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68)
168 화 추리.
추리.
누군가를 쫓는 데 재주가 있으시다고?
나는 스승님의 말을 듣자마자, 선과 선이 이어져 간신히 형상을 유지하고 있던 그림 한 장이 떠올랐다. 스승님이 내 얼굴과 똑같이 그렸다고 주장하던 바로 그 그림이.
진짜 추적하는 데 재주가 있으신 게 맞는 건가…?
나는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의문을 뒤로하고 살인 현장을 살폈다. 스승님이 아무것도 못 건진다면, 나라도 이곳에서 무언가를 건져 내야 했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 과학 수사가 이뤄질 리도 없으니 조금 만져 봐도 괜찮겠지.
내가 우선 한 건, 가까운 곳에 있던 비서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를 슬쩍 들어서 잘린 단면을 관찰했다.
비서는 내 선입견과 달리 털이 수북한 중년의 남성이었는데, 잘려 나간 목의 단면이 무척이나 깨끗했다. 마치 예리한 무언가로 깔끔하게 베어 낸 것처럼.
그런데 목이 여기 있으면 몸은 어디에 있는 거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주변을 슥 둘러보았지만, 목이 떨어져 나간 시체는 어디에도 없었다. 스승님께선 무척 진지한 눈으로 지부장의 책상을 뒤지고 계시기에 말을 걸기가 조금 애매했다.
“지젤.”
“응? 왜?”
내 부름에 지젤은 비서의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던 서류들을 꼼꼼히 읽다 말고 고개를 살짝 들어 대꾸해왔다.
“왜 부른 건데?”
“이 머리들…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죽인 다음에 머리만 가져다 놓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까?”
그녀는 내 말에 대꾸를 해 주는 와중에도 빠르게 서류들의 글자를 훑어 나갔다.
“대체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제국 마법사 협회의 서류들을 훑어보겠어. 애초에 난 시체 조각으로 적을 추적하는 걸 배운 적이 없거든.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거지. 혹시 모르잖아? 여기서 꽤 쓸 만한 정보를 건질 수 있을지도?”
나는 지부장실을 뒤지는 스승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비서의 책상을 위주로 꼼꼼히 주변을 뒤졌지만, 솔직히 별다른 단서를 얻지 못했다.
하긴, 이 정도로 대범하게 머리를 올려둘 정도면 뒤처리 정도야 이미 깔끔하게 해 놓은 게 당연한가.
“뭐 좀 건진 게 있습니까?”
내 질문에 지젤의 이마가 살짝 찡그려졌다.
“아니, 무슨 여기 있는 종이 쪼가리들 열 중 아홉이 전부 벌점하고 관련된 문서야. 여기 봐봐. 이걸 반성문이라고 적어 낸 걸 보니 나까지 기가 차네.”
그녀가 내민 커다란 흰 종이 위에는 괴발개발 글씨로 ‘앞으로 사고 안 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얘네 진짜 대체 어떻게 굴러가고 있던 거지? 믿을 수가 없네.”
지젤은 한바탕 푸념을 토해 냈음에도 서류들을 넘기는 손을 절대 쉬지 않았다. 무언가라도 긁어내 보려는 듯이.
그 모습을 구경하다 고개를 슬쩍 돌리자 방금 전까지 지부장의 책상을 뒤지고 있던 스승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음?”
열린 문턱을 넘어 지부장실로 들어서자 나는 곧 스승님이 어디로 사라지신 건지 깨달을 수 있었다. 깔끔하게 반 토막 난 책장 너머로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갈 수 있을 복도가 보였다.
그런데 대체 어느 틈에 베어 내신 거지?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스승님?”
“왜 부르니? 연아?”
내가 이름을 부르자, 복도 옆에 뚫린 구멍에서 스승님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대답해 오셨다.
“이건 대체 뭡니까…?”
“바닥에 남겨진 흔적을 보니, 누군가 책장 안으로 사라졌더구나. 그래서 한번 잘라 보았단다. 잠깐 훑어보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렴.”
“알겠습니다.”
그럼 내가 지부장의 책상을 살펴볼까. 딱히 뭔가를 건질 것 같지는 않지만.
지부장의 책상을 꼼꼼히 살펴본 나는 곧 자그마한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서랍들마다 차 있는 쓰레기와 먹다 남은 간식 부스러기. 구겨진 종잇조각들. 온갖 서류들로 가득했던 비서의 책상과 달리 마법사 협회 지부장의 책상은 그냥 쓰레기통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즉, 이건 절대 일을 하는 사람의 책상이 아니었다.
비서의 책상보다 더 건질 게 없는 책상을 뒤로하고, 나는 깔끔하게 잘린 지부장의 목을 살폈다. 절단면을 보고 내가 알아낸 건, 아마도 비서의 목을 자른 자와 지부장의 목을 잘라낸 자가 동일인물일 거라는 것뿐이었다. 덤으로 지부장은 젊은 여자 마법사였다는 것도.
