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18)
118 화 제안.
제안.
나는 갑작스럽게 난입한 여우 수인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국경이 폐쇄된 탓에 못 넘기는 했습니다만, 어쩐 일로 찾아오신 겁니까?”
“잠시만, 나 다리가 조금 아파서. 조금만 옆으로 비켜 줄래?”
여인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나를 슬쩍 밀어내고 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샛노란 두 눈을 반짝였다.
“안녕? 내 이름은 울피라고 해. 네 이름은?”
“일단 제 이름은 마르낙입니다만.”
“마르낙. 음음. 외우기 쉬운 이름이네. 그래서 네가 여기 이거야?”
울피는 자신의 엄지를 내밀어서 좌우로 흔들어 댔다.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녀가 내게 대충 네가 여기 일행을 이끄는 우두머리냐고 묻고 있다는 점은 확실했다.
“일단 용건부터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았어. 알았어. 있잖아…”
그녀는 회색 여우 귀를 쫑긋거리며 주위를 둘러보곤 내게 슬쩍 몸을 기울여 왔다. 가벼운 땀 냄새와 함께 풍겨 오는 여인의 체취.
‘살해!!!’
내 옆에 앉아 양 볼 가득히 음식을 집어넣고 우물우물 씹어먹던 어머니께서 인상을 한가득 찌푸린 채로 저 출신도 불분명한 여우귀쟁이를 당장에 쫓아내라고 분노했다.
나는 내게 다가온 울피의 몸을 슬쩍 밀어냈다.
“불필요한 접촉은 삼가 주십시오.”
‘살해살해.’
아주 잘했다는 어머니의 칭찬. 나는 어머니의 칭찬을 한 귀로 흘려들으며 이 울피라는 여우 수인족에게 집중했다.
동부의 용왕국, 지극히 폐쇄적인 그 수인 왕국의 밖에서 돌아다니는 수인족들은 대개 세 부류였다.
타국으로 보내진 용왕국의 사자, 진짜 다른 나라를 구경하는 여행자, 그게 아니라면 용왕국에서 추방형을 받은 추방자.
풍요로운 용왕국에서 추방형은 사형에 약간 못 미치는 중범죄자들에게 내리는 형이었다. 이 울피라는 여인이 내 추측대로 추방자라면 추방의 인(印)이 그녀의 오른쪽 등에 찍혀 있을 텐데. 당연히 저 여인이 옷을 다 입고 있는 지금, 내가 그걸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울피는 자신의 오른 어깨 쪽으로 향한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쓰게 웃었다.
“네가 생각하는 그거 맞아.”
“그렇다면 당신이 무슨 말을 꺼내든 저희 입장에선 믿기가 힘들겠군요.”
“나 여기서 꽤 오래 ‘일’을 해 왔거든? 나름 신용도 꽤 있다고. 일단 이야기라도 들어 보는 게 어때?”
꿀 떨어지는 목소리. 울피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내게 몸을 기대 왔다. 결국 울피의 작태를 무척이나 불편한 눈길로 바라보던 다키아가 입을 열었다.
“일단 마르낙 사제님한테서 떨어져 주셨으면 하는데요. 마르낙 사제님이 불편해하시잖아요.”
울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무척이나 놀랐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샛노란 눈망울이 빠르게 깜박였다.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교태였다.
“불편? 정말 내가 불편해?”
나는 쓰게 웃으며 울피를 밀어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금 불편합니다. 떨어져 앉아서 이야기를 해도 무작정 내쫓지는 않을 테니 제 몸에 기대는 건 멈춰 주시지요.”
“어…”
내 대답이 예상외의 것이었는지, 울피는 조금 놀란 얼굴로 우리 일행을 살폈다. 그녀는 어머니와 다키아, 쟈멜을 훑어보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너 이미 잡은 물고기한테도 먹이를 잘 주는 종류의 남자구나?”
“무례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쟈멜이 울피를 향해 삿대질하며 힘차게 소리쳤다.
“마르낙 사제님이 세간의 야만적인 사람들과 달리 얼마나 금욕적인 분이신데요! 얼마나 금욕적이신지 마르낙 사제님은 과연 남자들에게 다 달린 그게 달려있는지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금욕적인 분이시라고요!!!”
