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27)
127 화 응급처치.
응급처치.
허겁지겁 달려나간 쟈멜이 지젤이 쓰러지기 직전에 그녀를 받아 냈지만,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그녀는 이미 무척이나 위중한 상태였다.
우리 중에 이런 심한 부상에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던가?
나는 반사적으로 안식의 나팔수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내 시선을 인지하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봐도 아직 살아 있는 건 내 전문이 아니다. 혹시 친한 사이인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저 여자가 죽고 난 다음 양지바른 곳까지 인도를 해 주는 것뿐이다.”
안식의 나팔수는 제외. 다키아도 제외. 쟈멜은…
“으아아아아아!!! 이, 이거 어떻게 하죠? 지, 지젤이 죽어 가요! 마, 마르낙 사제님!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그녀는 이미 두 손을 지젤의 피로 새빨갛게 물들인 채 완전히 공황 상태였다. 쟈멜은 애타게 내 도움을 바랐지만, 나는 몸뚱이가 몸뚱이인 터라 응급조치와는 거리가 매우 멀었다.
내 몸에 새겨진 상처는 그게 신성으로 인한 부상만 아니라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아물었으니까.
그리고 구원은 예상외의 인물에게서 나타났다.
– 잠시만 비켜보시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해보겠습니다.
테르지오는 침착하게 지젤을 껴안은 채로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쟈멜을 떼어 내고서 자신의 가방 속에서 붕대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물건들을 꺼내고는 그대로 지젤이 입고 있는 로브를 찢어 냈다. 그녀의 두꺼운 로브 안에는 아무런 옷이 없었다.
지젤의 맨몸을 본 다키아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체 누가…”
오래된 흉터와 새겨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처들. 새하얀 나체 위에는 수많은 고문의 흔적만이 가득했다. 테르지오는 그 수많은 상처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손을 놀려 약을 바르고 급한 상처들부터 틀어막기 시작했다.
– 후계자님.
“예.”
– 그늘벌 꿀을 가지신 게 있으십니까?
그의 질문에 나는 울피가 내게 챙겨 준 그늘벌 꿀을 굳힌 사탕이 떠올랐다.
“그늘벌 꿀 사탕이 조금 있습니다.”
– 후계자님께서 이 여인을 살릴 의지가 있으시다면 그 사탕들을 물에 녹여서 가져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시, 후계자님께서 이 여인을 살릴 생각이 없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당장에 응급조치를 그만두겠습니다.
이 여자를 굳이 살릴 이유가 내게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애초에 악신의 숭배자이고 리베라티오 소속이니.
“마르낙 사제님…”
하지만 쟈멜의 그렁그렁한 눈을 보고 있자니, 왠지 이 여자를 살리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 쟈멜이 자신의 친구를 살리고 싶어 한다면 나는 기꺼이 양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줄 수 있었다.
“사탕을 녹여 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가방에서 늘 신세 지고 있는 무한 리필 세숫대야 성물을 꺼내 컵에 물을 따르고 사탕을 넣은 다음 모닥불 가에 가져갔다. 물이 조금 따뜻해야 사탕이 빨리 녹을 테니.
내가 사탕을 녹이고 있자니, 어느새 어머니가 내 옆으로 은근슬쩍 다가와서 지젤을 가리켰다. 무척이나 음험한 표정으로.
‘살해살해.’
내 눈앞에서 살랑이는 세 개의 손가락. 저 여자는 손가락 세 개짜리 악신의 숭배자고, 굳이 살려 줄 이유도 없으니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고 신성이나 챙기는 게 어떻겠냐는 물음.
‘살해!’
어머니께선 덤으로 지젤이 죽으면 쓸모가 없어질 터인 그 꿀물은 자기한테 주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어머니.”
‘살…!’
주머니에서 꿀을 굳힌 사탕을 꺼내 어머니의 입 안에 쏙 하고 넣어 드렸다. 혀에서 느껴지는 단맛 탓인지 어머니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는 어머니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저도 그냥 대책 없이 살리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저 여자는 분명 기절하기 전에 제게 살려 달라고 정확하게 말하려 했습니다. 저 지젤이라는 여자가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때 대적했던 적이자, 여태까지 마주친 악신의 숭배자들 대부분의 목을 날려 버린 절 찾아오면서 자신의 목숨을 보전할 만한 무언가를 챙겨 왔겠죠.”
