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44)
144 화 대가.
대가.
“흐으음…”
세 번이나 머리가 날아간 악마는 내 대답을 듣곤 한참이나 혼자 고민에 빠졌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어머니의 눈이 미묘하게 가늘어졌다. 어머니께선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기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살해살해.’
가만히 보니 쟤는 되게 무능한 거 같다는 평가. 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이 살짝 들려던 찰나였다. 내가 어머니의 말에 무어라 대꾸하기 전, 뒤늦게 찾아온 정의의 입이 다시 열렸다.
“친구가 생각해도 내가 한 번 더 친구 손을 만져 봤다간 또 머리가 터질 거 같지?”
“벌써 세 번 정도 터졌는데, 네 번째도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포기. 깔끔하게 포기. 친구 말대로 진짜 세 번이나 머리가 터졌다면 이 몸도 슬슬 한계일 테니까 말이야!”
입으로는 포기를 말하면서도 악마는 여전히 무척이나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치 엄청나게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까 제 인연을 읽고 적당한 대가를 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랬지. 나는 내가 한 말은 지키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성큼성큼 다가온 악마는 내 어깨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나는 또 한 번 이 악마의 머리가 날아가는가 싶어서 긴장했지만, 다행히 악마는 머리가 멀쩡한 채로 내 어깨에서 손을 떼어 냈다.
“혹시 또 내 머리가 터졌어?”
“아뇨.”
“그래? 최근의 인연만을 살짝 읽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이거네. 흥미로워. 아주 흥미로워.”
“뭘 주실지나 슬슬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래그래. 알겠어, 친구야. 내가 너무 오래 시간을 끌었지?”
악마는 품속에 손을 넣고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그가 꺼낸 건 한 자루의 권총이었다. 리볼버를 닮은 검은 권총에는 하얀 뱀 한 마리가 총신과 손잡이를 구불구불 타고 오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자, 받아. 이거 꽤 귀한 거거든.”
이게 말로만 듣던 총 모양 고대제국의 유물인가. 나는 그가 내미는 리볼버 모양 고대제국의 유물을 받아들었다.
문제는 내가 이걸 딱히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내겐 자동으로 충전되는 마력포가 이미 있었다. 애초에 총이란 총알이 없으면 무용한 것. 이렇게 달랑 총만 주면, 이건 그냥 예쁜 장식품에 불과했다.
악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채기라도 한 듯이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이건 친구 쓰라고 건네는 게 아니야. 네가 생각해도 슬슬 부패의 어머니께도 스스로를 지킬 수단이 필요한 거 같지 않아? 그런 의미에서 이 물건은 꽤 쓸모가 있을걸?”
‘살햇?!’
자기 쓰라고 주는 물건이라는 말에 어머니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긴, 굳이 꼭 내가 쓸 물건일 필요는 없었다. 마침 어머니가 내게서 떨어지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만큼, 어머니만의 호신 수단이 생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어머니의 생각이지만. 나는 빈 총을 어머니께 건네드렸다.
“어떤 거 같습니까?”
‘살햇!!!’
어머니께선 내게서 총을 받아들더니 요리조리 온갖 포즈를 잡아 보며 잔뜩 신나 하셨다. 아무래도 자신만의 무기가 생긴다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드신 것 같았다.
“탄환은 어떻게 보충합니까?”
“잠시만, 저건 제국 후기 모델이라 탄환 병용이 가능하거든?”
그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내 내게 건넸다. 주머니를 열어 보자 그 안에는 저 권총에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탄환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그 탄환들은 비상시에만 사용해. 이젠 구하기 힘든 거니까.”
“그럼 평소에는 뭘 써야 합니까?”
“친구 동료 중에 마법사가 하나 있지? 걔한테 마력을 불어넣어 달라고 해 봐. 그럼 알아서 여섯 발이 장전될 거야. 물론, 실탄보다는 위력이 떨어지겠지만.”
