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51)
151 화 추적.
추적.
여태까지 인자한 미소만을 짓던 여인의 얼굴 위로 기묘한 희열이 감돌았다. 그녀의 미소는 사냥감을 막 발견해 낸 맹수의 그것을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내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쟈멜은 카디쇼의 미소를 확인하고는 몸을 부르르 떨고 내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마, 마르낙 사제님! 되, 되게 무섭게 웃어요! 저 사람!”
나는 쟈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곤 카디쇼에게로 다가갔다. 그녀가 찾던 목적이 제 정체를 드러냈으니, 이제 그녀는 우리의 안내보다 자신의 목적을 처리하는 걸 우선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대충 마을이 있는 방향만 설명을 듣고 여기서 찢어지는 편이 서로에게 좋겠지.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저희에게 한 약속이 마음에 걸리시거든,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보여도 다들 나름의 산전수전을 겪은 이들인지라.”
카디쇼에게 말을 하며 슬쩍 어머니와 쟈멜에게 눈짓하자 쟈멜이 카디쇼를 향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마, 맞아요! 마르낙 사제님만 있으면 대충 다 해결돼요!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요! 그, 그렇죠?”
말을 마친 쟈멜이 동조해 달라는 눈빛을 어머니에게로 쏘아 보냈지만, 어머니는 콧김을 흥 하고 내뿜더니 슬쩍 움직여서 내 등 뒤로 숨었다.
‘살해.’
어차피 말해 봤자 안 들리는데 굳이 저 여자한테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야 하냐는 대꾸. 어머니는 카디쇼와 호의적인 관계를 쌓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으신 듯했다.
카디쇼는 가라앉은 붉은 눈으로 우리 일행을 살피곤 쓰게 웃었다.
“배려는 정말 고맙지만, 나는 한 번 한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다. 다만.”
그녀는 짧게 말을 끊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홍빛 눈동자가 빛을 받아 일렁였다.
“내게 하루 정도만 시간을 내줬으면 한다.”
“하루라면…?”
카디쇼는 턱짓으로 엉망이 된 임시 거처를 가리켰다.
“이 짓을 벌인 이들을 추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
언뜻 보면 정말 딱 하루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인 것 같았지만, 나는 단번에 그녀의 말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저희끼리 먼저 떠나는 걸 허락해 주실 생각이 없으시군요.”
내 물음에 카디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지만, 그렇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맬 때는 나타나지 않다가 너희들이 나타나자 갑자기 행동을 개시한다? 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너희가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무척이나 높겠지.”
내가 무어라 다시 답하기 전에 카디쇼는 오해하지 말라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너희가 이들과 연관되어 있을 거라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다. 단지, 내 짐을 엉망으로 파헤친 자들이 너희에게 무언가를 원할지도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지.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내 입으로 뱉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게 딱 하루만 시간을 허락해 줄 수 없겠는가?”
무척이나 부드럽게 타이르고 있지만, 저 권유를 거절했다간 아무래도 카디쇼와 무력적인 갈등을 빚게 될지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딱 하루만이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여태 못 찾은 미지의 적을 그녀가 하루 만에 찾아낼 가능성은 무척이나 낮았고, 카디쇼에겐 육포를 받은 빚도 있었다.
“혹시 의견을 모을 시간이 필요한 거면 저쪽에 가서 서로 충분히 대화를 나눠도 좋다. 나도 웬만하면 억지로 너희를 억류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나는 그동안 엉망진창이 된 내 거처를 조금 조사해 두도록 하지.”
말을 끝마친 카디쇼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려 엉망이 된 자신의 임시 거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쟈멜과 어머니를 데리고 카디쇼의 임시 거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말을 꺼냈다.
“쟈멜.”
“네!”
“쟈멜은 어쩌면 좋겠습니까?”
“후음…”
쟈멜은 잠깐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저는 마르낙 사제님이 하고 싶으신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요…”
“그런데?”
그녀는 저 멀리서 짐들을 정리하고 있는 카디쇼를 힐끔 보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사실, 저 붉은 머리 사제를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낀 건데요…”
쟈멜이 입술을 달싹이며 고민하는 동안, 나는 느긋하게 쟈멜의 말을 기다렸다. 잠시 후 쟈멜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이번 일, 왠지 모르게 조금 불길해요… 저 사제분 얼굴을 볼 때마다 뭔가 아주 찝찝하고 불안한 기분이 들어요…”
“… 그런데 쟈멜은 다른 사제분들을 볼 때도 매번 그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까?”
