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2)
12 화 카르멘 발타스
카르멘 발타스
그런데 카르멘 발타스?
뒤에 붙은 성이 심상치 않았다. 발타스는 이 거친 북부에서 모르면 간첩인 성이었다. 단 한 남자 때문에.
검은 늑대 엔시스 발타스. 북부 최고의 무장인 그는 여왕을 지키는 최강의 검이자 지독한 원칙주의자로 유명했다.
카르멘은 이런 내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새카만 검은 눈으로 싱긋 눈웃음을 지으며 밝게 말했다.
“생각하시는 게 맞습니다. 검은 늑대 엔시스 발타스가 바로 제 아버지 되시는 분입니다. 다만, 혹시나 괜한 착각을 하실까 싶어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서자입니다.”
서자? 그 까다로운 원칙주의자인 검은 늑대에게 서자? 내가 알기론 그는 아내를 잃은 후로 쭉 홀몸으로 지내왔다고 알고 있었는데. 역시 사람은 소문과 실체가 다른 법인가.
하지만 굳이 여기서 더 캐묻는 건 예의가 아니었기에 부드럽게 주제를 돌렸다.
“뒤에 계신 분들도 혹시 소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죠!”
힘찬 대답, 시원스러운 카르멘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것이었다.
“이쪽의 로브를 푹 눌러쓴 분의 이름은 ‘마법사’ 토니사. 바로 우리를 고대유적으로 인도해줄 친구죠.”
토니사는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만 까닥거려서 인사했다. 나는 굳이 그녀와 더 친해질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에 그저 빙그레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마법사’란 이들은 대부분 꽉 막힌 얼간이들이었으니까.
이 세계에서 마법사가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태어나길 ‘마법사’로 태어나는 것.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마력을 쥐고 태어난 그들은 개인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일정한 나이가 되면 각성을 하는데, 그때 그들의 머릿속으로 막대한 양의 고대어에 대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진다.
그렇게 그들은 고대의 주문과 타고난 마력을 이용해서 세상의 법칙을 일그러뜨리는 진정한 한 명의 마법사로 다시 태어난다.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다만, 저들은 머릿속에 가득 찬 고대어에 대한 정보 탓인지 천성적으로 배우는 걸 귀찮아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교양이 결여된 힘만 센 무뢰한에 가까웠다.
마법사에게서 교양을 찾는다는 건, 새하얀 설원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눈토끼를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깊게 얽혀서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겠지.
마법사와 내가 인사를 나누는 걸 본 카르멘은 뒤이어 중무장한 외뿔족 남성을 내게 소개했다.
“이쪽은 수쿠스입니다. 보시다시피 외뿔족이고요. 언제나 믿음이 가는 든든한 친구입니다.”
수쿠스라고 불린 외뿔족 남성은 한 걸음 걸어 나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악마도살자’ 마르낙.”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짓고서 손을 내밀었다.
“그냥 마르낙이라고 불러주시지요. 그 별명은 부끄럽습니다.”
“스스로 이뤄낸 업적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자랑스럽게 여겨라.”
맞잡은 커다란 손아귀가 점점 더 힘을 더 해왔다.
그래, 이게 외뿔족이지. 전에 만난 교화교 사제 코르누는 사제라서 그런지 사회화가 굉장히 잘되어 있었지만, 외뿔족은 기본적으로 강한 이들과 힘겨루기를 무척이나 즐기는 종족이었다. 이들을 대할 땐, 초면에 조금 강건하게 나가는 게 오히려 나중에 편했다.
나는 약간 힘을 줘서 맞잡은 손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족히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큰 수쿠스가 내 힘에 이끌려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대로 한 쪽 발로 슬쩍 수쿠스의 발을 걸었다.
쿵.
커다란 몸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대지 위로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수쿠스를 향해 손을 내밀며 빙그레 웃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까?”
