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29)
129 화 거래.
거래.
꾹꾹.
추적해 온 사내를 포박하고 입을 막은 뒤로 어머니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겼다.
‘살(殺)!!!’
아까 그 여자는 몰라도 저 남자는 무조건 죽여야 한다는 말. 솔직히 나도 어머니의 말에 동감했다. 내 정체를 들켜 버린 이상, 저 사내를 살려 두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었다.
문제는 내 기준이었다. 나만의 기준. 나는 아직 단순히 내게 덤벼 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죽인 적이 없었다. 내 나름의 기준으로 고민하고 판단한 끝에 그 목숨을 취했지.
누군가 듣는다면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점에 있어서 아직 저 사내는 내가 죽일 만한 기준을 만족하지 못했다. 비록 그가 날 공격하기는 했지만 그건 내가 악신의 숭배자였기 때문이었고, 나라고 해도 눈앞에 악신의 숭배자가 나타난다면 그와 크게 다른 대처를 하지는 않았을 거기 때문이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한 번 세운 기준을 필요에 따라 내 입맛에 맞춰 바꿔 가며 사람을 죽인다면 그건 내가 혐오해 마지않는 악신의 숭배자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되는 거였다.
“하아.”
머리가 지끈댔다. 어째 일이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살해!!!’
내가 가타부타 답이 없자, 어머니께선 직접 팔을 걷어붙이시고는 네가 못 할 거 같으면 자신이 직접 하겠노라고 외치셨다.
“어머니. 조금만, 조금만 더 제게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어머니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채 뾰로통한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았다.
‘살해살해…’
‘어떻게든 살려줄 구실만 찾고 있으면서…’라고 중얼거린 어머니는 자신의 두 눈을 콕 하고 찍고는 묶인 채로 버둥대고 있는 사내를 가리켰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뜻은 능히 짐작이 갔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저 남자를 살려 보낼 생각은 없다는 뜻.
“그만 화내고 이리 오시죠.”
내가 팔을 벌리자, 어머니께선 다시 한번 한숨을 폭 내쉬고는 품에 안겨 들어왔다. 나는 어머니의 등을 두드려 드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걸 진짜 살려, 말어.
상투스, 당신이라면 허허 웃으면서 저 사내를 살려 보냈겠죠. 본인은 정작 자신의 자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리버켈의 손에 찢겨 죽었지만. 그는 본인이 죽는다는 걸 알고서 다시 돌아가더라도 몇 번이고 선행을 베풀 게 분명한 사내였다.
반면, 임페트로라면 내 머리를 한 방 쥐어박은 다음 당장에 저 사내의 머리통을 뭉개 버렸겠지.
“마르낙 사제님…?”
스승님과 함께 북부의 구석에 처박혀서 지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겠지. 사람을 죽인다는 건, 그리 크진 않더라도 언제나 내게 있어 스트레스였다. 서서히 나를 좀먹어 가는 벌레같이. 그저 이 육체가 무딘 탓에 조금 잘 버티고 있을 뿐. 마음 같아선 그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았다.
“마르낙 사제님!”
예전에는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들어 뭔가 틀어막혀 있던 것이 조금씩 뚫려 가는 느낌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한 번 죽고 임페트로를 만난 뒤부터인가.
“마르낙 사제님!!!”
큰소리와 달리 무척이나 부드러운 손길이 내 어깨를 흔들어 댔다. 반짝이는 황금빛 눈동자. 두 눈에 한가득 걱정을 담은 다키아가 내 얼굴을 살폈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아까 다치신 게 생각보다 충격이 크셨던 거예요?”
‘ㅅ…ㅏ…ㄹ….해…’
어느새 내 품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어머니가 다키아의 목소리에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언제나와 같은 어머니를 보곤 쓰게 웃었다.
“졸리시면 잠깐 손으로 변해서 품속에서 쉬시지요.”
‘살해…’
어머니는 빛과 함께 손으로 화했다. 나는 어머니를 품속에 챙기고는 다키아를 올려다보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잠깐 생각에 깊이 잠기다 보니 다키아의 목소리를 못 들었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겁니까?”
내 되물음에 여태까지 걱정이 한가득하던 표정 위로 안도의 미소가 피어올랐다.
“괜찮으시다면 다행이에요. 맞다, 그리고 지젤이 일어났어요! 이거 말씀드리려고 마르낙 사제님을 부른 거예요!”
