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63)
163 화 전문가.
전문가.
어머니가 타인을 경계하고 치워 버리시려는 거야, 늘 하시던 일이고 일일 행사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보단, 적당히 내가 알아서 걸러 듣는 것이 옳겠지.
나는 어머니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드리고 수풀 속에 엎어 놓았던 수레를 다시 반듯하게 세웠다. 내가 수레를 세우자 어머니와 쟈멜이 잽싸게 내려놓았던 짐들을 수레 위로 던지곤 올라타, 짐 속에 숨겨 둔 카드 뭉치를 찾아 주섬주섬 짐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카디쇼도 얼른 올라타시죠.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옆에서 걷겠다.”
“속임수 치다 걸리면 딱밤 맞기예요!”
‘살해!’
카디쇼는 널찍한 수레 위에 앉아 어느새 카드놀이를 시작한 둘을 보곤 쓰게 웃었다.
“앉아 가면 분명 편하겠다만, 아무래도 구해 낸 생존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는 힘들어 보이는군.”
모양새가 안 난다 이건가. 확실히 그녀의 말이 맞았다. 마을의 구원자가 흔한 수레 위에 앉아서 자신들을 찾아온다면 나라고 해도 조금 깨겠지. 살아남은 이들은 다들 극한의 상황을 겪은 탓에 무척 혼란스러울 테니 어느 정도 무게를 잡고서 신뢰를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럼 일단 가 보도록 하죠. 생존자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따라와라. 일단 모여 두라고 한 장소가 있다.”
***
곡소리와 눈물. 반쯤 잿더미가 된 마을의 광장에 살아남은 이들이 여기저기 앉아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대부분 젊거나 어린 여자였다. 남자들도 몇몇 보였으나, 사지가 성한 남자는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돌돌거리는 수레바퀴 소리가 울려 퍼지자, 생존자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꽂혔다. 카디쇼는 성큼성큼 걸어 광장 한가운데로 가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금속 봉을 치켜들었다. 밝은 주홍빛이 광장을 비추며 환히 빛났다.
“들어라! 너희를 습격한 도적 떼는 이 내가 직접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였다. 일단 사지가 멀쩡한 자들은 이곳으로 모여라!”
그녀의 외침을 들은 멀쩡한 이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서더니 카디쇼의 외침을 따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앞에 모여들었다. 카디쇼는 모여든 마을 사람들을 한 번 훑어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무척이나 힘든 상황인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삶이란, 무슨 일을 겪든 계속 살아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내일을 준비해야겠지! 거기 너부터 너까지. 너희는 시체들을 내가 지정한 곳에 모아라! 나머지 인원들은 마을을 수색해 남은 물자들을 모두 이곳, 광장으로 가져와라!”
선홍빛 붉은 눈 위로 주홍빛 정광이 환히 타올랐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려온 사자와도 같은 그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깊게 부복하며 카디쇼의 말을 경청했다.
“한동안 모든 물자는 마을이 공동으로 관리한다! 모두가 살아남기를 원하지 않고 제 잇속을 챙기고 싶은 자는 지금 당장 뛰어나와 내 말에 반박해 보라!!!”
서슬 퍼런 한마디. 당연히 그 누구도 카디쇼의 앞에서 무엇이 자신의 것인지 내세우지 못했다. 당장 저 모습이 아니더라도, 카디쇼는 홀로 이 마을에 쳐들어온 도적들을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도살해 버린 강자였기에.
“그럼 어서 움직여라!!! 그리고 도적들 시체를 뒤져서 나오는 것 또한 마을의 소유이니, 감히 빼돌릴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을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져 카디쇼가 명한 대로 움직여 나갔다. 카디쇼는 몸에 두른 빛을 거두곤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사람들을 지휘하는 게 무척 익숙해 보이시는군요.”
“습격당한 마을을 구한 게 한두 번은 아니어서 말이지. 그리고 이런 혼란한 상황일수록, 조금은 강하게 이끄는 이가 필요한 법이다. 잠깐 손을 좀 빌려주겠나?”
“예?”
“시체들을 태울 구덩이가 필요하다. 내일 우리가 이 마을을 떠나려면 오늘은 조금 바삐 움직일 필요가 있다. 발목 잡히기 전에 말이지.”
‘살해!!!’
