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20)
120 화 조우.
조우.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울피는 혼자서 폭풍처럼 말을 뱉어 냈다.
“너, 너! 그거잖아! 그렇게 여자들을 주렁주렁 데리고 다니면서 손을 안 댄 거면 안 봐도 뻔하지!!!”
그녀는 자신의 풍성한 꼬리를 덥석 붙잡더니 바들바들 떨면서 나한테 자신의 꼬리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폭탄 같은 선언을 내뱉었다.
“넌 수인성애자인 거잖아! 폭신폭신한 털이 없으면 흥분을 못 하는 그런 취향인 거지!!! 그래서 굳이 나만 이렇게 살려 둔 거고!!! 자! 마, 만져도 돼! 그러니까 제발 죽이지만 말…”
저 폭신폭신한 털 뭉치 꼬리를 한 번쯤은 만져 보고 싶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 꼬리를 만졌다간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가겠지. 일단, 나는 저 바들바들 떨고 있는 울피를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
“뭔가 조금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만…”
“어, 어서! 만져! 얼마든지 만지게 해 줄 테니까 살려만 달라고!!! 나는 아직 죽을 수 없어!!! 내,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
“닥쳐요!!!”
쟈멜은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펄쩍 뛰어올라 내 앞으로 오더니, 내게 들이밀어진 풍성한 꼬리를 탁하고 쳐 냈다.
“이 배신자사기꾼이 헛소리를 하기는!!! 마르낙 사제님은 그깟 털 뭉치 하나 들이민다고 눈썹 하나 꿈쩍하실 분이 아니에요! 한 번만 더 제대로 씻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더러운 털 뭉치를 마르낙 사제님한테 들이밀기만 해 봐요!!! 아주 그냥 그 꼬리털을 모조리 뽑아서 제 베갯속을 꽉꽉 채울 줄 알아요!!!”
“내 꼬리털은 전혀 아, 안 더럽거든!!!”
당연히 이번에도 울피의 말을 무시한 쟈멜은 작은 입을 벌려 하얀 이를 드러내곤 울피를 향해 으르렁댔다. 그렇게 그녀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위협을 내보이고선 내게 고개를 돌리고 눈을 반짝였다.
“저 잘했죠?”
“아주 잘했습니다.”
표정이 안 좋은 다키아나 분노한 어머니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쟈멜이 먼저 호들갑을 떨어 준 덕에 조금 더 쉽게 이 오해를 풀 수 있을 듯했다.
“울피.”
“으, 응?”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몸이 아닙니다. 그리고 수인성애자도 아니고요. 저는 그저 살려 주는 대신 저희가 그 ‘비공식적인’ 길로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으면 할 뿐인 겁니다.”
“구, 국경을 넘게 해 달라고…? 그건 내 주 업종이 아닌데…”
“그래서 못 하시겠습니까?”
나는 그저 검 손잡이를 툭툭 치는 거로 내 의사를 표현했다. 내 몸짓의 효과는 아주 뛰어났다.
“할게!!! 어떻게든 해 줄게!!! 내, 내가 진짜 어떻게든 국경을 넘게 해 줄게!!!”
“아주 현명한 판단입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자 울피는 다키아를 비롯한 내 동료들의 눈치를 보곤 잽싸게 내 손을 붙잡아 왔다. 꽉 붙잡아 오는 손. 그녀는 내 손바닥이 마치 자신의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악수를 해 왔다.
“구, 국경만 넘게 해 주면 진짜 살려 주는 거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해 주시면 따로 보수도 챙겨 드리겠습니다.”
“정말?”
보수라는 단어에 그녀의 여우 귀가 쫑긋 하고 반응했다. 굳이 보수를 챙겨 줄 필요가 있겠냐 싶겠지만, 괜히 무상으로 일을 시키다 울피가 딴생각을 품는 편이 더 귀찮았다.
