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59)
159 화 깨어난 카디쇼.
깨어난 카디쇼.
“여기는 어디지?”
덜컹거리는 수레의 소리. 하늘을 가린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볕. 내가 끌고 가는 수레에서 깨어난 카디쇼는 부스스한 모습을 한 채 수레를 끌고 있는 내게 말을 걸어 왔지만, 그녀의 붉은 두 눈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상황을 파악해 내려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이미 아테르의 실험실이 있는 고대 유적을 떠나 펄리가 알려 준 길을 따라 가까운 마을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건네준 수레에 카디쇼를 싣고서.
사실, 나는 떠나기 직전까지도 그녀를 데리고 갈 생각은 단 한 푼도 없었다. 당연히 아테르가 데리고 있겠거니 하고 여겼을 뿐.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우리가 떠나기 직전에 아테르가 카디쇼를 수레에 짐짝처럼 실어서 내게 가져다주었다. 내가 이걸 왜 나한테 떠넘기냐고 눈빛으로 물으니, 그는 퀭한 눈으로 하품을 쩍쩍 하곤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깨어나면 최근 기억이 손상돼서 없긴 할 텐데, 이 여자가 혹시라도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을 기억하고 있으면 나를 죽이려 들 거란 말이지. 그런데 네가 떠나고 나면 이 여자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거기다 굳이 이 유적의 위치를 다른 사람한테 알려 주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네가 가다가 적당한 곳에 버려 줘. 부탁할게.’
그리곤 여비로 쓰라며 자그마한 돈주머니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그 돈주머니를 받고 나서야 나는 배에서 급하게 뛰어내리느라 돈을 한 푼도 챙기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쟈멜처럼 돈에 굴복하고 말았다. 나라고 해서 땅 파먹고 살 수는 없었으니까.
뒤이어 마중 나온 펄리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내게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아테르 쪽에 인형 하나쯤은 남겨 둬서 연락을 해야 하니, 이 인형으로는 너랑 같이 갈 수가 없다는 게 그녀의 입장이었다. 물론, 굳이 같이 안 가도 나는 전혀 상관없었다.
그녀와는 이미 여러 가지 사항을 조율하면서 다음에 만날 장소를 정해 둔 상태였으니까. 바로 북제국의 수도에서 만나기로.
가볍게 작별 인사를 하자, 펄리는 종종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귓가에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그거 알아? 북제국의 황제는… 리베라티오의 숨겨진 후원자 중 하나야.’
진정한 의미에서 폭탄 같은 발언을 던진 그녀는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이 다시금 손을 팔랑거리며 유적의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북제국의 황제가 리베라티오의 후원자라니… 이 사실을 증명해 낼 수만 있다면, 북제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다른 모든 국가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덤으로 현재 지상에 내려온 천사들과 말살성전단의 사제도 함께.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겐 그다지 중요한 정보가 아니었다. 북제국 황제가 리베라티오와 한통속이든 아니든,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
꾹꾹거림. 누군가 내 등을 손가락 끝으로 찔러 왔다.
“저기, 혹시 귀가 들리지 않나…?”
그제야 나는 카디쇼가 방금 깨어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자 카디쇼의 어깨 너머로 어머니와 쟈멜이 펄리에게 선물 받은 카드를 가지고 무척이나 진지하게 카드를 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와 쟈멜의 앞에는 판돈으로 쓰는 자그마한 돌멩이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이겼다!!! 또 제가 이겼어요!!! 히하하하핫!”
‘살햇?!’
쟈멜이 수북한 돌 더미를 자기 쪽으로 끌어가자, 어머니는 잽싸게 손을 뻗어 쟈멜의 손목을 붙잡고 그녀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쟈멜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저 아무것도 안 속였어요!!! 진짜 저 이길 때마다 의심하면 어떻게 해요! 저 진짜 완전 결백하다고요!!!”
어머니는 쟈멜의 손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숨겨 둔 카드를 찾았지만, 아무 카드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쟈멜은 숨겨 둔 카드를 벌써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 버렸으니까.
