게 유익하기만 한 권능이 아니었다. ‘부패의 문(文)’의 대가는 능력만큼이나 아주 간단했는데, 이 권능을 사용해 내 육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동안 나는 내장부터 천천히 썩어들어가야만 했다. 속에서부터 나를 좀 먹은 부패가 겉으로 드러날 때쯤엔 전투불능상태에 빠질 게 뻔했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이거 한 번 쓰면 내장이 재생될 때까진 꼼짝없이 속이 잔뜩 쓰리겠습니다. 어머니.”
‘살해…’
나는 가슴 주머니를 톡톡 두드려 어머니를 달랬다.
“어머니. 어머니께선 제게 전혀 미안해하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어차피 권능이란 건 제가 원해서 쓰는 것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쓸 수 있는 수단은 다양한 것이 항상 좋습니다.”
마침 뭉개졌던 다리의 재생이 끝났다.
– 가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저 멀리서 아직도 난동을 피우고 있는 악마를 바라보았다.
“이제보니 굉장히 이상하군요.”
‘살해?’
악마의 화를 이끌어낸 교화교 사제들이 다 죽은 지금에도 악마가 저리 짐승처럼 날뛰고 있는 것은 이상해도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악마는 자신의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기는 짐승이 아니었다.
지금까진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흘러가서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뭉개진 다리를 재생하는 동안에 생겼던 찰나의 휴식이 작금의 상황을 분석할 기회를 주었다.
이윽고,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어머니.”
‘살해?’
“조금 흔들릴지도 모릅니다. 주머니 꽉 붙들어 매고 계시길.”
‘살해?!’
***
부서진 잔해 위를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질주했다. 피부 위를 빼곡하게 뒤덮은 암녹빛 문신에서 부패의 신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인간의 힘을 아득히 뛰어넘은 각력으로 마르낙이 대지를 박찰 때마다 그는 한줄기 선이 되어 악마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 가아아아아아!
거대한 검은 악어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커다란 눈을 데굴 굴려 주변을 살핀 악마가 이 불길한 느낌의 원인을 찾아냈다.
자그마한 생물 하나가 자신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악마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대응했다. 그의 묵직하고 커다란 꼬리에 잔뜩 힘을 실어서 불쾌한 생물을 향해 휘둘렀다. 무지막지한 꼬리는 닿는 모든 것들을 거침없이 부수며 자그마한 생명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마르낙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다리 근육이 한계까지 힘을 품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 힘을 터뜨렸다. 마르낙의 몸이 거침없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거대한 꼬리는 간발의 차이로 마르낙에게 닿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서 거침없이 지나가는 검은 꼬리. 마르낙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내뻗어 악마의 꼬리에 매달렸다. 그리곤 벌떡 일어나 악마의 몸 위를 타고 머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악마는 자신의 앞발을 내뻗어 등위를 질주하는 미물을 긁어내려고 하다가 치명적인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악어는 자신의 등을 긁을 수 없었다.
신체 구조상 한계에 맞닥뜨린 악마는 결국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다시 한 번 거대한 몸을 뒹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이 재빠른 미물도 아까 자신을 잔뜩 아프게 했던 금속 덩이 미물처럼 이 몸에 짓눌려 죽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마르낙이 내달리고 있던 검은 몸뚱이가 점점 기울어졌다. 하지만 이것 또한 예상했던바. 마르낙은 미련없이 악어의 등에서 뛰어내려 대지에 착지했다. 무릎을 타고 아릿한 통증이 타고 올랐지만, 권능으로 증폭된 신체는 다행히 낙하의 충격을 버텨주었다.
“쿨럭.”
기침에 섞여 썩어버린 내장 파편이 튀어나왔다.
“이거 예상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군요. 아무래도 오래 쓰긴 힘든 권능인 거 같습니다. 어머니.”
멈춰 있을 시간이 없었다.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대지를 뒤덮어갔다. 마르낙은 뒤에서부터 굴러오는 악마의 거대한 몸뚱이를 피해 다시 무너진 잔해 사이를 질주했다.
거대한 몸뚱이가 귀스의 거리를 흔적도 없이 무너뜨렸다.
