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05)
105 화 개똥도 약에 쓴다…?
개똥도 약에 쓴다…?
흘러넘치는 푸른 살덩이들. 더글렉의 몸을 보호하던 새하얀 갑옷들이 흘러넘치는 살들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더글렉은 우리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모든 변화를 끝마치고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몸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새파란 팔들. 이음매가 뜯긴 갑옷들이 푸른 살덩어리 겉에 박혀서 간신히 기사의 형태를 유지했다.
그는 어두운 청남색 두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망치시겠다면 굳이 쫓지는 않겠습니다.]마치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에는 듣는 사람의 기분을 더럽게 하는 무언가가 잔뜩 묻어 있었다.
다키아는 비웃음이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지극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영락한 모습이 여태 숨기고 있던 당신의 진짜 모습인 거예요? 정말 꼴불견이네요. 더글렉 마틴.”
대충 어림잡아도 족히 3미터는 넘는 몸통 위에 달린 머리가 천천히 좌우로 흔들렸다.
[저는 분명 공녀님께 마땅한 존중을 부탁드렸습니다만.]“지금 이렇게 대규모 학살을 저질러 놓고도 당신에 대한 존중 타령? 그게 당신의 같잖은 기사도라면 여태 당신을 한 명의 훌륭한 기사로 봐 왔던 과거의 저 자신이 너무 부끄럽네요. 정말로요.”
푸른 살덩어리 기사로 변한 더글렉은 다시 한번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녀님께선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무것도요.]다키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설명을 해 주든가! 당신이고 아버지고 오빠고 전부 다 나한테 한 번이라도 설명하려고 노력해 본 적은 있어?”
[자고로 마법사에게 중요한 비밀을 알려 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들 합니다. 이 나이를 먹고 보니, 오래된 옛말엔 역시 틀린 말은 별로 없더군요. 공녀님. 공녀님께선 당신에게 부닥친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 오셨습니까? 가장 최근에 있었던 약혼 건만 해도 그렇죠. 당신은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고 침묵하길 선택하셨지 않았습니까? 충고 하나 해 드리자면, 도망쳐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황금빛 두 눈이 밝게 일렁였다. 다키아의 옆에 서 있던 나는 지금 다키아가 진짜로 많이 화가 났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도망? 지금 감히 내게 도망이라고 했어? 내 의견은 들으려조차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결정한 게 누군데? 응? 그리고 그 결정에 손을 들어 준 건 누군데? 내가 그날 당신한테 찾아가서 한 말은 기억이 안 나? 나는 당신한테 그 결혼 하기 싫다고 똑바로 말했다고!”
더글렉은 어깨를 으쓱이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날 공녀님께서 꺼내신 말은 지극히도 가벼웠습니다. 제가 충분히 무시할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했는데! 나보고 뭘 어쩌라고!”
[떼를 쓰시는 것도 아직 아이 같으시군요. 공녀님. 귀족이면 귀족다운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하셔야만 합니다. 자고로 말이란, 상대방이 도저히 거절할 수 없도록 판을 짠 다음 최후의 순간에 마침표를 찍듯이 내뱉어야 하는 겁니다. 그것이 태생부터 귀족으로 자라난 자들이 쓰는 방법이자 우리네들의 무기인 것이죠. 그냥 무작정 달려와서 결혼하기 싫다고 떼를 쓰는 건, 결코 귀족답지 못한 행동입니다.]다키아는 더글렉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아무런 선택지도 갖지 못하도록 여태 방관해 왔으면서 잘도 떠드네요. 좋아요.”
분노한 마법사의 감정에 응하듯이 마력이 일렁였다. 짧은 중얼거림. 다키아의 손끝에서 붉은 불꽃이 피어났다.
“그럼 이제부턴 귀족이 아니라, 당신네가 그렇게나 경멸하는 ‘마법사’의 방식으로 당신을 상대해 줄게요. 당신이 쓸데없는 충고를 해 준 것처럼 나도 당신한테 딱 한마디만 해주겠어요.”
다키아는 황금빛 두 눈을 일렁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도망치겠다면 굳이 쫓지는 않을게요.”
더글렉의 말을 그대로 돌려줌과 동시에 다키아의 손끝에서 피어난 마력의 불꽃이 대기를 불사르며 더글렉을 향해 질주했다.
콰앙!!!
