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61)
161 화 코뿔코뿔.
코뿔코뿔.
“짐승 누린내? 크크크. 뭐, 최근엔 자주 안 씻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
예상과는 달리 코뿔소 수인은 내 도발을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렸다. 방금 전까지의 화난 행세는 거짓 위장이었다는 듯이.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는 건가. 흥분을 가장해 숨어 있는 내 위치를 이끌어 냈던 거고. 나는 저 코뿔소 수인에 대한 평가를 조금 높였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상대는 언제나 경계해 마땅하니까.
“그래서 진짜 넌 누구지?”
능청스러운 또 한 번의 질문. 나는 가볍게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고 피식 웃었다.
“은근슬쩍 떠봤자, 대답은 안 해 줄 겁니다.”
“그래?”
코뿔소 수인은 등 뒤로 손을 뻗어 거의 성인 장정 하나만 한 자신의 배틀 액스를 꺼내 들고 다시 질문을 던졌다.
“돈푼 좀 쥐여 주면 알아서 꺼질 텐가?”
“굳이? 얼마를 받든, 그쪽을 죽이고 나면 이곳에 있는 돈은 어차피 다 제 것이 아닙니까?”
“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린 코뿔소 수인은 손에 쥐고 있던 배틀 액스를 마치 풍차처럼 빙빙 돌려 댔다. 무기가 공기를 가르며 위협적인 울음을 토해 냈다.
“네가? 날? 내 코딱지만 한 네놈이 정말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길 수 있을 거 같으니까, 그 세 치 혀를 놀려서 절 회유해 보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큰 덩치에 안 맞게 잔뜩 쫄아 있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하하하! 이거 제 주제를 모르고 끼어드는 무지몽매한 여행자 놈 인생이 안타까워 내 특별히 자비를 베풀려고 했는데, 아주 제 명줄을 스스로 재촉하는구나!!!”
자비? 방금 전까지 보았던 난무하는 비명과 난자당한 시체들, 화마에 휩싸인 마을이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진짜 주제도 모르는 건, 그 입으로 자비를 논하는 당신인 것 같습니다만.”
나는 천천히 자세를 낮췄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살살 긁어내서 정보를 토하게 만들어 낼 생각이었는데, 방금 막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뭐?”
“자주 쓰는 팔이 어느 쪽입니까?”
“그걸 네가 알아서 뭐…”
까앙!!!
선명한 금속음. 나는 질문을 던지고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코뿔소 사내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배틀 액스를 휘둘러 내 공격을 맞받아쳐 왔다. 묵직한 충격이 손끝을 타고 아릿하게 퍼져 나갔다.
역시 저 덩치는 그냥 물살이 아니었다.
“알아서 뭐 하긴요.”
거대한 도끼에 담긴 힘에 맞서지 않는다. 힘의 방향을 따라 가볍게 물러난 다음, 발이 땅에 닿자마자 튕기듯이 옆으로 튕겨 나왔다.
“당연히 그쪽 팔부터 직접 잘라 주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목표는 녀석의 옆구리. 저 덩치로 보건대, 조금 깊게 베인다고 해도 쉽게 죽진 않겠지. 그대로 검을 그었다.
“하하하! 누구 마음대로!!!”
카앙!!!
빙글 회전한 배틀 액스가 또 한 번 내 검을 튕겨 냈다. 아니, 배틀 액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실린 힘 그대로 나를 두 쪽 내기 위해 다가왔다.
여기서 그냥 한 방 맞아 주고, 제대로 한 방 먹일까.
어차피 둘 다 심각한 부상을 입는다면, 결국 내 승리였다. 내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 테니.
하지만 나는 그 무식한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승리를 얻어 봤자, 내가 진짜로 얻는 것이 없을 테니까.
순수한 실력으로 이 수인족을 꺾어 볼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내가 굳이 도살자를 꺼내지 않는 것이었고.
검을 살짝 비틀었다. 맞부딪힌 날이 서로를 긁어 내며 두 무기의 궤도가 비틀렸다. 배틀 액스의 날 끝이 대지를 향해 떨어졌다. 내 검 또한 그 반대 방향으로 치솟아 올랐지만, 힘으로 궤도를 비틀어 냈다.
검날이 수인족의 옆구리를 길게 긁어 냈다. 다만, 손에 걸리는 느낌이 얕았다.
“큭! 이 자식이!!! 감히!!!”
길게 베여 나간 녀석의 가죽 갑옷 틈으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수인족 사내는 위협적인 포효를 내지르며 바닥에 처박힌 배틀 액스를 위로 쳐올렸다.
힘의 우위를 확신한 반격. 녀석은 내가 쳐둔 덫에 걸려들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텅!!!
