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62)
162 화 부탁.
부탁.
카디쇼의 질문을 들은 수인족 사내가 광소를 터뜨렸다.
“황제? 거미? 하하하하하!!! 아주 망상에 빠져 사는구나!!! 하긴, 어디에나 있는 법이지! 어떤 일이든 거대한 음모론과 엮어 대며 무지몽매한 자들을 꾀어내는 이들이 말이야!!!”
“내 추리가 망상인지, 현실인지는 네놈의 막사를 뒤져 보면 답이 나오겠지.”
“백날 천날 뒤져 봐라!!! 네가 말하는 거미의 문장이란 게 나오나!!! 멍청한 년!!!”
카디쇼는 빛을 머금은 봉을 치켜들다 말고, 고개를 돌려 날 바라보았다.
“죽여도 괜찮겠나? 어차피 황제의 거미들은 어떤 일을 당하든 절대 입을 열지 않는다.”
이번 일의 배후? 숨겨진 뒷사정? 사실, 그냥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다. 북제국의 일은 북제국 사람들이 알아서 해결할 사안이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고맙다.”
카디쇼는 나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눈앞의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외부에서 사용하는 네놈들의 문장이 거미 문양이 아니란 것쯤은 이미 알고 있다.”
“크흐흐흐. 내가 두 팔만 멀쩡했어도 네년을 노리개 삼…”
“내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너같이 위장 신분으로 돌아다니는 거미들은 다들 필요한 순간에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뭔가를 들고 다니더군. 바로 ‘등불 문양’이 새겨진 동전을 말이야. 그렇지 않나?”
동전 이야기가 튀어나오자 사내의 표정이 급변했다. 한 푼의 감정조차 담기지 않은 냉막한 표정으로.
“보아도 눈을 감아라. 들어도 귀를 막아라. 알았더라도 모른척하라. 제국의 대업을 방해하는 자에겐 비극만이…”
퍽.
뭉툭한 빛이 사내의 머리통을 뭉개 버렸다. 카디쇼는 빛의 권능을 거두며 짧게 한숨을 내뱉었다.
“보통 저 말이 다 끝나면 시체가 터지든가, 독연이 피어오르든가 하더군. 그래서 귀찮은 일이 생기기 전에 죽였다.”
“잘하셨습니다.”
그녀는 무척이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사내의 몸을 이리저리 뒤져 나갔다.
“이자가 저쪽 막사에서 뛰쳐나왔나?”
“예.”
“몸에 지니고 있지 않으면, 아마도 저쪽 막사에 있겠군.”
“말씀하신 동전 말입니까?”
“그렇다. 일단 여긴 없군. 막사를 뒤져 봐야겠다. 조금 도와주겠나?”
어머니와 쟈멜 쪽이 살짝 걱정됐지만, 총성이 들리거나 또 다른 신성이 느껴지는 일이 없었기에 별일이 없을 게 분명했다.
나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오른편부터 수색하겠습니다.”
“그럼 내가 반대편을 맡지.”
코뿔소 수인의 막사를 이 잡듯이 뒤지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그마한 금속함 안에 숨겨 둔 동전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 등불 문양이 새겨진 자그마한 동전 하나를.
“역시. 한번 넘겨짚어 봤는데 맞았군.”
“예? 확실해서 이야기한 게 아니었습니까?”
카디쇼는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의 거미들은 제국 각계각층으로 워낙 은밀하게 숨어들어 있는 탓에 한 명 한 명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 동전 이야기도 저번에 잡아냈던 황제의 거미가 가지고 있던 물건 중 가장 가능성 높은 하나를 댔을 뿐이었지. 어떻게 잘 들어맞아서 다행이군.”
슬쩍 떠봤는데, 제대로 얻어걸린 거라 이건가. 뭐, 카디쇼는 카디쇼 나름대로 여러 추리를 한 끝에 떠본 거겠지만.
“이건 내가 챙겨도 되겠나?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봤자, 문제밖에 안 생길 물건이다.”
당연히 나는 저런 문제 덩어리 동전 같은 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얼마든지 가지셔도 됩니다.”
동전을 자신의 주머니에 챙긴 그녀는 막사를 더 수색해 보곤 조금 아쉬운 눈빛으로 잡동사니들을 바라보았다.
“아쉽게도 중요 서찰이나 문서들은 이미 다 태워 버린 듯하군. 하긴, 그런 걸 남겨 둘 정도로 어수룩할 리가 없긴 하지. 슬슬 돌아가는 게 좋을 거 같군. 어떤가?”
“좋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이번 일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카디쇼는 날 찬찬히 훑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주는 거야 별 상관없지만… 한 가지 당부해 주고 싶은 게 있군.”
“뭡니까?”
“많이 아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특히나 너처럼 제국을 스쳐 가는 여행자는. 지금 들은 이야기를 어디 가서 실수로라도 떠벌리다간, 거미들이 네 일행에게 해를 끼칠 게 분명하다. 그래도 알고 싶나?”
