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iest of Corruption RAW novel - chapter (169)
169 화 짜증.
짜증.
폭음이 가시자, 지젤이 내 옆구리를 꾹꾹 찌르며 입을 열었다.
“가서 확인해 볼 거야? 무슨 일이 벌어졌든 이미 다 날아가 버렸을 텐데?”
“그래도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도는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것도 그렇네.”
“연이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서 가 보자꾸나.”
우리는 발걸음을 빨리 놀려 혼비백산해서 흩어지는 시민들을 거슬러 마법사 협회의 지부를 향했다.
마침내 도착한 지부 건물의 상태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꽤 멀쩡하다면 멀쩡하다고 볼 수 있는 상태였다. 커다란 폭발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지만, 그 폭발의 여파로 날아간 건 지부장실이 있던 4층뿐이었다.
“하, 진짜 뒈지는 줄 알았네! 내가 이래서 협회 지부만 오면 항상 긴장한다니까! 무슨 건물이 맨날 터져 나가!”
“야! 접수원들아, 우리가 너희를 구했는데 상점 같은 거 뭐 없냐?”
“구해 주신 건 감사하긴 한데, 딱히 저희를 구하려 했다기보다는 스스로 살려다가 얻어걸린 느낌이 강하지 않아요?”
“어허! 우리를 뭐로 보고!!! 진짜 너무하네!!!”
“아, 알겠으니까 화내지 마세요. 여튼 구해 주신 분들 상점은 새 지부장님이랑 비서님이 정해지는 대로 검토해 볼 테니까요.”
“그래! 그래야 옳게 된 협회지! 암암!”
“잔해도 치워 주시면 추가 상점을 드릴게요. 다들 어서 움직여 주세요!”
“아, 싫은데… 진짜 틈만 나면 일 시키려고 난리라니까.”
분주히 돌아다니는 접수원들과 바닥에 늘어져서 개기는 마법사들의 시끌벅적한 모습은 번화한 시장을 무척 닮아 있었다. 여기저기 모인 마법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고대어를 중얼거리자 잔해들이 이리저리 모여들어 쌓인 다음, 환한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무작정 태우지 마시라니까요!!! 무슨 청소를 하라고 했지, 그냥 다 태워 버리면 진짜 어떻게 해요!!! 아! 저기! 저기! 건물에 불붙었잖아요! 어서 꺼요!”
“하, 진짜 말 많네…”
“그러게…”
마법사들이 지부 건물에 들러붙은 불을 끄는 사이, 열심히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접수원과 내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아까 나와 대화를 나눴던 바로 그 접수원이었다.
“앗?! 다들 무사하시네요!!!”
그녀는 대충 상자를 쌓아 만든 단상 위에서 내려와 우리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왔다.
“세 분 다 폭발에 휘말려서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다들 무사하신 걸 보니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
“혹시 다치신 분은 없습니까?”
종업원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곤 쓰게 웃었다.
“지부 건물 안에서 이 정도 폭발 같은 사고야 자주 일어나는 편이라서요. 마법사분들도 지부 건물 안에서 돌아다닐 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항상 긴장을 하고 다니시거든요. 덕분에 폭발이 터지자마자 빠르게 대처해서 다친 사람은 없어요.”
그녀는 슬쩍 눈을 돌려 군데군데 그을린 지부의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을 다시 보강해야 하겠지만, 이 정도야 익숙한 일이니까요. 그나저나…”
잠깐 말을 끌던 여인이 스승님과 지젤을 힐끔 바라보곤 내게 물어왔다.
“비서님을 죽인 범인에 대한 단서를 얻으신 게 있나요? 아무래도 현장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탓에 저희가 자체적으로 조사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독바늘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줘야 하나. 게다가 시체의 머리는 날아갔겠지만, 비서와 지부장의 머리 없는 몸은 지하에 아직 멀쩡히 있을 게 분명했다. 다만, 쉽사리 입을 열기에는 아직 확실한 정보가 적어도 너무 적었다.
“없어요. 아쉽게도.”
내가 고민을 채 끝내기도 전에 지젤이 너무나도 쉽게 대답을 끝마쳤다. 접수원은 입술을 꾹 깨물고 슬픈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렇군요. 비서님은 진짜 좋은 분이셨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네요. 그런데 그쪽 성함이 어떻게 되죠?”
“네? 저요? 저는 라리에라고 해요. 아, 그리고 혹시나 이번 사건에 대해 알아내시는 게 생기면 협회 지부로 와서 저 라리에를 찾아 주세요. 두 팔 걷고 나서서 도와드릴게요.”