수쿠스는 드러누운 채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대단하군! 대단해! 역시 악마도살자인가! 힘이 아주 우리 외뿔족 못지않아. 거기다 은근히 드센 그 성격도 아주 마음에 들어!”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린 수쿠스가 내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이번 일이 다 끝나면 같이 술이나 한잔하지!”
“그 날이 무척이나 기대되는군요.”
미각을 잃은 내겐 술이란 아무 맛도 없는 맹물이나 다름없었지만, 굳이 여기서 거절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내가 인사를 다 나눈 걸 확인한 카르멘이 쾌활하게 웃었다.
“그럼 인사도 다 나눴으니, 슬슬 출발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부족한 대화는 가면서 메꾸도록 하죠. 아무래도 꼬박 이틀은 걸어야 고대제국의 유적에 도착할 테니까요.”
***
타들어 가는 장작, 튀어나오는 불티. 어둑한 밤에 모닥불만이 홀로 빛났다.
카르멘은 새 장작을 하나 밀어 넣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 자러 갑니까? 불침번 차례도 끝났으니, 동이 틀 때까지 잠시라도 눈을 붙이는 게 나을 텐데요.”
“이미 충분히 눈을 붙여서 더는 잠이 안 옵니다.”
귀스를 떠난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나잇대가 엇비슷했던 카르멘과 나는 꽤 친해질 수 있었다. 수쿠스와도 나름 나쁘지 않은 관계를 구축했고. 마법사인 토니사는 무척이나 과묵한 여인이었기에 별말을 나누지 못했지만, 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귀스를 떠나기 전에 산 털옷을 잡아당겨 몸을 감쌌다. 가는 털의 감촉이 장난스럽게 볼을 간질였다.
“보면 볼수록 느끼는 거지만 마르낙 사제님은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 외뿔족 혼혈이십니까? 아버지나 어머니가 외뿔족이라던지요.”
“제 아버지께서는 분명 인간이셨으니, 지금 그 말은 저희 어머니의 정절에 대한 의심으로 봐도 좋습니까?”
내 장난스러운 말에 카르멘은 키득거리며 웃었다.
“장난입니다. 장난. 그나저나 한창 혈기왕성하실 텐데, 혹시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있으십니까? 마르낙 사제님 정도면 훤하게 생겨서 여자도 꽤 많이 만나보셨을 텐데요.”
나는 옆에 떨어져 있던 장작을 하나 집어서 밀어 넣었다.
“저는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설원 같은 사람입니다.”
“호오. 그거 굉장히 놀랍군요. 그러면 혹시 좋아하는 여성상은 따로 있으십니까?”
카르멘이 재밌다는 듯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묻자, 가슴주머니 속에서 자그마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으음. 저는 아무래도 저와 같이 있어 주는 여성분이 좋습니다.”
주머니 속 꿈틀거림이 멎었다. 카르멘은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옆에서 곤히 자는 여인을 보는 것도 분명 보람있는 일이지요.”
“제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엔 자신의 이야기도 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제가 좋아하는 여성상 말입니까?”
“예.”
쑥스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인 카르멘이 모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말입니다. 여자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해살해.’
그 순수한 한마디에 어머니께서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을 까딱였다. 어머니의 까딱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르멘은 손으로 허공에 커다란 가슴을 그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래도 마음은 가슴에 있는 것이다 보니 마음이 넓으려면 마음을 담는 그릇이 커야겠지요.”
‘살해?!’
갑작스럽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대화에 부패의 어머니께서 진심으로 당황하셨다. 카르멘이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마르낙 사제님. 저는 가슴 큰 여자가 좋습니다.”
더없이 당당한 그 태도에서 나는 아까와는 다른 방향의 순수를 느꼈다. 내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내 머릿속에다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살(殺)!’
당장 저 음탕한 자와 거리를 두라고 버둥대는 어머니를 토닥토닥 달래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취향이 확고한 건 나쁘지 않은 일이지요.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줄 테니까요. 하지만 조심스럽게 충고하나 드리자면 여성분들 앞에서 굳이 그 이야기는 안 꺼내시는 게 좋겠습니다.”