이 세계에서 뭔가를 안다는 건, 일단 힘이었다. 그게 당장 쓸모가 없는 정보라도.
“제 입은 나름 무거운 편입니다. 잘 열리지 않지요.”
“일단 걸으면서 이야기하지. 사실, 그렇게 긴 이야기는 아니니까.”
말을 끝마친 카디쇼가 먼저 걸어 나가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방금 죽은 저 황제의 거미는 최소 손가락 세 개는 될법한 인재였지만, 아쉽게도 카디쇼의 앞이라 신성을 수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자그마한 미련을 담아 슬쩍 뒤를 돌아보자, 카디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정보가 한정적인 탓에 내 추측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는 걸 미리 알려 주고 싶군.”
“괜찮습니다.”
카디쇼는 짧게 목을 고르곤 다시 입을 열었다.
“의심의 시작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실종 사건들이었다. 당연히 처음엔 악신의 숭배자들이 벌인 일인 줄 알았었지.”
사실, 그거 맞는데. 북제국의 황제가 리베라티오의 숨은 후원자인 만큼 이런 실종 사건들이 그들과 연관이 없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조금 더 과감하고 비약적인 추측을 해 보자면 아마 끌려간 사람들을 이용해서 ‘신의 그릇’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고.
하지만 이 이야기는 카디쇼에게 말할 수도, 말해서도 안 되는 정보였다. 내가 이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부터 설명하기가 무척이나 난감했으니까.
“하지만 매 사건들을 파고들어 갈수록 묘한 사실들을 깨달았다. 기이하게도 대부분의 실종 사건들. 아니, 그 어떤 실종 사건들을 수색하는 와중에도 자그마한 악신의 신성도 느낄 수 없었지. 게다가 실종된 사람들은 정말 완벽하고 깔끔하게 사라진 뒤였고.”
카디쇼의 목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음울함을 담고서.
“하지만 오히려 이 정도로 깔끔하게 일 처리를 한 탓에 내 의심의 방향은 악신의 숭배자에서 이 나라의 권력자들에게로 바뀌었다. 이런 일 처리는 이 나라에 아무런 기반이 없는 존재가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봉을 허리춤에 매고 나를 바라보았다. 붉은 두 눈이 나를 마주했다.
“시야를 넓히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너, 이 나라에 들어와서 말살성전단 소속임을 자처한 자들을 본 적이 있나?”
그러고 보니 북부왕국에선 가끔이라도 보이던 그들이 북제국으로 넘어온 뒤로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없…군요.”
“말살성전단은 이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황제는 성직자들이 모여 구성한 무력집단의 존재를 배척하고, 스스로를 말살성전단이라 칭하며 활동하는 이들은 모조리 국외로 추방하겠노라고 선포했다. 북제국은 악신의 숭배자들 따윈 자력으로 토벌할 수 있다 장담하면서 말이지.”
그런 이유였나.
“그래, 황제는 악신의 숭배자들로 제국 내 치안 상태가 어지러운 지금, 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이용해 뭔가를 벌이려 하고 있다. 그것도 무척이나 사악하고 삿된 무언가를. 당연히 황제가 일을 벌인다면, 그 자리엔 그의 거미들이 실을 자아내고 있을 게 분명했기에 나는 실종 사건이 벌어지는 곳마다 가서 거미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생체 실험에 대한 정보를… 큭…”
휘청이는 몸. 카디쇼는 말을 하다말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내가 재빨리 그녀를 부축하자 카디쇼는 무척이나 음울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부축해 줘서 고맙다. 사실… 네게만 고백해 둘 게 있다. 너 정도 되는 이는 흔치 않으니까. 지난 며칠간의 모습과 이번 일로 네가 황제의 거미가 아니란 것도 확실해졌기도 하고.”
고백? 대체 뭘?
그녀는 몇 번이나 말을 삼키다, 힘겹게 본심을 토해 냈다.
“사실… 나는 이미 황제의 거미들에게 무언가를 당한 뒤일지도 모른다. 너에게 구해진 뒤로 최근의 기억이 뒤죽박죽인 데다, 특히나 이 몸.”
카디쇼는 자신의 하얀 손을 울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몸 상태가 달라졌다. 내 몸이 기억보다 훨씬 강하고 빨라진 데다, 그 부작용인지는 모르나 쉽게 흥분하고, 감정이 잘 통제되지 않는다. 흐릿한 기억에 의하면 나는… 나는 분명 실종자들에게 이뤄지는 생체 실험의 현장을 찾아내려 어딘가를 수색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에게 당했지.”
아, 기억이 아주 날아간 게 아니었나. 카디쇼는 하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래, 상대가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으나. 아주 처참하고 처절하게 패배했다는 것만은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니 내 몸은 어느새 제 상태로 돌아와 있더군. 분명 죽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는데 말이지. 지난 며칠간 고민해 본 결과, 나는 마침내 답을 찾아냈다.”
카디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 선언했다.
