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60)
160 화 누린내.
누린내.
“마, 마르낙 사제님!!! 마을이 불타고 있어요!!!”
쟈멜의 말대로 마을은 화마에 휩쓸려 불꽃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그래, 불꽃뿐만이 아니라 피도.
“하하하하하!!! 적당히 반반한 년들은 알아서 챙겨!!! 남자 챙길 놈들은 팔다리 힘줄 끊는 거 잊지 말고!!! 회포는 돌아가서 푼다!!!”
“으하하하하!!! 얼마 만에 약탈이냐!!!”
“그래! 이게 그리웠다고!!!”
“꺄아아아아악!!!”
토막 나 나뒹구는 머리와 팔다리들. 장난스럽게 꿰여 있는 시체들. 날 선 폭력은 아이와 여자, 노인을 가리지 않았다.
마을을 휩쓴 저 불길은 자연이 피워 낸 것이 아니라, 저마다 대충 꿰맨 가죽 가면을 뒤집어쓴 습격자들이 한 짓이었다.
“감히, 감히…”
으득거리는 이 가는 소리. 분노한 카디쇼의 하얀 피부 위로 선명한 핏줄들이 비정상적으로 튀어나와 맥동했다.
당장 저 멀리서 이뤄지는 약탈의 현장보다, 옆에 서 있는 카디쇼가 더 위험했다. 저대로 흥분하다 저번처럼 괴물이 되어 이성을 잃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하아.”
튀어나왔던 핏줄들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두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한 그녀는 숨을 고르고 빠르게 마을 주변을 훑었다. 지형지물의 파악을 끝마친 카디쇼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선홍빛 두 눈엔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미안하지만, 잠깐 다녀오겠다. 이건 내 독단적인 행동이니 억지로 돕지 않아도 좋다. 거기다 너는 이 둘을 지켜야 하지 않나.”
카디쇼는 쟈멜과 어머니를 힐긋 보곤, 지체 없이 자리를 박차고 빠른 속도로 뛰쳐나갔다. 그녀의 손에 들린 은빛 곤봉의 앞뒤로 선명한 주홍빛이 맺혀 날을 형성했다.
어머니는 무심한 눈으로 카디쇼의 등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살해.’
오래 같이 다닐 만한 여자는 아닌 것 같다는 말.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사제인 카디쇼와 같이 다니는 건, 득도 있지만 그만큼 잃는 것도 있었다.
일단, 당장 저 가죽을 뒤집어쓴 습격자들을 죽인 다음에 신성을 수확하는 것부터가 곤란했다. 내 권능도 당연히 사용 못 했고.
그래, 다키아를 찾아갈 때까지 같이 대련해 줄 괜찮은 대련 상대를 하나 구했다고 생각해야지.
“어머니.”
‘살해?’
나는 품속에서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내 어머니의 손에 들려 드렸다. 악마가 건네주고 간 실탄이 든 주머니를.
“숨어 계시다 혹시 누가 이리로 오거든 그냥 쏴 버리십시오. 저도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쟈멜도 어머니를 잘 보필해 주시면 됩니다. 혹시 정말 위험하다 생각이 들거든, 권능을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넵! 부패의 어머니는 제가 꼭 지킬게요!!!! 저 쟈멜만 믿으세요!”
‘살해.’
어머니는 쟈멜의 호언장담에 피식 웃고는 주머니에서 여섯 발의 탄환을 꺼내 학살자에 장전했다. 둘 다 엄청나게 믿음직스럽지는 못했지만, 둘이 같이 있으면 그래도 훨씬 낫겠지.
나는 수레를 길가로 밀어 숨기고 어머니와 쟈멜이 제대로 숨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를 떴다.
카디쇼가 있으니, 어머니를 품 안에 넣고 다닐 수가 없어서 불편한 점도 있네.
허리춤에서 서리강철 검을 꺼내 손에 쥐자, 익숙한 감촉이 날 반겼다.
“죽여라!!! 죽여!!! 와하하하하하!!!”
“그래! 가운데 달린 놈들은 다 죽여!!!”
“이년은 내 거다!!! 건드리는 놈은 아주 불구덩이에 머리통을 쑤셔 넣어 주마!!!”
화마에 휩싸인 마을에 다다르자, 마을은 예상외로 여전히 약탈이 자행되고 있는 그대로였다.
아니, 아예 그런 건 아닌가.
조용히 몸을 숨겨 외곽으로 다가가자, 그을린 시체들 사이로 가죽을 뒤집어쓴 사내들의 시체가 여럿 보였다. 시체들은 단단한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급소가 하나같이 뭉개져 있었다.
나는 그제야 카디쇼가 어째서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은 건지 깨달았다. 그녀는 이 마을을 침범한 이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정면으로 소리를 지르며 쳐들어간다면 당장 이뤄지는 약탈을 잠깐 멈출 수는 있겠지만, 겁에 질린 적들이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면 전부 죽이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지니까.
