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38)
138 화 선언.
선언.
까드득까드득.
어두운 골목을 내달리는 나무 괴물의 머리가 빠르게 자라났다. 마침내 마르낙이 깨부쉈던 새하얀 사슴 가면이 다시금 자리를 차지했다. 카투스는 방금 보았던 두 명의 사제와 한 여인을 떠올렸다.
근육질의 사제와 보통 남성보다 조금 건장한 사제, 그리고 선명한 녹발의 여인.
자신을 향해 검을 들고서 달려들던 사제의 몸놀림은 평범한 이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비록 견문이 넓지는 못하나, 악마와 계약하면서 얻은 이 몸뚱이는 쉽게 베어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 이 단단한 몸을 한 자루의 검으로 무슨 길거리 나무 가지치기하듯 베어 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있을 수 없는 일이 아까 벌어지긴 했지만.
사슴 가면 괴물, 카투스는 길쭉한 다리를 더욱더 빠르게 놀렸다. 괴물의 격렬한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을 내딛는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다만 골목 사이로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추격자가 도통 포기할 생각을 하질 않았다.
굳이 힘을 써서 뒤에 숨어 있던 여자를 살짝 상처 입혀 둔 덕인지 한 명의 사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근육질 거구의 사제는 여자의 부상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을 뒤쫓아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조금씩 자주 식재료를 훔친 게 잘못이었을까. 아니, 아직 아주 잘못된 건 아니었다. 자신이 완벽하게 추적자를 따돌리고 도망치기만 한다면 이번 사건은 아무 일도 아닌 게 될 수 있었다.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 그 소리와 함께 한 자루의 단도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딜겐트가 내던진 단도는 정확하게 괴물의 왼쪽 다리 관절을 파고들었다.
쨍그랑.
하지만 순간, 카투스의 길쭉한 다리는 한 줌 가루로 화해 사라진 후 다시 뭉쳐 들었다. 뽑혀 나온 단검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 위를 나뒹굴었다.
뒤따라 달리던 딜겐트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재빨리 손을 뻗어 눈앞의 단검을 주워 들었다.
단검으로 관절을 노려 괴물의 속도를 떨어뜨린다는 방법은 실패. 그럼 다른 방법은?
그는 품속에 챙겨 다니는 독을 매만졌지만, 딱히 이 독을 사용한다고 해서 저 나무 괴물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이 독은 신경독이었으니까.
점점 지쳐 가는 그의 육체에 치유의 여신의 권능이 스며들었다. 신성이 그의 몸 세포 하나하나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었다. 딜겐트는 처음 내달리던 속도 그대로 악마와 계약한 괴물의 뒤를 쫓았다.
사슴 가면 괴물은 뒤를 힐끔 보곤 빠르게 판단을 끝마쳤다. 이대로 달리기만 해선 저 사제를 절대 떨어뜨릴 수 없다.
자신은 아직, 아직 그 누구에게도 잡혀선 안 됐다. 반드시 해내야만 할 일이 있었기에.
[젠장.]짧게 읊조린 괴물은 마음을 굳혔다. 앞으로 자신의 일이 조금 더 귀찮아지겠지만, 저 사제를 제거하기로.
골목 사이를 어지럽게 돌던 괴물의 행적이 돌연 달라졌다. 괴물은 어두운 골목을 누비는 대신 저 멀리 보이는 에베도스의 높다란 성벽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딜겐트는 저 괴물이 어떤 기습을 해 오든 상관없었다. 단번에 즉사하지만 않는다면 치유의 여신께서 자신을 얼마든지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리라.
믿음이 담긴 굳건한 두 다리가 더욱 격하게 대지를 박찼다. 카투스는 사제가 자신을 잘 따라오는 걸 확인하고서 길쭉한 나무 다리를 더욱 격렬하게 놀렸다.
성벽. 어두운 거리를 가로질러 어느새 성벽의 코앞까지 도착한 괴물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 벽과 충돌했다. 아니, 전신이 검은 가루가 되어 그대로 벽을 통과했다.
괴물이 벽을 통과해 사라졌다. 딜겐트는 저 괴물이 사실 언제든 이 에베도스의 성벽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더욱 드높였다.
저 괴물을 절대 놓칠 순 없었다. 성벽이 괴물을 가두는 족쇄가 되지 못한다면, 이젠 다음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까.
딜겐트는 두 자루의 단검을 꺼내 자리를 박찼다. 그는 훈련받은 대로 두 자루의 단검을 성벽의 빈틈에 박아넣으며 범인들에게 불가능한 속도로 벽을 기어올랐다. 벽을 기어오르는 딜겐트의 움직임은 마치 능수능란한 벌레의 그것과 같았다.
“헉?!”
일렁이는 횃불들과 경계하는 병사. 병사는 갑작스럽게 벽을 기어올라 나타난 딜겐트를 보곤 대경실색했으나, 이내 그 수상한 사람이 사제복을 입고 있는 걸 확인하고 겨우 진정했다.