저건 마냥 쟈멜만을 탓할 수도 없는 게, 어머니도 쟈멜의 몸을 수색하는 척하면서 몰래 카드 한 장을 빼돌리는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거짓말쟁이가 둘.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에 가까운 카드놀이였지만, 원래는 무척 데면데면했던 둘이었기에 나는 둘이서 잘 노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기뻤다.
아무래도 쟈멜이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강물로 뛰어든 그때부터, 어머니께선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으셨던 듯했다.
“흠, 저쪽에 물어봐야 하…”
“아, 잠시 딴생각을 좀 했습니다. 뭐가 궁금하십니까?”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줬으면 한다. 대체 너는 누구인지, 그리고 여기는 어디인지. 나는 대체 왜 여기에 실려 있는지.”
역시 아테르의 말대로 최근 기억이 손상당했나. 카디쇼는 나와 인사를 나눴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했다.
“제 이름은 마르낙입니다. 보시다시피 매일의 삶을 수호하는 유지(維持)의 여신님을 모시고 있는 몸이지요. 저기 뒤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는 둘은 제 여행 동료고요. 둘 다 낯을 많이 가리니 저 둘이 혹시 데면데면하게 굴어도 조금 양해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쟈멜은 카디쇼가 사제라서 질색했고, 어머니는 카디쇼한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냥 기회가 날 때 죽여서 신성을 흡수하자고 몇 번 말했을 뿐.
내 소개에 카디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처음 봤을 때처럼 인사를 건네 왔다.
“나는 ‘온기 없는 빛’을 모시는 사제인 카디쇼다. 편하게 카디쇼라 불러도 좋다.”
***
그녀는 자신이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 왔고, 나는 순순히 대충 짠 설정을 그녀에게 들려줬다.
불의의 사고로 갈라진 여행 동료를 찾아 배회하는 숲을 가로지르던 와중, 우연히 숲속에 쓰러져 있던 그녀를 발견했다고.
“나는… 대체 왜 이 숲으로 와서 쓰러져 있던 거지?”
“저야 모릅니다만.”
대화를 나눠본 결과, 카디쇼의 기억은 생각보다 꽤 많이 날아간 상태였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 숲을 찾아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흠… 배회하는 숲이라… 혹시 이곳으로 오면서 저 숲에 대한 소문을 들어 본 적이 있나? 뭐든 좋다.”
나름 자신이 이 숲을 찾아온 이유를 추리해 보려고 하는 듯했지만, 당연히 내가 순순히 대답해 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저는 그저 지나가는 외지인인지라 소문 같은 건 잘 모르겠군요.”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아, 이거 감사 인사가 늦었군. 어찌 됐건 정신을 잃고 있던 나를 멀쩡히 구해 준 은인들인데 말이야.”
그녀는 내가 끄는 수레에 앉아 고개를 꾸벅 숙여 왔다. 그녀가 지극히 정중한 감사의 인사를 하는 와중에도 나는 머리가 조금 복잡했다.
아테르의 말에 따르면 그녀에겐 아주 ‘사소한 부작용’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예를 들어 아주 머리끝까지 열이 받으면 전신의 핏줄이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든지.
그는 이번 일로 그녀가 얻은 재생력과 괴력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부작용이라며 알려 주든 말든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근데 말해 주면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당연히 추궁이 들어올 테니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나.
“사람이 은혜를 입었으면 갚는 것이 도리겠지.”
“예?”
카디쇼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가슴팍을 쿡 찔렀다.
“이래 보여도 나름 재주가 있으니, 헤어진 일행을 찾는 걸 도와주지. 당장 가진 것이 없어 은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아쉽군. 그런데…”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선언한 그녀는 주변을 힐긋 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혹시 내가 정신을 잃고 있던 근처에 내 장비들이 떨어져 있진 않던가?”
“짧은 봉이 하나 있긴 했습니다. 따로 챙겨 놨으니, 나중에 꺼내 드리지요.”
그녀의 갑옷은 내가 아주 못 쓸 정도로 망가뜨려 버린 탓에 멀쩡한 건 그녀의 전용 무기인 봉밖에 없었다. 나는 봉이 주변에 있으면 혹시나 그녀가 깨어나자마자 그걸 들고 날뛸까 봐 수레 밑에 살짝 숨겨 뒀고.