솔직히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무작정 어머니께 살려 주고 싶다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내 생각을 설명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어머니께선 다소 과격한 방식을 선호하시긴 해도 내 이야기를 언제나 귀담아들어 주셨으니까.
‘살해.’
콧김을 흥 하고 뿜은 어머니께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쟈멜을 힐끔 보곤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나는 분명 죽이자고 했다는 한마디.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께선 입 안에 들어간 사탕을 음미하며 모닥불 가에 주저앉았다. 어머니는 옆에 잔뜩 쌓인 나뭇가지들 중에서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꺼내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이 해 온 나뭇가지를 모닥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후, 사탕을 모두 녹인 나는 그늘벌 꿀물을 들고서 테르지오에게 돌아갔다. 그리 오래 시간이 지난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사이 테르지오는 대부분의 응급조치를 끝낸 뒤였다.
그는 파란 불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나를 보곤 지젤을 가리켰다.
– 그 꿀물을 이 여인에게 조금씩 먹이면 될 것 같습니다. 이리 주시면 제가 먹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태 고생한 테르지오에게 굳이 더 수고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어떤 부탁을 하든 그는 무척이나 기껍게 행할 게 분명했지만, 나는 테르지오에게 너무 의지하게 되는 걸 계속 경계했다. 혹시나 그에게 너무 의지한 나머지 나 자신이 게을러지는 게 두려웠다.
“살려면 일어나셔야 합니다.”
지젤이라는 이름의 여인의 머리를 살짝 들어 의식을 깨우기 위해 시도했다. 의식을 잃은 여인에게 그대로 꿀물을 흘려 넣었다간 기껏 응급조치를 해 놓고 기도가 막혀서 죽을지도 몰랐으니까.
나는 그녀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그녀에게 위해가 가지 않는 선으로 최대한 노력했고, 다행히 이런 내 노력이 닿았는지 신음과 함께 지젤이 의식을 찾았다.
“으으으…”
그녀는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나는 그녀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대신 조용히 꿀물을 들어 보였다.
“지금은 일단 이걸 마시는 데 집중해 주십시오. 이야기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다키아에게 부탁해 조금 식힌 꿀물을 조금씩 지젤의 입 안에 흘려 넣었다. 그녀는 일단 우리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은 건지 내가 흘려 넣는 꿀물을 목으로 넘기는 데 집중했다.
긴 시간과 노력을 들인 끝에 지젤은 그늘벌 꿀물을 다 마시는 데 성공하자마자 진이 빠져 다시 정신을 까무룩 잃어버렸다. 일단, 그녀를 자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나는 지젤을 다키아에게 맡겼다.
지금부터는 자신이 하겠노라고 손수 지원한 다키아는 전신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는 지젤에게 여분의 옷을 입혀 주었다.
“그런데 정말 의외로군요. 테르지오는 대체 어떻게 응급처치 방법을 알고 계시는 겁니까? 테르지오가 없었더라면 저 여인은 꼼짝없이 죽었을 겁니다.”
내 칭찬에 테르지오가 쑥스럽다는 듯이 뒤통수를 긁적였다.
– 원래라면 필요 없는 정보입니다만, 유적을 떠나기 전 디스펜스가 후계자님이나 후계자님의 동료가 다칠 경우에 대비해 제게 의료 전반에 관한 지식을 입력해 주었습니다. 사실, 제게 입력된 정보는 약재가 없으면 쓸 수 없는 조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 후계자님께서 제게 허락해 주신 금화로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대충 구해 둔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저 여인은 후계자님이 제게 돈을 주신 덕분에 살아났다고 보는 것이 맞겠군요.
그는 겸허히 자신의 공을 내 몫으로 돌렸다. 대체 가방에 뭘 넣고 다니는 건가 싶었는데, 약재들을 넣고 다니고 있었다니.
나는 또 한 번 테르지오의 유능함에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이지 항상 도움만 받는군요. 대체 이걸 어떻게 돌려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후계자님께선 그저 후계자님으로 계셔 주시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찍찍!
그 말을 끝으로 테르지오는 짐에서 꺼낸 치즈 조각을 스트룸에게 챙겨 주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옆으로 다가가서 어머니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살해…?’
한창 신나게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밀어 넣던 어머니가 내 얼굴을 바라보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머니. 혹시 저 여인에게 부패의 가호를 내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어머니가 가호를 내려 준다면, 깃든 신성이 지젤의 상처가 곪는 것을 막아 줄 터였다. 어머니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나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살해!!!’