“이 한밤중에 여, 여긴 어쩐 일로…”
“악마를 쫓고 있습니다. 제가 처리하고 영주님께 보고할 터이니 굳이 소란을 피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예?!”
딜겐트는 대충 대답을 하고는 성 밖을 빠르게 훑었다. 그는 이내 자신이 쫓던 괴물을 찾아냈다. 저 멀리 어두운 숲의 초입에서 새하얀 사슴 가면의 괴물이 가만히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서 쫓아올 테면 와 보라는 듯이.
딜겐트는 그 악마의 도발에 기꺼이 응했다. 그는 성벽 위에서 훌쩍 뛰어내리곤 부드럽게 착지해 숲을 향해 뛰어나갔다.
악마가 만들어 낸 괴물이 기다리는 곳으로.
***
콰앙!!!
조금 전 딜겐트와 마주쳤던 경비병이 자신의 근무 시간에 일어난 일을 대체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던 그때. 화약이 터지기라도 한 듯이 자신의 아래쪽 성벽이 폭발했다.
“무, 무슨?!”
화들짝 놀라 횃불을 치켜들고 성벽 아래쪽을 비춘 그가 발견한 건 한 명의 남자였다. 하반신과 오른팔을 둘러싼 새카만 갑옷과 나머지 반신에 드러난 새하얀 사제복. 피어오르는 흙먼지들과 앞에 튀어나간 성벽이었던 돌조각들.
경비병은 순간 성벽이 폭발한 게 아니라, 저 사제가 힘으로 성벽을 깨부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맨손으로 성벽을 부순다니 절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갑옷 입은 사제는 빠르게 주변을 훑고는 고개를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비를 향해 소리쳤다.
“방향!”
“예?”
사제와 눈이 마주친 경비병은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저 사제의 두 눈에는 의미 모를 선명한 정광이 감돌고 있었다. 도저히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자를 볼 때 느끼는 좌절감. 그가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어린 시절 술에 취해 날뛰는 아버지의 눈빛을 본 후로 처음이었다. 그의 본능이 시끄럽게 외쳐 댔다.
저 남자가 무얼 묻든 당장에 대답해 주고 그냥 사라지게 하라고.
“저보다 앞서간 사제는 어디로 갔습니까!”
“저, 저쪽 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갑옷 입은 사제는 가타부타 대답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도저히 보통 사람이 낼 수 없는 속도로.
경비병은 자신이 가리킨 방향의 끝에 그가 찾던 것이 있길 바랐다. 괜히 다시 찾아와서 자신에게 왜 틀린 방향을 가르쳐 줬냐고 저 사제에게 추궁당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후, 마음이 조금 진정되자 그는 이제 자신이 보고하고 말고를 고민할 때가 아님을 깨달았다.
성벽에 장정 하나가 지나다닐 만큼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렸으니까. 그는 빠르게 걸음을 놀려 당직을 서고 있을 자신의 상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스산한 숲속. 적막한 숲속을 딜겐트는 걸어 나갔다.
사슴 가면을 쓴 괴물의 형체는 자신이 숲에 들어서는 순간 사라졌다. 딜겐트는 신경을 한껏 곤두세운 채로 주변을 살폈다. 자그마한 흔적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괴물이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해 낸 것은 맞았으나, 이건 딜겐트 또한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다. 괜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 괴물과 드잡이질을 할 필요가 사라졌으니까.
그는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검을 조용히 꺼내 들었다. 단도 한 자루와 검 한 자루를 동시에 다루는 쌍검술. 제국 레인저들의 제식 검술의 기수식을 취한 채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적막한 가운데 딜겐트의 발걸음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딜겐트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카드득.
자신이 내지 않은 소리. 그와 동시에 괴성이 울려 퍼졌다.
[카아아아아아악!!!]나무들 사이로 빼빼 마른 사슴 가면 괴물이 튀어나왔다. 괴물은 날카로운 나무 손톱을 치켜들고서 그대로 아래로 내리그었다. 예상했던 습격. 딜겐트는 침착하게 검을 휘둘러 사슴 괴물의 손톱을 쳐 냈다. 아니, 쳐 내려 했다.
검과 맞부딪히기 직전, 괴물의 손톱이 또 한 번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딜겐트는 재빨리 반대편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내던져 괴물의 어깨를 맞췄다.
어깨 관절에 단검이 틀어박히자 팔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가루가 되었던 괴물의 손톱이 제자리에서 다시 나타났다.
[아?!]딜겐트는 멀쩡한 자신의 몸을 보곤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예상이 맞았다. 몸의 일부가 가루가 되어 순간 사라지는 것처럼 보여도, 사라진 몸의 부위는 여전히 저 악마와 계약한 괴물과 이어져 있었다.
만약 아까 성벽을 통과할 때처럼 언제든지 전신을 가루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공격이 가능했다면 저 괴물이 이렇게 도망쳤을 리가 없었다. 그냥 현장에서 목격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유유히 빠져나갔으면 나갔지.
딜겐트는 천천히 입을 열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영주의 아들은 어디 있지?”
