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08)
108 화 충돌.
충돌.
추락한다. 떨어져 내린다. 무엇이? 떨어져선 안 될 것이. 모독. 드높은 천상을 향한 악의 가득한 모욕.
신성.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신성이 숨 막힐 듯 차올랐다. 나는 넘쳐흐르는 신성 속에서 익사하는 물고기가 된 것만 같았다.
빛과 빛, 그리고 빛. 도시를 뒤덮은 검은 막이 찢어졌다. 그 틈으로 떨어져 내린다. 신(神)이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고리. 거대한 고리들이었다. 회전하는 고리. 수천에 달하는 고리가 서로 얽혀 제멋대로 거칠게 회전했다. 금속. 아니, 금속을 닮은 무언가. 고리의 재질은 이 땅 위에 있는 물질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거대한 무기물일 뿐이었지만, 나는 저것이 바로 이 땅 위에 추락한 신(神)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외. 거대한 무언가. 불가해한 것. 피조물이 지녔던 복잡한 상념 따윈 바라보는 것만으로 새하얗게 탈색돼 버린다. 저것은 모든 지성체, 그 상위의 존재.
회전한다. 고리들이 서로 맞물려 삐걱댄다. 수천의 고리들이 일제히 기이한 공명음을 내뱉었다.
신(神)은 그 공명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선명한 불쾌. 추락한 신(神)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는 이 원치 않은 추락에, 그는 누구보다도 진한 모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또 한 번의 공명.
‘살해!!!’
그리고 다급한 경고. 빛과 함께 어머니께서 뛰쳐나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어머니의 손에 들린 오등분된 성물의 조각.
그 성물 조각이 붕괴하며 흘러넘친 신성이 우리를 감싸 안았다.
감옥의 일대가 바스러졌다. 그것은 어떠한 파괴도 아니었다. 그저 정말 단어 그대로 바스러졌을 뿐.
신(神)이 내뿜는 감정의 종류가 바뀌었다.
경악. 어머니의 모습을 확인한 신(神)이 낮은 공명음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퍼뜨려 왔다.
우리를 감쌌던 신성이 어머니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머니는 단 한 푼의 감정조차 싣지 않은 눈으로 거대한 고리들의 뭉치를 올려다보았다.
자그마한 손가락이 내 손을 두드리자, 나는 그제야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를 집요하게 짓누르던 압박감. 그 압박감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리고 신(神)이 말했다.
– 어 떻 게 . . . ? 대 체 어 떻 게 . . . ? 이 건 불 가 능 한 . . .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짝. 짝. 짝.
느릿하면서도 여유가 가득한 박수 소리. 그는 자신의 손뼉을 마주치며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왔다.
붉은 로브. 그리고 새하얀 문양이 새겨진 붉은 가면. 사내는 무척이나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잘했어. 아주 잘했어! 이제야 좀 신(神)답네! 처음 떨어뜨렸을 땐, 강제로 떨어뜨리는 바람에 이성을 잃고 낑낑대기만 해서 아주 짐승 새낀 줄 알았지 뭐야! 하하하하!!! 다들 잘해 줬다고! 사도 친구들! 이제야 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이성(理性)이 저 신(神)한테 깃든 것 같으니 말이지!”
푸른 살점으로 이루어진 거목 한가운데 박힌 입이 붉은 로브를 둘러쓴 사내를 향해 입술을 벌렸다.
– 이 제 약 속 을 지 켜 라 . 루 디 피 코 르 . 내 아 내 를 되 살 려 내 .
루디피코르라 불린 사내는 키득키득 소리 내 웃으며 대답했다.
“암. 그렇고말고. 나 좌절(挫折)의 루디피코르는 절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는다고! 신의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니까! 하하하!!!”
그는 거대한 고리들로 이루어진 신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증폭하는 고리’. 추락한 신(神)이여. 막 정신을 되찾자마자 이런 말 하는 것도 조금 미안하지만, 이제 넌 피조물에 순종하는 도구가 될 때다.”
‘증폭하는 고리’는 붉은 가면의 사내가 무어라 말하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저 신(神)의 모든 신경은 제 모습을 드러낸 어머니께 쏠려 있었다.
– 어 째 서 . . . 부 패 . . .
솟아오르는 붉은 손아귀들. 증폭하는 고리가 채 말을 완성하기도 전에 거대한 고리들은 수많은 붉은 손아귀들에 집어삼켜졌다. 붉은 손들은 신을 짓누르고 또 짓눌렀다. 신은 그렇게 붉은 손들에 짓눌리고 또 짓눌려 쭈그러들었다.
