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36)
136 화 수사.
수사.
“오셨습니까?”
근육질의 몸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곱상한 얼굴. 딜겐트는 이른 아침부터 반갑게 우리를 맞이했다. 이곳으로 나를 따라 딜겐트 쪽으로 온 건 어머니 하나뿐이었다.
뭔가 편중된 느낌이 적잖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쟈멜이나 지젤은 딜겐트와 얼굴을 맞대길 질색했고, 테르지오와 다키아는 도시에서 대놓고 권능을 사용할 수 없는 둘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붙었다.
‘살해살해.’
딜겐트의 인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선 그의 인사를 본 척도 않은 채, 오늘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엔 나한테 뭘 사 달라고 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자칫 아침부터 무안해질 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얼른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하하. 예. 좋은 아침입니다.”
그는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곤 사람 좋게 웃었다.
“그럼 슬슬 수색을 시작해 볼까요?”
“저는 어제 이 도시로 온 터라 솔직히 어디부터 수색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군요. 딜겐트 사제님께선 따로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따라오시죠. 이동하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딜겐트가 먼저 걸어 나가고 내가 그 뒤를 쫓자 어머니께서 내 걸음에 발을 맞추어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일단은 제가 어제 나름 정보를 얻어 둔 것이 있어 그곳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어떤…?”
“지금부터 저희가 가 볼 장소는 로메로 상단의 적재 창고입니다. 어제 듣기론 최근 창고에 저장해 둔 식량이 사라지는 경우가 잦다더군요.”
“그 카투스라는 꼽추 사내가 도둑질을 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딜겐트는 자신의 턱 매만졌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악마와 계약했다고 한들 일단 입으로 뭔갈 먹어야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만약 카투스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몸이더라도, 아직 영주님의 아드님이 멀쩡히 살아 계신다면 그는 분명 영주님의 아드님에게 먹일 식량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 잡혀간 영주의 아들이 있었지. 듣기론 7살쯤 되는 애라던데 과연 아직 살아 있을까. 솔직히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 있진 않을 것 같은데. 어차피 내가 여기서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서 가 보도록 하죠.”
“예.”
물품을 보관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을 내보이듯 지극히 단조로운 구조로 지어진 건물. 우리가 바삐 걸음을 놀려 도착한 장소엔 상단과 계약한 경비병들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나른한 하품을 쩍쩍 내뱉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우리를 발견하곤 잠깐 경계하는 눈빛을 보내다, 이내 나와 딜겐트의 복장을 확인하곤 다시 경계를 풀었다.
“딜겐트 사제님 아니십니까? 오늘 찾아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비들은 딜겐트의 얼굴을 확인하자 무척이나 호의적인 태도로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최근 창고에 저장해 둔 식량이 자꾸 사라진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 저희가 한번 창고를 확인해 봐도 괜찮겠습니까?”
경비는 손을 팔랑이며 활짝 웃었다.
“이미 허가도 다 받으셔 놓고 저한테 굳이 다시 물어보실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이쪽의 사제분과 아가씨는…?”
“아, 이쪽은 마르낙 사제님이라고 저와 함께 범인의 뒤를 쫓기로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딜겐트는 어머니를 힐끔 바라보곤 말끝을 흐렸다. 그도 그럴게 그는 어머니의 이름을 몰랐다. 그리고 나도 아직 어머니의 가명을 못 정했고.
“… 마르낙 사제님의 동행분입니다. 두 분 다 제가 신분을 보장할 테니 같이 들여보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
경비들의 시선은 어머니의 얼굴에 꽂혀서 쉬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어머니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는 슬쩍 움직여 내 등 뒤로 숨어서 투덜대셨다.
‘살해살해.’
어머니의 얼굴이 가려지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경비들이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딜겐트 사제님이 신분을 보장해 주신다면야 얼마든지 들여보내 드릴 수 있습니다. 지부장님께서 딜겐트 사제님이 무얼 하려고 하시든 적극적으로 협조하라고 따로 저희에게 언질을 주셨기도 하고요.”
“감사합니다. 자, 그럼 저희는 들어가 보도록 하죠.”
앞장서는 딜겐트의 뒤를 따라 나와 어머니가 발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에는 임의로 구분된 구역들에 따라 다양한 상품들이 적재되어 있었다. 물론, 비싸 보이는 상품들은 포장되어 겉으로 보기에 무슨 물건인지 제대로 분간이 가질 않았지만.
‘살해!’
하지만 몇 겹의 포장을 하든 성물들에서 풍겨 나오는 미묘한 신성을 어머니가 놓칠 리는 없었다. 저쪽에 성물들이 있다고 소리치신 어머니께서는 자신은 성물들을 살펴보겠노라고 말하고는 도도도 걸음을 옮겨 창고의 구석으로 향했다.