대체 뭐가 예쁘다고 쟤한테 가호까지 내려줘야 하느냐는 호통.
‘살해살해!’
어머니께선 내게 요즘 너무 물러진 것이 아니냐고 도리어 지적했다. 어머니는 하얀 손가락을 뻗어 지젤의 머리를 가리키고는 자신의 목을 스윽 그었다.
‘살(殺)!!!’
자신은 절대 저 여자를 안 도울 것이며, 오히려 죽으면 그게 제 명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하셨다. 그냥 저 여자가 죽고 나면 신성이나 수확할 준비 하라는 외침에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꿀 사탕을 하나 더 꺼내 어머니의 입 안에 밀어 넣어 드렸다.
꿀 사탕을 드신 어머니는 조용히 지젤에게 가서 부패의 가호를 걸고 돌아와, 아무 말 없이 다시 모닥불 가에 주저앉으셨다.
***
그다음 날이 되도록 지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테르지오는 지젤의 상태를 살피곤 우리를 향해 말했다.
– 고비는 넘겼습니다. 애초에 이 여인의 몸에 새겨져 있던 상처는 이 여인을 죽이기 위한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쟈멜은 새근새근 잠든 지젤을 내려다보았다.
“그럼요?”
– 그녀가 입은 상처들은 그녀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고문의 부산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여인에게 무언가를 들어내려 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이 여인을 굴복시키려고 한 것이라 보입니다.
테르지오의 말에 쟈멜이 이를 앙다물었다.
“너무해… 진짜 너무해…”
다키아는 쟈멜의 어깨를 토닥여 주곤 내게 말했다.
“아마 다른 악신의 숭배자들이 그랬겠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도 다키아와 같았다. 다키아의 말대로 리베라티오 소속의 지젤은 속한 조직과의 불화가 있었던 탓에 쟈멜이 잘 지내고 있는 걸 떠올리고는 내게 몸을 의탁할 생각이었던 듯했다.
리베라티오를 탈주하던 그녀가 붙잡혀서 고문을 당한 건지, 아니면 고문을 당한 탓에 탈주를 결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문제는 고문을 당한 그녀가 탈주를 할 수 있었던 게 온전히 그녀의 능력 덕분이 아닌 경우였다.
만약 그녀를 일부러 놓아 준 거라면…
“역시 꼬리를 단 채로 왔군. 미리 말해 두지만 나는 관여하지 않을 거다.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안식의 나팔수가 바라보는 방향을 보자 한 사내가 우리를 향해 올곧게 걸어오고 있었다.
여기저기 헤진 모자와 어두운 갈색빛 코트. 허리춤에 찬 두 자루의 검집은 그의 노련함을 상징하듯 꽤 많이 낡아 있었지만, 누가 봐도 관리가 무척이나 잘 된 상태였다. 어두운 천이 그의 하관을 가리고 있는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제가 먼저 말해 보겠습니다.”
재빨리 전투 태세를 갖추는 일행을 제지하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내를 마중 나갔다.
나는 사내에게 최대한 무해해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탁한 눈동자로 내 눈을 바라보고는 말을 꺼냈다. 그 목소리는 지극히 메말라 있었다.
“이리로 한 여자가 도망쳐 왔을 텐데. 못 봤나?”
나는 주변에 가득한 망자를 훑어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보시다시피 누군가 찾아오기에 그다지 좋은 분위기가 아닌지라. 밤새 찾아온 이가 없습니다.”
그가 내 어깨 너머를 바라보자, 안식의 나팔수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망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지젤의 모습을 가렸다. 안식의 나팔수는 날 안 도와준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도 굳이 여기서 전투가 벌어지는 걸 바라지는 않는 듯했다.
나는 속으로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눈앞의 사내에게 집중했다.
“찾으시는 이는 아마 이곳을 지나쳐 다른 곳으로 갔나 봅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혹시 어떤 이를 왜 찾는지 조금 자세히 이야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앞의 사내가 순식간에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를 향해 찔러 왔다. 나는 재빨리 몸을 움직여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일렁이는 신성과 함께 모든 것이 느려졌다.
툭.
사내가 내 몸에 가져다 댄 건 무채색의 새하얀 막대였다. 내 몸에 닿은 막대가 순식간에 시꺼멓게 물들었다. 사내는 새카만 막대를 확인하고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역시 너도 악신의 숭배자로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