갑작스러운 쟈멜의 외침에 1층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몰렸다. 몇 번 눈을 깜박인 울피가 나를 바라보곤 다 알겠다는 듯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 아까 나를 별 반응 없이 밀어낸 것도 그렇고 너 ‘그거’구나?”
“예?”
“너 그게 안 서는 거지? 응? 내가 마침 그쪽 치료에 빠삭한 사람도 아는데 소개시…”
“아닙니다!”
나는 멀쩡했다. 그래, 나는 지극히 멀쩡한 한 명의 남자였다.
내 거친 항변에 울피의 눈빛에는 묘한 확신이 깃들어 갔다.
“정말?”
그녀의 물음에 어머니, 다키아, 쟈멜 셋 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덤으로 숙소 1층에서 밥을 먹고 있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도 내 입을 주시했다.
여기저기서 ‘고자’라느니, ‘불능’이라느니 지극히 모욕적인 단어들이 귓가로 들려왔다.
쟈멜의 쓸데없는 비유에서부터 시작된 오해가 점점 제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무척이나 ‘건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방도가 딱히 없었다.
그걸 확인시켜 주자고 당장 이 여우수인 여인을 데리고 위층으로 데리고 갈 수도 없지 않은가.
“하아. 이 주제는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군요. 저희를 찾아온 용건이나 빨리 이야기해 주십시오. 울피.”
회피에 가까운 내 대답에 나에게 집중하고 있던 다른 손님들은 실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곤 다들 다시 자기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울피는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내 허리춤을 바라보곤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사람이 만드는 약이 진짜 용한데 정말 소개 안 해 줘도 괜찮겠어?”
나는 그저 조용히 웃으며 울피에게 말했다.
“당장 쫓아내기 전에 본론부터 말씀해 주시죠.”
내 웃음을 본 울피가 몸을 움찔하곤 내게서 슬쩍 거리를 벌렸다.
“알았어, 더 이상 이 이야기는 안 할 테니까 웃으면서 화내지 말아 줄래? 지금 네 웃음 되게 소름 끼쳐.”
“하아, 됐으니까 용건만 빨리 말해 주세요.”
내 한숨에 울피는 잽싸게 또 한 번 주위를 살펴서 우리에게 바라보는 다른 손님들이 없는지를 확인하고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경. 그거 넘게 해 줄게. 두당 금화 두 닢씩만 내.”
두당 금화 두 닢? 쟈멜, 테르지오, 다키아, 나, 어머니. 일행은 이렇게 다섯 명이니 저 이야기는 우리에게 총 열 닢의 금화의 달라는 뜻이었다.
두 눈을 가늘게 뜬 다키아가 울피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당연히 그 제안은 불법이겠죠?”
“어허, 불법 아냐. 그저 조금 ‘비공식적’인 길로 북제국에 입국하는 거지. 어차피 저쪽 동네는 이미 치안이 개판이라 일단 들어가고 나면 불법 입국인지 아닌지 따지지도 않거든.”
그래, 이 여인의 첫마디에서부터 대충 이런 제안을 꺼낼 목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해 왔다는 것쯤은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금화 열 닢은 은화로 치면 천 닢, 동화로는 무려 십만 닢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어머니가 나뭇가지 줍기를 십만 번 해야 벌 수 있는 용돈.
거기다 싸구려 여관방에서 식사를 포함해서 하루 머물면 지불하는 돈이 대충 동화 열 닢인 걸 가늠하면 이 여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돈이 정말이지 얼토당토않은 거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가타부타 답을 하지 않자, 울피는 무척이나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조금 비싸지? 하지만 돈값은 충분히 할 거야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너희를 국경 너머로 안전하게 데려다줄 테니까.”
“저희에게 그런 큰돈이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울피는 슬쩍 눈짓으로 다키아를 가리켰다.
“내 눈이 옹이구멍인 줄 알아? 그 부유한 이르멜가의 귀족이 금화 열 닢도 안 들고 다닌다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다키아는 울피를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요. 금화 열 닢쯤이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죠. 하지만 당신네들이 그 돈을 먹고 튈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다키아의 물음 따위 예상 내라는 듯이 울피는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귀족가의 아가씨께선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이곳에서 나름 꽤 오래 일해 왔어. 우리가 겨우 금화 열 닢 털어먹자고, 그간 쌓아 온 신용을 날려 버릴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금화 열 닢이 과연 겨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이 아니라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면 금화 열 닢이 그다지 큰돈이 아닐 수도 있었다.