딜겐트는 어머니의 적극적인 협조가 기꺼운 것인지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물었다.
“그럼 저희도 각자 흩어져서 수색해 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어떤 흔적이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그러죠.”
상자, 상자, 상자. 온갖 상자들의 향연들을 지나 식료품들이 쌓인 곳으로 향하니 말린 고기와 온갖 종류의 식재료들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리저리 주변을 살펴보긴 했지만, 딱히 특별한 것이 보이진 않았다. 애초에 뭔가 특별한 흔적이 남아 있었더라면 상단 측에서 먼저 조치를 취했겠지.
‘살해…’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어머니께선 어깨를 축 늘어뜨리시곤, 여기 보관된 성물들은 전부 평범한 성물들뿐이라며 투덜대셨다.
일단 여기는 완전 꽝인 건가.
“혹시 악마의 흔적을 보시진 못했습니까?”
내 질문에 어머니는 긴 머리칼을 흔드시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만약에 꼽추를 다시 만나게 될 경우, 그자가 완전히 악마에게 몸을 넘긴 자인지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 어머니를 데리고 오긴 했지만, 이젠 진짜 카투스를 만날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였다.
“잠깐 이리로 와 보시겠습니까?”
딜겐트가 우리를 불렀다. 나와 어머니는 그의 부름에 따라 창고의 한구석으로 향했다. 딜겐트가 수색하고 있던 장소는 꽤 오래 보관된 물품들로 가득한 탓에 여기저기 먼지가 잔뜩 앉아 있었다.
“뭐, 건지신 게 있으십니까?”
“여기 이걸 봐 주십시오.”
그는 먼지 구덩이 위에 여기저기 찍힌 발자국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주머니에서 한 줌의 가루를 꺼내 그 위에 뿌렸다. 뿌려진 새하얀 가루들이 바닥에 가라앉자 먼지 위에 그려진 발자국 무늬들이 좀 더 선명히 보였다.
나는 발자국들을 살피곤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신기한 가루를 쓰시는군요.”
“레인저로 복무하던 시절에 배운 겁니다. 마르낙 사제님도 그러시듯이 저도 태어날 때부터 사제는 아니었으니까요. 그것보단 여기랑 여기를 봐주시겠습니까?”
그는 손가락을 뻗어 두 개의 발자국을 가리켰다. 두 발자국은 서로 모양이 무척이나 달랐다.
“발자국의 모양이 다르군요.”
“맞습니다. 마르낙 사제님. 카투스를 보셨을 때를 떠올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듣기론 그자가 얼마 전, 다리 하나를 잃어서 의족을 끼고 걸어 다녔다고 하더군요.”
딜겐트의 말이 맞았다. 내가 보았던 꼽추 사내의 왼쪽 다리는 조악한 의족이었다.
“딜겐트 사제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자의 한쪽 다리는 의족이었습니다. 꽤나 조악한 형태의 의족이요.”
딜겐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아무래도 식량을 훔친 이는 바로 카투스였군요.”
“그런데 혹시 그냥 서로 다른 발자국을 짚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내 의문에 딜겐트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잘 보십시오. 수많은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긴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이 신발 자국들에겐 다들 제 짝이 있습니다.”
그는 능숙하게 같은 신발 자국들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그렇게 모든 짝 맞추기가 끝나자 단 한 쌍의 발자국만이 바닥 위에 남았다. 그는 짝이 맞지 않는 자국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제가 어째서 이게 한 사람의 발자국이라 확신한 것인지 이해하셨습니까?”
그의 친절한 설명에 나는 레인저라는 부류들이 얼마나 날카로운 이들인지 다시금 곱씹었다. 심지어 그는 나와 어머니께 잘 보이도록 정체불명의 가루를 뿌리기 전에 이미 꼽추의 발자국을 분류해 낸 것이었다.
“대단하십니다.”
“사소한 잔재주입니다. 일단 이 발자국이 향하는 곳을 쫓아가 보죠. 카투스의 대략적인 동선을 파악해 두면 다음에 또 그가 이곳에 올 때를 대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딜겐트가 앞장서고 나와 어머니는 다시 그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딜겐트는 신중하게 자신에게만 정확하게 보이는 발자국을 따라 걸음걸음을 옮겨 나갔다.
이어진 카투스의 흔적은 정확하게 여기저기 저장된 식료품들을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딜겐트는 천천히 흔적을 따라가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챙긴 게 아니라 골고루 조금씩 챙긴 것 같군요. 그리고 괜한 문제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는 귀중품들은 전혀 건드리지 않고요. 아주 긍정적인 흔적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는 싱긋 웃으며 내게 대답했다.
