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04)
104 화 기사.
기사.
“아버지께요…?”
다키아는 당연히 바보가 아니었고, 지금 당장 미소공에게 찾아가자는 내 말의 뜻을 전부 이해했다.
“마르낙 사제님은 제 아버지가 이번 일의 배후에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이번 일의 배후에 미소공께서 계시기보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원인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사람 중 한 분이신 거지요. 공녀님께서도 이미 대충 눈치채시지 않습니까?”
나는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정확하게 내 의견을 꺼냈다.
“저희가 극장에서 벗어나 이곳까지 오면서 다른 시민들과 달리 단 한 번도 그 고깃덩어리 나무들에게 습격받지 않은 것. 며칠 전부터 마치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경고해 온 공녀님의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밥을 먹지 말라고 구체적으로 조언한 미소공. 하나하나 따로 떼어 놓고 봐도 충분히 수상할 만한 일이 벌써 세 개나 겹쳤습니다. 이젠 의심하지 않는 쪽이 멍청하다고 느껴질 만큼이나요.”
내 이야기를 다 들은 다키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 찾아가도록 해요.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떤 걸 말씀이십니까?”
“제가, 제가 먼저 질문을 해도 괜찮을까요? 저는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가슴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거든요. 저희 아버지, 미소공께서는 자신이 다스리는 이들을 품 안에 넣고 애지중지 아끼시는 분이 아니시긴 했지만 영지민들의 아픔을 외면하시는 분도 아니셨어요. 이렇게 대규모 학살이 일어날 걸 방관하고 계실 분이 아니셨다고요!”
격앙된 목소리. 처음 시작은 조곤조곤했지만, 결국 그녀는 북받친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오빠나 아버지가 이런 잔인한 일을 벌이지 않았으리라고 믿은 탓이겠지.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며 빙그레 웃었다.
“아직 확정 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단은 진정하시지요.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미소공께서는 이번 일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지만, 힘이 부족해 실패하신 걸지도요.”
숨을 고른 다키아가 내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럴 확률이 낮다는 건 마르낙 사제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이제 와서 보니 알겠어요. 아버지는 아무리 좋게 봐도 최소 방관에, 심할 경우 이번 일을 벌인 악신의 숭배자들과 협력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오빠는… 솔직히 아직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두 분 다 공녀님을 어떻게든 이번 일과 관련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셨으니, 적어도 두 분은 공녀님을 소중히…”
“그게 더 역겨워요.”
다키아는 그녀답지 않게 내 말을 날카롭게 끊고는 이를 악물었다.
“혈육만을 지키며 이 땅의 백성들을 외면한다? 그건 이르멜이 아니에요. 어떤 이유로든 백성들의 피를 방관한 이상, 제가 태어나서 자라 오는 동안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던 이르멜의 이름을 흙발로 짓밟은 거나 다름없어요.”
짧게 숨을 고른 그녀는 무척이나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바로 출발해요.”
아무래도 다키아는 경우에 따라 아버지마저 베어 낼 각오를 끝마친 듯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 쟈멜을 데리고 가도록 하죠. 제가 밥을 먹지 말라고 했으니, 쟈멜도 분명 멀쩡할 겁니다.”
“네.”
평소에 허당처럼 보이긴 했어도, 어머니의 평가에 따르면 쟈멜 또한 한 명의 어엿한 악신의 숭배자로서 한 명 몫의 전투력은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었다.
결단을 끝마친 우리는 빠르게 발을 놀려 곧장 임시 배식소로 향했다.
쓰러져 있는 시민들. 배식소로 다가갈수록 더욱 많은 이들이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아직 이들의 몸에 이상한 징후가 발견되거나 새로운 고깃덩어리 나무가 돋아나 이들을 공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불상사가 벌어지기 전에 더욱 빨리 미소공을 찾아가 봐야만 했다.
“저기. 저기 쟈멜이 있어요.”
다키아가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 곳에는 자그마한 몸집의 쟈멜이 주황 머리를 휘날리며 바삐 몸을 놀리고 있었다.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은 아주 간단했다.