“어? 뭐야? 비밀 통로가 있었네?”
“서류는 다 보셨습니까?”
지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충. 이번 일과 관련된 건 딱히 없긴 했지만. 나름 쓸 만한 정보를 구하긴 했어.”
“무슨 정보입니까?”
지젤은 스승님이 들어간 비밀 통로를 힐끔 보더니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여 왔다.
“오늘 밤에 습격하기로 한 창고 있잖아. 거기 교대 시간을 확인해 뒀어. 왠지 마법사 협회에 의뢰를 넣어 놨을 거 같길래 꼼꼼히 살폈더니 진짜 의뢰서가 있더라고.”
“습격, 그거 오늘 하기로 이미 결정 난 겁니까?”
“내일로 미뤄도 딱히 상관 없긴 한데… 이 도시에서 최대한 빨리 뜨는 편이 좋잖아. 너도 알고 있겠지만, 우리만 성물들을 쫓는 게 아니라고. 그러니 행동은 빠릿빠릿할수록 좋지 않겠어?”
지젤의 말이 맞았다. 리베라티오가 눈에 불을 켜고 어머니의 성물을 쫓고 있으니,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그런 것치곤 꽤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고 있긴 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군요. 그럼 오늘 밤, 저랑 지젤 단둘이서만 가는 겁니까?”
“네가 더 데리고 가고 싶으면 데리고 가도 상관없긴 한데. 굳이? 잠깐 가서 성물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나오면 되는 거니까 말이야. 왜? 누구 더 데리고 갈 사람 있어?”
그럼 어머니만 주머니 속에 챙겨서 잠깐 다녀오면 되겠네.
“아뇨. 없습니다.”
“그래. 그럼 오늘 밤에 하기로 한 거다? 잠깐 비켜 봐. 마지막으로 하나만 해 보자.”
“뭘 말입니까?”
지젤은 피식 웃곤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런 거.”
새카만 그림자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춤을 췄다. 그림자들의 경계가 서로 갈라지며 마치 연체동물의 촉수처럼 방 안, 이곳저곳을 핥듯이 훑어 나갔다.
“내가 파괴력 측면에선 밀려도, 응용력 하나는 자신 있거든. 혹시 저 비밀 통로 말고 숨겨진 공간이 또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잠깐의 일렁임이 끝나자, 지젤이 내 옷깃을 꾹꾹 잡아당기며 지부장 책상의 서랍 하나를 가리켰다.
“이것 좀 뜯어줘 봐. 이걸 직접 뜯어 내기엔 내가 손아귀 힘이 그리 안 세서.”
“예.”
우드득.
내가 그녀가 가리킨 서랍을 잡아서 뜯어내자, 지젤은 잽싸게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뒤적거리더니 자그마한 메모장 하나를 잡아 꺼냈다.
“이건 뭡니까?”
“그건 이제부터 확인해 봐야지. 나는 그냥 책상에 숨겨진 공간이 있길래 뜯어봐 달라고 한 거야.”
지젤이 메모장의 첫 장을 넘기자 가히 스승님에 견줄 만큼 괴발개발인 낙서가 제 모습을 과시했다.
“낙서네?”
“낙서군요.”
“하긴 마법사가 숨겨 놓은 메모장에 딱히 특별한 게 적혀 있을 리가 없나. 그런데 얘는 왜 이런 걸 숨겨 놨대?”
몇 장의 낙서를 넘기자, 드디어 읽을 수 있는 문자들이 나타났다. 무척이나 악필이긴 했지만.
‘아, 오늘 점심은 뭐 먹지.’
‘일하는 척하기 힘들다.’
‘비서를 두들겨 패면 벌점이 몇 점이더라?’
‘비서 정수리가 나날이 휑해져 가는 걸 보니, 탈모가 분명해.’
‘빡빡빡빡. 빡빡빡이.’
그냥 진짜 끄적여 두기만 하는 메모장인가. 메모장에 대한 내 흥미가 점점 식어가던 차에 지젤이 팔꿈치로 내 배를 쿡쿡 찔러 왔다.
“이거 봐.”
그녀가 가리킨 페이지에는 ‘빡빡이가 나한테 자꾸 같이 하자고 한다. 귀찮게. 빡빡이 새키 얼굴이 별로라서 거절했다.’라고 적혀 있었다.
중년 남자 비서와 나름 젊어 보이는 여자 마법사가 같이 할 일이라…
“이거 어떻게 생각해?”
“어, 음… 아무래도 비서분이 이성적인 매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 같이 하자는 게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게 아닌 거 같아. 봐봐.”
그녀는 빠르게 메모장을 넘겨 대며 온갖 헛소리로 가득한 글귀들 가운데 특정 문장들을 차례대로 내게 짚어 주었다.
‘모발이 부족해서 거절한 게 아니라,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서 거절했다고 똑똑히 말했다.’
‘빡빡이가 자꾸 모발이나 얼굴이랑 대체 이 문제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물어 왔다.’