“자국들을 보면 아무래도 카투스가 이곳을 한두 번 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은 곧 가져간 식량이 떨어지면 식량을 충당하러 이곳에 다시 나타날 수도 있을 거란 이야기군요.”
“맞습니…”
딜겐트는 무어라 말을 하려다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곳은 이 길게 이어진 흔적의 끝이자 단단한 벽의 앞이었다.
“뭔가 있습니까?”
내 물음에 그는 재빨리 품속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내 바닥에 예의 가루를 흩뿌렸다. 새하얀 가루들이 바닥에 내려앉자, 나는 왜 딜겐트가 멈춘 것인지 단번에 이해했다.
인간의 것이 아닌 발자국. 새하얀 가루들이 짐승의 그것과 닮은 거대한 발자국을 따라 내려앉았다.
딜겐트는 우직한 눈빛으로 거대한 발자국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아무래도 카투스는 정말 악마와 계약한 것이 맞는 것 같군요.”
“흐음.”
근데 발자국은 발자국인데, 대체 이 거대한 발을 이끌고 이 건물은 대체 어떻게 빠져나간 거지?
아무래도 카투스가 다루는 능력에 대한 경계심을 키워 둘 필요가 있어 보였다.
딜겐트는 몇 가지 가루를 더 꺼내 주변에 흩뿌려진 여러 흔적들을 비교하곤 가만히 서서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곤 입을 열었다.
“지난 흔적들의 기간을 비교해 볼 때, 카투스는 적어도 3일에서 4일에 한 번꼴로 이곳을 찾아왔군요. 저번 흔적이 이틀 지난 것으로 보이니, 대충 이틀 정도 여기 숨어 있다 보면 그와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낙 사제님.”
“네.”
“저와 함께 잠복하시겠습니까? 아무래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함께 있어 준다면 무척이나 기쁠 것 같습니다.”
언제 봤다고 저리 내게 신뢰를 보내는가 싶겠지만, 사제 행세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행동이었다. 거기다 그는 당연히 내가 그를 돕겠다고 말할 거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그가 이리도 열성적으로 범인 추적에 나선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딜겐트는 활짝 웃었다.
“이거 악마에게 제대로 한 방 먹여 줄 수 있겠군요!”
사제란 악신의 숭배자들만큼이나 악마를 증오하게 되어 있는 존재였다. 악마의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일도 감수할 만큼.
내 정체를 들키는 순간, 저 광기의 가까운 증오가 내게로 향할 것이라 생각하니 살짝 닭살이 돋았다.
나는 진짜 내 정체를 잘 숨기자고 다시 한번 진지하게 다짐했다.
“그럼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거든 다시 이곳에서 만나도록 하죠. 저는 잠깐 준비를 해 둘 게 있어서 가 보겠습니다.”
“예.”
“그럼.”
잛은 인사를 끝으로 딜겐트는 바삐 걸음을 놀려 떠나갔다. 창고에서 나온 어머니는 콜록콜록 기침을 몇 번 하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서 나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살해…’
오늘 먼지를 너무 많이 먹은 탓에 구운 고기를 먹는 게 정말 괜찮겠다는 은근한 제안.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차피 시간도 남는데 고기부터 먹으러 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살해!!!’
“그런데 고기를 먹고 잠깐 숙소에 가서 기다리고 계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어머니께서 굳이 고달프게 밤을 새우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전투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만큼 혹시 어머니께서 다치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살해살해!’
어머니께선 얇은 팔을 슬쩍 내보이고는 싸움이 벌어지면 얼른 뒤로 물러나서 구경하겠다며 절대 떨어지기 싫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그럼 손으로 변해서 제 주머니 속에 계시는 건 어떻습니까? 딜겐트에겐 숙소로 돌아갔다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살해살해.’
어머니께선 최근 들어 제 발과 손으로 세상을 한껏 누비시는 데에 맛 들이신 건지, 손으로 변해 내 주머니 속에만 있는 걸 그다지 반기지 않으셨다.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걸 훨씬 좋아하셨지.
눈에 보이게 축 처진 어머니의 어깨를 보자니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결국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진짜 전투가 벌어지면 뒤도 안 보고 도망가셔야 합니다? 딜겐트가 같이 있는 이상 중간에 손으로 변하실 수는 없을 테니까요.”
‘살해!!!’
***
구운 고기를 잔뜩 드신 어머니께선 잠복한 채 밤을 지새우다 결국 한밤중부터 꾸벅꾸벅 조시더니, 이내 새벽엔 아주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쿨쿨 주무셨다.
그렇게 시작된 잠복 첫날, 카투스는 창고를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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