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30)
130 화 결정.
결정.
지젤의 제안. 무척이나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안 그래도 북제국에 들어오긴 했는데, 어디서 성물을 찾아야 할지 막막하던 차였다.
처음 내가 세웠던 계획은 아무래도 지젤이 말했듯이 악신의 숭배자들에게 어머니의 성물을 찾아낼 수 있는 지도가 있는 만큼, 악신의 숭배자들이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장소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젤의 말이 진짜라면 적어도 당분간은 정처 없이 떠돌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다키아도 이런 내 사정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마르낙 사제님?”
방금 전까지 무척이나 날카로웠던 그녀의 목소리가 한풀 죽었다. 다키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했다. 잽싸게 지젤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본 쟈멜이 지젤을 가리키며 그녀의 변호를 시작했다.
“지젤 얘가 좀 치사하긴 해도요! 누굴 먼저 배신하고 그럴 애는 아니거든요? 제, 제가 진짜 열심히 감시할 테니까 한 번만 믿어 주시면 안 될까요?”
잠깐의 침묵 후, 나는 마음을 굳혔다.
“좋습니다. 일단은 같이 다니도록 하죠. 하지만 이게 제가 당신을 믿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잘 아셨으면 합니다.”
내 허락의 말에 지젤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부터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지 증명하면 되잖아.”
“아셨다면 됐습니다.”
“그런데 있잖아. 날 따라온 추적자. 그놈은 심문해 봤어?”
“아직입니다만.”
“그래? 그렇다면 충고 하나 해 줄게. 어차피 그놈에게 무슨 질문을 하든, 너는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거야. 악신의 숭배자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 사제 놈들의 입을 여는 건 불가능한 일이거든. 그래서 리베라티오에서도 사제들은 절대 생포하지 않아. 그러니까 괜히 진 빼지 말라고.”
“충고 감사합니다.”
그래도 일단은 한번 말이라도 붙여 볼 생각이었지만. 나는 지젤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할 겸, 쟈멜과 다키아를 남겨 두고 사로잡은 사제에게로 향했다.
사로잡힌 사제는 머리에 두꺼운 천을 쓴 채로 여전히 버둥대고 있었다. 혹시 모를 탈출에 대비해 일단 사내의 양팔을 부숴 두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멀쩡한 두 다리만으로 어떻게든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몸을 버둥댔다.
이모탈리움으로 이루어진 금속의 기사는 버둥대는 포로를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안식의 나팔수도 근처 바위에 앉아 버둥대는 포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안식의 나팔수를 지나쳐 테르지오에게 가기 직전, 그가 나를 멈춰 세웠다.
“언제 죽일 건가?”
“예?”
그는 버둥대는 사제를 힐끔 보곤 다시 내게 시선을 옮겼다.
“네 입장에서 별다른 선택지는 없을 텐데.”
“그건 그렇긴 합니다만…”
“그렇다면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지금 당장 저 사내를 죽여라. 그것이 저자에 대한 존중이다.”
명령하는 말투. 지극히 일방적인 그 말투가 묘하게 신경에 거슬렸다.
“조언은 감사하지만, 이 건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혹시 나처럼 대화가 통할 거란 기대를 하고 있는 거라면 포기해라. 나는 죽음과 안식의 나팔께서 이리 안배를 해 두셨기에 너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뿐. 저자가 모시는 신에게도 그런 아량을 바라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해 두지.”
“그럼 지금의 이 충고도 죽음과 안식의 나팔께서 안배해 두신 겁니까?”
“아니.”
그는 천천히 바위 위에서 일어났다.
“그냥 네가 하는 꼴이 답답해서 혼자 멋대로 중얼거려 봤다. 네 마음대로 해라. 다만, 나는 내일 떠날 거다. 웬만하면 내가 내일 떠날 때까지 저 남자에 대한 결정을 해 뒀으면 한다. 안 그럼 굉장히 답답할 거 같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안식의 나팔수는 망자들의 사이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 있다가 테르지오에게로 향했다.
– 후계자님! 오셨습니까? 감시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테르지오는 늘 그렇듯이 밝은 목소리로 날 맞이했다. 그의 어깨 위에서 찍찍대는 스트룸은 덤이었고.
“일단 심문을 조금 해 보려고 합니다.”
– 그렇습니까? 바로 편히 심문하실 수 있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포로를 일으켜 세워 머리에 씌워 둔 두건을 벗기고 입가의 재갈을 풀어 냈다. 그러자 늙은 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깊게 움푹 파인 주름들과 군데군데 잘게 새겨진 흉터. 깊게 가라앉은 우묵한 눈빛이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더할 나위 없는 증오를 담고서.
나는 먼저 미소를 짓고서 부드럽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악신의 개에게 해 줄 말은 없다. 죽일 거면 빨리 죽여라.”