내리쳐진 검과 도끼가 서로 맞부딪힌다. 맹렬한 충돌의 결과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튕겨난 배틀 액스가 바닥에 처박혔다. 예상치 못한 내 힘에 놀란 코뿔소 사내의 눈이 커졌다.
“무, 무슨 힘이?!”
“그걸 궁금해할 때가 아닐 텐데요.”
빡!!!
내디딘 발을 축으로 시작한 회전. 몸을 타고 흐른 힘이 발끝에서 폭발해 정확하게 코뿔소 수인의 턱을 가격했다.
“컥!!!”
커다란 덩치가 훨훨 날아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배틀 액스를 대충 걷어차고, 코뿔소 사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기절 안 한 거 다 압니다. 목이 두꺼워서 그런지, 쉽게 기절하진 않는군요.”
“칫.”
아마 자신의 생사를 확인하러 내가 다가왔을 때 그라운드 기술이라도 걸어 보려고 한 듯했지만, 내 예민한 오감이 아직 저 사내가 깨어있음을 알려 준 지 오래였다.
짧게 혀를 찬 코뿔소 수인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위기의 상황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내 모습을 천천히 살폈다.
“너 진짜 어디 출신이지? 그 몸에서 대체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 거지? 진짜 흥미롭군.”
저건 일반적인 산적 두목이 가질 태도가 아닌데. 보통 이 정도로 몰리면 생명을 구걸하거나 걸쭉한 욕이라도 지껄이는 놈이 태반인데 말이지.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평범한 산적이 아닌 거 같은데, 어디 소속입니까?”
“뭐라는 거야. 나는 그냥 조금 비범한 도적 두목이라고.”
미묘한 장난기와 여유. 그는 히죽 웃으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주 큰 돈이 될 만한 일이 있는데, 혹시 관심 있나?”
거리를 가늠하며 어느 쪽 팔을 자르면 조금 고분고분해질까 고민하던 차에, 던져 온 질문이 내 손을 막아 세웠다.
일단 조금 더 정보를 긁어모아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 뭡니까?”
“이건 조금 높으신 분이 내려주신 일인데 말이지. 그저 살아 있는 ‘사람’을 조금 모아다 주면 되는 아주 쉬운 일이야. 게다가 값도 섭섭지 않게 쳐준다고. 사람 하나당 무려 금화 두 닢! 심지어 상태가 어떻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어때? 구미가 당기지? 마침 악신의 숭배자들이 날뛰어 주는 통에 저런 돈 안 되는 마을 하나둘쯤은 언제 사라져도 귀족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일하기 딱 최적인 상황이지!”
인신매매였나. 그래서 부하들한테 사람을 하나씩 챙겨 오라고 한 거고.
“그 조금 높으신 분이 대체 누굽니까?”
“그걸 쉽게 알려 줄 순 없지! 아직 우리 사이에는 신뢰 관계란 게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네가 될성부른 떡잎이란 것만 증명하면 그 자리에서 당장 알려 줄게! 어때? 꽤 괜찮지?”
적어도 누구인지 알고는 있다는 거네. 나는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 납치하는 비적질이나 하려고 그렇게 몸을 단련한 겁니까? 한심하기 그지없군요. 너무 한심한 나머지 조금 안타까울 정도입니다.”
코뿔소 사내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내가 던진 말 중 어딘가가 그의 마음 어딘가를 깊숙이 찔러 버린 듯했다.
“이 친구야. 모욕적인 언사는 거기까지만 하는 게 어때?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거든.”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인데, 기분이 나빴다니 이거 아주 기쁘군요. 이 김에 다시 묻죠.”
검을 살짝 들어 올렸다.
“자주 쓰는 팔이 어느 쪽입니까?”
“이 빌어 처먹을 자식이 진짜… 쓴맛을 보여 주지.”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내 눈앞에 서 있던 코뿔소 사내가 눈 깜박할 사이에 거대한 코뿔소 한 마리로 변화를 끝마쳤다. 터져 버린 가죽 갑옷이 바닥 위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뭉개 주마!!!]콰앙!!!
거대한 코뿔소가 자리를 박차고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보통 코뿔소보다 배는 넘게 거대한 덩치가 나를 향해 덮쳐 오자, 박력이 아주 장난 아니었다.
내가 여태 상대해 온 진짜배기 괴물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지만.
퍽.
가죽을 향해 검을 휘둘렀지만, 대체 이놈의 가죽이 얼마나 질긴 건지 잘 베이질 않았다.
[끝이다!!! 애송아!!!]흥분한 코뿔소의 뿔이 그대로 내 몸을 들이받아 왔다. 빠르게 땅을 박찬다. 튀어 오른 무릎을 굽혀 날카로운 뿔을 지지대 삼아 위로 날아올랐다.