식판에 코를 박고 쓰러져 있는 시민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고개를 살짝 돌려 주는 것. 나는 마침내 마지막 시민의 머리를 돌려 주고 무척이나 뿌듯한 표정으로 이마의 땀을 닦고 있는 쟈멜을 불렀다.
“쟈멜!”
“앗! 마르낙 사제님!!!”
그녀는 우리를 향해 쪼르르 달려와서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두 분은 안 쓰러졌을 줄 알았어요! 저 진짜 완전 곤란했어요! 마지막 배식을 다 끝내고 저희 배식 담당분들끼리 오손도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거든요? 아, 저는 마르낙 사제님이 미리 언질을 주신 대로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하여튼, 다들 한두 입씩 먹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전부 차례대로 픽픽 쓰러지는 거예요! 진짜 엄청 놀랐다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설명. 여기서 그녀의 말을 멈추지 않고 가만히 놔뒀다간 하루 종일이라도 떠들 기세였기에 나는 잽싸게 말을 건넸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상황이 여유로워지거든 그때 듣도록 하죠. 지금은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일단 따라오시죠.”
“넵!”
쟈멜은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냉큼 우리에게 합류했다.
“그런데 사지타나 카르멘, 테르지오는 못 보셨습니까?”
“아마 외곽에서 경계를 서느라 아직 안 돌아온 거 같아요.”
“경계를 나가는 사람들은 뭘 먹습니까?”
“육포 같은 걸 챙겨 간 거로 알아요! 대충 끼니를 때우려고요!”
미소공이 우리에게 경고를 했던 대상은 이들이 준비한 식사뿐일까. 아니면 여기 보관하고 있던 식량 전부일까.
지금의 우리로선 그 답을 알 수 없었다. 여기서 어디 있는지 모를 카르멘이나 사지타를 찾으러 가기보단 당장 미소공을 찾아가는 편이 훨씬 동선이 짧고 대상이 확실하기도 했고.
둘이 무사하길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자꾸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상황에 묘한 짜증이 났다. 진심으로 굉장히 거슬렸다.
나는 다키아와 쟈멜을 보고서 빠르게 말했다.
“일단 다시 출발합니다. 당장 손을 써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군요.”
우리는 임시 배식소를 떠나 미소공이 거처로 삼고 있는 베아투스의 감옥을 향해 이동했다. 쟈멜은 내 눈치를 슬쩍 보곤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지금 저희 어디로 가는 거예요?”
“미소공께 갈 겁니다.”
“네?! 미, 미소공께요? 제가 아는 그 미소공 맞죠? 이 도시의 지배자! 그 사람이 이 사건의 범인인 거예요?!”
“그건 아직 모릅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 드릴 테니 일단은 최대한 빨리 이동하는 데 집중하도록 하죠.”
“넵!!!”
쟈멜의 힘찬 대답과 동시에 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모두 이만 돌아가시지요.”
노년과 중년. 그 사이에 걸쳐진 건장한 사내. 그는 자신의 굵은 손바닥을 검 손잡이에 올려 둔 채 길 한복판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하얀 갑옷을 입은 미소공의 심복, 더글렉 마틴 경은 누구보다도 당당한 자세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내가 아닌 다키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말씀하시길, 조금 바쁜 일이 생겨 오늘 약속했던 저녁 식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고 하셨습니다.”
다키아는 더글렉을 노려보며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어쩌란 거죠? 저는 지금 당장 아버지를 만나서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신 건지 그 입으로 들어야겠어요. 아니면 마틴 경께서 그 입으로 직접 우리에게 진실을 고하시든가요.”
더글렉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제가 공녀님께 딱히 설명해 드릴 이야기는 없군요. 저는 그저 두 분께 오늘 저녁 식사가 취소되었음을 알려 드리러 온지라. 그리고 미소공께선 지금 무척이나 바쁘셔서 그 누구도 만날 생각이 없으십니다. 그러니 두 분께선 왔던 길을 되돌아가시길.”
다키아의 황금빛 눈동자가 선명한 분노로 일렁였다.
