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13)
113 화 조우.
조우.
와아아아아아아아!!!
저마다 크기조차 통일되지 않은 생명들의 군세. 그들은 격렬하게 눈앞의 괴물들에게 저항했다.
– 갸 아 아 아 아 아 아 악!!!
썩어가는 괴물들의 군세는 파도처럼 몰아쳐 눈앞의 생명들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터져 나가는 머리와 튀어 오르는 살점들.
나는 언덕 위에 가만히 서서 지금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대체 진짜 어디로 온 거지…?
혹시 여기가 바로 그, 이 세계의 사후 세계 같은 건가. 막 싸우다 죽은 전사들의 영혼이 오는 그런 곳.
정말 돌아갈 방법은 없나?
참혹한 살육의 현장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자, 대체 언제 왔는지 모를 존재가 내 옆에 나란히 서서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군데군데 일그러졌음에도 그가 입고 있는 어두운 녹색 갑옷은 여전히 기품이 넘쳐흘렀고, 아름다운 투구의 어두운 눈구멍 사이로는 진녹색 귀화가 일렁였다.
즉, 진짜 엄청나게 강해 보였다.
나는 재빨리 목을 가다듬고 눈앞의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흠흠. 안녕하십니까?”
먼저 건넨 인사에 전장을 내려다보던 녹색 귀화가 내게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파고들었다. 지독히도 끈적하고 불쾌하게.
– 지나가던 똥개도 놀랄 만큼 멍청하게 뒈져놓고 얼빠진 인사라… 그 맹탕함이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군.
솔직히 저 존재의 말이 맞긴 했다. 루디피코르의 일격. 그 일격에 담긴 신성이 불러일으킬 현상을 경계했어야만 했다. 내가 이런 얼빠진 실수로 죽게 될 줄이야.
“맞는 말이라,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군요.”
– 말투는 또 왜 그렇게 샌님 같지? 열불이 치솟는군.
목소리는 불쾌한 데다 말투는 굉장히 사나웠지만, 이상하게도 저 존재에 대한 혐오감이나 적대감이 생기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종의 동질감이 느껴졌으면 느껴졌지.
저 녹색 갑옷의 존재도 정말 내가 싫어서 뾰족하게 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내가 얼빠진 방식으로 죽은 것이 무척 짜증이 난 듯했다.
그래서 나는 이 직감을 믿고 조금 과감한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제가 죽은 뒤에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 모르지. 나는 모르지.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암녹색 갑옷은 찌그러진 투구를 절그럭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 하지만 너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신살(神殺)의 업을 이용하면 너같이 한 톨 먼지만도 못한 얼간이 정도야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을 테니까. 누가 널 되살릴지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어머니께서 절 되살리시겠군요.”
– 그래. 이 얼간아. 아주 멍청한 얼간아. 네가 멍청하게 죽지만 않았어도 그 신살의 업은 네가 비약적으로 강해질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렇습니까?”
내 여유로운 대답에 그가 다시 한번 절그럭거리며 고개를 돌리곤 나를 노려보았다.
– 여유가 아주 철철 흘러넘치는군.
“정말 상황이 급박했으면, 당신은 제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내쫓아 보내셨을 분 같아 보여서 말입니다.”
– … 그나마 눈치는 조금 빠르군. 그건 나쁘지 않아.
그는 바닥에 앉아 턱을 괴고 전장을 내려다보았다.
– 너는 무슨 광경이, 무엇이 보이지?
“흐음.”
언덕 밑에서는 여전히 처절한 투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산 자들과 썩어 들어가는 자들의 투쟁이.
“전쟁입니다. 산 자들과 아무래도 어머니의 군세로 보이는 분들이 충돌하고 있군요.”
– 그래? 네겐 그렇게 보이는 건가…
“당신에겐 어떻게 보입니까?”
– 슬픔이지. 지독한 슬픔. 나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실패했으니까. 조금 더 나는 날카롭게 벼려질 필요가 있었다. 인정 따위엔 얽매이지 말아야 했어…
그 중얼거림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독히도 오래 살아온 존재의 회고(回顧). 그가 얼마나 오랜 세월을 보내 온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에 담긴 세월의 무게는 끔찍하리만큼 묵직했다.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것으로도 숨이 턱 하고 막혀 올 만큼.
그는 아무 말 없이 언덕 밑을 내려다보았다. 한참이나.
과연 그가 여태 진짜로 나와 대화를 한 건지 의심이 갈 때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 젠장. 도저히 혼자서는 눈을 뗄 수가 없군. 이봐. 날 좀 잡아당겨 줘.
“알겠습니다.”
퍽!
내가 그를 향해 선의로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주먹이 뱀처럼 내 몸을 타고 올라 정확하게 내 얼굴을 후려쳤다.
그 묵직한 충격에 순간, 정신이 날아가는 줄만 알았다. 내 몸은 훨훨 날아 그대로 바닥에 처박혀 굴렀다.