“꼭 그럴게요. 자, 그럼 우리는 어서 가자. 마르낙.”
지젤은 그녀답지 않은 친절한 미소로 라리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내 팔을 붙잡고 이끌었다. 스승님은 앞서 나가는 나와 지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따라왔다.
지부와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머릿속에 든 의문을 꺼냈다.
“왜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렇게 쉽게 대답하신 겁니까? 아, 탓하는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지젤은 붙잡고 있던 내 팔을 놓곤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굳이 알아낸 사실을 그 종업원한테 떠벌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뿐이야. 혹시 내가 독단적으로 행동해서 화난 건 아니지…?”
“화 안 났습니다. 이런 일로 화낼 만큼 속이 좁지도 않고요.”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굳이 잠깐 부연 설명을 하자면, 방금 저 협회 지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이번 폭발의 용의자라서 그런 거야. 생각해 봐. 정확하게 4층만 날아간 폭발. 그것도 우리가 지부장실에 들어간 뒤에 터진 폭발이었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건 앞뒤가 전혀 안 맞거든.”
앞뒤가 안 맞아?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지젤은 내 어깨 뒤를 힐끔 보곤 나와 스승님한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봐봐, 지부장과 비서의 목을 날린 범인은 굳이 은폐할 수도 있을 사건을 목만 달랑 전시해 놔서 잔뜩 시끌벅적하게 만들었어. 마치 과시하려는 듯이 말이야. 굳이 과시를 해 놓고 귀찮게 그 장소를 날려 버린다? 애초부터 그냥 터뜨려 버려도 충분한걸?”
하얀 이가 입술을 꾹 짓눌렀다. 짜증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생각에 이번 폭발은 우리를 노린 공격이야. 정확하게는 다키아와 관련된 일을 추적하는 이들을 노린 공격이라고. 그놈들은 우리가 마법사들에게 헛바람을 넣은 범인을 쫓아 이곳에 도달할 걸 예상한 거지. 그리고 우리가 딱 4층에 들어간 순간을 노려서, 쾅!!!”
지젤은 입으로 폭발 소리를 흉내 내는 와중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범인은 지부 건물 안에 남아서 우리가 4층으로 향하는 걸 확인하고 폭발을 일으켰다는 겁니까?”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럴 확률이 무척 높겠지. 그래서 아까 그 여자 접수원도 용의 선상에서 제거할 수가 없는 거야.”
확실히 지젤의 말대로 생각해 보니, 라리에라는 여자 접수원이 우리에게 이번 사건의 단서에 대해 물어본 걸 쉽사리 넘길 수가 없었다.
혹시 라리에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고, 혹시라도 우리가 뭔갈 알아낸 건지 떠보려고 했던 거라면?
부드러운 손길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고개를 돌리자 스승님이 나를 향해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망집에 휘둘리지 말렴.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 접수원은 순수하게 비서의 죽음을 애도하며 우리에게 단서를 물어본 것일 수도 있잖니. 게다가 지부로 향한 여자는 마법사일 확률이 높단다. 자연스럽게 지부로 섞여들 수 있으려면 마법사인 편이 편하잖니. 이런 점을 고려해 보면 그 접수원은 범인 셋 중 하나로 보기 힘들겠지. 게다가.”
스승님이 짧게 말을 끊었다. 언제나 그렇듯 스승님의 푸른 눈은 맑은 호수처럼 잔잔했다.
“그 셋이 무엇을 꾀하든 전부 부질없는 짓이란다. 이 스승님이 있잖니?”
스승님 말이 맞았다. 이제 일행에 스승님이 합류한 이상, 무력적인 측면에서 감히 우리를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적어도 국가 단위의 조직이 아닌 이상.
그런데 따지고 보면 리베라티오나 이 북제국의 거미들이나 전부 국가 단위의 조직이 아닌가?
막 떠오른 상상 때문에 기분이 살짝 찝찝했지만, 어쩌겠는가. 사는 게 쉽지 않은 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일 테니까.
“일단 지금은 돌아갑시다. 다 같이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풀기로 약속했으니까요. 스승님, 혹시 드시고 싶은 건 없으십니까? 이렇게 나온 김에 먹을 걸 좀 사서 들어가도록 하죠. 겸사겸사 군것질거리도 좀 사고요.”
어머니랑 쟈멜한테 가져다주면 분명 좋아하겠지.
스승님의 두 눈이 부드럽게 휘어졌다.
“나는 오늘 왠지 육즙이 진한 고기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먹고 싶구나.”
“야채도 좀 사자. 쟈멜 걔는 너무 애 입맛이라서 이렇게라도 안 하면 야채를 안 먹거든.”