울피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둘러보곤 빙그레 웃었다.
“당장 대답하라고는 안 할게. 내가 내일 아침까지 여기로 올 테니까. 그때까지 서로 충분히 대화를 해 보라고.”
그녀는 그렇게 미련 없이 떠나려다 멈춰 서서 우리를 향해 말을 덧붙였다.
“맞다, 내가 아는 바로 앞으로 적어도 한두 달은 이곳을 지나 북제국으로 향하는 상단은 없어. 상단에 어떻게 끼여서 갈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접어 두라 이거야.”
울피가 떠났다. 그녀가 떠나자 다키아가 나를 향해 물어왔다.
“어떻게 할까요?”
“흐음. 다키아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실, 정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로클레스 상단 있죠?”
로클레스라면 다키아가 꽤 많은 지분을 쥐고 있는 상단의 이름이었다. 다키아는 자신의 입술을 매만지며 운을 뗐다.
“그쪽에 연락을 넣으면 공식적인 방법으로 국경을 지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뒤에 나올 말이 예상됐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군요.”
“맞아요. 아까 저 수인족이 하고 간 말처럼 최소 한 달은 이곳에서 대기해야 할지도 몰라요.”
이 국경도시에서 아무것도 안 한 채로 한 달이나 보낸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일정이 촉박해 당장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용해야 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마냥 유람하듯이 널널하게 다니다간 북제국에 있다는 어머니의 성물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도 충분히 남았다.
나만이 어머니의 신성이 봉인된 성물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나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했다.
“문제는 저쪽이 과연 믿을 만한가이군요.”
“맞아요.”
“쟈멜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쟈멜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조금 화가 난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곤 잽싸게 입을 열었다.
“금화 열 닢이라니! 이거 완전 바가지예요! 금화가 너무 아까워요! 우리를 호구 취급하는 게 틀림없어요!”
호구 취급이라… 확실히 우리는 이 불법 입국의 시가를 몰랐다. 저들이 다키아가 이르멜의 혈족인 걸 알아챈 이상, 바가지를 씌우려고 가격을 세게 불렀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거 확실합니까?”
확실하냐는 내 물음에 쟈멜이 공기 빠진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화, 확실한 건 아닌데요…”
“그럼 대체 뭘 근거로 우리를 호구 취급 한다고 생각한 겁니까?”
“그냥 느낌이요…? 금화 열 닢은 너무 큰 돈이잖아요…”
그야말로 감성에 기반한 추리.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테르지오를 향해 물었다.
“테르지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 저는 후계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셨으면 합니다.
그는 이번 여정 동안 항상 그래 왔듯이 똑같은 대답을 해 왔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일행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살해!’
아까 그 수인 여자가 마음에 안 든다는 대답.
“울피에 대한 의견을 물어본 게 아니라 국경을 어떻게 건널지에 대해 물어본 겁니다.”
어머니께선 턱을 부여잡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잠깐 고민하더니 어깨를 으쓱이셨다.
‘살해…?’
딱히 별생각 없다는 대답. 나는 한숨을 폭 내쉬고 일행을 둘러 보았다.
“일단 그럼 내일 저쪽과 접촉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 보는 거로 하죠. 오늘은 다들 고생했으니 이만 자러 갑시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의 방으로 향했다. 그 와중 테르지오가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테르지오는 앞서가는 다른 동료들을 힐끔 보곤 자그마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 혹시 후계자님의 성 기능에 애로사항이 있다면 제가 디스펜스에게 전해서 이모탈리움 성ㄱ…
“문제없습니다. 전혀요. 가서 쉬십시오. 테르지오.”
– 예.
***
다음 날 아침. 숙소를 나서자 울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른 일행은?”
“각자 방에서 쉬고 있습니다. 어차피 돈을 건네도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긴 해. 그럼 돈은?”
미리 준비해둔 주머니를 열어 그녀에게 내보였다. 울피는 재빨리 눈으로 금화의 숫자를 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화 열 닢. 딱 맞네. 고마워.”