마침내 거대했던 고리들은 자그마한 반지가 되어 붉은 가면의 손아귀 위로 떨어졌다.
“하하하하!!! 마침내!!! 이 가증스러운 자칭 선신(善神)들을 모독하는 데 성공했다!!! ‘왜곡하는 펜대’시여!!! 이 모든 영광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홀로 크게 소리친 사내는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신(神)으로 만든 반지를 자신의 손가락에 끼웠다.
아니, 끼우려 했다.
서걱.
흩날리는 은발. 백색 갑옷을 입은 사내가 뛰쳐나와 검을 휘둘렀다. 흩날리는 피. 좌절의 루디피코르는 갑작스럽게 잘려 나간 자신의 손을 보며 경악했다.
“무슨?!”
미소공의 아들, 데르소 이르멜은 잘라 낸 손을 잡아채고는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칼토 이르멜은 자신의 아들을 향해 노성을 내질렀다.
– 지 금 이 게 무 슨 짓 이 냐 ! ! ! 데 르 소 ! ! ! 당 장 ! ! ! 신 을 내 놓 아 라 ! ! !
데르소는 신으로 만들어 낸 반지만을 빼낸 다음 자신이 잘라 낸 손아귀를 내던졌다. 루디피코르의 손이 흙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그는 거대한 세 괴물과 붉은 가면의 사내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헛짓거리는 여기까지입니다. 아버지.”
– 지 금 네 가 하 는 것 이 바 로 헛 짓 거 리 다 ! ! ! 이 미 모 든 준 비 는 끝 났 다 ! ! ! 그 반 지 ! ! ! 그 반 지 만 있 으 면 내 아 내 가 다 시 살 아 날 수 있 다 ! ! !
그는 살점 덩어리가 된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혀를 찼다.
“그토록 아름답던 모습을 버리시고 택한 게 그 추악한 모습입니까? 당신은…”
그의 황금빛 눈동자가 잠깐 다키아를 향했다.
“당신은 저 철부지보다도 더 어리석군요. 진정 이런 방법으로 어머니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 설령 어머니께서 정말로 살아나신다고 해도 당신이 벌인 짓을 알게 된다면 스스로 혀를 깨물고 죽으실 겁니다.”
신랄한 비난.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신랄한 비난 속에서 손이 잘린 루디피코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극히 평온한 어조로.
“네가 그 반지를 가져간다고 해서, 그것에 깃든 힘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얼른 다시 내놔 줬으면 하는데? 내가 지금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서 굳이 누구 피를 안 봐도 괜찮을 거 같단 말이지. 게다가 내 뒤에 있는 저 세 사도가 안 보여? 과연 네가 저 사도들한테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응? 우리 좋게좋게 해결하자고.”
데르소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내가 쓸 생각은 없었다. 그저 네게서 이 반지를 빼앗는 것이 내 목적이었을 뿐.”
그는 가볍게 손을 놀려 손에 쥐고 있던 반지를 내던졌다. 신이 깃든 반지는 가볍게 허공을 날아 다키아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어?!”
다키아는 반사적으로 반지를 받아들고 자신의 오빠를 바라보았다. 데르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짧게 말했다.
“너는 그걸 가지고 여기서 물러나라. 방해된다.”
그와 동시에 데르소의 은발이 밝은 녹색으로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루디피코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 천사에게 몸을 팔아넘기다니! 정말 제정신이 아니군! 네가 한 짓의 의미를 알고 있어? 그 딴 짓을 했다간, 얼마 안 가 네 자아는 천사에게 완전히 집어삼켜지고 말 거다!!!”
데르소의 몸이 격렬한 돌풍에 휘감기며 빛과 함께 거대해졌다. 밝은 녹색의 날개. 그 날개를 활짝 펼친 거인이 진녹색 검을 치켜들며 말했다.
– 악 신 의 숭 배 자 여 . 그 것 이 책 임 을 진 다 는 것 이 다 . 나 는 신 들 의 뜻 을 대 변 하 는 세 번 째 별 이 자 , 이 르 멜 의 적 자 데 르 소 이 르 멜 ! 감 히 드 높 은 천 상 과 이 르 멜 의 이 름 을 모 독 한 죄 !
거센 광풍이 몰아쳤다. 칼날 같은 바람이 제 의지를 갖추고서 진녹색 검을 타고 올랐다.