“그러죠.”
우리는 물제비호로 향하던 발걸음을 꺾어 시장으로 향했다.
***
장을 보고 난 다음 물제비호에 도착한 우리를 반긴 건, 흥건한 피 웅덩이들과 흩어진 살점이었다.
그래, 피와 살점.
왜 내가 이걸 생각 못 했지? 우리가 마법사협회 지부에 발목이 잡혀있는 동안, 다키아를 노리는 이들이 얼마든지 물제비호를 습격할 수 있었다.
설마 누군가 다친 건가?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어올라 물제비호의 갑판 위에 올라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누구 없습니까!!! 누구라도 대답해 주십시오!!!”
“내가 있다. 다들 무사하니 너무 당황하지 마라.”
방금 막 씻은 듯 젖어 있는 붉은 머리. 헐렁한 천 옷을 걸친 카디쇼가 내 부름에 답하듯 갑판 위로 올라왔다.
다들 무사하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조금 안심했다. 하긴, 이곳에 남겨 둔 전력만 해도 테르지오와 다키아, 그리고 무려 손가락 네 개인 카디쇼가 있었다. 덤으로 쟈멜이랑 학살자를 든 어머니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야말로 묻고 싶군. 넌 분명 그 옆의 지젤이라는 여자의 방에 들어가 있던 게 아닌가?”
“… 잠깐 장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먹을거리들을 사 오려고요.”
지리멸렬한 변명이었지만, 카디쇼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그런데 외출을 할 거면 갈 때 살짝 언질이라도 해 주고 가는 게 맞다고 본다. 당연히 있는 줄 알고 부르러 갔는데 없으면 당황스러우니.”
“기억해 두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겁니까?”
카디쇼는 부둣가 흥건한 피를 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습격이 있었다. 열댓 명의 용병과 일곱의 마법사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다키아를 내놓으라고 하더군. 우리는 당연히 거절했고, 그들은 당연하게 우리를 공격했다. 결과는 보다시피.”
그녀는 붉은 두 눈을 반짝이곤 자그맣게 콧김을 뿜었다.
“우리가 이겼고, 무도한 납치범 무리는 다 죽었다. 몇은 살려서 정보를 캐내 봤는데, 자신들의 의뢰주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더군. 그래서 앞서간 이들의 뒤를 따라 보내 줬다.”
“잘하셨습니다. 정말.”
“아, 마르낙 사제님! 오셨네요. 지젤이랑 잠시 어디 다녀오셨나 봐요?”
헐렁한 옷을 걸친 다키아가 밝게 웃으며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역시 지젤의 능력을 알고 있는 덕인지 내가 사라졌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저녁으로 먹을 걸 조금 사 왔… 팔이 왜 그럽니까?”
내가 떠나기 전까지 멀쩡했던 다키아의 왼팔 위엔 붕대가 겹겹이 감겨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팔을 보곤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아까 마법을 쓰다가 조금 사고가 있었어요.”
“어떤 사고 말입니까?”
곧, 카디쇼가 구체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용병들이 챙겨 온 석궁에 맞았다. 대부분의 화살은 내가 쳐냈지만… 미처 쳐내지 못한 한 발을 맞았지. 일단 내가 응급처치를 해 뒀으니, 이 도시에 있는 수복교의 사제를 찾아가서 치료를 받으면 흉터 하나 안 남고 나을 거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일단 알겠습니다.”
말로는 알겠다고 했지만, 상황이 돌아가는 꼴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히 내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카디쇼. 이것 좀 받아서 테르지오한테 전해 주십시오. 저는 잠깐 다키아랑 같이 수복교의 사제분을 찾아갔다 오겠습니다.”
“그러지.”
카디쇼는 흔쾌히 대답하며 내 손에 한가득 들린 짐을 받아갔다.
“그럼 다키아. 빠르게 갔다 오죠.”
다키아는 볼을 살짝 붉히며 내 눈치를 슬쩍 보았다.
“두, 둘이서만요?”
“아뇨. 스승님, 스승님도 저희와 같이 가 주셨으면 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스승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얼마든지 같이 가 줄 수 있단다.”
만약에 다키아를 노리는 적이 또 나타나면 스승님과 함께 모조리 도륙 낼 생각이었다.
다키아는 왠지 모르게 살짝 풀이 죽은 채로 작게 중얼거렸다.
“단둘이 가는 게 아니네요…”
그렇게 우리는 셋이서 수복교의 사제를 찾아가 다키아의 치료를 받았다.
아쉽게도 다키아를 노린 새로운 습격은 없었다.