마르낙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한 바퀴 신나게 구르고 다시 악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때.
어느새 악마의 앞발까지 내달린 마르낙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날듯이 떠오른 사제의 손이 악마의 앞발에 닿았다. 그는 나무를 타고 오르는 원숭이처럼 거침없이 악마의 울퉁불퉁한 가죽을 타고 올랐다.
– 가아아아아아아!
아무리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 미물 탓에 악마는 더없이 심한 분노를 느꼈다. 괴성을 내지른 악마는 다시금 거대한 몸뚱이를 기울였다.
한 번으로 부족하다면, 몇 번이고 굴러서라도 이 미물을 떨어뜨리고 말리라.
또다시 기울어지는 몸.
하지만 마르낙은 아까와 달리 악마의 몸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 벌써 악마의 목까지 도달한 그의 두 눈에 저 멀리 정수리에 꽂혀 있는 백색검이 비쳤다.
“하아아압!”
부패의 사제는 기울어지는 바닥 위를 미끄러지듯이 내달려 펄쩍 뛰어올라 손을 내뻗었다. 마르낙의 손이 거칠게 백색 검을 움켜쥐었다.
여기서 단 한 치만 더 밀어 넣으면 악마는 제 세계로 끌려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마르낙은 검을 밀어 넣지 않았다. 대신 움켜쥔 검을 그대로 악마의 정수리에서 거칠게 뽑아냈다.
“일어나십시오!”
– 가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검은 악어의 몸이 무너져내렸다. 마르낙과 함께 추락한 검은 살덩이들은 부드러운 쿠션이 되어 마르낙의 몸으로 향하는 충격을 흡수했다.
다시금 벌떡 일어난 마르낙이 검은 살점 덩어리를 파헤쳤다.
그리곤 마침내 찾아낸 악마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정신은 좀 드셨습니까?”
악마는 비어있는 한쪽 안구를 살짝 찡그리곤 유쾌하게 웃었다.
“사제님과 만난 건, 아무래도 제게 있어 정말로 큰 홍복이 아닐 수 없군요!”
***
악마는 대화를 사랑하고 내뱉은 언어의 교류를 즐겼다.
무슨 연유로 분노했든, 말 한마디 않고서 괴성만 지르며 날뛰는 건 이상하고도 이상한 일.
악마의 상태를 찬찬히 살펴본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무언가 악마의 지성을 강제로 억누르고 있었다.
저 거대한 몸뚱이에서 제 것이 아닌 것은 정수리에 박힌 백색 검이 유일. 그렇다면 이야기야 간단했다. 저 새하얀 검이 바로 악마의 지성을 억누르는 족쇄였다.
그래서 나는 백색 검을 더 깊숙이 밀어 넣는 대신, 뽑아냄으로써 악마의 지성을 일깨웠다.
한쪽 눈과 양다리, 그리고 왼쪽 팔을 잃어버린 악마가 눈물을 흘리며 한탄했다.
“너무합니다. 참으로 너무합니다. 귀스는 제가 지난 40년 동안 애지중지 가꿔온 도시이건만. 그걸 제 손으로 무너뜨리게 하다니요.”
나는 악마의 옆에 주저앉아서 말을 받았다. ‘부패의 문(文)’의 여파로 속이 뒤집혀서 도저히 서 있기가 힘들었다.
“무너진 건 다시 세우면 되는 거지요. 이김에 도시구획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게다가 자세히 보면 외곽쪽 건물들은 제법 멀쩡합니다.”
악마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사제님 말씀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나저나 슬픔이란 건 역시 너무나 짜릿한 감정입니다. 이토록 제 가슴을 덜컹거리게 하니까 말입니다! 하하하하! 그런데 혹시 하나만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물어보셔도 괜찮습니다.”
눈알을 잃어 새빨간 살덩이만 있는 눈구멍이 나를 향했다.
“어째서 저를 도우셨습니까?”
“저한테 금화 두 닢을 주셨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뭔가를 받았으면 받은 만큼은 되돌려줘야지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어떻습니까? 제 금화 두 닢어치 도움이.”
악마도 히죽 웃었다.
“아주 차고 넘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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