시체 태울 구멍은 네가 혼자서 파라는 따끔한 지적. 물론, 카디쇼에겐 닿지 못하는 외침이었다. 카디쇼도 나름 생각이 있어 보이니, 도와주는 편이 낫겠지. 어차피 딱히 할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맙다. 봐 둔 장소가 있으니, 일단 조금 따라와 주겠나.”
“예.”
수레를 돌돌 끌며 그녀의 뒤를 쫓았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자 나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저는 카디쇼가 며칠은 남아서 도와주자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발목 잡히는 법이지. 나는 대부분 약자의 편에 서긴 하지만, 약자라고 해서 항상 선한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약자들은 선해 보일 수밖에 없는 선택지를 강요당하고 있기에 그렇게 보일 뿐이지. 실상을 들여다보면 사람이란 원래 서로 걸치고 있는 것이 다를 뿐, 그 내면은 대개 엇비슷하기 마련이다.”
피식 웃은 카디쇼는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주머니 몇 개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이건 또 뭡니까?”
“도적놈들의 몸을 뒤져서 챙긴 돈 중 반이다. 네 몫으로 따로 챙겨 뒀다.”
하나하나 죽이면서 그새 이런 것까지 빼돌렸다고?
이제 보니 카디쇼는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전문적인 사람이었다. 사제로서든, 구원자로서든.
“감사합니다.”
주는 돈은 거절하지 않는 게 옳은 법이지. 나는 냉큼 주머니를 챙겨서 쟈멜과 어머니에게 건넸다. 어머니와 쟈멜은 내게서 주머니를 받아들자마자 주머니를 열고 안에 든 돈을 분류하며 세어 나갔다.
“역시 금화는 없네요!”
‘살해살해.’
카디쇼는 돈을 세는 둘을 보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같이 구덩이 하나 정도는 파 줄 수 있지 않겠나?”
잽싸게 돈 분류를 끝낸 쟈멜이 은화와 동화를 주머니별로 따로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긴 해요!”
어머니는 못마땅한 눈으로 카디쇼를 힐끔 쏘아보곤 말없이 주머니에 동전들을 나눠 담았다. 그렇게 어머니의 조용한 승낙 아래, 나는 카디쇼와 함께 열심히 구덩이를 파냈다.
우리가 구덩이를 파내는 와중,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열심히 시체를 날라 구덩이 옆에 쌓아 나갔다. 도적들의 시체는 반쯤 벌거숭이가 되어 온 것이, 카디쇼가 굳이 말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이 알아서 잘 챙겼을 성싶었다.
솔직히 이거 다 신성으로 거두면 이 구덩이도 팔 필요가 없는데 말이지.
물론, 입으로 꺼내진 못했지만.
구덩이를 다 파고 나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시체들을 차례차례 구덩이 안으로 던져 넣었다. 마침내 지루한 작업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이 가져온 기름과 장작을 시체들 위로 꼼꼼히 뿌렸다.
마을 사람 중 몇은 시체에 붓는 기름을 아까워했지만, 카디쇼는 단호하게 시체들을 모조리 태워 버릴 것을 강권했다.
“시체가 썩어 들어가면 온갖 병마가 창궐할지도 모른다. 기름 몇 방울이 네 이웃의 건강보다 그리 중한가?”
당연히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물러났다.
“이제 마지막이니, 떠난 이들을 기리며 묵념해도 좋다.”
횃불을 치켜든 그녀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눈을 감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희미한 흐느낌 소리가 구덩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카디쇼는 구덩이를 향해 두 눈을 감고 짧게 묵념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짧게 묵념했다.
“이제 태우겠다. 모두 마을로 돌아가서 물자를 정리해라. 시체가 타면서 나오는 연기는 몸에 좋지 않다.”
그녀의 손을 떠난 횃불이 장작 위에 달라붙자, 불길이 빠르게 퍼져 나가며 시체들이 불타올랐다.
“우리도 가지. 연기가 쓰다.”
“그러죠.”
***
“못 가져간다!!! 내 재산은 절대 못 가져간다고!!!”
“하지만… 사제님이…”
광장으로 돌아오자, 한 중년 여성이 목청을 높여 마을 사람들을 향해 삿대질하고 있었다.