“예. 대신, 이번 일도 있고 하니 보수는 일이 끝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주, 주기만 하면 크게 상관없어…”
어느새 내 옆으로 바싹 다가온 다키아가 울피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마르낙 사제님. 지금부터 울피는 제가 데리고 다녀도 괜찮을까요? 제대로 일하는지 지켜볼 사람이 하나쯤은 필요하잖아요.”
확실히 다키아의 말대로 울피의 곁에 사람을 붙여 둘 필요가 있었다. 살랑이는 주황빛 머리가 나와 다키아의 사이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거!! 그거 제가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진짜 저 배신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아주 열심히 감시할게요!!!”
쟈멜의 열정 가득한 지원에 다키아는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쟈멜은 울피가 도망쳐도 막을 힘이 없잖아요.”
통렬한 지적. 뜨거운 열정에 반해, 악신의 숭배자인 쟈멜은 그 힘의 특성상 상황이 갖춰지지 않으면 절대 대놓고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쟈멜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렇네요…”
다키아는 축 처진 쟈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싱긋 웃었다.
“뭐, 혼자가 안 되면 저랑 같이 감시하면 되죠. 마르낙 사제님, 저랑 쟈멜 둘이서 울피를 감시해도 될까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다키아의 미소에서 동물적인 직감으로 무언가를 느낀 건지, 울피는 꼬리를 뻣뻣이 세운 채 내 옷깃을 붙잡아 왔다.
“그, 그냥 내 감시는 네가 해 주면 안 될까…?”
“안 돼요.”
다키아는 여전히 입가에서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내 옷깃을 붙잡은 울피의 손을 떼어 냈다.
“따라오기나 하세요. 지금부터 시체들을 모조리 태워서 없앨 생각이니까 옆에서 구경이라도 하세요.”
울피는 다키아에게 끌려가며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그, 그런 거 구경하고 싶지 않아!”
“배신자에게 선택권은 없어요!!!”
다키아의 뒤를 졸래졸래 쫓아간 쟈멜은 이때다 싶은지 울피의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며 끊임없이 구박했다.
정말이지 평화로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이걸로 한 건 해결이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어머니?”
‘살해!’
빛과 함께 내 품속에서 튀어나온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살해?’
저 여우한테 진짜 보수를 챙겨 줄 거냐는 물음. 어머니는 잽싸게 손을 슥슥 휘두르며 말을 덧붙이셨다.
‘살해살해.’
그냥 국경을 넘자마자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해 버리자는 권유. 나는 쓰게 웃으며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여 드렸다.
“일을 잘 해 줬는데 죽이면 조금 너무하지 않습니까? 뭐, 일단은 지켜볼 생각입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짓을 하면 가차 없이 벨 테니 너무 염려치 마시길.”
***
그 뒤로 며칠 동안 울피는 쟈멜과 다키아의 감시 아래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스칸과 연결되어 있던 끈을 다시 연결하는 중이라고 했다. 울피와 같이 다닌 다키아가 생각보다 열성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으니, 일단은 순조롭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까앙!!!
금속과 금속의 충돌. 시동을 켜지 않은 도살자와 이모탈리움 검이 맞부딪혔다.
좌? 우? 나는 본능이 시키는 대로 좌측으로 비스듬히 검을 흘려 냈다. 하지만 금속질의 몸의 가동 범위는 언제나 내가 예상한 바를 웃돌았다. 꺾일 리 없는 각도에서 꺾인 검이 다시금 나를 노리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 조심하십시오! 후계자님!
하지만 육체라면 이쪽도 평범한 규격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도살자의 궤적이 휘어졌다.
까앙!!!
튀어 오르는 불티. 아릿한 충격이 검신을 타고 내 손으로 퍼져 나갔다.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난 두 개의 검날. 둘 중 먼저 움직인 건 내 쪽이 아니라 테르지오의 검이었다.
