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41)
141 화 불합리.
불합리.
딜겐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순순히 인정하죠. 당신들을 죽인 것과 아버지의 부인이던 그 여자를 죽인 것. 사실, 전부 제 개인적인 복수였습니다. 굳이 죽이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긴 했습니다만, 그럴 필요를 못 느꼈죠.”
[뭐라고…?]카투스가 무어라 중얼거리든 딜겐트는 제 말을 이어 나갔다.
“제 어머니는 원래 아버지의 하녀였습니다. 두 분은 서로 눈이 맞았죠. 문제는 제 아버지 아바드 피니쇼에게 약혼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제 아버지는 워낙에 유약하고 순하신 분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버지는 약혼을 깨고서 제 어머니와 함께 도망을 치지도 못했습니다. 거기다 어머니는 하필이면 건강한 아들을 낳지 못하고 웬 꼽추를 하나 낳아 버리고 말았죠. 바로 저 말입니다.”
딜겐트는 곧게 뻗은 자신의 허리를 쭉 펴곤 키득키득 웃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제 존재를 더 공개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물론, 우유부단한 아버지답게 절 내치지도 못하셨죠. 그래서 아버지는 대신 저와 어머니를 숨기셨습니다. 조금 멀리 떨어진 도시에 정착한 저와 어머니는 아버지의 지원으로 부족함 없이 살았습니다. 문제는 그 돈의 흐름을 아버지의 부인이 눈치챈 데서 벌어졌죠.”
카투스는 뒤에 흘러나올 말을 직감했다.
“어느 날, 낯선 이들이 등장해 저와 어머니가 살던 집을 불태우고 어머니와 저희 집 하인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사실, 저도 그날 심장이 꿰뚫린 채 벽에 내걸렸습니다. 숨이 꺼지던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괴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딜겐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누구든 좋으니까, 제발 살려만 달라고 빌었습니다. 타오르는 불길은 너무 뜨거웠거든요. 그리고 그날, 저는 기적을 마주했습니다. 치유와 건강의 여신께서 저를 굽어보신 거죠. 신성과 함께 제 몸은 응당 그랬어야 할 형태로 되돌아갔습니다. 오, 여신이시여.”
딜겐트는 짧게 묵념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더 이상 지원을 하기 싫어 사람을 보낸 줄 알았습니다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의 부인이 저와 어머니의 존재를 깨닫고서 제거하려고 수를 쓴 것이더군요. 여튼, 저는 수복교의 사제로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제가 구원받았던 것처럼 다른 불우한 이들도 제 작은 도움으로 구원받길 바랐거든요. 여신께서도 제가 그리하실 줄 알았기에 저를 선택하셨겠지만요.”
둑이 터진 것처럼 시작된 설명은 끝날 줄을 몰랐다. 딜겐트는 한껏 흥이 올라 떠들어 댔다.
“저는 제 힘을 갈고 닦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을 도우면서도 말이죠. 그러던 중 우연히 기회가 닿아 황제 폐하의 밑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죠. 저는 선행을 계속하며 차근차근 준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매인 검을 매만지며 회상했다. 그날의 기억들을.
“가장 먼저 한 건 그날, 저희 집에 불을 지르고 제 어머니를 죽인 이들을 한 명씩 찾아가서 복수한 겁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자식을 죽이고 이 손으로 그들의 아내를 찢었습니다. 다른 가족들이 있다면 그들 또한. 그거 아십니까?”
딜겐트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진짜 복수는 상상보다 훨씬 달콤합니다. 정말이지 짜릿하게요. 그렇게 차근차근 하나씩 처리하다 보니 벌써 마지막 하나밖에 남지 않았더군요. 거기다 아주 우연하게도 제게 아버지와 관련된 임무가 떨어졌고요. 오, 불쌍한 아버지. 애초에 별생각이 없으셨던 그분이 반전파에 가담한 것도 외가의 압력 때문이었겠지요. 뭐, 이젠 어찌 됐든 별 상관없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이제 제가 왜 당신들을 죽였는지 이해가 가십니까? 진짜 이번 일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말이죠.”