“당장은 안 드릴 겁니다.”
나는 손목을 살짝 움직여 주머니를 낚아채려던 울피의 손길을 피해 냈다. 울피는 헛손질한 손을 추스르고는 불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어쩌자는 건데?”
“당신이 말한 그 비공식적인 길. 혼자서 운영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게 그 ‘길’이란 걸 확인시켜 주셔야겠습니다.”
울피의 미간으로 작은 주름이 새겨졌다.
“그 길이 바로 밥줄인데 돈도 안 받고 보여 달라고?”
“길을 보여 주기 싫으시다면 국경을 넘게 해 줄 다른 사람들을 보여 주셔도 됩니다. 저는 그저 당신이 저희에게 사기를 치는 게 아니란 것만 확인하면 되니까요.”
“흐음.”
엉덩이 뒤로 나온 털투성이 꼬리가 살랑댔다. 잠깐 뒤, 고민을 끝마친 그녀는 나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우두머리한테 데려다줄게. 어차피 나는 너희와 걔네를 연결하는 중개인일 뿐이거든.”
울피가 새하얀 손바닥을 내밀었다.
“뭡니까?”
“내 몫. 미리 떼 줘. 네가 나한테 돈을 줬으면 내가 알아서 빼고 전달했을 텐데 이렇게 데리고 갔다가 너랑 걔가 둘이서 바로 계약하면 나만 바보 되는 거잖아.”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나는 어차피 돈을 떼어먹으려던 것도 아니고, 그저 국경을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했기에 돈을 안 줄 이유가 없었다.
“얼마를 드리면 됩니까?”
울피는 커다란 꼬리를 살랑이며 씨익 웃었다.
“금화 다섯 닢.”
“그거 완전 바가지 아닙니까? 반이나 떼먹다니?”
“원래 손님 물어오는 게 제일 힘든 거야. 그래서 줄 거야 말 거야?”
나는 그녀의 손바닥 위에 금화 다섯 닢을 올려 주었다.
“받고 도망가면 꽤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
“안 가. 안 가. 자, 따라와.”
몽실거리는 꼬리를 따라 걸어가길 한참. 울피는 국경도시의 뒷골목들 사이를 지나 뒷거리에 어울리지 않게 꽤 커다란 한 집으로 날 안내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내들과 여인들. 울피는 그들을 지나쳐 얼굴에 짙은 흉터가 새겨진 중년 남성에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스칸. 손님 데려왔어.”
스칸이라 불린 사내는 로브를 뒤집어쓴 나를 힐끔 보곤 울피에게 물었다.
“돈은?”
“두당 금화 한 닢. 그것도 현금으로 일시불 지급. 어때?”
그는 우묵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자 말고 다른 일행은?”
대답은 나 대신 울피가 했다.
“여관에서 쉬고 있지.”
“돈. 선불이다.”
그는 여기저기 흉터가 가득한 내게 손을 내밀어 왔다. 나는 그의 손위에 금화가 든 주머니를 올려 주었다. 그는 주머니를 열어 안에 든 동전을 셌다.
“금화 다섯. 정확하군.”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언제 찾아오면 되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다.”
“예?”
“쏴라.”
푹. 푹. 푹. 푹.
동시다발적으로 날아온 화살이 무차별적으로 내 몸을 꿰뚫었다.
“끝났군.”
“누가 끝났습니까?”
서걱.
“커억!”
나는 화살 꼬치가 된 채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서리강철 검을 휘둘렀다. 스칸의 양팔이 나뒹굴고, 피가 튀었다.
“사, 살려…”
“뭐라 빌든 살려 줄 생각 없습니다. 그러니 빌지 마십시오.”
웅성대는 소리. 나는 양팔이 잘려 나간 스간을 한 발로 짓밟으며 입을 열었다.
“동화책에서 이르기를 원래 여우는 교활하고 못 믿을 동물이라더니.”
푹.
“컥!”
서리강철 검이 스칸의 목을 관통했다. 그는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절명했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울피를 향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저는 동화책을 믿지 않는 주의라 특별히 딱 한 번만 물어 드리겠습니다. 울피, 당신도 이 작자들이랑 한 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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