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40)
140 화 사제, 딜겐트.
사제, 딜겐트.
딜겐트는 침음성을 삼켰다.
“마르낙 사제님이 악신의 숭배자였다니, 정말이지 상상도 못 한 변수로군요. 대체 그 가호가 걸린 사제복은 어떻게 입고 다니는 겁니까? 그 옷은 악신의 숭배자들이 입고 다닐 종류의 옷이 아닌데 말이죠.”
그는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 작전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자꾸만 제 예상에서 벗어나는군요. 이렇게나 많은 변수가 끼어들다니…”
“너, 말이 너무 많네.”
마르낙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딜겐트를 향해 달려들었다.
왜애애애애애앵!!!
회전하는 톱날은 정확하게 딜겐트의 목을 노리고 나아갔다. 그에겐 별다른 감정이 없는 만큼, 마르낙은 딜겐트를 단숨에 보내 줄 요량이었다. 먼저 공격받은 이상, 살려 준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딜겐트는 우두커니 서서 자신의 목을 향해 다가오는 톱날을 구경했다. 그의 입가로 한 줄기 미소가 그려졌다.
“설마 제가 혼자 쫓아 왔으리라 생각하신 겁니까?”
투명한 실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대체 언제 쳐졌는지 모를 거미줄 같은 실들이. 이모탈리움 톱날이 빽빽이 실들과 얽히며 거친 불티들이 치솟아 올랐다. 딜겐트는 다시 한번 두 눈을 크게 떴다.
“호오. 그 무기, 톱날이 이모탈리움이었습니까? 이거 잘됐군요. 덕분에 고대제국의 유물도 회수해 갈 수 있게 됐으니까요.”
연이어 나타나는 실들. 그 실들이 나아가는 마르낙의 몸을 감쌌다. 그와 함께 숲속에서 실의 끝을 쥔 일련의 인원들이 나타났다.
위에서 바라본 거미를 닮은 문양의 가면. 전신에 딱 달라붙는 검은 갑옷과 부무장. 언뜻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재질의 물건들로 무장한 인원이 총 아홉.
마르낙은 실에 묶인 채로 천천히 그들의 행색을 살폈다.
“총 구천인가.”
새카만 동공이 데굴 굴러 딜겐트를 직시했다. 마르낙의 입가로 부드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그리고 너까지 딱 일만. 오랜만에 제대로 한 건 건졌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몰라도 돼.”
선명한 암녹빛 문신이 들이 맹렬히 타올랐다. 마르낙은 실에 엉킨 오른팔을 잡아당겼다. 실을 붙잡고 있던 인원 셋의 몸이 휘청이곤 이내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실을 놓쳐 버렸다.
아무리 이모탈리움 실이라도, 그 실을 사용하는 사람을 초인으로 만들어 주진 않았다. 마르낙은 생긴 틈을 이용해서 재빨리 도살자를 휘둘러 몸을 휘감고 있던 실들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마르낙의 신형이 일순 사라졌다.
까아앙!!!
도살자와 검이 맞부딪혔다. 마르낙은 방금 자세가 흐트러진 인원 하나를 기습했지만, 의문의 인물은 침착하게 허리춤의 검을 뽑아 내 마르낙의 공격을 흘려 냈다. 무척이나 잘 훈련된 동작이었지만, 그보다 마르낙을 놀라게 한 건 따로 있었다.
“검까지 이모탈리움이라고…?”
마르낙은 생각보다 골 아픈 이들과 엮여 버렸다는 걸 직감했다. 내일 아침이 밝거든 최대한 빨리 이 도시를 뜰 방법을 강구하기로 굳게 다짐하곤 뒤로 훌쩍 물러났다.
딜겐트는 무표정한 눈으로 마르낙을 보곤, 명령했다.
“내가 이 악마 계약자를 심문하는 사이, 너희는 그 악신의 숭배자를 처리해라.”
바삐 움직이는 발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마르낙은 일변하는 주변의 공기를 통해 지금부터가 진짜임을 깨닫고는 웃었다. 그는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어머니.”
짧은 한마디와 함께, 선명한 녹색 선이 대지 위를 질타했다. 대지 위를 질주한 선은 거대한 원을 그려 그들이 있는 공간을 뒤덮고는 나타났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산 자는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진 이상, 그 누구도 이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이지 않는 한은.