카투스는 자신이 모시던 부인이 그런 사람일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애당초 자신은 집안의 어른이던 그분과 대화를 몇 번 나눠 본 적도 없었지만.
수복교의 사제이자, 황제 직속 암주의 일원이며 한 명의 복수자인 딜겐트는 두 손을 활짝 펼쳤다.
“처음엔 그 개 같은 부인이 보는 앞에서 그녀의 아들을 찢어 죽일 생각이었지만, 당신 덕분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아직 채 몇 해를 살지도 못한 제 동생에게 과연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제 동생 야드 피니쇼가 제 말을 순순히 듣기만 한다면, 제 동생은 곧 노쇠하게 될 제 아버지 아바드 피니쇼를 대신해서 이곳 에베도스를 다스리게 될 겁니다. 한 명의 열렬한 황제 폐하의 지지자로서요!”
쓰러진 괴물 앞에 선 사제는 자상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원래 계획은 황제 폐하의 지지 아래, 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곳 에베도스를 다스리는 것이었으나, 사실 저는 이런 자리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곤란하던 차였거든요. 관대하신 황제 폐하께 제가 잘 말씀드리기만 하면 동생은 분명 무사할 겁니다.”
카투스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들었다.
“당신도 이제는 슬슬 이해가 가겠죠. 당신의 저항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당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남의 재산인 식량이나 훔쳐 내서 그것들로 제 동생에게 비루한 음식을 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버지의 피를 이은 제 동생을 평생 그런 비루함 속에서 살게 할 생각입니까? 그게 과연 옳은 선택입니까?”
딜겐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니 슬슬 제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진정으로 제 동생을 지키고자 한다면 그러는 게 옳습니다. 카투스.”
아무런 수식어 없는 이름으로 불린 게 얼마 만인가. 카투스는 도망자가 된 뒤로 그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름을 불려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딜겐트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하지만…]괴물의 몸통이 갈라지며 팔과 다리가 튀어나왔다. 전보다 확연히 작아진 크기. 재생이 느리다면 지금 남아 있는 몸을 변형하면 될 뿐이었다. 카투스는 딜겐트의 이야기를 듣는 척하며 지금까지 이 변형을 하고 있었다.
[또, 똑같이 되돌려 줄 피, 필요는 없었잖아!!! 에나를!!! 에나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잖아!!! 이 빌어먹을 개새끼야!!!]무슨 사연이 있든, 자신에게 저 자식은 에나를 죽인 개새끼일 뿐이었다. 날카로운 손톱이 딜겐트를 덮쳐들었다. 딜겐트의 손이 움직이고, 뽑혀 나온 이모탈리움 검에 카투스의 팔이 잘려 나갔다.
“불합리하다 느끼십니까? 하지만 원래 인생이란 불합리한 것입니다. 일단 저와 당신의 존재 자체가 불합리의 그 자체 아닙니까? 죽을 위기에 처했던 등 굽은 꼽추에게 미지의 존재가 힘을 던져 준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지나가던 개도 비웃을 테지요.”
이모탈리움 검이 한 번 더 춤을 췄다. 검이 그린 곡선이 카투스의 나머지 팔을 날렸다.
“제가 당신이었다면 절대 이리 쉽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을 겁니다. 주어진 힘을 한계까지 갈고 닦아, 제 것으로 만들고 복수를 시작했을 테죠. 당신이 얻은 악마의 힘. 그건 제가 여신께 받았던 힘보다 훨씬 더 커다란 힘입니다. 당신이 제대로 힘을 갈고 닦고 절 찾았다면 저는 분명 당신의 손에 목숨을 잃었겠죠.”