– ‘알겠습니다.’는 무슨. 내가 말했지? 너는 너무 샌님이라고. 수상한 자가 있으면 당장에 목을 쳐 날려도 충분치 않은데,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 자를 도우려고 해?
나는 뭉개진 코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닦으며 대꾸했다.
“본인이 도와 달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 도와달라고 냉큼 도와주는 놈이 정신 나간 놈이지. 그리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건, 그걸 감당할 ‘힘’이 있는 자들에게나 주어진 특권이야. 얼빠진 자식아. 네가 삿된 정에 이끌리지만 않았어도 너는 지금의 수배는 더 강해졌을 거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고통이 내 반항심을 불러일으켰다.
“저는 제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과한 훈수는 자제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 호오. 꼴에 성질은 있다 이건가? 그럼 좋지. 마침 지금 네가 딱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할 필요도 있었으니까. 무기는 뭘 쓰지? 검? 창? 활?
“검을 배웠습니다.”
– 크기는 어느 정도?
“평범한 롱소드 크기 정도면 됩니다.”
– 흠. 대충 이 정도면 되나?
쨍그랑.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검 한 자루가 내 발치 앞에 내던져졌다. 지극히도 평범한 은색 검신. 그 검은 내 서리강철 검과 크기가 비슷했다. 나는 적당한 크기의 검을 쥐어 들고서 눈앞의 암녹빛 갑옷을 바라보았다.
“딱 적당하군요.”
– 적당하긴. 하긴, 뭐 딱 네놈 수준에 걸맞은 이쑤시개 같은 무기지.
쿵.
그는 자신의 몸만 한 암녹빛 대검을 어깨에 걸쳐 멨다.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저 투구 너머로 그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이 정도는 되어야 휘두를 맛이 좀 나지. 그런 이쑤시개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못 잡아. 어때? 이참에 무기를 바꿔 보는 건?
“그런 검은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럽습니다. 불필요한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요. 아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름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편이라서요.”
사실 조금 혹했지만, 굳이 그 감정을 드러내서 저 얄미운 갑옷에게 승리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지 않았다.
암녹빛 갑옷은 혼자 키득키득 웃고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덤벼 봐. 사내새끼가 검을 들었으면 응? 사람 하나 정도는 쑤셔야지. 안 그래?
“그거 아주 위험한 발언이군요. 뭐, 이 세계에선 별 상관도 없겠지만.”
쾅!
나는 말을 계속 이어 나가는 척을 하다 재빨리 자리를 박차고 사내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곤 달려 나간 속도 그대로 튕겨나 바닥에 처박혔다.
– 하하하하! 방금 그걸 기습이라고 한 건가? 아주 애새끼들의 장난이나 다름없네! 하하하하하! 혹시 너 나랑 소꿉놀이라도 하려고 한 거냐?
다시 뭉개진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사내는 어깨에 걸쳐 둔 대검은 쓰지도 않았다. 그저 달려오는 내 얼굴에 왼 주먹을 휘둘러 후려쳤을 뿐. 그의 주먹이 그린 기묘한 궤적은 내 거리 감각을 제멋대로 흐트러뜨렸다.
“신기한 권법을 쓰시는군요.”
– 이쪽도 내 특기긴 한데, 진짜 특기는 이쪽이지.
그는 암녹빛 귀화를 일렁이며 자신의 대검을 가리켰다.
– 그런데 너는 아직 이쪽 걸 써서 상대하기엔 너무 약해 빠진 것 같네. 그래, 네놈을 상대하는 데 어울리는 무기는 딱 이 정도지.
거대한 녹빛 대검이 사라지고, 그의 손바닥 위엔 자그마한 은색 숟가락이 자리를 차지했다.
“그거 숟가락 아닙니까?”
– 그래. 너는 딱 내가 밥 먹다가 수프 묻은 숟가락으로 상대해도 충분할 정도로 약해 빠졌어.
“그 말. 후회하지 마십시오.”
부패의 문이 내 전신을 타고 올라 빛을 내뿜었다.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이곳에서는 권능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콰앙!!!
바닥을 걷어찬다. 한계까지 증폭된 다리가 지면 위를 내달리며 몸뚱이의 속도를 더했다. 내가 그의 지척으로 쇄도하는 동안 암녹빛 갑옷의 존재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하압!!!”
나는 그대로 손에 든 검을 내질러 하나의 선을 그었다. 정확하게 갑옷의 이음매를 노리는 일격을.
빡!!!
그리고 숟가락에 얼굴을 얻어맞고 바닥을 굴러 처박혔다.
– 얼간이 같은 놈. 네가 내게 닿으려면 적어도 ‘달인’은 되어야 꿈이라도 꿀 수 있을 거다.
나는 벌써 세 번째로 뭉개진 코를 부여잡고 그를 향해 대답했다.
“대체 코만 집요하게 노리는 이유가 뭡니까?”