이제 보니 정신을 차린 카디쇼는 무척이나 껄끄럽고 위험한 존재였다. 나는 좋게좋게 헤어질 때까지 그녀의 심사를 거스르지 않기로 깊게 다짐하고, 뭉개진 시체들의 가죽 가면과 더러운 겉옷을 벗겨 내 옷 위에 챙겨입었다.
그녀가 그녀 나름의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내 나름의 일을 할 생각이었다.
눅눅한 땀내와 비릿한 침 냄새, 가죽 누린내가 진하게 풍겨 오는 가죽 가면은 눈코입 구멍만 대충 뚫어 놓은 조잡한 물건이었다.
전투하는 데 하등 도움이 안 될 물건인데, 이거. 이런 걸 대체 왜 쓰고 다니는 거지.
하긴, 마을 약탈이나 하고 다니는 놈들한테 많은 걸 요구하는 게 무리인가.
완벽하게 위장을 끝낸 나는 짧게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이 모습이면 일렁이는 불길들 사이를 대놓고 돌아다녀도 괜히 말만 섞지 않으면 절대 모르겠지.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날 선 손도끼를 왼손에 쥐고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애처로운 흐느낌이 들려왔다.
“시, 싫어!!! 싫다고!!!”
“시끄러운 년은 딱 질색인데. 너도 저기 있는 애비 애미처럼 되고 싶냐? 응?”
“히끅.”
뻔한 상황. 열린 문 안을 보자, 피 칠갑이 된 집 안에 사지가 이리저리 잘려 나간 시체가 바닥 위를 나뒹굴고 있었다. 가죽 가면은 뒤집어쓴 남자는 주근깨가 가득한 여인을 그대로 어깨에 들쳐메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년은 내가 챙겼으니까, 너는 걍 딴 년을 찾으러 꺼져.”
“흐윽. 흑.”
빠르게 주변을 훑다 내 시선은 바닥에 반 토막 난 채로 죽어 있는 아이의 시체에서 멈췄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웃었다.
“와하하하!”
성큼성큼 걸어간 나는 사내의 툭툭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알지. 알지. 나도 상도덕이란 게 있으니까 말이야! 근데 이 집은 돈 되는 게 좀 있던가? 주변을 뒤져 봤는데, 영 털 만한 게 안 보여서 말이야.”
내 호의적인 태도에 사내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해 왔다.
“없지. 시발. 이 집이고 저 집이고, 내가 간 집마다 다 허탕이더라고. 기껏해야 먹거리 몇 개쯤이 전부고. 두목이 갑자기 대체 왜 이런 마을을 털자고 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니까. 게다가 올 때 무조건 젊은 사람을 한 명씩 챙겨 오라니. 돈 되는 걸 가져가도 모자랄 시간에 말이야. 그런데… 너.”
“왜 무슨 문제 있어?”
잠깐 말을 멈춘 사내는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너도 얼른 하나 챙겨야지. 그렇게 여유 부리다간 다 죽고 네가 챙길 젊은 사람이 하나도 안 남을걸? 그리고 이건 내 할당이니까 넘볼 생각 말…”
파직.
나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벽을 뚫고 은은한 주황빛 날이 튀어나왔다. 빛의 끝은 정확하게 내 앞에 서 있던 사내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검을 뻗어 주황빛 날을 튕겨 냈다.
“꺄악!!!”
“시발! 이건 또 뭐야!!!”
사내는 깜짝 놀라 어깨에 들쳐메고 있던 여인을 놓쳐 버렸다. 여인의 비명과 함께 붉은 머리의 여인이 벽을 부수고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카디쇼에게 잘 들리도록 아주 큰 소리로 대꾸했다.
“도망쳐!!! 도망쳐서 두목한테 알리라고!!! 아무래도 사제 놈이 온 것 같아!!!”
혼비백산한 상태였던 사내는 내 다그침을 듣곤 정신을 차렸다.
“아, 알겠다!!! 죽지 말라고!!!”
사내가 문밖으로 뛰쳐나가자, 카디쇼는 다시 한번 내려치려던 봉을 내리고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나는 가죽 가면을 슬쩍 벗어 보이곤 빙그레 웃었다.
“위장 잠입 중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카디쇼처럼 기척을 숨겨 몰래 잠입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일단, 저는 방금 도망간 친구 뒤를 쫓아 두목을 찾으러 가 보겠습니다. 카디쇼는 보던 일 그대로 계속 보시길.”
“알겠다.”
짧게 고개를 끄덕인 카디쇼는 겁에 질린 채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인을 달래며 무어라 속삭였다. 대충 저 방향으로 잠시 도망쳐 있으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지리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녀를 뒤로한 채, 앞서 달려가는 아까 그 친구의 등 뒤를 쫓았다. 나를 습격자들의 두목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줄 친구의 등을.
