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12)
112 화 음?
음?
데구르르.
재빨리 눈을 굴린 쟈멜이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마르낙의 품에서 벗어나서 바닥에 발을 디뎠다.
혹시나 자신의 움직임이 저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자극하질 않길 바라면서.
솔직히 그녀는 지금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리베라티오의 일원으로 활동해 오는 내내 단 한 번도 본 적도 없으며, 볼 기회조차 없었던 여섯 선지자. 그들 중 둘을 한꺼번에 보게 되다니! 심지어 그것도 당장 적대해야 하는 적으로!
쟈멜은 다시 한번 데굴 눈을 굴려 마르낙을 바라보았다.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녀가 마르낙에게 갖는 생각은 무척이나 복잡 다양했지만, 그래도 굳이 그 수많은 생각들 중 가장 커다란 생각 하나를 뽑자면 바로 마르낙은 믿어도 괜찮을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쟈멜이 보기에 그는 언제나 이 세상의 중심에 있으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는 그런 남자였다. 지금까지 그와 같이 다닌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와 함께 겪은 일들은 하나같이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그 비범함들은 언제나 막대한 양의 피를 불러왔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갔다. 그 속에서도 그는 항상 무언가를 얻어 냈고.
그래, 그는 믿고 따를 수 있는 데다 앞길이 아주 창창한 사람이었다. 꼭 달라붙어서 목숨만 챙긴다면 분명 나중엔 엄청나게 큰 자리 하나쯤은 약속받을 수 있을 만큼. 원래 이런 황금 동아줄은 초기 때부터 단단하게 꽉 붙잡아 놓을수록 좋았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쟈멜의 그런 다짐이 거칠게 흔들렸다.
누가 말했던가.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다간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딱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쟈멜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나 과연 살 수 있을까…?’
죽고 난 다음에 묘비 앞에 황금의 산이 쌓아진다고 한들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진짜 아무 의미도 없었다.
단단한 손길. 닿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주는 묵직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마르낙을 올려다보았다.
마르낙은 울기 일보 직전인 그녀를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쟈멜한테 막 엄청 큰 걸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앞서 나가서 싸우지는 마십시오. 쟈멜은 그저 다키아를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시는 겁니다. 다키아한테 딱 달라붙어 있기만 해
주십시오.”
“지, 진짜 그것만 해도 돼요?!”
“예.”
툭툭 두드려 주는 손길. 그 손길에 쟈멜은 마음을 다잡곤 재빨리 눈물을 닦아 냈다. 부귀영화. 언젠가 커다란 욕조에 한가득 금화을 채워 넣고 그 속에서 목욕하는 날이 반드시 찾아오리라. 쟈멜은 이미 도망치기도 글러 버린 상황, 이번 생은 이 남자에게 걸기로 굳게 다짐했다.
“흐음.”
“힉!!!”
뭔가 아니꼬운 듯한 콧소리. 데스페라시오가 낸 콧소리에 쟈멜은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곤 마르낙의 등 뒤로 숨었다. 데스페라시오는 그런 쟈멜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천천히 다가오는 루디피코르를 바라보았다.
“저희는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상황이 이런데 안 도와주고 그냥 가겠다고? 서로 돕고 도우면 빨리 끝나고 좋잖아.”
“제가 왜요?”
얄밉게 고개를 갸우뚱거린 데스페라시오가 키득키득 웃었다.
“뭐가 이쁘다고 도와줍니까? 게다가 당신을 도와주자고 하면 릴리가 완전 질색할 거 같은데, 앞으로도 그녀를 잔뜩 부려 먹어야 하는 입장인 저는 아무래도 그녀에게 계속 잘 보여 둬야 할 필요가 있어서요.”
“릴리? 거기 검은 토끼 이름이 릴리였나?”
릴리라고 불린 여인은 자신의 이름이 불려졌음에도 이제까지의 당당한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로 데스페라시오의 등 뒤에 숨어서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루디피코르는 붉은 가면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차피 네 권능이면 네가 뭔 짓을 하든 개처럼 부리는 게 가능할 텐데, 굳이 저런 수인족 하나한테 알랑방귀를 뀌어야 할 필요가 있나?”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드러난 붉은 눈이 검은 토끼 여인의 몸을 끈적하게 훑었다. 천천히 움직이던 그의 시선은 검은 토끼의 여인의 튼튼한 허벅지에 꽂혀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 약골이 저렇게 튼실하게 자랄 줄 알았으면 네가 달라고 했을 때, 순순히 안 넘겼을 텐데 말이지. 어때? 흑토끼야. 저 뺀질이는 버리고 나한테 오지 않을래?”
으득.
이를 가는 소리와 함께 검은 토끼 여인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꺼져.”