새하얀 사슴 가면이 일그러졌다. 선명한 분노를 띠고서.
[그건 네가 알 바가 아니다!!!]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단검이 틀어박힌 어깨가 억지로 움직였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손톱과 검이 충돌했다. 딜겐트는 검 너머에서 느껴지는 힘을 가늠하고는 작게 당황했다.
예상보다 괴물의 힘이 더 강했다. 저 깡마른 팔에서 나오는 힘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콰앙!!!
튕겨 나간 딜겐트의 몸이 굵은 나무와 거칠게 부딪혔다. 딜겐트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지만, 그의 시야를 뒤덮은 건 거대한 손톱들이었다. 거대하고 날카로운 나무 손톱들.
[미안하지만 죽어.]손톱들이 딜겐트의 몸속을 휘저었다. 내장 조각이 비산하며 피가 튀었다. 카투스는 너덜너덜해 거의 다 찢어진 딜겐트의 몸을 보곤 우뚝 멈춰 섰다.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악마에게 이 힘을 받는 대신, 여러 가지 것들을 악마에게 넘겨주었으니까.
악마는 그에게서 다른 이들에게 진실을 말할 권리 또한 받아갔다. 그렇기에 카투스는 자신이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았다.
빼빼 마른 사슴 가면 괴물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숲속으로 나아갔다. 저 죽은 사제를 묻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잠시 후 카투스가 사라지자 반쯤 찢겼던 딜겐트의 몸이 서서히 아물기 시작했다. 딜겐트는 바닥에 드러누워 전신에서 요동치는 고통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상상 이상이군.”
“무엇이 말입니까?”
숲속에서 마르낙이 걸어 나왔다. 딜겐트를 따라 숲에 들어온 그는 숲에서 퍼져 나온 선명한 혈향을 맡고 이 자리로 찾아올 수 있었다.
딜겐트는 쓰게 웃으며 마르낙을 올려다보았다.
“괴물의 힘이 상상 이상입니다. 죽은 척을 해서 고비를 넘겼습니다만, 이거 저 혼자서는 무리겠군요.”
“그렇습니까.”
지극히 무미건조한 목소리. 마르낙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디로 갔습니까. 괴물은.”
딜겐트는 잘 안 움직이는 손가락을 들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갔습니다만. 일단 제가 회복되고 나면 같이 움직이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다 해결되어 있을 테니 걱정 마시길.”
“그게 무…”
빡!
마르낙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딜겐트의 턱을 걷어찼다. 무어라 말을 하려던 딜겐트는 턱을 강타하는 충격에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마르낙은 그가 기절했음에도 여전히 상처의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 확인하곤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저쪽으로 갔단 거지.”
마르낙이 자리를 박차고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하고 조금 뒤, 무섭게 허공에서 날카로운 손톱이 튀어나와 그를 반겼다.
왜애애애애애애앵!!!
그리고 도살자가 울부짖었다.
잠깐의 충돌. 그 결과는 명백했다. 산산이 조각 난 괴물의 한쪽 팔과 여전히 시끄럽게 회전하고 있는 도살자의 날.
훌쩍 물러난 나무 괴물의 팔이 빠르게 다시 자라났다. 마르낙은 말없이 자리를 박차고 다시 한번 괴물을 향해 달려들었다. 괴물의 손톱이 다시 한번 사라졌다.
마르낙은 사라진 손톱에는 눈곱만치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날려 괴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다시 나타난 손톱이 마르낙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그 안을 휘저었다.
피가 튀고 내장이 쏟아졌다. 마르낙은 뇌를 휘젓는 고통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팔을 휘둘렀다. 회전하는 이모탈리움 톱날이 괴물의 한쪽 다리를 잘라 냈다. 괴물의 몸이 기울었다.
카투스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 사제는 피와 내장을 질질 흘리면서도 묵묵히 제 할 일만을 해 나가고 있었다.
왜애애애애앵!!!
나머지 다리마저 잘려 나갔다. 괴물의 몸뚱이가 바닥 위로 쓰러졌다. 새하얀 사제복이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살점들로 붉게 물들었다. 마르낙은 쓰러진 괴물의 가슴을 한쪽 발로 짓밟고 빙그레 웃었다.
“너는 지금부터 산 채로 썩어 들어가게 될 거야. 내일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살려 달라고 빌지는 마. 이제 네가 누구든 살려 줄 생각은 없으니까.”
[나는 죽지 않아!!!]카투스가 거칠게 손톱을 휘두르자 마르낙은 뒤로 훌쩍 물러나 자신의 몸에서 흘러내린 장기를 대충 잘라 내던졌다. 구멍 뚫린 그의 몸이 빠르게 아물어 갔다. 마르낙은 피 묻은 손으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새카만 그의 두 눈이 달빛을 받아 조용히 빛났다.
“아니, 너는 죽어. 오늘, 이곳에서. 끝 모를 후회에 잠긴 채로. 대신…”
마르낙이 조용히 웃었다.
“사과는 받지 않을게.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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