그래, 일단 지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판단해도 늦지 않겠지. 나는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사내를 힐긋 보았다.
사내는 양팔과 양다리가 꽁꽁 묶인 채로, 얼굴을 복면으로 덮어씌워 놓은 상태였다. 거기다 그의 옆에는 누구보다도 듬직한 테르지오가 두 눈에서 푸른 귀화를 피워 올리며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일단 지젤에게 가 보도록 하죠. 깨어난 지젤이 말은 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까?”
다키아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르지오의 응급 처치가 제대로 먹힌 건지, 아니면 그늘벌 꿀의 효과가 좋은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띄엄띄엄 제대로 의사를 표시할 수 있을 정도로는 정신을 차렸어요.”
“그건 참 다행이군요.”
지젤이 저기 묶인 사내의 부덕함을 고해 준다면 좋을 텐데. 부담 없이 저 사내를 죽일 수 있도록.
지젤을 눕혀 둔 장소로 가자 쟈멜이 깨어난 지젤의 머리맡에서 따뜻한 수프를 조금씩 떠서 그녀의 입으로 흘려 넣어 주고 있었다.
“‘아’ 해. 먹어야 낫지!”
지젤은 별말 없이 쟈멜이 떠 주는 대로 넙죽넙죽 수프를 받아먹었다. 나는 지젤의 근처로 가서 빈자리에 앉았다.
“몸은 좀 괜찮습니까?”
새하얀 붕대들. 지젤은 전신의 대부분을 비롯해 얼굴의 반을 붕대로 둘둘 감아 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몇 번 입을 뻐끔거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 추적자가 쫓아올지도 몰라.”
쟈멜은 활짝 웃고는 자신의 허벅지를 탁탁 두드렸다.
“추적자는 이미 왔어! 그리고 마르낙 사제님이 한 방에 제압해 버렸고!!! 저기 저쪽에 묶어 놨으니까 나중에 보고 싶으면 봐!”
나를 바라보며 초롱초롱 빛나는 쟈멜의 두 눈동자에 깃든 감정이 무엇인지는 굳이 그녀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속에서 나에 대한 평가가 또 한 단계 수직 상승을 이뤄 낸 듯했다.
나는 일단 쟈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지젤에게 집중했다.
“걱정하던 추적자란 게 틀어진 시계를 모시는 사제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쟈멜의 말대로 일단 제가 제압해 뒀습니다.”
지젤은 내 전신을 유심히 관찰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깨어나자마자 추적자의 존재를 알리지 않은 건 미안해. 하지만 쟈멜이 내게 한 말 중 반만이라도 사실이면, 그런 추적자 한둘쯤은 네게 아무런 문제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
쟈멜은 대체 이 여자한테 어디까지 이야기를 한 거지? 내가 그녀를 바라보자, 쟈멜은 그저 머쓱하게 웃고는 자신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헤헤헤.”
일단 이 궁금증은 다음 기회에 해결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다. 지금은 지젤에게 집중할 때였다.
“제가 알기로는 당신은 리베라티오 소속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어쩐 일로 여기까지 찾아오신 겁니까?”
얼굴의 반이 붕대로 가려진 탓에 지젤은 하나만 드러난 새카만 눈을 움직여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긴 뭐야. 저쪽에 붙어 있어 봤자 별 재미를 못 볼 거 같아서 줄을 좀 갈아타려고 한 거지. 아무래도 이런 건 아직 초기일 때 갈아타야 나중에 크게 됐을 때 한자리를 할 수 있지 않겠어? 예상 못 한 일 때문에 조금… 많이 다치긴 했지만.”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쟈멜을 보고 이쪽에 붙기로 결심했다는 건가. 나는 손을 뻗어 내 뒤편을 가리켰다.
“그 상처는 전부 당신을 쫓아온 저 추적자가 한 짓입니까?”
으득.
지젤은 가볍게 이를 갈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리베라티오 쪽은 막상 핑계를 대고 별문제 없이 빠져나왔는데, 하필이면 국경지대를 배회하고 있던 저 미친놈한테 걸리는 바람에 이 꼴이 됐어. 아니, 다짜고짜 막대기로 내 몸을 쿡 찌르더니 악신의 숭배자라며 나를 고문했다니까?”
