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26)
126 화 낯선 이.
낯선 이.
결국 쟈멜은 온몸에 덕지덕지 달고 있던 황금 장신구들을 자신의 짐 속 깊숙한 곳에 꼭꼭 넣어 두었다. 졸부 쟈멜에서 원래 쟈멜로 되돌아온 그녀를 데리고 울피의 안내를 받아 그녀의 단골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술에 잘 취하지 않는 나와 술에 취할 수 없는 몸인 테르지오가 있었기에 다들 오랜만에 아주 긴장을 풀고 마음껏 술을 시키고 마셨다.
후룩.
술을 목 뒤로 넘겼지만, 역시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제법 비싼 과일주라고 들었는데 말이지.
“와하하하핫! 나는 이제 부자다! 부자얏!!! 모두 들으쎄여!!!”
만취한 쟈멜은 가게 정중앙 탁자 위에 올라가서 거의 자기 머리만 한 술잔을 번쩍 치켜들고는 거침없이 외쳤다.
“오늘!!! 여기서 파는 술은 전부 제가 쏠 테니까!!! 다들 맘껏 마시세여!!!”
“오오오오!!! 이거 아주 통 큰 아가씨구만!!!”
“아가씨, 그 말 진짜야?”
쟈멜은 반쯤 풀린 눈으로 주변을 훑고는 배시시 웃었다.
“그으으으럼요!!! 와아아아안전 진짜예여!!! 이 쟈멜이!!! 모두에게 술을 쏘겠다!!! 이거예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제가 이 술을 쏘는 조건이 있다구요!!!”
“그래! 그냥 쏠 리는 없지! 우리가 뭘 해 주면 되나!!!”
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들은 공짜 술을 얻어 마시기 위해서 쟈멜의 주사에 기꺼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건 말이져!!!”
쟈멜은 잔에 든 술을 단번에 벌컥벌컥 마시고는 나무잔을 아무렇게나 뒤로 내던졌다. 나무잔이 바닥 위를 텅텅거리며 나뒹굴었지만, 호구를 잡은 가게 주인과 호구를 만난 손님들 그중 누구도 쟈멜의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다.
쟈멜은 에메랄드빛 눈으로 천천히 감고는 양손을 활짝 펼쳤다. 내려앉은 정적. 그 속에서 쟈멜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갈채하라!!! 이 쟈멜의 지고한 씀씀이에 갈채하라!!! 이하하하하핫!!!”
사내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아아아아아!!!”
“쟈멜 만세!!!”
“쟈멜에게 갈채하라!!!”
“갈채해!!”
두 눈을 감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환호를 음미하는 쟈멜은 내가 그녀를 만난 이래로 가장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여기 꽤 큰 술집이라서 오늘 밤 술값을 전부 계산하려면 꽤 많은 돈이 들 텐데.
‘ㅅ…ㅏ…ㄹ…ㅎ…ㅐ…ㅅ…’
내 허벅지를 베고 주무시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갈채에 인상을 찌푸리고 머리를 뒤척이셨다. 울피에게 호기롭게 술을 받아 마신 어머니는 채 두 잔의 술도 다 비우지 못하고 그대로 곯아떨어지셨다.
아니, 괜히 주사를 부리는 것보단 낫나.
“저거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말려야 하는 거 아냐?”
살짝 달아오른 두 볼. 울피는 손님들 사이에 둘러싸여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온갖 찬사를 음미하고 있는 쟈멜을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괜찮을 겁니다. 물론, 쟈멜의 주머니 사정은 안 괜찮아지겠지만요.”
키득키득 웃은 울피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툭 하고 질문을 던졌다.
“이제 진짜 칸덴티아로 넘어갈 거야?”
“네,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 떠날 것 같습니다.”
“북부왕국을 생각하고 넘어가면 진짜 큰코다칠걸? 북제국의 귀족들은 아주 맛탱이가 간 애들이 대부분이야.”
그녀는 안주를 하나 집어서 입 안으로 밀어 넣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거기는 여기 북부왕국의 ‘검은 늑대’ 엔시스 발타스 경처럼 귀족들의 모범인 동시에 규율의 감시자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 없어. 웬만하면 저 둘의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걸 추천할게. 괜히 드러내 놓고 다니다간 아마 많은 문제가 생길 거야. 뭐, 너희들의 무력 수준이면 대부분의 문제는 별거 아니겠지만.”
울피가 말한 ‘둘’이란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다키아와 내 허벅지를 베고 잠든 어머니를 뜻했다. 하긴, 치안이 바닥을 친다면 보기 힘든 미(美)는 언제나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만 할 뿐이겠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충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울피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목표로 하던 돈을 모았다고 들은 것 같은데요.”
그녀는 씨익 웃고는 술을 한 모금 넘겼다.