푸른 고깃덩어리 기사가 가볍게 손을 내젓자 도로가 깨부숴지며 새파란 고깃덩어리 나무 한 그루가 피어올라 다키아의 마법과 충돌했다. 연기와 함께 살이 타오르는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말과는 다르게 바로 공격하시는군요. 가출하시는 동안 용병들의 천박함이 묻기라도 하신 겁니까?]“당신처럼 그 두꺼운 투구 뒤에 추악한 본심을 숨기고 있는 것보다야 낫다고 보는데요.”
[추악한 본심? 저는 여태 살아오면서 제 삶을 돌이켜 볼 때마다 단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습니다. 공녀님.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어리석은 반항은 그만두고 이젠 정말 물러가 주시지요.]“당신이 뭐라든, 나는 내 아버지를 보러 갈 거예요. 그러니 당신이나 비켜요!!!”
짧은 주문과 함께 차가운 냉기가 다키아의 손끝을 타고 피어올랐다.
여태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쟈멜이 내게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왠지 끼어들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라서 여태 가만히 있었는데,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나는 빙그레 웃으며 쟈멜에게 속삭였다.
“제가 신호를 보내면 바로 기습하시면 됩니다.”
“넵!”
다키아와 더글렉의 사이의 깊은 감정의 골이 해소될 때까지 기다리는 건 지극히 미련한 짓이었다.
당장 더글렉이 다루는 푸른 살덩어리 나무만 해도 지금 이 도시 곳곳에서 피어오른 푸른 살덩어리 나무들과 똑같은 종류의 것이었고, 그가 저 힘을 다룬다는 건 곧 미소공이 이 도시 전역에 저 살덩어리 나무를 피어오르게 한 장본인일지도 모른다는 걸 시사했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이 거리에 다시 한번 푸른 살덩어리 나무들이 피어오른다면, 지금 의식을 잃고 있는 모두가 반항 한 번 못 해보고 무력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떤 일이든 벌어지기 전에 다키아와 함께 힘을 합쳐서 더글렉을 벤다.
푸른 살덩어리 기사가 손을 뻗자 살들이 불어나며 거대한 푸른 검이 되었다. 딱딱하게 굳은 살덩어리로 이루어진 검이.
더글렉은 대검을 치켜들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말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대로 물러나실 생각은 없…]“지금입니다!”
내 신호에 쟈멜이 기다렸다는 듯이 기도를 올렸다.
“엉겨붙는 바위이시여! 저 괴물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쟈멜 특유의 자유로운 기도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암석으로 이루어진 길가가 치솟아 올랐다. 갑작스러운 대지의 변화에 더글렉의 무게중심이 흔들렸다.
나는 그 틈을 노리고 대지를 질주했다. 한계까지 활성화한 부패의 문과 함께 내장이 썩어들어가는 고통이 뇌를 울려 댔다.
이젠 익숙해지기까지 한 고통 속에서 나는 속전속결을 위한 권능을 꺼냈다.
허공이 갈라지며 튀어나온 부패의 검을 잡아챈다. 잡아챈 부패의 검을 그대로 더글렉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잠깐 균형이 무너졌던 더글렉은 노련한 기사답게 전혀 당황하지 않고서 내 공격에 대처했다. 그는 무너진 균형 속에서 정확하게 부패의 검을 노리고 자신의 살덩어리 검을 내질렀다.
지극히 합리적인 대처. 나는 그 대처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잘 가십시오.”
썩어 들어간다. 경화된 살로 이루어진 푸른 대검은 부패의 검과 맞부딪히는 순간, 미처 반항하지도 못한 채 붕괴했다. 떨어지는 칼날. 부패의 검은 푸른 대검을 붕괴시킨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게걸스럽게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갔다.
더글렉의 머리를 향해서.
푹.
부패의 검이 그대로 더글렉의 머리를 관통했다. 입을 꿰뚫린 탓에 그는 어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썩어 들어갔다.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부패. 살점 덩어리 기사의 머리가 한 줌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목표를 달성한 나는 재빨리 부패의 검을 놓았다. 바닥에 한 번 튕긴 부패의 검은 순식간에 부스러져 자취를 감췄다.
[굉장한 권능이군요.]턱.
살덩어리 나무를 찢어 가르며 다시 태어난 더글렉이 묘하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살햇?!’
저게 왜 안 죽었냐는 어머니의 외침. 솔직히 나도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그에게 진부한 물음을 던지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살아난 겁니까?”
더글렉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애초에 죽은 적이 없으니, 제가 다시 살아났다는 표현은 틀렸…]푹!