– 네놈 콧대가 쓸데없이 높은 거 같아서 뭉개 준 거다. 너는 너무 약해 빠졌어. 진짜 너무 약해 빠졌다고.
그의 확신에 가까운 말투에 나는 묘한 짜증이 밀려왔다.
“당신이 규격 외인 겁니다.”
– 그럼 이 세계와 천상의 신(神)에게 대적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일 줄 알았나? 너는 신(神)조차도 거꾸러뜨리고 그의 가슴에 날카로운 이빨을 들이박을 수 있어야 한다. 신살(神殺)의 과업. 그것을 짊어지기 위해선.
“저는 신들을 찾아서 죽이려는 게 아닙니다. 그저 어머니의 봉인을 풀면 족할 뿐이고요.”
– 네가 찾지 않더라도. 그들이 네게 찾아올 거다. 누구보다도 선명한 대적자(對敵者)로.
“왠지 그럴 것 같더라니… 그래도 최대한 몰래 해 볼 생각입니다.”
– 풉.
새어 나온 비웃음. 곧이어 터져 나온 커다란 웃음이 날 신명 나게 비웃었다.
– 하하하하하하하!!!! 애새끼같이 태평한 생각이라니.
짧은 중얼거림. 외마디 속삭임의 끝에 마력이 폭발적으로 몰아쳤다.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마력의 기둥이 이 세계를 드리운 구름을 찢어발기며 거대한 운석으로 화해 대지를 향해 추락을 시작했다.
저런 규모의 마법. 가능하다는 이야기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다.
– 잘 봐라.
어느새 손아귀에 쥐어진 거대한 대검.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운석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일검. 그 일검에 거대한 운석이 반 토막 났다.
그는 쪼개진 운석 조각을 뒤로한 채 나를 바라보았다. 가라앉은 중얼거림이 내 귓가로 파고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후회가 가득 담겨 있었다.
– 나는 실패했다. 최후의 순간에.
그래, 나는 이자가 처음부터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나와 같은 존재.
“당신은 저와 같은 ‘부패의 아들’이군요.”
– 그래.
반 토막 난 운석이 대지를 향해 떨어진다.
그는 등을 돌려 권능을 뽑아냈다. 끝 간 데 모르고 늘어난 ‘부패의 검’이 대기를 가른다.
거대한 운석 조각은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붕괴했다.
– 나는 사제이며, 달인이자, 마법사였다. 하지만 이런 나도 실패했지. 하지만 너는? 네가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날 넘은 곳이 있느냐?
암녹빛 귀화가 나를 향해 이글거렸다.
– 마법사로서의 강함은 타고나는 것. 사제로서의 강함은 비정해지는 것. 달인의 강함은 스스로를 가열차게 갈고닦는 것. 이 중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지 않으냐.
단단한 갑옷의 손가락이 내 가슴을 쿡 하고 찔렀다.
– 비정해져라. 같잖은 양심과 허울 좋은 동정심 따윈 개나 줘 버려라. 타인의 슬픔. 고통. 절규. 원망. 그 모든 것이 네 힘이 된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세계’는 우리를 혐오한다. 그러니 너 또한 그 이유 없는 미움에 미움으로 답해라. 그래야만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절그럭거리는 소리. 그는 내 목줄을 틀어잡고 거칠게 윽박질렀다.
– 죽여라! 죽이고 또 죽여라! 모든 것이 신성으로 화해 네 것이 될 것이다!
목이 졸려 왔다. 거친 압박에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 비정한 어머니께서 네게 쏟아부은 신살(神殺)의 업. 내가 빼돌렸다. 그 힘을 이용해 너와 날 연결했지.
너무나도 당당한 도둑질 선언에 나는 마지막 숨을 쥐어짜 내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예…?”
– 또 보자. 마지막 ‘부패의 아들’. 다음번에 만날 때는 신성을 최대한 많이 들고 와라. 내가 재밌는 걸 가르쳐 주지.
우득.
그렇게 내 목이 부러졌다. 희미한 목소리가 내 귓가로 파고들었다.
– 그리고 나와 만난 건 비밀로 해라. 다음번에 만났을 때 내게서 뭔가를 얻어 가고 싶거든.
***
“헉?!”
나는 일어나자마자 내 목의 안위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방금 부러졌던 내 목은 지극히도 멀쩡했다.
‘살해!!!’
어머니가 거침없이 내게 달려들어 안겨 왔다. 묵직했다. 무엇이?
‘살해살해!!!’
왜 이제야 일어났느냐는 타박. 눈물이 그렁그렁한 여인…?
아니, 아직 여인이라기엔 조금 앳된 모습이 남아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 십 대 후반에 가까운 모습.
나는 어머니를 향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등을 토닥여 드리며 나는 그를 떠올렸다.
암녹빛 갑옷을 입고 있던, 또 다른 ‘부패의 아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