사선. 검날이 내 어깨를 노리고 뻗어 왔다. 나는 재빨리 허리를 젖혀 아슬아슬한 간격으로 검을 피해 냈다. 호흡을 참고, 근육의 힘을 응축시킨다. 허리를 젖힌 그대로 거침없이 도살자를 휘둘렀다.
까앙!!!
튕겨난 테르지오의 검이 허공을 날아 몇 번의 회전을 거듭한 끝에 여관 마당에 꽂혔다.
깡! 깡! 깡!
두 금속 손으로 손뼉을 마주치며 테르지오가 입을 열었다.
– 훌륭하십니다. 후계자님. 정말이지 빠르게 느시는군요.
나는 몸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땀을 대충 손으로 훔치며 빙그레 웃었다.
“전부 테르지오가 봐준 덕이지 않습니까?”
권능을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맞붙는다면 나는 아직 테르지오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건 비단 그의 몸이 이모탈리움으로 이루어져서일 뿐만 아니라, 검술의 정교함에 있어서도 나는 테르지오에게 밀렸다.
애초에 나는 지극히 간단한 기본 동작을 본능이 시키는 대로 그때그때 맞춰 휘두르도록 배워왔기 때문이지만.
– 아닙니다. 후계자님. 제게 입력된 통계에 비춰 보았을 때도 후계자님의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빠릅니다. 이건 흔히들 ‘천재’로 분류되는 이들의 통계에 비추어 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비범한 후계자님을 모실 수 있어서 저 테르지오는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과한 칭찬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 그런데 후계자님. 정말 인체 과학적으로 검증된 황실근위대 검술을 익히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후계자님의 습득 속도로 보건대 대략 세 달 정도면 어느 정도 숙련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고대제국의 황실근위대가 쓰던 검술이라. 듣기만 해도 삐까번쩍한 제안이지만, 나는 그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괜히 다른 검술을 배웠다간 화를 내실지도 모르는 분이 계시거든요.”
내가 다른 검술을 배워서 사용하는 꼴을 프리디야 스승님에게 들키면 대체 어떤 반응이 나올지 예상이 안 돼서 감히 배울 수가 없었다. 스승님은 다른 문제들이야 그저 싱긋 미소 짓고서 가볍게 넘기실 분이었지만, 검술만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스승님께서 직접 나서신 이상, 슬슬 맡으신 일이 무엇이든 대충 정리가 끝났을 게 분명했다. 아마 머지않아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실 테니, 그때 가서 물어보고 저 황실근위대 검술을 배워도 늦지 않으리라.
‘살해!’
뽀송뽀송한 수건. 어머니께선 싱글벙글 웃으며 땀범벅인 내게 수건을 내밀어 오셨다. 나는 어머니께 마주 웃어 주며 수건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새하얀 두 손바닥이 나를 반겼다. 고맙다는 내 인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선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손바닥을 내민 채 내게 무언의 압박을 가해 오셨다. 나는 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둔 동화 한 닢을 꺼내 어머니의 손에 올려 드렸다.
‘살해!’
그제야 어머니께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게 받은 동화를 목에 걸고 있던 자그마한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어머니의 목에 걸린 저 주머니 저금통은 나조차도 건드릴 수 없는 물건이었다. 대체 이렇게 꼬박꼬박 용돈을 모아서 뭘 하시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발적으로 일하는 데 퍽 재미를 들리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수건으로 땀을 대충 훔치고서 숙소 주인에게 돈을 주고 미리 부탁해 둔 물로 씻고 나오자, 다키아를 비롯한 셋이 돌아와 있었다.
2층에서 내려오는 나를 발견한 다키아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활짝 웃었다.
“마르낙 사제님! 여기예요! 슬슬 저녁 시키려고 하는데 마르낙 사제님은 뭐 드실래요?”
“육류로 시켜 주시면 됩니다.”
어차피 맛을 못 느끼는 난 굳이 신경 써서 메뉴를 고를 이유가 없었다. 그게 그거니까.