쟈멜은 매번 다른 사제들과 마주칠 때마다 딱딱하게 굳어서 혹시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봐 잔뜩 쫄아 있었다. 저 불길하다느니 하는 말도 다른 사제들을 볼 때마다 늘 하는 말이었고.
“헤헤헤…”
내 지적에 쟈멜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을 따름이었다. 본인도 자신이 매번 그런 말을 한다는 걸 아주 잘 알았기에.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까딱이는 발끝. 바위 위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어머니는 카디쇼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다 내 부름에 고개를 돌리셨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머니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서 손을 까딱이며 목을 날리는 시늉을 했다.
‘살해살해.’
무방비한 저 여자를 그냥 냉큼 슥삭 해서 신성으로 만들어 버리자는 제안. 지극히 어머니다운 제안이었다. 아니, 요즘 묘하게 순한 이야기만 하시긴 했지.
“안 됩니다.”
‘살해?!’
“육포도 맛있게 드셔 놓고 그러면 안 되지요. 카디쇼가 아니었으면 저희는 지금까지 꿀 사탕만 녹여 먹으면서 먹을 걸 찾아 헤맸어야 했을 겁니다.”
‘살해!!!’
육포 그거, 아주 질기고 맛도 없었다는 한마디. 아까 그렇게 잘만 오물오물 씹어 드셔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씀하시는 게, 이것 역시 어머니다웠다.
“받은 게 있는데, 그 이상을 되돌려 주진 못하더라도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 좋은 것을 받든 나쁜 것을 받든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지. 호의에는 호의로. 적의에는 적의로. 그런 면에서 카디쇼는 지금까지 우리에게 충분한 호의를 보내 왔다.
“하루 정도라면 카디쇼의 뜻에 따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살해!!!’
“어머니의 염려대로 혹시라도 내일 카디쇼가 말을 바꾼다면, 그때는 절대 그녀의 제안에 따르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도 하루만 양보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머니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저 멀리 있는 카디쇼를 째려보았다.
‘…살해!’
딱 하루만이라는 대답.
“역시 마음이 넓으신 어머니께서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꿀 사탕 하나 드시겠습니까?”
‘살해!!!’
어머니의 입 안에 벌꿀 사탕을 하나 넣어드리자 옆에 앉아 있던 쟈멜이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기 시작했다.
“쟈멜도 하나 드시겠습니까?”
“네, 넵!!!”
쟈멜에게 벌꿀 사탕을 건네자 그녀는 냉큼 입 안에 사탕을 집어넣곤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맛있습니까?”
“네! 엄청 달고 맛있어요!!!”
“전에는 준다고 해도 안 드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벌꿀 사탕의 원료인 그늘벌꿀이란 게 사람을 먹은 그늘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 쟈멜은 준다고 해도 매번 극구 사양했었다.
“사실… 어제 하나 먹어 보니까 생각보다 엄청 맛있어서요! 이제 사탕의 원료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사탕은 맛있기만 하면 돼요!!!”
‘살해살해.’
쟈멜은 단호한 선언에 어머니는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의의 의사를 표해 왔다. 과연 어머니는 언제쯤 쟈멜이라는 새로운 입의 등장으로 사탕이 전부 자신의 몫이 아니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실지 궁금했다.
굳이 내가 직접 알려 드릴 생각은 없었지만.
하루. 딱 하루만 카디쇼의 뜻대로 해 주기로 결정한 우리는 그녀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했다.
“잘 생각했다. 대신, 내일 아침 해가 밝거든 꼭 가까운 마을로 안내해 주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마침 흔적을 찾아냈다. 그걸 뒤쫓아 볼 생각이니 떨어지지 말고 따라와라. 적이 나타나면 내가 지켜 줄 수 있게.”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사람을 안심시키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우리는 앞서 나가는 카디쇼의 등을 쫓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여기저기 노후된 벽과 기둥. 그러나 그 위에 새겨진 풍화된 문양들과 화려한 장식들은 이곳에 빛나던 한때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몇 번이나 이 주변을 뒤졌건만, 이런 곳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군.”
흔적은 우리를 기묘한 바위틈으로 인도했다. 그 바위틈 안으로 들어서서 길게 이어진 통로를 따라가길 조금. 세월에 바스러진 유적이 우리를 반겼다.