“그 사제가 뭐라 했든!!! 나는 내 재산을 여기에 내놓을 생각 따윈 어림 반푼 어치도 없다!!! 뭘 믿고 내 재산을 모조리 여기다 내놓는단 말이냐!!!”
“오, 옳소!!! 누가 빼돌려서 자기 집 곳간을 채울지 어떻게 안단 말이오!!!”
“마, 맞아!!!”
중년 여인의 뒤로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녀의 목소리에 힘을 더해 주고 있었고. 게다가 그들은 아까 못 본 얼굴이었다. 입고 있는 옷도 아까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에 비해 확연히 깔끔한 상태였고.
“사, 사제님이다!”
“사제가 왔다고?”
그들은 카디쇼의 등장을 확인하자, 대번에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그 광경을 본 카디쇼의 얼굴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듯이.
모여있던 마을 사람 중 하나가 우리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사, 사제님…”
이어진 설명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저 깔끔한 복장의 이들은 카디쇼가 빠르게 도적들을 정리한 탓에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이들이었다. 아까 광장에 저들이 없었던 건, 집 안에 숨어 있느라 사람들이 모이는 줄 몰랐던 탓이었고.
그리고 저기서 가장 기세등등하게 소리치고 있는 깐깐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 바로 촌장의 부인이었다. 촌장 본인은 안타깝게도 심하게 다쳐서 침상에 누워 있었고.
잠깐 목소리를 낮췄던 촌장 부인은 입술을 꾹 깨물고는 성큼성큼 걸어 카디쇼를 향해 다가왔다. 뒤에 자신의 무리를 대동하고서.
그녀는 아까 마을 사람들을 타박할 때와 달리 조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사제님. 사제님께서 저희들의 재산을 모조리 가져오라 하셨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입니까?”
카디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내가 그리하라 했다.”
“하, 하지만… 그건 부당합니다!!! 제 재산은 제 남편과 제가 밤낮으로 땀 흘려 가며 일구어 낸 것입니다!!! 어떻게 그걸 전부 내놓으라 하십니까!!!”
“마, 맞습니다!”
“저희의 재산을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제발!!”
촌장 부인과 그들 뒤의 사람들은 마치 둥지의 어린 새들처럼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지저귀었다. 카디쇼는 이런 상황쯤이야 익숙하다는 듯이 그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스스로 일궈 낸 재산은 중한 것이지. 그런데 너희는 너희의 이웃들이 겪고 있는 비극을 외면할 셈인가?”
그녀는 잠깐 말을 끊고 그들이 자신에게 집중하길 기다렸다.
“네 이웃이 겪은 비극은 언제라도 너희에게 닥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지금 너희가 한 번 손을 내밀면, 혹시 아는가? 언젠가 너희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비극이 찾아왔을 때, 이웃들이 네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너와 일면식도 없는 방랑자들도 아니지 않은가. 저들은 여태 너와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이웃들이다. 저들은 절대 네 선행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부탁하지. 이웃들을 위해 재산을 나눠 주어라.”
잠깐 침묵했던 촌장 부인이 짧게 심호흡하고 카디쇼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아니, 여태 같이 지내 왔기에 더 잘 압니다! 저기 있는 드네나, 아델라, 젠은 절대 은혜를 기억하고 갚을 사람들이 아니라고요! 게다가 저 또한 비극을 겪었습니다! 제 남편이 도적들한테 불구가 된 지금. 재산이 없으면 저는 남편을 먹여 살릴 수가 없습니다!”
카디쇼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다만…”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중년 여인의 귓가에 대고 자그맣게 속삭였다. 내 예민한 청각은 그녀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잡아 냈다.
“네가 이토록 뻔뻔한 주장을 모두의 앞에서 한 이상, 가까운 밤에 네 이웃이 오늘 주운 도적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네 집을 찾아갈지도 모르겠군.”
슬쩍 물러난 카디쇼가 촌장 부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나는 네가 스스로 부른 그 밤이 찾아올 때, 나와 같은 이가 오늘처럼 그대와 그대의 남편을 구하길 진심으로 기도해 주겠다.”
뻣뻣하던 중년 여인의 고개가 꺾여 떨어졌다. 고개처럼 그녀의 고집도 함께 꺾였고.
“그럼… 조금만… 조금만이라도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카디쇼는 싱긋 웃었다.
“잘 생각했다. 네 자발적인 선행에 이웃들이 분명 기뻐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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