천천히 눈을 뜬 마르낙이 도살자의 시동을 켜며 다시금 웃었다.
“어디 소속인지 묻지는 않을게. 너희 얼굴 보니까 딱 절대 안 해 줄 관상이라서 말이야.”
왜애애애애애앵!!!
거친 시동 음과 함께 아홉의 무장 인원들이 일제히 마르낙을 향해 달려들었다.
***
딜겐트는 흑지주(黑蜘蛛) 대원들을 뒤로한 채, 몸통만 남은 사슴 가면 괴물을 질질 끌고서 거리를 벌렸다. 그는 이 누군가를 심문하는 동안, 방해받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카투스는 당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적당히 거리를 벌렸다 판단한 딜겐트는 괴물을 대충 내려놓곤 한숨을 돌렸다. 그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시동 음을 들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 사람은 생긴 거로만 판단해선 안 된다더니. 마르낙 사제님이 저렇게나 과격한 성향이었을 줄이야. 정말이지 두꺼운 가면을 쓴 사내였군요.”
[어, 어째서 날 돕는 거지?]“도와요? 당신을? 하긴, 곧 죽을 목숨을 이렇게 챙겨 줬으니 그런 오해를 할 만도 하죠. 이거 일일이 설명하긴 귀찮고.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되리라 보는데, 어떻습니까?”
딜겐트는 주머니에서 새하얀 가면을 하나를 꺼내 썼다. 별다른 무늬가 새겨지지 않은 민무늬 흰 가면을. 가면을 확인한 괴물의 동공이 커졌다.
[?!]당황. 그리고 당황은 곧 격렬한 분노와 증오로 변해 타올랐다. 그날, 그날 저택을 습격해 모든 이들을 도륙 냈던 인간들은 모두 저 백색 민무늬 가면을 쓰고 있었다.
[너, 너였구나!!! 이 빌어먹을 개자식아!!!]딜겐트는 가면을 주섬주섬 챙겨 넣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이편이 설명이 간단해서 좋군요. 이제 대충 제가 곧 죽을 당신을 왜 살렸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짐작이 가신다면 이렇게 살려 드린 김에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만.”
카투스는 이를 악물었다. 아바드 피니쇼의 아들. 저자는 지금 자신이 데리고 도망친 도련님의 행방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거칠게 버둥댔지만, 수차례의 고문 탓에 괴물의 몸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끝 모를 재생력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 사지가 재생되려면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얀 사슴 가면 괴물은 절규했다.
[왜!!!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왜 모두를 죽인 거냐고!!!]딜겐트는 싱긋 웃었다. 무척이나 상쾌하게.
“그럴 만했으니,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그나저나 어디 있습니까? 당신이 데리고 도망친 아바드 피니쇼의 아들, 야드 피니쇼 말입니다. 쓸데없이 당신이 악마와 계약하는 바람에 깔끔하게 끝날 일이 복잡해지지 않았습니까? 이미 다 죽은 거, 얼른 말해 주고 편히 가시죠.”
[닥쳐!!! 너 같은 살인마에게 도련님은 절대 넘기지 않아!!! 이 개자식아!!!]“형이 배다른 동생 얼굴을 한번 보자는데, 그게 그리도 힘듭니까?”
[네가 도련님의 형이라고…?]딜겐트는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형입니다. 뭐, 이 기회에 정식으로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이름은 딜겐트 피니쇼. 에베도스의 영주, 아바드 피니쇼의 아들입니다.”
***
쿵!!!
헐레벌떡 상관의 방으로 달려온 병사는 문을 두드리는 것도 잊은 채 방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지금 사제 두 분이 범인으로 짐작되는 괴물을 쫓아 에베도스의 성벽을 넘었습니다!!!”
“그래? 알겠으니 너는 여기서 대기해라.”
“예, 예?!”
지극히 침착한 대답에 병사는 당황했다. 호흡을 겨우 고른 그는 이내 자신의 상관 옆에 정체불명의 남자가 검은 거미 문양 가면을 쓴 채 서 있는 걸 발견했다. 낯선 이는 가만히 서 있었음에도 그를 본 것만으로도 의미 모를 불길함이 느껴졌다.