‘멍청한 빡빡이 자식. 얼굴이 밥맛이면 매일 그 얼굴 보면서 내가 어떻게 일하냐. 잘생긴 남자 얼굴이 바로 복지다. 안 그래도 지부장 자리 귀찮아 죽겠는데, 퇴근하고 빡빡이 얼굴을 또 봐야 한다고? 절대 사절이다.’
‘빡빠라빡빡. 빡빡빡.’
‘어제 퇴근하다 자신을 독바늘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 왔다. 그 남자가 말하길 빡빡이는…’
‘… 사실, 나는 이미 알고 있는데 말이지. 누구한테 말하면 벌점 1000점이라길래 말 안 하고 있지만. 지부장 자리에서 잘리기도 싫고.’
쓰다가 베고 자기라고 한 건지, 침 자국 때문에 중간 문장이 흐릿하게 번져 있었다. 도무지 뭐라 쓴 건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무래도 지부장 비서가 마냥 깨끗한 인물은 아니었던 거 같지?”
“그렇게 보이는군요. 거기다 여기 이 ‘독바늘’이라는 남자도 조금 의심이 갑니다.”
“적힌 뉘앙스로 보면, 아무래도 비서하고 독바늘이라는 남자가 서로 협조적인 관계로는 안 보인단 말이지.”
“독바늘이라는 남자가 이 둘을 죽였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지젤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야 모르지. 지금 우리한테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은걸. 그나저나 네 스승님 너무 안 오는 거 아냐? 아무래도 저 밑에 뭔가 있나 본데, 슬슬 쫓아가 볼까?”
“그러죠.”
책장 뒤에 숨겨져 있던 비밀 통로로 들어가자, 곧 스승님이 내려가신 것으로 보이는 계단이 우리를 반겼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한 냄새가 내 코끝을 간질여 댔다.
“피 냄새군요. 그것도 시간이 조금 지난.”
“흐음. 그럼 아무래도 머리 잃은 몸이 여기 밑에 있을 확률이 높겠네.”
계단을 따라 지하로 추정되는 장소로 오자, 지젤의 예상대로 두 구의 머리 없는 시신이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스승님은 시체의 옆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고.
“스승님. 좀 알아내신 게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흔적을 지우는 쪽으로 꽤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는 듯하단다. 흔적이 거의 지워져서 많이는 못 건졌단다.”
두 눈을 천천히 끔벅인 스승님은 여전히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이 시체들과 관련된 자는 총 셋이란다. 셋 중 둘은 남자에 연이 너보다 키가 더 크고, 나머지 여자도 여자치곤 꽤 키가 큰 편이란다. 지부장으로 보이는 여자는 이 비밀 통로에서 기습을 당했고, 비서 쪽은 위에서 죽인 다음에 몸만 이리로 가져왔단다. 거기다 이곳에 인위적인 자연 현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셋 중에 적어도 하나는 마법사일 가능성이 높단다. 그리고 잠깐 이쪽을 봐 주겠니?”
스승님은 지부장의 시체를 살짝 뒤집더니 목 뒤에 뚫린 구멍을 가리켰다.
“이건 아주 뾰족한 송곳 형태의 흉기를 사용해서 찌른 흔적이란다. 말벌이 침을 꽂듯 아주 깔끔하게 찌르고 빠졌지.”
말벌…? 스승님께선 그저 비유를 하신 것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그 단어에서 방금 보았던 단어가 떠올랐다.
‘독바늘’이라는 단어가.
“공교롭네.”
짧게 중얼거린 지젤도 나와 비슷한 것을 떠올린 듯했다. 스승님은 우리 둘의 표정을 보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혹시 다른 걸 알아낸 게 있니?”
나는 얼른 스승님에게 메모장에서 보았던 내용을 설명해 드렸다. 모든 설명을 다 들은 스승님은 잠깐 고민하시더니 고개를 저었다.
“무작정 둘을 잇기에는 조금 근거가 부족한 거 같단다. 일단 이 셋의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으니 일단 내 뒤를 따라와 보렴.”
어둑한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자그마한 문이 우리를 반겼다. 문을 열자 평범한 민가로 보이는 건물의 안으로 이어졌다. 스승님은 내겐 전혀 보이지 않는 흔적을 쫓아 민가를 빠져나왔다.
“여기서 둘과 하나로 갈라졌구나. 여자 쪽이 따로 떨어져 나갔어. 그런데 여기서부턴 흔적 위로 지나다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눈만으로 쫓기는 힘들 것 같단다.”
“잠깐. 남자 둘은 저 방향으로 갔고, 여자는 이쪽으로 갔다고요?”
지젤의 질문에 스승님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지젤은 내 얼굴을 힐끔 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여자 쪽이 만약에 방향을 안 바꾸고 이대로 쭉 갔으면, 아마 마법사 협회 지부가 나올 텐…”
콰아아아아앙!!!
지젤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커다란 폭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법사 협회 지부가 있는 방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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