***
그날 밤, 우리는 잔뜩 경계하면서도 재회의 회포를 풀었다. 테르지오가 솜씨를 뽐낸 온갖 요리들과 그간 있었던 일을 나누면서.
밤이 깊어지자, 하나둘씩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테르지오와 함께 뒷정리를 끝마치고 내 방으로 돌아오자, 지젤이 내 방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슬슬 출발할까?”
“어머니.”
‘살해!’
나를 기다리며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던 어머니는 내 부름에 냉큼 손으로 변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주머니 속에 챙겨 넣고 항상 챙겨 다니던 새카만 가면을 얼굴 위에 썼다.
이번 일은 얼굴이 드러나서 전혀 좋을 일이 없었으니까.
지젤도 미리 준비해 둔 민무늬 가면을 얼굴 위에 쓰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너 화났어?”
“전혀 화 안 났습니다.”
“아까부터 쭉 지켜보니까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 빼곤, 뭔가 분위기가 처져 있던데. 혹시 다키아, 걔가 다쳐서 그런 거야?”
그녀는 마치 내 마음속을 읽기라도 한 듯이 정확하게 내 분노의 원인을 짚었다. 물론, 순순히 인정할 마음 따윈 없었다.
“아닙니다.”
“화난 거 맞네. 천생 화 같은 건 전혀 안 내는 타입인 줄 알았더니. 동료가 다치면 너도 화를 내는구나? 혹시 내가 다쳐도 화를 내 주려나? 음… 아직 난 그 정도까진 아닌가? 나중에 실수로 슬쩍 한번 다쳐 볼까?”
“그런 이유로 쓸데없이 다치면 진짜 화낼 겁니다.”
“오.”
짓궂은 장난기가 한가득 들어간 미소가 나를 반겼다.
“어찌 됐든 내가 다쳐도 화내 준다는 거네? 나는 그거면 됐어.”
“어서 출발하기나 하죠. 유물들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이상, 시간은 많을수록 좋…”
쿵쿵쿵.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들겨 왔다. 문을 슬쩍 열자 반짝이는 초록빛 눈동자가 나를 반겼다.
옷을 다 껴입고 나갈 채비를 끝마친 쟈멜이 내 어깨너머로 지젤을 보자마자 잔망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후. 후. 후. 후. 역시… 제 추리는 틀리지 않았어요…! 지젤! 감히!!! 이 쟈멜을 빼놓고 마르낙 사제님의 심복 점수를 따려고 하다니!!! 아무리 네가 내 단짝 친구라도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네가 네 방으로 안 기어들어 가고 마르낙 사제님 방에 몰래 들어갈 때부터 나는 다 알아봤어!!!”
쟈멜은 아까 회식 중에 지젤에게 건네받은 신성을 감추는 목걸이를 팔랑팔랑 흔들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엉겨붙는 바위 님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어서 너보다 백배는 유능한 쟈멜이! 마르낙 사제님을 보필할 테니까! 너는 그냥 방에 가서 쉬어!”
지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아… 진짜 쓸데없이 이럴 때만 감이 좋아서… 어쩔래? 데리고 갈 거야?”
결정권이 내게로 넘어오자, 쟈멜은 두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졌다.
“지젤이랑 마르낙 사제님 둘 다 이 한밤중에 가면을 쓰고 있는 거 보니까, 아주 은밀하고 남들 눈에 띄면 안 되는 게 분명해 보여요! 저 은밀하고 눈에 안 띄는 거라면 아주 자신 있어요! 게다가 이럴 줄 알고 제가 챙겨 온 게 있어요!”
그녀는 주머니에 꾸깃꾸깃 넣어 둔 수건을 꺼내더니 삼각형으로 곱게 접어 엉성한 마스크를 만들어 내 입가를 엉성하게 가렸다.
“봐요! 이제 제 얼굴도 안 보여요! 어때요? 누가 봐도 제가 쟈멜이란 사실은 아무도 모를 거예요!”
누가 봐도 쟈멜이었다. 그냥 수건으로 입을 가린 쟈멜.
“하아. 진짜 조용히 제가 시키는 대로 하실 자신 있으십니까?”
“완전! 완전완전 있어요!”
쟈멜은 지젤이 가는 이상, 자신도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고개를 돌려 지젤에게 물었다.
“혹시 남는 가면 없습니까?”
“여분으로 챙겨 둔 게 몇 개 있긴 해.”
“하나만 쟈멜한테 주시지요. 저렇게 덜 마른 수건을 얼굴에 두르고 갈 순 없지 않습니까.”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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