[닥쳐!!!]괴물의 다리가 허공을 날았다. 카투스는 또 한 번 흙바닥 위로 쓰러졌다. 딜겐트는 다리 한 짝만 남은 괴물의 어깨에 검을 박아 넣었다. 그는 괴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많이 비슷한 줄 알았습니다만, 이제 보니 당신은 저와 많이 다르군요. 특히 방식이 무식하다는 점에서요. 이제 슬슬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 동생, 어디에 숨겼습니까?”
[나는… 에나와 약속했어… 나는 도련님을… 지킬 거야…]딜겐트는 부드럽게 웃었다.
“당신은 여기서 죽습니다만, 제 동생은 여신께 맹세코 정말 바로 죽일 생각이 없으니 얼른 이야기하고 편히 가시죠. 이미 한계이지 않습니까?”
밤새 고통받은 괴물의 몸은 가장자리에서부터 천천히 바스러지고 있었다. 명백한 한계의 흔적.
[도련님은…]딜겐트는 괴물의 입에 주의를 기울였다. 서서히 감기던 괴물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지켜!!! 이 개자식아!!! 나는 그렇게 에나와 약속했다고!!!]부스러지는 것으로 보이던 가루들이 빠르게 모여들어 제 형체를 갖췄다.
푹.
날카로운 손톱이 이모탈리움 검을 통과해 딜겐트의 배를 관통했다. 딜겐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지만, 그의 배에는 이미 커다란 구멍이 뚫린 뒤였다.
“쿨럭.”
역류하는 피를 토해 낸 딜겐트가 비틀거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어느새 원래 모습을 회복한 괴물을 올려다보았다.
“어, 어떻게…?”
[악마와 한 번 더 거래했다.]괴물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딜겐트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명백한 불합리. 저 정도로 명백한 불합리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대체 뭘…”
새하얀 사슴 가면이 카투스를 내려다보았다.
[…기억.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악마에게 건넸다.]벌써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았다. 아니, 이름에 그치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 미소 목소리. 그 무엇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녀는 대체 어떻게 웃었었지.
카투스는 전력을 다해 바스러져 가는 기억의 파편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단 하나의 기억만을 제외하고.
‘카투스… 도, 도련님을 부탁할게요… 제발 도련님을…’
목소리마저 희미한 그 부탁만이 카투스를 움직였다.
[나는 도련님을 지킨다.]하얀 사슴 가면의 틈새로 맑은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괴물의 것이라기엔 너무나 맑은 눈물이.
“미쳤군… 완전히 미쳐 버렸어. 그래선 완전히 주객전도가 아닙니까?”
딜겐트는 회복을 위한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그는 권능을 발휘하며 괴물과의 대화를 유도했다.
“당신이 사랑한 건 그 여자이지, 제 동생이 아니지 않습니까! 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의 선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괴물은 조용히 손을 치켜들었다.
[닥쳐. 개자식아. 선택의 의미는 그녀를 죽인… 네놈의 세 치 혀를 뽑아 버리고 나서 홀로 고민하면 돼.]“제길.”
딜겐트는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내저어 반격을 시도했다. 괴물의 손톱은 사제의 팔을 무참히 찢어 버렸다.
쾅!!!
걷어차인 딜겐트의 몸이 나무둥치에 부딪혀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다. 피와 살점들이 뒤엉켜서 흘러내렸다.
카투스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거대한 손을 들어 올렸다. 딜겐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제 슬슬 마르낙을 처리한 흑지주 대원들이 이곳으로 올 때였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시간을 끌 수만 있다면. 이내 딜겐트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저 괴물을 멈춰 세울 수 있는 방법을.
[이제 그만 죽어.]거대한 손이 떨어졌다. 딜겐트는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이름!!! 당신이 잊은 그녀의 이름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잊었을지 몰라도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외치던 그 이름을요!!!”
떨어지던 손톱이 우뚝 멈춰 섰다. 카투스가 무어라 입을 열려던 그때.
– 그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아 ! ! !
지독하리만큼 불길한 포효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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