카디쇼는 낡은 벽을 매만지고는 신중한 눈빛으로 주변을 관찰했다.
“아무래도 여긴 고대제국의 유적 중 하나로 보이는군. 다른 공간에 격리되지 않고 그대로 세월에 노출된 종류의 유적 말이지. 거기다…”
그녀는 손바닥으로 유적의 바닥을 쓸었다.
“사람인지는 몰라도 여기엔 뭔가가 살고 있다. 아무래도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듯하군.”
카디쇼는 등에 메고 있던 금속 봉을 꺼내며 목소리를 낮췄다.
“조심해서 따라와라. 적이 나타나면 당황하지 말고 최대한 멀어지고.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알겠습니다.”
이건 그녀의 일인만큼, 오지랖 넓게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뭐, 이미 여기까지 따라온 시점에서 반쯤 발을 들이민 상태긴 했지만.
카디쇼의 뒤를 따라가는 와중, 유적의 곳곳을 살핀 어머니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셨다.
‘살해.’
별로 돈이 되거나 귀한 게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투덜거림. 쟈멜은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중얼거렸다.
“오래 살려면 원래 이런 어둡고 불길한 장소는 제 발로 들어가는 게 아닌데…”
“음?”
앞서 나가던 카디쇼가 낮은 침음성을 흘리더니 조금 걸음을 빨리해 무언가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죽었군.”
그녀가 발견한 시체는 생물이라기엔 어딘가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
시체는 여러 가지 생물을 이리저리 뒤죽박죽 섞어 놓은 것 같았다. 하나하나를 따로 놓고 보면 무척이나 친숙한 동물이나 짐승의 그것이었지만, 그걸 이리저리 뒤섞어 놓은 탓에 묘한 불쾌함을 불러일으켰다.
거기다 시체는 반쯤 뭉개져 있는 상태였다. 마치 격렬한 전투를 겪기라도 한 듯이. 카디쇼는 아무렇지 않게 시체를 뒤적거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객이 있었나? 그런데 소문은 역시 사실이었군. 역시 이곳엔 생체 실험을 자행하는 자들이 있는 게 분명해. 다만, 이 시체로 보건대 그들이 살아 있을 확률은 무척이나 낮아 보이는군.”
카디쇼의 하얀 볼 위에는 묘한 홍조가 피어올라 있었다. 그녀는 흥분을 감추지 않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빨리 가 보지.”
카디쇼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나아갔다. 여태까지와 달리 그녀는 우리의 걸음걸이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만의 속도로 점점 더 어두워지는 복도를 나아갔다.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될 때쯤, 그녀의 금속 봉 위로 어두운 주황색 빛이 감돌아 앞을 밝혔다.
안쪽으로 갈수록 뭉개진 시체가 더욱 많아졌다. 시체를 발견한 카디쇼의 눈빛도 더욱 형형하게 빛을 더해 갔고. 쟈멜은 카디쇼의 얼굴을 힐끔 보곤 다급하게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마, 마르낙 사제님… 뭐, 뭔가 이, 이상해요! 저 사제! 여기 들어온 뒤로 점점 더 이상해져 가고 있어요!!!”
변화는 나도 느끼고 있었다. 카디쇼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뭉개진 시체들 사이를 가르며 나아갔다.
걷던 와중 무언가 내 눈에 들어왔다. 비슷하게 뭉개져 있어 놓칠 뻔했지만, 기이한 생명체들의 시체 가운데, 뭉개진 인간의 시체가 있었다. 몸이 뭉개진 탓에 팔 한 짝과 다리 두 짝밖에 없었지만.
뭉개진 시체들이라.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광휘교 사제들은 자신의 적을 권능으로 빚어 낸 빛으로 뭉개 버리지 않던가?
“…와!”
“쟈멜?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카디쇼는 저만치 앞서가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쟈멜밖에 없…”
또 한 번 복도의 벽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와!”
귀를 기울이자, 제대로 된 그제야 희미한 목소리가 말하는 바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그건 다급한 외침이었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이리로 와!!! 그 미친 여자한테서 당장 도망치라고!!!””
선명한 목소리가 우리에게 닿은 그때.
앞서 나가던 카디쇼의 몸이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얼굴. 충혈된 눈. 그녀의 왼팔의 비대하게 불어나며 피부가 갈라져 선홍빛 근육들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 아니 그녀였던 것이 살의가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며 활짝 웃었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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