[스스로 뜨다니!!! 하하하하!!! 네놈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로군!!!]코뿔소는 콧김을 흥 하고 뿜고서 자리를 박차고 내 추락 지점을 향해 다시금 돌진을 시작했다.
쓸모를 다한 검은 잠깐 버려 둔다. 손에 쥐고 있던 서리강철 검을 놓았다.
[아까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해라!!!]철컥.
오른손의 팔찌가 불어나며 내 손을 뒤덮었다. 검은 건틀릿의 손등에서 날카로운 톱니 날이 튀어나왔다.
“후회는 당신이 할 겁니다.”
왜애애애애애애애앵!!!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도살자가 날 선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그대로 코앞까지 다가온 뿔을 향해 도살자를 휘둘렀다.
이모탈리움 톱날이 짐승의 뿔을 그대로 갈라 버렸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가 묻지 않았습니까? 어느 쪽 팔을 자주 쓰느냐고. 대답을 안 해 주니 어쩔 수 없군요. 두 팔 다 잘라 버리는 수밖에.”
[아아아아아아악!!!]왜애애애애애앵!!!!
짐승의 비명과 도살자의 비명이 서로 교차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녀석의 굵고 두꺼운 두 앞다리를 모두 잘라냈다. 두 다리를 잃은 짐승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꼬라박혔다.
[허흑. 허흑.]간헐적인 숨소리. 거대한 코뿔소의 몸뚱이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이윽고 코뿔소는 보통 체구의 남성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얼굴엔 옅은 회색 가죽들의 흔적이 있어 그가 방금 전까지 날뛰던 코뿔소 수인 본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하으윽.”
그는 양팔이 잘린 채로 바닥에 드러누워 신음을 토해 냈다. 다만, 수인족 자체의 끈질김인 건지, 그게 아니라 본인의 재생력 덕인지는 몰라도 절단면을 따라 흘러내리는 피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죽지는 않겠네. 다소 감정이 실린 공격이어서 혹시나 죽는 건 아닐까 싶었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진작에 어느 쪽 팔을 자주 쓰는지 말해 줬으면 그쪽 팔만 잘랐을 텐데, 얼른 대답하지 그랬습니까.”
“쿨럭! 쿨럭! 닥쳐! 이 빌어먹을 새끼야!!!”
“여유 넘치던 아까의 모습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런데 상처가 빨리 아무는 걸 보니, 제가 얼른 팔을 다시 붙여 주면 두 팔을 다시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도살자의 톱날이 절단면을 아주 짓이겨 놨으니까.
“닥쳐라!!! 내가 그깟 거짓에 속아 넘어갈 줄 아느냐!!!”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나저나 죽기 전에 아주 시원하게 이번 일을 꾸민 배후나 말해 주고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냥 죽여라!!! 당장!!!”
나는 바닥에 떨어진 서리강철 검을 집어 들었다.
“당신을 죽이고 말고는 제가 결정할 사안인데…”
푹.
“크아아아악!!!”
대충 옆구리에 검을 박아 넣고 살짝 비틀자 사내가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이래라저래라 하시니 기분이 조금 나쁘군요.”
“주, 죽이라니까!!! 이 개자식아!!!”
“정말 죽고 싶어서 비는 거 맞습니까? 양팔이 저렇게 두꺼워질 때까지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아깝지 않냐고 묻고 싶군요. 아는 걸 다 말하면 살려 주겠습니다.”
사내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이미 내 양팔이 없어졌는데!!! 살아서 뭐 하겠냐!!! 이 새끼야!!! 죽여!!! 죽이라고!!!”
“편한 죽음은… 너 같은 종자들에겐 너무나 과분한 처사지.”
목소리는 숲속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나무 사이로 붉은 머리 여인, 카디쇼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을 쪽은 다 처리하시고 온 겁니까?”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하나도 남김없이 깡그리 죽였다. 그런데 마을 안에 네가 없어서 조금 찾고 있던 차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더군. 그래서 와 봤다.”
도살자의 소리를 쫓아온 건가.
“이자가 말하길, 조금 높은 분이 살아 있는 사람을 팔면 두당 금화 두 닢을 주기로 약속했다더군요. 게다가 이자는 일개 도적 떼의 두목이라기엔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 마침 그 건에 관해서는 짚이는 게 있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카디쇼는 쓰러진 사내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겠다.”
“퉤! 죽여라!!! 네놈들에게 대답해 줄 건 아무것도 없다!!!”
카디쇼는 가볍게 고개를 젖혀 가래침을 피해 내곤 차갑게 웃었다.
“이 나라의 황제는 어째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모으는 거지? 황제의 거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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