카르멘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저도 어디 가서 이런 말을 쉽게 하고 다니진 않습니다. 다 사제님 앞이라 그러는 거죠. 게다가 요 며칠 사이, 저희는 꽤 마음이 잘 맞지 않았습니까? 사제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꼭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같은 느낌이 듭니다.”
사실, 나도 이 쾌활한 사내가 퍽 마음에 들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살해!!!’
친구는 가려 사귀라는 어머니의 외침과 함께 우리는 아침을 맞이했다.
이제 고대유적에 진입할 차례였다.
***
“그럼 열겠습니다.”
토니사는 작은 목소리로 고대어를 중얼거리며 허공에 ‘열쇠’를 밀어 넣었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검은 구멍이 입을 벌렸다.
나는 고대제국의 유적을 보니 살짝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번이 내 첫 유적탐사였기에.
고대제국의 유적에 진입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1. 유적에 들어갈 수 있는 키 아이템인 ‘열쇠’를 구한다.
2. 열쇠에 적힌 좌표로 이동해 열쇠 위에 적혀있는 고대어를 읽는다.
3. 마지막으로 허공에 열쇠를 밀어넣고 시계방향이든 반시계방향이든 원하는 대로 돌린다.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면 고대제국의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열쇠에 적힌 고대어를 읽을 수 있는 건 마법사 뿐이기에 고대유적의 탐사에 있어서 마법사의 존재는 필요불가결이었다. 여기서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이 게임의 플레이어.
그렇다. 나는 고대어를 읽을 수 있었다. 마력이 없어서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몇 번이나 유적의 ‘열쇠’를 구하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이 세상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내가 ‘열쇠’를 구하기엔 ‘열쇠’는 꽤 귀한 물건이었다.
“들어갑시다!”
힘차게 외친 카르멘이 먼저 검은 구멍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차례대로 수쿠스, 나, 마지막으로 토니사가 유적으로 진입했다.
열쇠를 가진 토니사가 유적에 들어서자 검은 구멍이 천천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유적을 벗어나는 방법은 다시 한 번 열쇠를 사용해서 여기서 벗어나거나, 유적 어딘가에 있을 ‘출구’를 찾아내는 방법밖에 없었다.
“와.”
“와.”
나와 카르멘은 유적을 관찰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실, 인터넷에서 스크린샷으로만 보던 유적을 직접 이렇게 두 눈으로 보니 이 압도적인 광경이 내 가슴을 벅차게 했다.
거대한 하얀 바위들로 만들어진 터널의 끝에서 제 존재를 과시하는 거대한 백색 건축물. 하지만 그 정갈한 아름다움 속에선 그 어떤 생명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달막한 새의 지저귐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벌레의 소리도, 짐승의 숨결도 없었다.
이곳엔 그 어떤 삶의 소리도 없이 침전된 세월의 적막함만이 가득했다.
감동의 여운이 가시고, 먹먹한 적막함 속에서 카르멘이 슬쩍 웃었다.
“그럼 일단 들어가 볼까요? 제가 여태 들어왔던 것보다 훨씬 보존이 잘 된 유적인 거 같으니 분명 유물도 잔뜩 있을 겁니다.”
보존이 잘 돼?
내 정신을 깨우는 카르멘의 한마디에 나는 살짝 마음을 다잡았다. 유적의 보존이 잘 되어 있다는 건 게임을 기준으로 이 유적의 등급이 나름 높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즉, 높은 레벨의 수호자가 등장할 확률이 높다는 것과 같았다. 물론, 수호자가 없는 보너스 유적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미리 긴장해둬서 나쁠 건 하나도 없지.
게다가 높은 등급의 유적은 당연히 높은 등급의 고대 유물을 품고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발끝에 담아 앞으로 나아갔다. 앞장서는 카르멘의 뒤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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