“나도 국경도시를 떠야지. 몇 년은 여기서 더 썩어야 할 줄 알았는데 덕분에 계획이 조금 앞당겨졌어. 나도 북제국 쪽으로 가는 거면 너희랑 같이 갈 텐데, 내가 가는 곳은 북제국이 아니라서 말이야.”
“용왕국으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응.”
꾸벅이던 머리가 앞으로 빠르게 기울었다. 나는 잽싸게 손을 뻗어 안주에 머리를 박을 뻔한 다키아의 머리를 붙잡고는 조심스럽게 이끌어 내 어깨 위에 그녀의 머리를 올려 두었다.
울키는 그 광경을 보곤 키득키득 웃었다.
“고생이 많네. 우리 사제님은. 진짜 근데 둘 다 왜 안 건드리는 거야?”
“뭐라시는 겁니까.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정말 어디 고장 난 건 아니지?”
“아닙니다.”
나는 재빨리 이 불편한 주제를 다른 곳으로 전환하기 위해 말을 던졌다.
“그런데 울피는 추방자가 아니었군요. 용왕국으로 돌아가신다는 걸 보니 말입니다.”
“뭐래, 난 그런 흉악범이 아니거든? 난 언제나 받은 만큼 일한다고. 아주 정직하게.”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내 두 눈을 빤히 마주 보았다. 홍조 어린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어렸다.
“물론, 이번에는 내가 한 것보다 훨씬 많이 받은 거 같긴 하지만. 저 둘도 마침 다 자는 거 같은데 내 꼬리 한번 만져 볼래?”
“괜찮습니다.”
“빼기는. 자자, 한번 만져 봐. 이거 아무나 만지게 해 주는 게 아니니까.”
나는 다키아와 어머니가 확실히 자고 있는 걸 다시 확인하고는 슬쩍 손을 뻗어 탁자 너머에 있는 울피의 꼬리를 만져 보았다.
진짜 엄청 부드러웠다. 이 털로 베개를 만들면 진짜 머리를 대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지지 않을까?
털을 결대로도 만져 보고, 결의 반대 방향으로도 쓸어 보고, 부드러운 털을 여러 방식으로 음미하자 울피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 이제 그만 만져! 대, 대체 언제까지 만지는 거야!”
완전 홍시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그녀가 잽싸게 꼬리를 빼서 자신의 품에 껴안았다.
“적당히 만져야지! 적당히!”
“그거 꼬리 진짜 괜찮군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베고 자고 싶을 정도입니다.”
“뭐래니!!!”
회색빛 털로 뒤덮인 두 귀가 격렬하게 쫑긋댔다. 그녀는 자신의 풍성한 꼬리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는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호, 혹시 그 하던 일이란 게 끝나면 용왕국으로 한번 놀러 올래?”
내가 하던 일이 끝난다라. 어머니가 온전한 신이 되신다면 나는 어떤 존재가 되는 걸까. 소원은 또 뭘 빌지? 그런데 끝을 보면, 나는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건가?
지금으로선 전부 알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지 않더라도 한번 용왕국으로 찾아갈지도 모릅니다.”
어머니의 신성이 봉인된 성물들 중 하나가 용왕국에 없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래?”
그녀의 풍성한 꼬리가 흥겨운 박자로 의자를 때려 댔다.
“용왕국에 오면 날 찾아와.”
“어떻게 찾아가면 됩니까?”
“아마 내 계획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날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만약 실패하면요?”
내 질문에 쫑긋대던 두 귀가 축 늘어졌다. 울피는 입술을 삐죽이고는 조금 뚱한 눈빛으로 째려보았다.
“말을 왜 그렇게 해? 흥. 쫄딱 망하고 굳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진 않은데… 흐음… 어찌 됐든 용왕국 수도에 올 일이 생기면, 그곳에서 내 이름 울피를 찾아봐. 아마 찾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거야.”
“기억은 해 두겠습니다.”
“응, 그거면 돼! 날 찾아오면 그때는 꼬리로 네 목을 감아 줄게! 특별히!”
꼬리 목도리라. 솔직히 저 꼬리털로 만들어진 베개나 목도리라면 웃돈을 얹어서라도 하나쯤 가지고 싶었다. 혹시 용왕국에 가면 수인족 털로 만들어진 베개를 살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빙그레 웃었다.
“인연이 닿길 바라죠.”
“그래!”
***
술집에서 회식한 다음 날, 울피는 우리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신의 갈 길을 떠났다.
쟈멜은 울적한 표정으로 텅 빈 주머니를 탈탈 털었다.
“하, 하룻밤 새에… 이, 이걸 다 써 버리다니…”
그녀는 술집에서 너무나도 크게 한턱을 쏜 결과, 황금 장신구를 구매하는 데 사용하고 남은 돈을 모조리 털려 버렸다.