“더글렉 마틴!!! 네가 내게 설명할 이야기가 없다면! 지금 당장 비켜!!! 나는 이르멜로서 이 베아투스 위에 벌어지고 있는 사태의 진상을 알 권리가 있으니까! ”
그 성난 호령에도 노기사는 몸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천천히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제 주군께선 제게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닿게 하지 말라,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다키아 아가씨의 말씀을 들어 드릴 수는 없겠군요. 그리고…”
후웅.
“다키아!!!”
나는 빠르게 손을 뻗어 다키아를 잡아당겼다. 다키아의 목이 있었던 자리 위로 은빛 금속이 반짝였다.
다키아는 더없이 놀란 눈으로 눈앞의 노기사를 바라보았다. 나는 품에 안았던 그녀를 놓아 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전투를 피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더글렉 마틴. 저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키아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게 내 반응 속도를 고려한 판단이든 아니든, 적어도 내가 봤을 때 그의 검에는 한 점 망설임이 담겨 있지 않았다.
‘살해!!!’
어머니께서 저 남자의 손가락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고 내게 경고해 왔다. 극장에서 만났던 아도라라는 이름의 괴물처럼. 저 더글렉 마틴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던 괴물이었다.
이로써 미소공을 향한 의심은 현실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최악의 형태로.
“다키아. 아무래도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다키아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쉴 새 없이 입술을 달싹이며 고대어를 내뱉고 있었다.
더글렉 마틴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토록 마법을 쓰길 싫어하시더니, 어느새 마법사가 다 되셨군요. 하지만…”
콰앙!
자리를 박찬 노기사가 다키아를 향해 쇄도했다.
“이 간격에서 주문을 외우는 건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공녀님!!!”
왜애애애애앵!!!
내 손등에서 튀어나온 도살자가 울부짖었다. 나는 그대로 도살자를 휘둘러 다키아를 향해 덮쳐 오는 더글렉의 검을 쳐냈다.
까앙!!!
회전하는 이모탈리움 톱날과 맞부딪힌 검의 날이 갉혀 나갔다. 더글렉은 부드럽게 검을 흘려 그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빠르게 발을 틀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겁니까?”
그는 마치 갑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무척이나 부드럽게 발을 놀려 내 빈틈을 파고들어 왔다.
선명한 암녹빛이 내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부패의 문을 따라 증폭된 내 몸이 거침없이 도살자의 궤도를 꺾어 더글렉의 검을 향해 나아갔다.
예측을 벗어난 공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들림 없이 무척이나 노련하게 대처했다.
까앙!!!
더글렉은 놀고 있던 주먹을 휘둘러 정확하게 도살자의 옆면을 후려쳤다. 이모탈리움 톱날과 정면으로 맞부딪히는 대신, 도살자의 궤도를 비틀겠다는 의도. 그리고 그 의도는 정확하게 내 공격을 비틀었다.
“하압!”
나는 그 기예에 다다른 대처에 미련 없이 도살자를 놓아 버리고 그대로 발을 뻗었다. 채찍처럼 휘둘러진 발이 정확하게 더글렉의 옆구리에 박혀 들었다.
콰아앙!!!
부패의 문으로 한계까지 증폭된 발차기.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노기사의 몸이 튕겨 나갔다.
“더글렉!!!”
날 선 목소리와 함께 다키아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선명한 푸른 뇌전이 다키아의 손끝을 타고서 더글렉의 몸을 향해 나아갔다. 뇌전이 기사의 갑옷을 지져 버리자 매캐한 살타는 냄새가 퍼져 나갔다.
“죽이신 겁니까?”
다키아는 고개를 저었다.
“안 죽었을 거예요. 일부러 위력을 조절했거든요. 무력화만 시키려고요. 그래도 한동안 깨어나지는 못할…”
부스럭.
여기저기 그을린 노기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다키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녀님께서 자꾸 제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시는데, 저는 여전히 미소공 칼토 이르멜의 기사입니다.”
그을린 갑옷의 틈새로 살점 덩어리들이 부풀어 올라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는 변화하는 와중에 기괴한 울림을 담은 목소리로 또렷하게 말했다.
[기사에겐 ‘경’을 붙여 존중을 표하십시오. 공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