리베라티오의 인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광경을 가만히 주시하고 있던 다키아는 몇 번이나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그녀의 황금빛 눈동자가 향한 방향의 끝에는 만신창이가 된 아버지의 상반신이 있었다.
저들이 방심하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틈, 그 틈을 이용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깔끔하게 지워 버릴 수 있을까. 그녀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뭔가 자신을 얽매던 주박이 깨어진 지금,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마법을 구현해 아버지를 저격할 수 있었다. 어차피 지금 이대로 보내 봐야 만약 아버지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멀쩡한 상태로 다시 살아날 리가 없었다.
깨어난 아버지는 또 어머니를 되살린다는 명목 아래, 수많은 이들의 피를 취하겠지.
저런 괴물은 이 자리에서 죽여 없애는 게 맞았다. 몇 번이고 다시 생각해 봐도 맞았다.
하지만.
그녀는 저렇게나 무방비하게 드러난 표적 하나를 공격하는 걸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차라리 그가 거대한 괴물이었을 때가 훨씬 쉬웠다. 저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괴물이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공격할 수 있었으니까. 거기다 여태까지 몰아쳤던 감정의 격류도 이미 조금 식어 버린 지 오래.
아버지를 죽인다. 지금 이 순간, 두 눈을 감고 딱 한 번만 마법을 사용하면 아버지, 미소공 칼토 이르멜은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사라진다.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다키아는 새삼 그 결정의 무게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계속 완전한 악역으로 남아 있어 주었다면, 저 푸른 가면의 남자가 등장하지 않고 아버지가 온전한 악역으로 남아 있었다면 이렇게 망설일 필요 따윈 없었을 텐데.
축 처진 몸과 주름진 얼굴. 생기라곤 티끌조차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보며 다키아는 증오와 함께 일말의 연민을 느꼈다. 그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연민을.
‘하자.’
일렁이는 마력이 희미한 기척과 함께 그녀의 손끝으로 모여들었다.
“그럼 저희 진짜 가 보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얼굴 본 것도 오랜만인데 이야기나 좀 더 하자고. 어차피 쟤네들은 여기서 도망도 못 가잖아? 너 진짜 얼굴 한 번 보기가 쉽지 않다고. 혹시 너 나 피해 다녀?”
“허… 그걸 그렇게 잘 아시는 분이 왜 이렇게 질척거리실까…?”
여전히 너희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안하무인의 태도. 자그마한 불티가 튀었다.
한껏 긴장한 채, 최적의 순간을 노리던 마르낙의 날카로운 감각이 다키아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불티를 감지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선 여인을 바라보자, 그는 다키아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단번에 눈치챘다.
그도 그럴 게 그녀의 황금빛 두 눈동자가 못이라도 박힌 듯 미소공의 상반신에 딱 꽂혀서 떨어질 줄을 몰랐기에. 지독한 얼간이들이나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눈치 못 채리라.
여기서 다 죽어 가는 미소공을 공격하는 건 절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흘러가는 모양새로 보건대, 데스페라시오와 저 검은 토끼 여인은 이 싸움에 합류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저 둘이 떠나면 남게 되는 적은 선지자 하나, 사도 둘. 부패의 거인을 소환해서 흑기사를 저지하는 동안, 다키아와 쟈멜이 백나방을 상대하고 그동안 직접 선지자와 맞부딪히면 머릿수도 계산이 딱 맞았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계산들에 앞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 하나 있었다.
여기서 다키아가 기습을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건, 그녀의 인생에 있어서 절대 지울 수 없는 흉터 하나를 새겨 넣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악한 자이든, 선한 자이든. 자식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하나의 세계였다. 태어날 때부터 바라보고, 미워하거나 동경하게 되고 마는 세계. 아버지란 단어에 자식은 언제나 복잡한 감정을 동반하기 마련.
아버지를 죽인다. 아니, 죽였다. 그것도 직접, 자신의 손으로.
그건 떨쳐 낼 수 없는 굴레가 되어 저 순진한 다키아의 숨통을 조여 올 게 분명했다.
마르낙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빠르게 손을 뻗어 다키아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
미소공에게 온전히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 놀라 쥐고 있던 마력의 끈을 놓아 버렸다. 고삐가 풀린 마력이 모래처럼 흩어져 사라졌다.
“마르낙 사제님…?”
어째서 자신을 멈춰 세웠느냐는 무언의 타박. 마르낙은 다키아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미소공께선 살아나지 못할 겁니다. 저분은 제 권능에 맞아 이미 목숨을 다하셨으니까요.”