내가 자리에 앉자, 울피가 꼬리를 살랑이며 말을 꺼냈다.
“대충 준비가 끝났어. 내일 밤에 국경을 떠나면 될 거 같아.”
지난 며칠 동안 쟈멜의 구박을 제외하곤 우리가 자신에게 별다른 짓을 안 한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편한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정말 북제국으로 넘어갈 거야?”
“예. 그럴 생각입니다.”
“거긴 여기랑 비교도 안 되게 진짜 개판인데도?”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겁니까?”
울피는 흥 하고 콧김을 내뿜고는 턱을 괴고서 일행을 훑어보았다.
“괜히 보내 줬는데, 북제국의 상황이 생각했던 거랑 달라서 내 욕을 바가지로 할까 봐 그러지.”
“할 일이 있어서 넘어가는 거니, 그런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쫑긋대는 두 귀. 팔랑이는 꼬리가 속도를 더했다.
“할 일이란 게 뭔데? 너희 정도 실력을 갖춘 일행이 하는 일이면 엄청 큰돈이 될 거 같은데, 내 생각이 맞지? 응?”
“자세히 알면 다칩니다.”
“응? 그러지 말고? 그냥 한번 가르쳐 주면 안 될까? 나 입 엄청 무거워!”
그녀는 콧소리를 섞으며 은근슬쩍 내게 몸을 기대려 했다.
“거기까지만 하세요. 마르낙 사제님이 귀찮아하시잖아요.”
다키아의 짧은 한마디에 울피는 눈을 데굴 굴리곤 잽싸게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으, 응! 알았어!”
울피는 묘하게 다키아를 무서워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따끈따끈한 음식들 위로 피어오르는 김. 나는 음식들을 찬찬히 훑어보곤 빙그레 웃었다.
“그럼 다들 내일까지 푹 쉬고 내일 밤, 국경을 넘도록 하죠.”
***
캄캄한 밤. 울피의 인도를 따라 희미한 달빛만이 가득한 길을 걸어 나갔다. 불법적인 길인만큼 멀리서도 보이는 횃불을 켜고서 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내 육체는 희미한 달빛만으로 충분했기에 내 앞에서 살랑대는 꼬리가 아주 잘 보였지만.
울피가 우뚝 멈춰 섰다.
“잠깐만. 여기 원래 기다리고 있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그녀는 코끝을 쫑긋거리더니 빠르게 내게 다가와서 속삭였다.
“시체 냄새가 나. 뭔가 일이 잘못된 거 같아.”
후각에 집중하자 그녀가 말한 시체 냄새가 내 코끝에서도 느껴졌다.
“일단 제가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울피는 잠깐 일행이랑 같이 있으십시오.”
“으, 응.”
나는 조용히 서리강철 검을 뽑아 들고 시체 냄새가 풍겨 오는 근원지로 향했다.
또 사람이 문제인 건가. 국경 한 번 넘기가 정말 쉽지 않네.
하지만 시체가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이게 사람의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뜯어먹힌 내장 조각과 자취를 감춘 머리. 풍겨오는 비릿한 체액의 향.
이건 마수(魔獸)가 벌인 짓이었다.
북제국이 개판이라더니. 이 주변은 기본적인 마수 구제조차 되어 있질 않은 건가.
“이러면 차라리 사람 쪽이 편한데.”
키릭!
무언가 튀어나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서리강철 검을 휘둘러 덮쳐 온 괴물을 반 토막 냈다.
키리리리릭!!!
죽은 마수는 새카만 말벌이었다. 사람 몸뚱이만 한 검은 말벌. 이게 진짜 벌 마수라면, 절대 혼자 다니지 않…
콰아아아아앙!!!
일행이 있는 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저건 분명 다키아의 마법이었다.
화려한 폭음과 함께 피어오른 불길을 본 나는 쓰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몰래 지나가긴 완전히 글렀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