새카만 눈망울 위로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진짜 미친 새끼처럼 아는 걸 다 불라고 하면서 고문을 해 대는데, 나는 정말 내가 아는 걸 전부 다 말해 줬거든? 그런데 분명 더 아는 게 있을 거라면서 계속 고문하는 거야! 똥물에 튀겨 죽일 새끼! 저 자칭 선신(善神)의 사제라는 놈들이 어째서 우리 신과 관련된 일이면 한 줌 자비조차 베풀려고 하지를 않는지! 우리도 사람이라고! 애초에 저놈들이 우리를 쥐잡듯이 모조리 박멸하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이 되지는 않을 거라고!”
쟈멜은 지젤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고는 내게 속삭였다.
“이거 가짜로 운 거예요! 우는 시늉을 하는 건 지젤의 주특기 중 하나거든요! 어렸을 때 저 눈물에 깜빡 속아 넘어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에요!”
“야! 너!!! 너 내 친구 맞아? 응?”
“지젤…”
짧게 그녀의 이름을 읊조린 쟈멜은 두 눈을 감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네 친구이기 이전에 마르낙 사제님의 심복이야. 이런 내 입장을 너도 이해해 주길 바라.”
지젤은 멍한 눈으로 나와 쟈멜을 번갈아 보곤 조금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자리에 드러누운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곤 물었다.
“너 대체 내 친구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저는 그저 잘 먹이고, 잘 재우고, 같이 다닌 것밖에 없습니다.”
“…”
불편한 침묵이 지나가고 지젤은 여태까지 열정적으로 울분을 토해 내던 건 전부 연기라는 듯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나도 그럼 잘 먹고 잘 재우고 같이 다니게 해 줘. 몸만 나으면 진짜 한 사람 몫,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으니까.”
“잠깐만요.”
다키아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서 내게 물었다.
“마르낙 사제님, 제가 잠깐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당연히 괜찮습니다.”
그녀는 내게 두 눈으로 싱긋 웃어 보인 다음, 순식간에 미소를 지우고 냉랭한 눈빛으로 지젤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이 리베라티오 쪽에서 우리에게 심으려고 한 첩자가 아니란 걸 우리가 어떻게 믿죠? 저는 솔직히 당신을 못 믿겠어요. 그리고 애초에 당신은 리베라티오의 일원으로 무고한 이들을 마음껏 죽여 댄 사람이잖아요.”
다키아가 꺼낸 말은 지극히 합당했다. 쟈멜이 워낙에 순해 빠져서 굳이 묻지 않았지만, 쟈멜도 우리와 만나기 이전 리베라티오의 일원으로 무고한 이들의 피를 손에 묻혔으리라.
지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정도 질문쯤이야 이미 예상하고 왔다는 듯이 술술 대답을 꺼냈다.
“이 손에 피를 아예 안 묻혔다고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그건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거짓말이니까. 하지만 말이야. 쟈멜한테 물어보면 알겠지만, 나와 쟈멜은 정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너희도 알다시피 쟈멜이 사람을 죽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말이야.”
내가 고개를 돌려 쟈멜을 바라보자, 그녀는 지젤의 말이 맞다는 듯이 자그맣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키아는 손가락을 까딱대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게 당신이 첩자일 가능성을 배제해 주진 않아요.”
“네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가. 나 같아도 이렇게 무작정 찾아온 나를 믿기는 어려웠을 거야.”
지젤은 잠깐 뜸을 들이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상처 탓에 잘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자그마한 미소를 그려냈다.
“그래서 나는 빈손으로 오지 않았어. 내가 들고 온 정보를 들으면 너희도 분명 혹할 거야. 너희 지금 ‘성물’을 찾고 있지? 그냥 보통 성물이 아니라, 여섯 선지자들이 찾아 헤매는 힘이 봉인된 성물 말이야.”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젤은 입술을 다시고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리베라티오에 네가 찾는 ‘성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있는 건 알고 있어?”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그 지도는 두 파벌의 분쟁 때문에 고장 나서 제대로 된 위치와 엉터리 위치를 제멋대로 표시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었다.
“윽.”
지젤은 붕대로 감긴 팔을 움직이려다 신음을 내뱉고는 입술을 꽉 깨물고 다시 한번 굳센 의지로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움직여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상처들로 인한 고통 탓에 그녀의 눈에 이번에는 진짜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제국에 있을 성물의 예상 좌표들. 그걸 전부 내가 외워 왔어. 다짜고짜 그냥 믿어 달라고는 안 할게. 너희는 내킬 때까지 계속 날 의심하고 감시하면 돼. 대신 내가 너희의 손에 성물을 안겨 주면 그때부턴 날 믿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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