병용이라는 게 실탄과 마력을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병용한다는 뜻이었나.
“어때? 내가 제시한 대가가 마음에 들어?”
능글맞은 목소리. 그도 눈이 달린 이상 어머니의 반응을 보지 못했을 리가 없으니, 내가 무슨 대답을 할지 다 알고서 물어보는 것이었다.
“하아. 저렇게 좋아하시니 무르기도 그렇군요.”
“그래그래! 아주 잘 생각했어! 친구야!”
‘살해살해!’
나와 눈이 마주치자 호다닥 달려온 어머니께선 벌써 자신의 권총 모양 유물에 거창한 이름을 붙이신 뒤였다.
학살자.
내 도살자와 비슷한 이름으로 붙여 봤다며 신이 나서 떠드시는 모습을 보니, 이젠 저 괴물의 생사 따위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악마는 그런 어머니께 다가가서 ‘학살자’의 자세한 사용법과 관리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일러주었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진지한 눈빛으로 악마의 말을 경청했고.
어머니께서 나 이외의 사람 말을 저렇게 열심히 경청하는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물론, 누군가 돈과 보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예외였고. 뭐, 따지고 보면 저것도 큰 의미에서 귀한 보물에 관한 이야기겠네.
“… 하면 됩니다. 다 기억하셨습니까? 기억 못 하셨으면 한 번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살해!’
마침내 악마의 설명이 끝나자 어머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서 다 기억했다는 의사를 표했다.
“다 기억하셨답니다.”
“기억하셨다니 다행이네! 그럼 이제 슬슬 내가 저 친구를 데려가도 괜찮을까?”
악마는 턱짓으로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괴물을 가리켰다. 물건도 받았으니, 슬슬 헤어질 시간인가.
“좋습니다.”
“그래! 역시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 같더라니까! 하하하!”
괴물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간 악마가 가볍게 손짓하자 괴물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한 명의 등 굽은 사내로 변했다. 악마는 곱추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들고는 내게 턱짓했다.
“따라와.”
“예?”
“아바드 피니쇼의 아들. 안 챙겨 갈 거야? 이 친구가 지내던 오두막까지 내가 안내해 줄게. 특별히.”
제안은 고맙지만, 나는 여기서 챙길 것들이 있었다. 황제의 거미들이 쓰던 이모탈리움 실들과 검들. 굳이 안 챙길 이유가 없는 보물들이었다.
“친구야, 혹시 저기 널브러져 있는 장비들을 챙길 생각이면 굳이 그러지 말라고 충고할게. 황제의 거미들이 쓰는 장비는 특수한 처리가 되어서 언제든지 추적이 가능하거든. 내가 여기저기 교란을 해 둘 생각이긴 한데, 네가 저 무기들을 챙겨 가면 내 조치들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거야!”
일행들한테 한 자루씩 챙겨 주려고 했는데. 아무리 귀한 이모탈리움 검이라고 해도, 괜한 문제까지 딸려오는 건 사양이었다. 어차피 내 일행 중에 검을 제대로 쓸 줄 아는 건 나와 다키아밖에 없기도 했고.
“알겠습니다. 안내 부탁드리죠.”
“그래!”
뒤늦게 찾아온 정의는 활짝 웃으며 곱추를 안아 든 채로 숲속을 가로질러 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 걷자 어머니께선 여전히 자신만의 무기가 생긴 것이 기꺼운 건지 손에 들고 계신 학살자를 만지작거리며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살해!!!’
어머니께선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총을 탕탕 쏘는 시늉을 하며 이제 우리 앞을 가로막는 적들은 다 죽었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그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왠지 모르게 살짝 불안해졌다.
이거 설마 아군 오발 사격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일단 한동안은 사용하지 않는 게 어떠십니까?”
‘살햇?!’
어머니의 큼지막한 눈이 더욱 크게 커졌다.