“아직 여기까지밖에 못 왔나?”
“허억?!”
내가 불쑥 뒤에서 말을 걸자 사내는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피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사, 사제는…?”
하긴, 이런 종류의 도적들은 순례를 다니는 사제들을 아주 무서워하긴 하지. 그들에겐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존재니까.
“계속 고함을 치면서 여자를 노리고 공격하니까 그 여자를 챙겨서 도망쳤다.”
“오, 오오… 너, 머, 머리가 아주 좋나 봐?”
“이 정도야, 별거 아니지. 일단, 어서 두목한테 사제가 나타났다는 걸 알려야지. 안 그래?”
“마, 맞아!!! 다른 놈들한테 우리가 사제가 나타났다고 말해 봤자, 귓등으로도 안 들어 처먹을 놈들이 태반이니까!!! 사제가 나타났다고 보고하면 두목도 굳이 할당량을 안 채워 온 걸 뭐라 탓하진 않을 거야! 그래!!! 어서 가자!!!”
재빨리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다시 자리를 박차고 불타는 마을을 가로질렀다. 나도 그의 속도에 맞춰 발을 놀렸다.
“허억. 허억.”
열심히 뛰던 그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사내는 발을 놀리며 숨을 골랐다.
“그, 그런데 너는 어째 하나도 안 지친 거 같은데?”
“기분 탓이야.”
“그, 그래? 너 같이 머리가 좋고, 체력도 좋은 놈이 있는 줄 이제야 알았다니.”
“내가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거든.”
살짝 너무 나갔나 싶던 차였지만, 다행히 사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달리느라 흥분한 탓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거기다 내가 그의 목숨을 한 번 구해 주기도 했고.
“하긴, 최근에 있었던 일 때문에 두목이 신입을 많이 받긴 했지. 너도 그중 하난가 보네.”
최근에 있었던 일?
“맞아. 바로 그거야. 너도 답지 않게 똑똑한 거 같은데.”
“흐흐. 그런가? 그나저나 이번 습격 끝나고 나면 같이 한잔하자고. 너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분명 곧 출세할 테니, 미리 내가 술이라도 한잔 살게!”
“좋지.”
어느새 우리는 불타는 마을을 벗어나 숲속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두목 놈은 저 마을 안에 없었나.
가파른 언덕을 조금 더 오르자, 군용 막사 비슷한 것이 보였다. 군용 막사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조잡하고 더러운 물건이었지만.
“허억. 허억.”
나랑 같이 달려온 사내는 언덕을 거슬러 뛰어온 탓에 거의 숨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숨이 잘 안 골라지는지, 사내는 뒤집어쓴 가죽 가면을 벗어 손에 쥐었다.
“하아. 이제야 좀 낫네. 잠깐, 잠깐만 숨을 고르자. 두목은 헐떡이면서 보고하는 거 안 좋아하니까. 그리고 너도 얼른 가면 벗고. 보고할 땐 가면을 벗는 게 원칙이잖아. 아, 이참에 얼굴 까고 인사나 하자고. 얼ㄹ… 컥!”
푹.
“인사는 무슨.”
나는 그대로 사내의 목을 관통했던 검을 빼냈다. 열심히 달려왔던 사내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대충 발로 시체를 밀어 풀숲 더미에 감춰 두려던 그때.
“피 냄새가 난다!!! 누구냐!!!”
막사를 헤치고 거대한 덩치의 수인족이 튀어나왔다. 족히 4미터는 될 법한 사내의 머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거대한 코뿔소의 그것이었다.
“당장 모습을 드러…”
나는 망설임 없이 챙겨 온 손도끼를 코뿔소 수인을 향해 던졌다.
까앙!!!
“거기냐!!! 당장 튀어나와!!!”
덩치에 맞지 않는 날렵함. 코뿔소 수인은 등 뒤에 메고 있던 거대한 배틀 액스를 가볍게 휘둘러 내가 던진 손도끼를 쳐냈다.
쓸모를 다한 가죽 가면을 벗고, 숲을 가로질러 사내의 앞으로 나섰다.
“가면 가죽 좀 좋은 걸로 쓰시지, 가면에서 가죽 누린내가 나는 바람에 쓰고 있는 동안 아주 곤욕이었습니다.”
“너 이 새끼!!! 어디서 온 놈이냐!!! 정체를 밝혀라!!!”
“물어보면 순순히 대답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신 대가리가 짐승의 것이라 그런 겁니까?”
“뭐?”
나는 슬쩍 코를 막는 시늉을 하며 웃었다.
“가죽 누린내가 좀 가신다 했더니, 이제는 코앞에서 짐승 누린내가 나는군요. 지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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