마르낙의 말대로 미소공의 상반신은 이미 미동조차 없이 살덩어리처럼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저들이 살려 내면요? 아버지를 다시 살려 내서 또 아버지가 죄를 짓게 하면요? 저는 절대 그런 상황이 찾아오도록 용납할 수 없어요.”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그 가능성을 없애야만 해요. 마르낙 사제님. 이건 제가 비단 아버지의 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한 명의 이르멜로서 이곳 베아투스를 짓밟은 자를 제거해야만 하는 책임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이 손 놓아 주세요. 부탁드릴게요.”
마르낙은 손을 놓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손을 놓아 주면 그녀는 이 손으로 직접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깊은 상처와 함께 더없이 단단하고 차가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리라.
마르낙의 입가로 습관에 가까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무척이나 곤란한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피어오르는 미소가. 그는 천천히 입을 열어 다키아에게 말을 건넸다.
“만약, 만약에라도 미소공께서 다시 살아나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친다면 제가 반드시 책임지고 막겠습니다. 다키아가 홀로 모든 걸 책임지려 할 필요는 없어요.”
마력이 흩어졌다. 이번에는 그녀의 의지로. 다키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아버지…”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너절한 신파극은 이제 다 끝났나?”
이야기가 끝난 데스페라시오와 검은 토끼 여인이 등을 돌려 떠나고 있었다. 붉은 가면의 사내, 루디피코르는 고개를 까딱이며 말을 건네 왔다.
“어차피 일도 다 끝난 참인데, 내가 특별히 너희한테 호의를 베풀 생각이거든? 너희가 훔쳐 간 반지. 그것만 내놓으면 얼마든지 물러나도 좋아. 정말로. 나 좌절의 루디피코르는 한 번 한 말은 반드시 지키는 남자거든.”
마르낙은 다키아의 등을 토닥여 주곤 빙그레 웃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이 반지는 따로 쓰실 분이 있어서요.”
“흐음.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창 하나만 줘 봐.”
그의 등 뒤에 서 있던 거대한 반인반마의 흑기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곤 그에게 한 자루의 검은 창을 건넸다.
루디피코르는 창을 받아들곤 가볍게 던졌다 받았다 하며 무게를 가늠하고는 마르낙을 가리켰다.
“어디 한번 막아 보라고!”
창대 위로 휘감기는 신성. 검은 창은 신성으로 감싸진 채 마르낙을 향해 빛살처럼 쇄도했다. 마르낙은 반사적으로 도살자를 휘둘러 창을 쳐 내려 했다.
그때, 회복에 집중하고 있던 데르소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거칠게 소리쳤다.
– 막 지 마 라 ! ! ! 그 걸 막 으 면 안 된 다 ! ! !
까아앙!!!
도살자와 흑색 창이 충돌함과 동시에 폭발적으로 터진 신성이 현상을 왜곡했다.
푹.
“쿨럭.”
“꺄아아아악!!! 마르낙 사제님!!!”
분명 튕겨 났을 터인 신성이 한가득 담긴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고 박혀 있었다. 루디피코르는 어깨를 으쓱이곤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 처리했네.”
“쿨럭.”
마르낙은 끊임없이 피를 토해 냈다. 신성. 신성이 그의 몸을 갉아먹었다. 이건 회복할 수 있는 종류의 상처가 아니었다.
너무 많은 피가 새어 나가고 있었다. 정신이 점점 흐릿해져 나갔다.
풀썩.
마르낙의 몸이 고꾸라져 바닥에 처박힌 그때.
신이 깃든 반지가 산산이 부서졌다.
폭발적으로 흘러나온 신성이 모든 걸 집어삼켰다. 막대한 신성의 짓눌림에 다키아는 숨조차 쉬이 내실 수 없었다.
그 속에서 한 여인이 마르낙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어두운 녹빛이 일렁이는 머리칼. 미(美)의 정수가 깃든 얼굴. 여인은 마르낙을 안아 든 채로 눈앞의 루디피코르를 노려보았다.
“뭐, 뭐야…?”
두 눈. 녹빛 두 눈 속에서 감히 그 끝을 내다볼 수 없는 심연이 꿈틀댔다.
여인의 입이 천천히 벌어지고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에겐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이 찾아왔다.
리베라티오의 여섯 선지자 중 하나인 좌절(挫折)의 루디피코르는 그렇게 죽었다. 영혼조차 남기지 못하고.
***
“흐음.”
분명 나는 창에 꿰였는데.
“와아아아아아아!!!!”
그랬을 터인데…
– 갸 아 아 아 아 아 아 악 ! ! !
“여기는 대체 어디지…?”
수많은 종족들로 이루어진 군세와 썩어 가는 살덩이들을 끊임없이 흘려 대는 군세가 서로 맞부딪혔다.
죽고 죽이는 처절한 살육의 현장.
나는 그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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