– 그 죄 는 결 코 가 볍 지 않 을 것 이 다 ! ! !
허공을 찢는 일검. 검 끝에서 피어난 폭풍이 세 사도를 향해 몰아쳤다.
‘살해!!!’
일단 여기서 도망치자는 충고. 나는 재빨리 어머니를 안아 들고서 다키아를 향해 소리쳤다. 어머니는 순식간에 빛과 함께 내 가슴주머니 속으로 숨어들었다.
“일단은 여기서 물러나야 합니다! 어서!”
다키아는 손에 쥔 반지를 바라보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진 신.
갑자기 나타난 리베라티오의 인물.
천사에게 몸을 바친 데르소 이르멜.
상황이 무척이나 복잡하게 돌아갔지만,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데르소 이르멜이 다키아에게 넘긴 반지가 다시 저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도망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었다.
콰아아앙!!!
천사와 사도들의 격돌. 거대한 굉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렸다. 우리의 등 뒤에서 성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장 거기 서!!! 신(神)을 내놓으라고!!!”
– 어 딜 ! ! !
콰앙!!!
또 한 번의 굉음과 함께 악신의 숭배자가 내뱉는 소리가 끊겼다.
우리는 그렇게 거친 길바닥 위를 내달렸다. 그렇게 달리길 한참. 갑자기 우뚝 멈춰선 다키아는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으로 반지를 바라보다 입술을 꾹 깨물고는 반지를 쥔 손을 내게 내밀었다.
“이건 마르낙 사제님이 보관해 주세요.”
나는 신이 깃든 반지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오빠분께서는 공녀님이 악신의 숭배자에게 반지를 넘기길 바라지 않으셨을 겁니다.”
다키아는 내 손에 반지를 쥐여 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제 오빠가 어떤 생각으로 이 반지를 제게 넘겼든 그건 제 알 바가 아니니까요. 전 이제 아무런 설명 없는 가족들에게 완전히 질렸어요. 알고 보니 천사에게 몸을 넘긴 오빠나, 악신의 숭배자랑 결탁해서 괴물이 된 아버지나. 저에게 단 한마디의 설명조차 하지 않은 그 둘의 의견 따윈 정말로 관심 없어요. 그러니 이 반지는 마르낙 사제님이 가지시고 마음대로 처분하세요. 대신.”
선명한 황금빛 눈동자가 나를 마주 보며 말했다.
“마르낙 사제님은 저한테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 주셨으면 해요. 저는 이제…”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끝맺었다.
“진짜 마르낙 사제님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반지를 받아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걸 다 말씀드리겠다고 약속하진 않겠습니다.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요. 다만.”
잘게 떨리는 다키아의 손을 잡아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저는 공녀님께서 제게 묻는 질문을 절대 피하지 않겠습니다.”
다키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거면 충분해요.”
“어, 음…”
멀뚱히 서서 나와 다키아의 눈치를 보던 쟈멜이 아주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오붓하실 때 진짜 죄송한데요! 저희 지금 따라잡힌 거 같아요!!! 땅이 흔들리거든요!!!”
콰앙!!!
바닥이 부서지며 푸른 살점 덩어리들이 치솟아 올랐다.
살들로 이루어진 푸른 거목. 거목 한가운데 달린 입이 벌어지며 성난 외침을 내뱉었다.
– 감 히 어 딜 도 망 가 려 하 느 냐 ! ! ! 신 을 내 놓 아 라 ! ! ! 다 키 아 ! ! !
다키아는 내 손을 부드럽게 떨쳐 내고서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 재수 없는 오빠가 시키는 대로 도망만 치는 게 마음에 안 들긴 했어요. 제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말씀드릴게요.”
마력이 몰아쳤다. 다키아는 선명한 뇌전을 피워 내며 눈앞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이미 죽었어요. 아버지.”
– 닥 쳐 라 ! ! ! 레 빌 라 는 다 시 살 아 날 거 다 ! ! ! 신 의 힘 으 로 ! ! !
콰아앙!!!
수천 개의 살점 덩어리 가지들이 대지를 꿰뚫고 치솟아 올랐다.
다키아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마르낙 사제님. 제가 저 못난 아버지를 막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는 도살자를 꺼내 들고서 다키아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얼마든지요.”
옆에 서 있던 쟈멜이 질세라 소리쳤다.
“여기 저, 저도 있어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다키아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쟈멜도 고마워요.”
– 반 지 를 내 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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