“만약 제가 당신을 살려 드리겠다면 어쩌실 생각입니까?”
그는 눈살을 찌푸리곤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너는 내가 목숨에 연연할 나이로 보이는 거냐? 아니면 내가 이 늙은 목숨을 살리고자 네 신발이라도 핥을 거라고 생각한 거냐! 그래! 좋다! 어디 한번 그 발을 내밀어 보아라! 내 얼마든지 핥고 또 핥아서 내 목숨을 구한다면, 이 목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네놈의 뒤를 쫓아 반드시 비참한 꼴을 맞게 해 주마!!!”
쩌렁쩌렁한 외침. 그의 목소리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당장에라도 자신의 몸을 묶은 줄만 없다면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내 가슴에 또 한 번 꼬챙이를 박아넣고 말리라.
악신의 숭배자로서 정체를 들킨 채 사제를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의 분노와 한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것이었다. 다른 악신의 숭배자들은 이 무조건적인 분노와 멸시를 항상 받아 오고 있었던 건가.
“저는 아직 당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간악한 악신의 개새끼가 짖는구나! 내가 오늘은 힘이 부족해 잡혔을지언정! 너희 악신의 숭배자 놈들이 벌인 짓들을 모를 줄 아느냐? 너희는 무고한 이들의 피와 눈물을 빨아들이며 자라난 괴물이다! 이 나를 우롱하려는 거면 당장에 집어치워라!”
그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그저 내게 분노를 쏟아 낼 뿐이었다. 나는 결국 그와 대화하는 걸 포기하고 테르지오에게 그를 다시 포박하도록 부탁했다.
그렇게 꿈틀대는 사제를 뒤로 한 채, 모닥불 가로 돌아왔다.
홀로 앉아 타닥거리는 불꽃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복잡했다.
내 정체를 들키게 된다면 어딜 가든 저런 분노와 멸시를 받으며 공격받게 되는 걸까. 사실, 나도 리버켈에게 상투스가 죽고서 악신의 숭배자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분노를 품고 있었으니 그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의 감정은 자신이 겪은 경험에 근거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신들이 그에게 심어 놓은 맹목적인 증오인 것일까.
안식의 나팔수는 내게 내일 아침까지 결정해 줬으면 한다는 유예를 남겼고, 나도 그러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날 우리는 지젤의 회복을 위해 이 자리에서 하루 더 쉬기로 했고, 나는 모닥불 가에 앉아 깊은 고민에 빠졌다.
***
한밤중. 다들 잠이 든 때, 나만이 잠이 들지 못하고 모닥불의 곁을 지켰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모포를 두른 붕대투성이 여인이 다가왔다. 지젤은 천천히 몸을 움직여 내 옆에 앉았다.
“잠깐 시간 괜찮아?”
“움직일 수 있었습니까?”
지젤은 한쪽만 드러난 눈을 살짝 찡그렸다 펴며 대답했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당연히 움직일 수 있지. 몸도 못 가눌 부상이었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도망도 못 쳤어.”
“그렇습니까.”
하긴, 그녀의 말이 맞았다. 지젤은 제 발로 도망쳐서 이곳까지 온 것이었으니까. 지젤은 일렁이는 모닥불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이 밤중에 저 추적자 놈을 살려 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건 아니지?”
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하, 왠지 그럴 거 같아서 용써서 여기까지 왔는데, 잘됐네. 네가 쟈멜을 살려 둔 걸 보고 생각보다 물러터진 인간이라는 걸 대충 눈치챘거든. 뭐, 나도 그걸 믿고 여기까지 온 거니까 굳이 뭐라고 하진 않을게. 대신, 그냥 검 한 자루만 빌려줘.”
“검은 왜 빌려달라고 하십니까?”
“그야 당연히 저 추적자 놈 머리를 날려 버리려고 그러지.”
붕대로 뒤덮인 손바닥이 내 앞에 튀어나왔다.
“네 물러터진 기준으로 보면, 무작정 저 남자를 아직 죽이기엔 이유가 조금 부족한 거지? 여태 사제 행세를 해온 네가 여태 봐 온 사제들이란 언제나 약자를 지키고,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선행을 베풀며, 악에 맞서는 데 제 한 몸을 아끼지 않는 이들이었을 테니까. 네 입장은 충분히 이해해. 그러니까 나한테 검 한 자루만 줘. 나는 저놈을 죽일 이유가 있어.”
“이유… 말입니까?”
“그래, 이유.”
지젤은 몸을 덮고 있던 모포를 펼쳐 붕대로 둘둘 둘러싸인 자신의 몸을 내보였다.
“저 녀석은 아무 짓도 안 한 내 몸을 이 꼴로 만들어놨는데, 내가 쟤를 살려 줄 이유가 있어? 내가 도망치지 못했더라면 나는 분명 저놈 손에 죽었을 거야. 그러니 내게는 명분이 있어. 서로 죽고 죽인다. 그게 악신의 숭배자와 사제의 관계잖아? 그럼 잠깐 실례할게.”