“나는 황제의 부하들에게 한 번 붙잡혀서 신체를 개조당한 게 분명하다. 아마 지금 날 풀어 둔 건 자신들의 실험 결과를 시험해 보고 있는 것이겠지. 그래, 언제 어디서 날 개조한 황제의 거미가 나타나 기이한 수단으로 이 몸을 조종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이 붉은 머리 사제. 뭔가 대차게 착각하고 있었다.
그 몸은 황제랑 전혀 상관없는 아테르가 개조한 거고, 정작 본인도 당신을 조종할 수단이 없어서 당신이 날뛸 때 유적에만 숨어 있었노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이건 아까 황제에 대한 정보와 같이 그녀에게 쉽게 말해 줄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해 주는 순간, 그녀의 몸을 개조한 이들과 한통속이었고, 여태까지 연기를 하며 그녀를 속여 왔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니까.
“아직까지 안 나타난 걸 보면, 혹시 정신을 잃고 있던 사이에 자력으로 탈출한 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비겁하지만, 이 정도 대답이 지금의 최선이었다.
“너무나 낙관적인 추측이군. 하지만 나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게 옳다고 본다. 아, 혹시 내 기분을 달래 주려고 그런 거라면 고맙다고 해 두지.”
카디쇼는 내 품에서 벗어나 허리를 꼿꼿이 폈다.
“며칠간 너와 대련하면서 느꼈다. 너라면. 지금 육체가 강화된 내가 혹시나 조종당하더라도 언제든 내 목숨을 끊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약자들을 위해 선뜻 나서는 너는 내가 이 부탁을 꺼낸다면 도저히 거절할 수 없겠지. 이런 나를 얼마든지 비겁하다 말해도 좋다. 지금부터 나는 네게 무척이나 무거운 부탁을 하나 할 생각이다.”
붉은 두 눈이 선명한 신념을 담고 일렁였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해… 무고한 이들에게 해를 끼치려 하거든, 네 손으로 직접 이 목숨을 끊어 줬으면 한다. 일부 성직자들마저 신을 등지고 황제의 거미에게 가담하는 지금.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 중엔 나를 감당할 실력을 가진 이가 너밖에 없다.”
“뭐, 좋습니다.”
나는 흔쾌히 대답했다. 어차피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이렇게나마 안심을 시켜 줘서 다 알면서 카디쇼한테 거짓말을 하는 미묘한 죄책감을 덜어 내고 싶었다.
무겁게 가라앉았던 카디쇼의 붉은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고맙다. 한동안 잘 부탁하지.”
***
수레를 숨겨 뒀던 장소로 돌아오니, 빈 수레만이 나와 카디쇼를 반겼다.
쟈멜과 어머니가 사라져서 당황하기도 잠시, 뽀작거리는 과자 먹는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앗! 마르낙 사제님이다!!! 언제 오셨어요?”
고개를 들자 굵은 나뭇가지 위에 걸터앉아 과자를 먹는 둘이 눈에 들어왔다.
“거긴 왜 올라가 있는 겁니까?”
‘살해살해.’
어머니는 원래 불구경이랑 싸움 구경이 제일 재밌는데, 하물며 불난 데서 싸우는 걸 어떻게 구경 안 할 수 있겠냐며 방긋방긋 웃었다.
“하아. 어디 잡혀가신 줄 알고 깜짝 놀랐잖습니까.”
‘살해!’
받아 달라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높은 나뭇가지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나는 재빨리 손을 뻗어 떨어지는 어머니를 품 안에 받아들었다.
“갑자기 뛰어내리시면 어떻게 합니까. 다치시면 어쩌려고요.”
안겨 든 어머니는 내 품에 얼굴을 비비적대는 거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젠 말도 돌리고, 이거 날이 갈수록 조금씩 영악해지시는 거 같은데.
어머니를 바닥에 내려두자, 가지 위에 서서 입술을 오물대고 있는 쟈멜이 보였다. 그녀의 두 눈에 담긴 건 명백한 부러움이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팔을 벌렸다.
“뛰실 거면 얼른 뛰시죠. 받아드리겠습니다.”
“네, 넵!!!”
폴짝 뛰어내린 쟈멜을 받아들자, 그녀가 내 품에서 배시시 웃음을 터뜨렸다. 쟈멜까지 바닥에 내려주자, 어머니가 쟈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쟈멜은 그제야 뭔가를 기억해 냈다는 듯이 카디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기요…”
우리를 흐뭇한 눈을 바라보고 있던 카디쇼는 쟈멜의 부름에 사람 좋게 웃었다.
“왜 그러지?”
“저기 위에서 다 봤는데요… 혹시 암살 훈련도 따로 받은 적이 있으세요…? 그,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한 번도 안 들키고 모조리 슥슥 처리하길래요!!!”
카디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입과 요인 암살은 내 주특기 중 하나다. 아무래도 그편이 악한 이를 조용하고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 않나.”
“힉!”
쟈멜에게 물어보라 지시한 어머니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선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겨 왔다.
‘살해살해.’
자기가 다 봤는데, 저거 아주 위험한 여자니까 얼른 죽이거나 떼어 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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