“저, 저희가 사제분들의 지, 지원을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방에서 대기하라고 내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평소 자신이 알던 상관이라면, 공을 세울 기회라며 자리를 박차고 당장 자신이 먼저 뛰쳐나갈 사람이었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대기하라고 명령이나 내리지 않고서. 병사는 침을 꿀꺽 삼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 혹시 왜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황제 폐하의 명(命)이다.”
상관이 들어 보인 새하얀 종이 위에는 선명한 직인이 찍혀 있었다. 북제국 황제의 직인이. 그 직인을 보고 나서야 병사는 풍문으로만 들었던 소문이 진실임을 사실이었음을 깨달았다.
황제의 더러운 일을 처리하는 거미들. 암주(暗蛛)가 진짜로 존재했다는 것을.
꼴깍.
괴물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젠 잘못하면 자신의 목이 달아날 상황이었으니까. 병사는 침을 삼키고는 새카만 거미 가면을 힐끔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지극히 불길한 문양의 가면이었다.
***
푹.
[끄아아아아아악!!!]“호오. 나무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독이 잘 먹혀서 당황스럽군요. 혹시 많이 아픕니까?”
[이 개애애애자식아아아아아!!!]딜겐트는 검에 새로운 독을 바르며 조곤조곤 속삭였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 이복동생을 죽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당신이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꼬이진 않았을 텐데.”
[네, 네 말을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해? 저, 절대 안 믿어!!!]“하아. 이래서 못 배운 분들을 설득하는 게 제일 힘들군요. 이 정도를 모르는 아집이라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달을 확인했다. 새벽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조금 있으면 흑지주들이 마르낙 사제의 목을 치고 그의 물건들을 가져오리라. 딜겐트는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사람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법이었다. 암주(暗蛛)의 백지주가 된 사람에게라도.
“잘 들으십시오. 두 번 말하진 않을 테니까. 저는 절 내버린 아버지에 대한 복수 같은 시답잖은 일 때문에 이번 일을 벌인 게 아닙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에는 위대하고 영명하신 황제 폐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악신의 숭배자들로 제국의 정세가 어지러워 귀족들 간의 교류가 최소한으로 이뤄지는 지금, 황제 폐하께선 크게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이 기회에 제국 내의 반전파(反戰派)들을 숙청하시기로요.”
딜겐트는 고개를 까딱였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제 아버지, 아바드 피니쇼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비극을 불러일으켰다는 겁니다. 감히 황제 폐하의 뜻에 반하는 파벌에 가담하다니, 그 죄는 천만번 고쳐 죽어도 갚을 수 없는 죄입니다.”
괴물은 성난 외침을 내질렀다.
[뭐라는 거야!!! 그게 대체 네가 벌인 학살이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이 개자식아!!!]“꼽추 카투스. 당신이 못 배워 먹어서 지금 제 말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가 힘드시리란 건 아주 잘 알겠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쉽게 말씀드리죠. 저는 아버지의 자리에 제 이복동생 야드를 앉힐 겁니다. 최대한 멀쩡히 살려서요. 거기다 그거 아십니까?”
딜겐트는 자신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저도 태어났을 땐, 당신처럼 꼽추였습니다. 다행히 치유의 여신님의 은총을 받아 사제가 된 덕에 굽은 허리가 펴졌지만요. 당신은 악마의 선택을 받아 그 굽은 허리를 폈지만, 따지고 보면 저희의 삶이 꽤 비슷한 거 같지 않습니까? 제 아버지께서 당신을 거둔 건, 사실 당신을 보곤 절 떠올려서일지도 모릅니다.”
카투스는 자신에게 베풀어졌던 아바드 피니쇼의 이유 모를 호의를 떠올렸다. 딜겐트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그러나.
괴물은 이를 악물고 시끄럽게 울부짖었다.
[하지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이해하진 못했지만!!! 에나를 죽일 필요는, 아니 저택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 다, 다들 얼마나 좋은 사람들이었는데!!!]“흠…”
딜겐트는 조용히 턱을 매만지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이거 아예 머리가 안 돌아가는 얼간이는 아니었군요.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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