그녀는 절대 나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는 듯이 천천히 손을 뻗어 내 허리춤에 매여 있는 서리강철 검을 뽑아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지 않았다.
내게서 검을 빌린 지젤은 잘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여 테르지오가 지키고 있는 사제를 향해 다가갔다. 나는 그녀의 뒤를 조용히 뒤쫓았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에 희미해져 있던 테르지오의 푸른 눈에 빛이 되돌아왔다.
– 어쩐 일이십니까?
지젤은 손에 든 서리강철 검을 들어 보이곤 씨익 웃었다.
“아직 딱지도 못 앉은 따끈따끈한 상처의 은원을 좀 정리하려고. 혹시 머리에 두건만 좀 벗겨줄 수 있어?”
테르지오는 그녀의 말을 들어주는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그녀가 바라는 대로 해주라는 뜻을 전했다.
두건이 벗겨지자, 또 한 번 노쇠한 사제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형형한 눈빛으로 지젤과 나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단 한 점의 두려움도 없었다. 마치 죽음에 초연한 사람처럼.
지젤은 낑낑대며 서리강철 검을 치켜들고는 늙은 사제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드러난 한쪽 눈으로 노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 노친네야. 내가 아는 거 전부 말했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곱게곱게 다 털어놓아 줬으면 너도 날 곱게곱게 보내 줘야지. 응? 기어코 아는 거 다 분 사람을 고문해서 이 꼴로 만들어야 했어? 난 아픈 거 딱 질색이라고.”
사제는 막힌 입으로 웁웁대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목소리는 재갈에 막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지젤은 사제의 버둥대는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반박을 못 하니까 열받지? 미치겠지? 근데 나는 왜 네 말이 다 들릴까? 보나 마나 뻔하지. ‘악신의 개새끼가 세 치 혀로 놀리는 말은 하나도 믿을 수 없다’라는 둥, ‘그 더러운 주둥이에서 거짓과 기만만 뱉어낸다’라는 둥. 다시 생각해보니 또 열받네. 다 말해도 안 믿을 거면 대체 왜 물어본 거야? 그거 알아?”
그녀는 사제를 향해 이죽거렸다.
“적어도 우리는 다 큰 여자를 발가벗겨서 고문하지는 않아. 차라리 죽이면 죽였지. 이 맛탱이 간 변태 노친네야. 마음 같아선 내 몸에 한 짓을 고대로 네 몸에 돌려주고 싶은데, 너 때문에 내가 힘이 없네.”
검을 쥔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다친 지젤의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검을 든 악신의 숭배자와 묶인 사제. 그리고 지젤에게 검을 건넨 나.
지금 이 순간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무책임했다.
“잘 가. 노친네야. 부디 다음 생은 누구보다 비참하고 구차하길 바랄게.”
수직으로 떨어지는 검. 정확하게 노인의 목을 향해 떨어지는 검을 나는 뺏어 들었다. 졸지에 검을 빼앗긴 지젤은 짜증 어린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너, 설마 저 미친 노친네를 살려 주려는 거야? 너 상황 파악을 하고 있긴 한…”
서걱.
잘려나간 목 단면을 따라 피가 번져 나왔다. 붉은 피는 끊임없이 제 영역을 넓히며 대지 위를 덮어 갔다. 나는 검에 묻은 피를 대충 털어내곤 지젤을 바라보았다.
“돌아가서 마저 쉬시면 됩니다.”
그녀는 내 눈치를 보곤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하도록 놔두면 되는데, 왜 갑자기 마음이 변한 거야? 그러면 너는 아직 ‘착한’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잖아.”
그래, 그녀의 말대로 지젤이 이 선악이 불분명한 늙은 사제를 죽이도록 방관하면 나는 내 기준에서 ‘착한’ 인간일 수 있었다. 오롯이 죄가 있는 자들만 죽이는 그런 사람이.
“그냥 부끄러워서 그랬습니다.”
검을 치켜든 모습을 보는 내내 나는 부끄러웠다.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결국 남의 손을 빌려서라도 착한 이로 남고자 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렇기에 그녀의 검을 빼앗았다. 선택이란 건,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이 손으로 직접 집어 드는 것이었기에.
지젤은 이상한 것을 보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부끄럽다고 사람을 죽여…?”
친하지도 않은 그녀에게 내 감정을 전부 고백할 필요는 없었다.
“들어가서 주무시면 됩니다. 뒷정리는 제가 할 테니.”
내 부드러운 축객령에 지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잠자리로 떠났다.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했다.
“어머니.”
나직한 부름과 함께 노인의 시신이 녹아내려 신성으로 화했다.
[신성 : 3876 -> 4876]부디 좋은 곳으로 갔길.
짧게 마음속으로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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