“그러니까 계속 쓰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다키아한테 부탁해서 한동안은 연습에 충실해 주셨으면 한다는 거죠. 총을 쏘시는 데 충분히 익숙해질 때까지요. 대신, 제 말을 잘 들어주시면 에베도스로 돌아가자마자 그 권총을 넣고 다닐 멋진 권총집을 하나 사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어머니는 멋진 권총집이란 말에 혹했는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살해!’
“잘 생각하셨습니다.”
내가 머리를 툭툭 두드려드리자 어머니께선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내 손길에 머리를 맡겨 오셨다.
“언제봐도 도저히 적응이 되질 않는 광경이네.”
악마는 어머니가 학살자의 방아쇠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어떻게 하면 멋지게 총을 빙글빙글 돌릴지에 대해 탐구하시는 틈을 타서 내게 말을 걸어 왔다.
“대체 어떻게 한 건지 내게만 살짝 말해 주면 안 되나?”
“딱히 특별한 행동을 어머니께 한 기억은 없습니다만…”
“그래…? 흐음… 그런데 그건 알아? 친구야?”
“뭘 말입니까?”
“아무리 내가 지금 이 몸에 깃든 탓에 제대로 된 능력을 사용할 수 없다지만, 악마의 기억을 조작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거든? 혹시 너도 사실 신이라거나 그런 거 아니야?”
“제가 신이었으면 여기서 이러고 있겠습니까?”
“하긴…”
악마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게 아니라면 신에 준하는 그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든지.”
그 한마디에 나는 인간이 보일 수 없는 기적을 보였던 존재를 떠올렸다. 임페트로. 설마 그가 날 읽어 내려던 악마에게 무슨 수작을 부린 건가.
내 얼굴을 살핀 악마가 배시시 웃었다.
“역시 짐작 가는 게 있나 보네? 친구야, 나한테 살짝만 말해 줄래?”
“거절해도 됩니까?”
괜히 그에 대해 떠들고 다녔다간, 다음번에 임페트로한테 불렸을 때 진짜 두들겨 맞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마자 나를 그 세계로 불러들여서 두들겨 패거나.
“그건 조금 서운한데…”
“나름 사정이 있어서요.”
“사정이 있다라… 하긴,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는 법이지. 내가 안고 있는 이 친구처럼…”
악마는 영주의 아들이 있는 저택을 향해 가는 동안, 내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이 꼽추 카투스가 살아온 생에 대한 이야기를.
악마의 입을 통해 들은 그의 생은 한 편의 비극이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여인에 대한 기억 또한 잃고, 복수의 불길을 제대로 연소되지 못한 인생.
조용히 악마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마침내 이야기가 끝나고 악마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물어 왔다.
“어때?”
“무척이나 안타까운 이야기군요.”
“이래도 다음에 만났을 때 바로 죽여 버릴 생각이야?”
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요.”
악마는 나를 보며 마주 웃었다.
“역시 너도 부패의 아들이구나. 아주 뒤끝이 심해.”
“그나저나 그 친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살짝 궁금증이 생겨 꼽추 카투스의 앞날을 물었다. 아무래도 이 악마는 그의 인생에 대해 나름의 계획이 있는 듯해 보였으니까.
“우선은 이 의욕을 잃어버린 친구에게 새로운 의욕을 새겨 넣어 줘야지. 이 친구만을 위한 여러 고난들도 준비해 주고 말이야.”
“악취미로군요.”
“악취미 맞아!”
악마는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한 편의 영웅 서사시를 만드는 걸 좋아하거든! 조개 속의 진주처럼! 흙탕물 위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다른 이들보다 부족한 한 남자가 마침내 스스로의 의지로 일어선다! 생각만 해도 너무 짜릿하지 않아? 거기에 약간의 치정 싸움을 슬쩍 올리면 금상첨화지!”
“치정 싸움요?”
악마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해 왔다.