새하얀 얼음의 창이 더글렉의 몸을 관통했다. 그가 입고 있던 새하얀 갑옷은 내게 머리가 날아간 몸에 여전히 박혀 있었다.
즉, 새로 나타난 더글렉의 몸은 완전히 푸른 살덩어리 그 자체. 다키아가 쏘아 낸 마법은 두부를 가르듯이 부드럽게 더글렉의 몸에 박혔다. 얼음 창에서부터 번져 나온 새하얀 냉기가 더글렉의 몸을 거침없이 얼려 나갔다.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더글렉은 나타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되어서 딱딱하게 굳었다.
순식간에 다음 주문을 완성해 낸 다키아가 더글렉을 바라보며 짧게 선언했다.
“안녕히 가세요. 더글렉 마틴 경.”
쾅!!!
새롭게 생겨난 얼음이 공중에서 떨어져 더글렉과 충돌했다. 깨져 나가는 파편. 고깃덩어리 괴물은 얼음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 바닥에 흩어졌다.
콰앙!
또 한 번의 죽음. 그와 동시에 또 한 그루의 고깃덩어리 나무가 피어올랐다.
[정말이지 전부 천박한 싸움법을 자랑하시는군요. 세 분 다 기습밖에 할 줄 모르시는 겁니까?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군요.]갈라진 나무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 더글렉이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그제야 나는 저 괴물이 전에 만났던 악신의 숭배자 펄리의 인형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원본’을 처리하지 않는 이상, 더글렉은 끊임없이 살아나 우리 앞을 막아설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정황으로 보건대 한 번에 하나의 몸만을 조종할 수 있는 것 같으니, 누군가 이곳에 남아 끝없이 살아나는 더글렉을 상대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그의 ‘원본’을 처리하든가. 아니면 다 함께 일단 돌파해서 더글렉의 추격을 받으며 미소공에게로 직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솔직히 쟈멜이나 다키아, 둘 중 하나를 홀로 남겨 둔다고 해도 저 더글렉에게 반드시 이길 거라는 확신이 서질 않았다. 둘 다 남겨 놓는 경우에도.
부패의 거인을 남겨 둘 수도 없었다. 부패의 거인은 그때 그 흑기사가 다시 나타나면 써먹을 패였다.
쿵!
더글렉이 발을 구르자 수백 그루의 살덩어리 나무들이 바닥에 차례대로 치솟아 올랐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쳐 왔던 곳에서.
이대로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시민들이 위험했다. 살덩어리 괴물은 우리를 천천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라도 되돌아가시겠습니까?]여유가 한가득 담긴 질문. 다키아는 입술을 꾹 깨물고서 내게 말했다.
“마르낙 사제님이 먼저 가세요. 저 괴물은 제가 상대하고 있…”
– 어떤 새끼야!!! 어떤 새끼냐고!!!
거친 포효와 함께 샛노란 비늘을 반짝이며 용(龍)이 날아올랐다. 거대한 피막 날개를 활짝 펼친 용이 허공에서 분노를 토해 냈다.
– 어떤 새끼가 밥에 개짓거리를 한 거냐고!!!
내가 미처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다키아가 잽싸게 소리쳤다.
“저 괴물이요!!! 저 괴물이 그랬어요!!!”
세로로 갈라진 파충류의 샛노란 동공이 다키아의 목소리에 반응해 더글렉을 향했다.
– 너냐.
그 뒤에 바티스가 한 행동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 뒈져.
[이런.]벌어진 입 사이로 튀어나온 광선이 더글렉의 몸뚱이를 지져 버렸다. 살덩어리 괴물의 몸은 용이 토해 낸 빛에 휩쓸려 사라졌다. 하지만 더글렉은 여태까지 그래 왔듯이 새로운 살덩어리 나무를 가르며 또 한 번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콰아앙!!!
거대한 용의 앞발이 새롭게 태어난 더글렉의 몸을 짓눌렀다. 다키아는 그 모습을 보곤 재빨리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더글렉은 저 용왕자한테 맡기고 저희는 아버지한테 가요!!!”
지극히 현명한 판단이었다. 나는 잽싸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쟈멜! 지금부터 계속 달릴 겁니다! 뒤처지지 마십시오!”
“넵!!!”
콰앙!!!
뒤에서 끊임없이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우리는 용과 살점 덩어리 기사가 충돌하도록 내버려 두고 미소공이 있을 감옥을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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