“알겠다.”
카디쇼는 의외로 고분고분한 아이처럼 내가 무어라 말하든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것이 우리가 은인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그녀의 성품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펄리가 말하길, 이 길을 따라 걸으면 가까운 마을까지 대충 삼 일 정도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고 했었다. 마을에 들러서 지도를 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지도가 없다면 대충 여행 물자를 보급한 다음 어머니의 반지가 이끄는 방향에 있는 도시를 향해 계속 걸어가면 되겠지.
계속 걷다 보니, 어느새 해가 천천히 저물어 날이 어둑해져 갔다. 그 와중, 카디쇼가 타고만 가기가 미안하다며 몇 번이고 자기가 수레를 끌겠다고 자청해 왔지만 나는 괜찮다는 말로 거절하곤 묵묵히 수레를 끌었다. 중간중간 카디쇼와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기도 하면서.
대충 야영할 만한 장소에 도착하자, 카디쇼는 얼른 수레에서 내려 우리를 보며 절대 돕지 말고 저쪽에서 편히 쉬라고 당부하곤 분주히 움직여 야영 준비를 해 나갔다.
내가 도와주겠다고 권유를 하자,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이 은혜를 갚는 방법이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게다가 너는 하루 종일 수레도 끌지 않았나. 여기서 또 도움까지 받으면 정말 면목이 없다. 그러니 진짜 부담 갖지 말고 편히 쉬어 줬으면 하는군.”
‘살해살해.’
어머니께선 쟤가 알아서 일하겠다고 하니, 그냥 일하게 내버려 두고 자기랑 같이 카드나 치자고 졸라 오셨다.
뭐, 본인이 하고 싶다는데 더 말리기도 그런가.
“소매에 카드 숨기다 걸리면 벌금 돌멩이 열 개입니다. 엉덩이 밑에 몰래 깔고 앉는 것도 안 되고요.”
‘살햇…?!’
내 지적에 쟈멜이 먹잇감을 발견한 독수리처럼 벌떡 일어나서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역시!!! 왠지 카드가 몇 장 없는 거 같더라니!!! 역시 손장난을 치고 있는 거 맞았잖아요!!! 제가 말하니까 절대 아니라며 우기시더니!!! 완전 비겁…”
“쟈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앗…?!”
그녀는 헤헤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걸리면 벌금 돌멩이 열 개! 저는 참 좋은 규칙인 거 같아요! 그렇죠?”
‘살해살해.’
은근슬쩍 던진 쟈멜의 물음에 어머니도 어색하게 웃으며 참으로 옳은 규칙이라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 둘은 카드 놀이가 물리적으로 서로를 속고 속이는 것이 아니란 걸 알 필요가 있었다.
“대신 속임수 없이 일등 하는 사람에겐 펄리한테 받은 비장의 과자를 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좋아요!”
‘살해!’
***
다음 날 새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살짝 눈을 뜨니, 카디쇼가 주섬주섬 자신의 봉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게 보였다.
슬쩍 몸을 일으키자 나와 눈이 맞은 카디쇼가 부드럽게 웃어 왔다.
“이거 혹시 내가 깨운 건가. 사과하지.”
“아침 수련을 하시려는 겁니까?”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라도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낯설어지게 되거든. 무기를 쥔다는 것이.”
사실, 카디쇼의 동행은 오롯이 내 의사로 이뤄진 일이었다. 쟈멜과 어머니는 질색했지만, 나는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서 간곡히 설득했다. 비장의 간식도 둘에게 뇌물로 쥐여 주면서.
나는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금 어울려 주시겠습니까?”
나는 대련 상대, 그것도 기술적인 면에서 나보다 완성된 대련 상대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카디쇼는 아주 딱 맞는 상대였고.
카디쇼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뜻이 맞는 이와 함께하면 시간도 더욱 잘 가는 법이지. 뜻이 있는 이는 언제나 환영이다.”
***
대련과 수레 끌기를 반복하며 이동하길 이틀. 우리는 마을에 도착했다.
“꺄아아아아아악!!!”
“살려 줘! 살려 줘!!!”
“제, 제발!!! 제발 자비를!!!”
애원과 절규 속에서 불타는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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