“그래! 치정 싸움! 나는 이 카투스를 아주 ‘우연’하게 용병 일을 하고 있는 에나의 여동생과 만나게 할 생각이야! 마침 그쪽도 애인이 없는 데다 툴툴대면서도 자애심은 넘치는 타입이거든! 이 카투스 친구는 에나의 여동생을 보면서 왠지 모를 기시감을 느끼는 거지! 그렇게 둘은 조금씩 친해져 가다가… 작은, 아주 작은 ‘고난’들을 마주하게 되는 거지.”
뒤늦게 찾아온 정의는 혀를 살짝 내밀어 가는 입술을 핥았다. 그 혀 놀림은 무척이나 변태 같았다.
“결국 카투스는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괴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게 되고… 거기서 에나의 여동생은 괴물이 되어 버린 남자를 마주하게 되는 거지! 에나의 여동생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슬슬 궁금해지지 않아?”
“솔직히 궁금하기는 하지만, 남의 인생을 조작한다는 점에서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군요.”
“생각해 봐! 이 친구야! 어차피 이대론 홀로 쓸쓸하게 늙어 갈 이 친구한테 평생 배필을 슬쩍 찾아 주겠다는데, 이게 정말 나쁜 일일까?”
“나쁜 일 같습니다만…”
“흐흐흐.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 게다가 이 꼽추 카투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야!”
악마는 품에 안긴 카투스를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에나의 여동생이 만약에 괴물이 된 그를 받아들인다면… 그때 진짜 ‘에나’가 등장하는 거지! 아주아주 우연히 말이야! 카투스는 기억을 잃어서 에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강렬한 이끌림을 느끼게 되고 마는 거야! 에나의 여동생에게 느껴졌던 것보다 더 강렬한 끌림이!!! 그렇게 시작되는 자매의 치정 싸움! 카투스는 언니와 동생 중 과연 누굴 선택할까?”
“…에나는 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거의 다 죽은 상태로 내게 건네지긴 했지. 물론! 나는 미래를 위해 그 에나를 살려서 재워 뒀지만!”
뒤늦게 찾아온 정의는 천천히 손을 움직여 품에 안고 있는 카투스의 뺨을 쓰다듬었다.
“나는 주인공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란 결말을 가장 좋아하거든. 약간 이야기의 개연성이 없어지더라도 말이야! 하하하! 물론, 결국 이야기의 끝은 이 친구가 어떻게 하는지에 달렸지만! 아, 다 왔다.”
악마가 손짓하자 가시덤불이 물러나며 그 속에서 한 채의 오두막이 나타났다.
“영주의 아들은 안에 잠들어 있을 거야. 그런데 황제의 거미들한테 나 좀 잡아가라고 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그냥 영주의 아들을 조용히 성안에 내려다 놓고 네 할 일 하러 가는 걸 추천할게! 어차피 에베도스의 영주가 가졌던 귀한 보물의 대부분은 황제의 거미가 털어간 지 오래거든!”
“알겠습니다.”
나는 영주의 아들이 돌아가서 에베도스 봉쇄령만 풀려도 충분했다.
“그럼 또 보자고 친구야! 너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
악마는 그렇게 무척이나 가벼운 인사와 함께 사라졌다.
***
“그거 아세요! 마르낙 사제님?”
쟈멜은 무척이나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다는 듯이 잔뜩 들떠서 식사하려고 내려온 내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영주의 아들이 어젯밤에 성문 앞에서 발견됐대요!!! 이거 제가 방금 알아온 따끈따끈한 정보예요!!!”
“그거 제가 데려다준 겁니다.”
“네?!”
“그나저나 항구 쪽을 수색하신 건 잘 풀렸습니까?”
“응.”
대답은 쟈멜이 아니라 지젤이 했다. 그녀는 아침을 먹기 위해 긴 검은 머리를 뒤로 묶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가 준 문서 덕분에 꽤 중요한 단서를 얻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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