“미, 미쳤던 거예요… 저는 완전히 돌아 버렸던 거예요…!”
‘ㅅ…ㅏ…ㄹ…ㅎ…ㅐ…’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 머리를 붙잡은 채로 다시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끙끙댔다. 그 옆에 드러누운 다키아도 핼쑥한 얼굴로 이마에 손을 올린 채 중얼거렸다.
“으으으… 골 울려…”
나는 밑에서 받아온 따뜻한 꿀물을 끙끙대고 있는 세 여인에게 내밀었다.
“이걸 마시면 조금 나을 겁니다.”
‘살…해…’
어머니께선 비척비척 일어나 꿀물에 입을 대고 홀짝홀짝 넘기기 시작했다. 반면, 다키아는 조금 멍한 눈으로 꿀물을 바라보곤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이거 그늘벌 꿀은 아니죠…?”
“그냥 꿀물입니다.”
그제야 다키아는 어머니처럼 꿀물이 든 잔을 홀짝였다. 마지막으로 쟈멜에게 꿀물을 내밀자 그녀는 멍한 눈으로 꿀물을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금화랑 같은 색이네요… 어제까지 제 주머니에 한가득 들어 있던 금화랑 같은 색요… 훌쩍.”
결국 감정이 북받쳤는지 쟈멜은 코를 훌쩍였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르낙 사제님… 제가 또 금화를 잔뜩 벌 수 있을까요…?”
“살다 보면 또 이런 기회가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쟈멜은 가녀린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렇게 후회하실 줄 알았으면, 제가 말릴 걸 그랬군요.”
“아뇨… 후회는 없서요… 언젠가 한 번쯤은 시끌벅적한 술집의 술을 통째로 쏴 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막상 텅 빈 주머니를 보니까… 훌쩍, 제 마음도 텅 비어 버린 것 같아요… 꿀물 감사합니다…”
말로는 후회 안 한다지만, 그녀의 두 눈에는 미련이 줄줄 흘러넘쳤다. 결국,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나는 주머니에서 금화 한 닢을 꺼내 쟈멜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걸 받으시죠.”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걸 왜 주세요…?”
“이건 쟈멜에게 보내는 제 갈채입니다. 덕분에 어제 많이 웃었습니다.”
“힝… 감사합니다… 훌쩍.”
쟈멜은 훌쩍이면서도 무척이나 숙련된 손놀림으로 텅 빈 주머니에 금화 한 닢을 넣고는 품속에 챙겼다.
그렇게 그날 하루를 통째로 푹 쉰 우리는 다음 날 짐을 챙겨서 안식의 나팔수를 찾아가 망자들 틈에 숨어서 국경을 넘었다.
***
북제국 칸덴티아의 국경을 넘은 지 벌써 삼 일째 날 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모닥불에 둘러앉아 슬슬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키아는 침낭을 펴며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는 안식의 나팔수를 보곤 내게 속삭였다.
“마르낙 사제님. 오늘도 불침번을 서지 않아도 될까요?”
“아마 그럴 겁니다. 저희를 둘러싼 망자의 무리가 있는 이상, 딱히 별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망자의 무리 속에서 여정을 계속한 덕분일까. 치안이 안 좋다고 자자한 북제국이었지만, 막상 우리는 무척이나 쾌적한 여정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개인적인 심정으로는 안식의 나팔수가 이대로 계속 우리와 함께 해 줬으면 했지만, 이 이야기를 그에게 꺼냈다간 나를 염치없는 벌레 보듯이 바라볼 게 뻔해서 굳이 말하진 않았다.
가만히 바위에 기대앉아 있던 안식의 나팔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새로운 문제가 찾아왔다. 문제 덩어리.”
“예?”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림자 속에서 로브를 푹 눌러쓴 여인이 솟아났다.
“히익!!!”
검은 머리 여인의 얼굴을 본 쟈멜이 자지러지게 놀라고는 새된 목소리로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지, 지젤! 어, 얼굴이 왜, 왜 그래?!”
“… 여전히 잘 먹고 잘 지내나 보네. 배신자 쟈멜. 나는… 안 그런데 말이지.”
지젤이라 불린 여인이 푹 눌러 쓴 로브의 모자를 젖히자, 흉터가 가득한 얼굴이 드러났다.
아니, 정확히는 얼굴의 반만이 흉터로 가득했다. 누군가 악의적인 장난으로 그녀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흉터를 새겨넣은 것처럼.
철 냄새. 아니, 진한 피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여인의 로브는 여기저기서 배어 나온 핏물로 흥건히 젖어 옷깃을 타고 핏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우리를 둘러보곤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좀 살려…”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입자는 채 말을 완성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녀가 바닥에 머리를 처박기 무섭게 쟈멜이 화들짝 놀라 새된 목소리로 비명을 내질렀다.
“지, 지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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